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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5-05-04 11: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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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캄한 어둠. 보이지 않는 어둠속에 떠오르는 얼굴이 말을 건다.

연극 '어둠속의 햄릿'(원작:윌리엄 셰익스피어/연출:정형석)에서 햄릿은 선왕의 복수를 하지 않고 오필리어와 결혼하여 클로디어스가 죽은 후 자기 자리를 되찾는 것을 목적으로 살아간다. 햄릿의 본래 주제와 병치시켜 ‘만약.......’이라는 상상력이 빛을 발한다. 피가 피를 부르고 복수가 복수를 낳는 삶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한 햄릿. 그는 뜻한 바를 이룬 것일까?

오필리어와 결혼한 햄릿은 진실을 알고 있다는 죄목을 물어 혀가 뽑히고 눈이 먼 채 지하 감옥 깊은 곳에 갇힌 벗 호레이쇼를 찾아가 이런 저런 속내를 털어 놓는다. 군대에 보냈던 햄릿주니어는 할아버지 클로디어스의 생일을 맞아 궁으로 돌아와 좀 더 공부를 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차기 왕권을 노리는 아버지를 돕기 위해 포기한다. 햄릿과 레어티스는 차기 왕권을 두고 암투를 벌이던 중이었는데 공들여 햄릿을 궁지에 몰아넣었다 여긴 순간 반격을 당한 레어티스는 주니어를 찾아와 비밀스런 진실을 말해준다. 진실을 알고 난 후 햄릿주니어는 고뇌하는데.......

극소화 시킨 조명만이 어둠속의 배우들을 비춘다. 표정이나 모습의 일부만을 비추는 제한적인 시선 때문인지 짧은 공연 시간에도 불구하고 집중해서 보게 되는 효과가 있었다. 덕분에 대사를 좀 더 자세하게 들을 수 있었을 뿐 아니라 제한된 시각 때문인지 조용한 가운데 생각할 거리도 많았다.

복수란, 무엇인가? 원작 햄릿에서 그는 모두를 죽이고 본인도 역시 죽고 만다. 그 시대엔 복수를 하지 않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일이었다 한다. 그러나 자신마저 죽어버리는 복수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의문이 드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 때문일까, 복수보다는 자기 혼자 진실을 외면함으로 비극이 되풀이 되는 것을 막고 백성들이 잘 살기를 선택한 햄릿은 당당하게 자신을 변호한다.

그런데 그 당당함은 왠지 변명처럼 들렸다. 정말 그게 전부일까.

그가 선택한 권력은 여전히 그의 것이 되지 못했고 아내의 오빠는 호시탐탐 햄릿을 끌어내린다. 눈에 가시였던 레어티스를 쳐내기 위해 전쟁이 나자 그를 총사령관으로 추대하지만 레어티스는 혼자만 죽을 수 없다며 햄릿주니어를 데려가고 결국 두 사람 다 전사한다. 주니어는 레어티스에게도 외조카, 하나뿐인 여동생의 하나뿐인 아들인데 결국 어른들의 싸움이 푸른 청년은 피어보지도 못하고 어둠속으로 가 버렸다. 그것이 레어티스가 햄릿에게 한 복수일까?

얼굴도 한번 보지 못한 선왕, 친 할아버지의 독살에 대한 진실은 햄릿주니어를 고통스럽게 한다. 그에게는 선왕보다 자신을 길러준 클로디어스가 훨씬 더 가깝기 때문이다. 누구에게 복수할 것인가, 아니 ‘복수’라는 말이 어울리기나 하는 상황인가, 왜 외삼촌은 진실을 알아야한다면서 이런 이야기를 자신에게 해주었는가, 진실을 알았으니 감사해야하는 것인가, 아니면 느껴지는 대로 원망할 것인가? 햄릿의 고뇌는 누구라도 답을 말해줬으면 싶은 질문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서는 형국이다. 답은 없이 되풀이되는 질문.

획기적인 발상과 신선하게 자신만의 세계를 확실히 보여주고 있는 정형석 연출의 재구성이 돋보이는 수작이다. 특히 조명을 극단적으로 최소화시켜 집중도를 높이다보니 왠지 햄릿의 독백을 들으며 한마디도 할 수 없었던 호레이쇼가 된 느낌이 든다. 관객도 역시 햄릿의 어둠, 그 일부였던 것일까. 스물스물한 오싹함이 든다.

해피엔딩을 바랬고 표면적으로 이루어낸 햄릿, 그러나 어쩌면 원작보다 더한 비극, <어둠속의 햄릿>은 제33회 서울연극제에서 남자 연기상을 받은 박기륭이 '햄릿', 그에 맞서는 '레어티스' 역에 서민성, '오필리어' 역에 이희영, '햄릿 주니어' 역에 오동욱, 그리고 무희 역을 맡은 신연경, 정진영 등이 출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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