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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3-09 18:4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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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위원인 신영전 교수가 한 신문 칼럼을 통해 사직서를 제출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유전자 검사 항목 확대와 영리 유전자 검사 연구 사업을 승인한데 이어 보건복지부가 검사 항목을 확대한 유전자 인증제 시범사업을, 그리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임상 사용 평가가 완료되지 않은 의료기기를 원격의료에 활용하는 사업을 허가한데 대한 우려의 표시였다. 사실상 국민 유전자 정보, 질병 정보가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영리 기업에 흘러들어 많은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고, 이는 국가생명윤리위원회의 결정과 역할에도 반한다는 것이었다.

얼마 전, 대통령 직속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위원인 신영전 교수가 한 신문 칼럼을 통해 사직서를 제출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유전자 검사 항목 확대와 영리 유전자 검사 연구 사업을 승인한데 이어 보건복지부가 검사 항목을 확대한 유전자 인증제 시범사업을, 그리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임상 사용 평가가 완료되지 않은 의료기기를 원격의료에 활용하는 사업을 허가한데 대한 우려의 표시였다. 사실상 국민 유전자 정보, 질병 정보가 아무런 안전장치도 없이 영리 기업에 흘러들어 많은 부작용을 야기할 것이고, 이는 국가생명윤리위원회의 결정과 역할에도 반한다는 것이었다.


# 신영전 교수가 ‘국가생명윤리위원회’ 위원직을 떠난 이유


그는 유전자 검사 오용으로 야기될 차별, 낙태, 고용보험 가입 거절, 불필요한 의료비 상승, 부정확한 유전자 검사 결과로 인한 우울증과 자살 등을 걱정했다. 그럼에도 이에 대한 여성계, 장애계, 종교계 등 국민의 이해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며, 그 부작용을 막을 제도 역시 전무한 상태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경제 활성화에 대한 문재인 대통령의 고민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속도’가 ‘흉기’가 되지 않으려면 속도전에 앞서 정책들이 더 정교하고 섬세하게 추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호모데우스’를 쓴 ‘유발 하라리’는 ‘브레이크를 밟고 싶어도 브레이크가 어디 있는지 아무도 모르는 미래 사회’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제어가 불가능할 만큼 급변하는 사회에서 효과와 파장조차 분석되지 않은 채 시행되는 수많은 정책들이 훗날 얼마나 폭력적인 결과로 나타나게 될지, 우리는 이미 그 결과를 체험하고 있다.


# 소상공인의 몰락, 20년 전부터 준비되고 있었다.


주말 오후 전자 제품을 사려고 오랜만에 대형마트에 들렸다. 주차 행렬에 20분을 지체하다 마지막 지하층인 7층에 가서도 잠시 대기하고서야 겨우 주차할 수 있었다. 주차공간을 찾아 지하 7층까지 내려가면서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오는 자동차 행렬을 흥미롭게 지켜보느라 잠시 넋을 놓았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물품들 대부분은 20여 년 전엔 고스란히 동네 가게에서 팔고 있었다. 그 가게들을 고스란히 이 대형마트에 옮겨 놓고야 말았으니 자본의 흡입력에 어찌 감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우리나라의 전체 취업자 대비 자영업자 비율은 미국의 4배, 독일과 일본의 2.5배인 25.4%에 이를 정도로 매우 높다. 그 많은 자영업자들이 시장을 모두 내준 지금 도대체 무얼 해서 먹고사는지, 궁금해지면서 머릿속은 어느새 동네 상가 거리를 한 바퀴 훑고 있었다. 치킨, 미용, 학원, 빵, 커피, 분식, 대충 그런 품목들이다. 빵집, 커피는 대부분 체인점이고 미용실, 학원, 치킨도 체인점인 경우가 많은 걸 감안하면, 대체로 가맹점 형태의 소상공인들이다.


정부는 지난해 말 열악한 환경의 소상공인들 비용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카드 수수로 인하 정책을 발표했었다. 이에 카드 회사들이 통신 회사, 대형마트 등 대형 가맹점에 대한 카드 수수료율을 최대 0.3%포인트 인상하겠다고 발표한 다음날. ‘정부 압박에 결국... 윗돌 빼서 아랫돌 괴는 카드사’라는 제목의 기사가 한 경제신문 머리기사로 올라왔다. 그런데 며칠 전 같은 신문은 ‘다 죽게 생겼다, 대통령 앞 자영업자의 호소’라는 제목의 기사를 역시 머리기사로 실었다. 내용을 종합해보면, 소상공인들 살리자고 큰 기업들 피해 주지 말고 ‘을(소상공인과 최저임금 노동자)’들끼리 알아서 해결하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 윗돌 빼서 아랫돌 고이기 VS. 아랫돌 빼서 윗돌 고이기


소상공인들이 걱정인 보수 언론들은 카드 회사 영업사원들 일자리까지 들먹이며 ‘을’들 간의 싸움까지 부추기려 한다. 그러면서 대형마트가 동네 상권을 무차별적으로 잠식해갔던 보다 근본적인 원인, 부당한 가맹점 수수료, 치솟는 임대료 등 아랫돌 빼서 윗돌 고이는 위험천만한 행태에 대해선 말이 없다. 수많은 사람들을 벼랑으로 몰고 있는 지금의 양극화가 바로 ‘아랫돌 빼서 윗돌 고인 결과’가 아닌가!


카풀 논쟁으로 들끓는 택시업계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고객을 연결해주는 카카오 택시 어플이 출시됐을 당시 택시 기사들이 줄줄이 가입하는 것이 내심 걱정되었던 기억이 있다. 이제 택시업계가 카카오에 예속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생각에서였다. 결국 카풀 서비스에 반대하며 3명의 택시 기사가 분신자살을 시도하는 일이 발생했고, 2명이 목숨을 잃었다. 소카 이재웅 대표 역시 이들 택시업계의 고발 행위에 맞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음식 배달 앱 등 많은 인터넷 플랫폼들이 그랬듯이 이용자들은 새로운 세상에 의심 없이 동참하곤 한다. 공짜인데다 편리성까지 갖추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대가없이 편리함만을 선사하는 기업가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산다. 택시들과 고객들을 플랫폼으로 재편한 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투하된 자본을 회수하고 거대 기업으로 성공하기 위해 다시 ‘아랫돌 빼서 윗돌 고이는’ 작업이다.

대형 마트가 하나 둘씩 생겨났던 20여 년 전에도 ‘집 앞에서 마트까지’라는 슬로건 하에 셔틀버스를 운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 지역 상권을 위협했던 셔틀버스 운행을 둘러싸고 논란도 있었지만 소비자들은 편리함에 손을 들어줬다. 소상공인들의 외로운 생존 투쟁은 그렇게 시작된 지 이미 20년이 흘렀고 동네 상권은 지금의 초라한 모습으로 재편되고 말았다. 이제 소비자는 셔틀버스 아니어도 기꺼이 대형마트로 향한다. 물론, ‘없는 것이 없는’ 대형마트의 마력에 이끌려서다.


# 일단 터진 규제, 사후 규제로 막기 어렵다!


시장의 독점화, 성공한 플랫폼들의 독점 과정이 대부분 그런 식이다. 달콤한 유혹에 길들여지는 순간, 그 환경은 이미 바꿀 수 없는 삶의 기반으로 자리를 잡고 만다. 기존의 대기업 유통망은 물론 배달 앱, 다음이나 네이버 등의 거대 검색 엔진들도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을 연결해주는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그러나 새로운 유통 생태계와 소비 구조로의 재편에 이어 따라오는 대가들은 당연히 혹독했다.


어플 하나로 수많은 음식점들을 평정해 마치 하청업체처럼 거느리고 있는 플랫폼 사업자들도 같은 수순으로 광고료와 수수료 챙기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과당 경쟁을 유도하는 슈퍼리스트 광고료에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광고와 후기 조작에 이르기까지 유통 기반을 위협하는 많은 문제들에 사후 규제로는 속수무책이다. 약 15조 원 규모로 추정되는 음식 배달 시장에서 20%인 3조 원이 이미 플랫폼 사업자(배달 앱 3사 독점)에게 흘러 들어가고 있다. 경제 기반의 최저 선에서 사투를 벌이고 있는 소상공인들을 기반으로 거대 기업으로 성장해버린 배달 앱의 영향력은 이미 만만치 않다.


대형마트라는 신세계의 황홀함에 무심히 가려졌던 탈규제가 지금의 이 무서운 유통 생태계의 주범이 될 것이라고 당시에는 누구도 쉽게 감지하지 못했다. 일단 터진 봇물을 다시 규제로 막는다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도 뼈저리게 경험했다. ‘규제 샌드박스’로 실행되는 정책들을 중단해달라는 신영전 교수의 주장에 공감이 가는 이유다. 이 사회에 미칠 영향을 치밀하게 고민하지 않은 채 봇물부터 터놓고 문제가 발생하면 다시 규제로 막아보자는 인식처럼 위험한 것은 없다. 뚫고 나오려는 봇물의 압력은 이미 제어할 수 없는 거대한 흐름으로 바뀌곤 한다. 지금의 자본주의가 그런 역사를 고스란히 거쳐 왔고, 결국 지금 인간의 삶은 말할 수 없는 지경이 아니던가!


# 기술의 독점화, 소비자도 신중해져야 한다.


공유경제는 이미 거대한 물결이다. 그러나 그 물결 속에 중요한 문제들이 은폐되어 있다. 친환경, 효율성, 자원 절약 등 공유경제의 긍정적 측면만 부각될 뿐, 새로운 방식의 경제 기반에서 경계가 더욱 모호해질 분배 구조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다. 게다가 누구도 감히 거스를 수 없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타이틀을 뒤집어쓰고 있어 반대하면 반동처럼 매도되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유용한 제도라 해도 먹고사는 방식에 변화를 예고한다면 숙고하는 것이 먼저다. 기사들의 불친절, 승차 거부 등 열악한 수입 구조와도 맞물린 문제들이 카풀 서비스를 당연시할 근거가 될 수도 없다. 누구를 위한 공유인지 질문이 필요한 때다.


거침없이 밀려드는 기술혁명이라는 실체는 생명과학, 의료, 자동차, 유통, 문화 등 우리 삶의 곳곳에 드리우고 있다. 기술 개발자와 자본만이 새로운 시스템을 이해하고 컨트롤할 수 있을 뿐, 일반 소비자가 전반적 메카니즘을 이해하기도 어려운 구조다. 소비하는 방식이 더 신중해져야 함은 물론이거니와 소비자의 전문성도 중요해졌다. 신영전 교수가 유전자 분야의 탈규제 조치와 관련해 정작 당사자의 이해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임을 우려했던 것도 이런 구조의 위험성으로 짐작된다. 지금이라도 ‘규제 샌드박스’ 법령을 중단하고 시행 전에 이들 사업이 국민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국민에게 설명하고 물어봐 달라고 호소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카풀 문제를 보자.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은 제81조 1항에서 자가용 자동차의 유상운송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공유경제라는 명분하에 카풀 서비스를 전격 추진하려던 근거는 ‘출.퇴근 때 승용차를 함께 타는 경우’라는 알량한 예외 조항이다. 조문 해석의 문제는 별론으로 하더라도, 출·퇴근 시간의 찔끔 운영으로 자동차 공유경제가 실현될 것이라고 믿을 사람이 있을까. 일단 시행되면 봇물처럼 전반으로 확대될 것임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 기술혁명이라는 리노베이션, 주체는 인간이어야


세계는 지금 인간이 살아가는 기반과 방식에 대대적인 리노베이션을 단행 중이다. 그러나 대세이니 그저 받아들이라는 말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새로운 사회의 경제 기반에서 대다수 사람들이 무엇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 복잡하고도 중요한 문제를 함께 풀어야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기반은 우리 의지와 무관하게 도래할 것이고 문제는 그때 가서 풀어 가면 된다는 식의 막연함에 기대고 있을 뿐, 진지한 고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런 면에서 공유경제 사업의 첫 당사자가 된 택시 기사들의 저항은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함께 인간이 토지에서 쫓겨났던 당시, 새로운 삶의 터전이 자기 결정적이지 못한 데서 왔던 그 불안감이자 심리적 저항과 닮아 있기 때문이다.


19세기의 러다이트 운동이 산업혁명이라는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다. 그러나 당시의 저항은 이후의 노동 환경을 꾸준히 개선해왔던 역사적 계기가 되었다. 대세를 거스를 수는 없었지만 대안 없는 ‘속도’를 일정 부분 제어했던 것이다. 그러나 저항이 길어질수록 시대의 낙오자가 될 뿐이라는 지금의 불안감은 이런 ‘긍정적 저항 심리’ 조차 압도하고 있다.


기술혁명 시대는 틀림없이 더 많은 편리함과 더 많은 생산을 보장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편리함의 총량이 아니라 개개인이 느끼게 될 삶의 진전된 모습이다. “플랫폼 사업의 핵심은 이익을 공유해 협력을 이끌어내는 것인데 카풀 서비스는 그렇지 못하다”는 건국대 최배근 교수(머니투데이, 2019.2.25.)의 주장은 그런 면에서 공유경제의 핵심을 잘 설명한다. 그는 “플랫폼을 통해 소비자로부터 이용 정보 데이터를 공짜로 취득하면서, 카풀 기사들에게도 중개수수료만 20%를 떼겠다는 것이 어떻게 사회적 기여일 수 있느냐”며 비판한다.


또한 GDP(국내총생산) 측면으로 봤을 때도 택시업계가 카풀보다 기여도가 높다면서 “카카오는 택시산업을 빼앗을 것이 아니라 플랫폼을 키워 데이터 확보를 통한 인공지능 산업 발전에 집중해야 한다.”면서 공유경제의 개념을 보다 잘 실현하고 있는 ‘라주즈(이스라엘 블록체인 판 우버로 불림)’ 사례를 언급했다. 어쨌거나 차량공유제는 세계적 흐름이다. 그러나 플랫폼 사업자들이 택시산업을 주도하고 정부가 측면 지원하면, 택시 종사자와 이용자는 구경이나 하며 따라가야 하는 지금의 방식이 진정한 공유경제인지는 의문이다.


안정된 소득 생활자들에게 월 10만 원의 수입 감소는 큰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최저임금 생활자들에게 10만 원의 수입 감소는 몇 끼 식사를 걸러야 할 타격일 수도 있다. 생명을 불사르며 택시 노동자가 알리려했던 것은 거창한 대의가 아니라 바로 생존의 위협이라는 눈앞 현실이었다. 정부가 지금의 카풀 논쟁을 제도 하나를 사이에 둔 이해 당사자들 간 찬반 논쟁쯤으로 인식하고 있다면 심각한 착오다.


신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은 “시대가 바뀌고 있는데 옛날 가치를 고집하고 있다.”며 ‘카풀’을 언급했다. “규제가 풀리면서 입는 피해는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는 등 사회적 합의가 되도록 정부가 적극 노력하겠다.”고도 약속했다. 그러나 인간의 건강한 삶이란, ‘튼튼한 생존 기반’ 자체에서 오는 것이지 대통령 말씀처럼 ‘취약한 기반을 적절히 보상’하는 보완 방식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괼 수 있는 부실한 골격은 양극화를 더욱 가속화할 뿐이다.


신산업이 ‘소비자 편의’에 있어야 한다는 소카 이재웅 대표의 주장도 지금의 상황을 설득하기엔 역부족이다. 타당한 말이지만, 더 중요한 점을 간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비자 편의만을 무기로 대형마트 위주의 상권으로 재편해왔던 결과가 고스란히 오늘의 소상공인 문제를 남겼다. ‘소비자 편의’의 당사자인 ‘소비자’는 곧 신산업 기반의 ‘구성원’이기도 하다. 재편될 기반에서 결과물이 어떻게 분배될 것인지가 이들에게 더욱 절실한 생존의 문제임을 간과한 채 신산업을 말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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