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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9-03-09 18:5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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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 있었던 게 꼭 5년 전이다. 2014년 2월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엄마 박모(60) 씨와 장녀 김모(35) 씨, 차녀 김모(32) 씨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번개탄을 이용해 세 모녀가 동반 자살했던 것이다. 현장에는 현금 70만 원이 든 봉투, 집세와 공과금이 밀려 죄송하다는 내용의 메모도 함께 발견됐다. 특히 이 부분은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도 자존감을 지키려고 했던 선량하고 정직한 보통사람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고, 당시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비판과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송파 세 모녀 자살 사건이 있었던 게 꼭 5년 전이다. 2014년 2월 26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동의 한 단독주택 지하 1층에서 엄마 박모(60) 씨와 장녀 김모(35) 씨, 차녀 김모(32) 씨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번개탄을 이용해 세 모녀가 동반 자살했던 것이다. 현장에는 현금 70만 원이 든 봉투, 집세와 공과금이 밀려 죄송하다는 내용의 메모도 함께 발견됐다. 특히 이 부분은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도 자존감을 지키려고 했던 선량하고 정직한 보통사람의 면모가 잘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그래서 이 사건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렸고, 당시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비판과 성찰의 계기를 제공했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 더 커진 소득격차, 왜?


2월 21일, 통계청은 ‘2018년 4분기 가계 동향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충격적인 결과였다. 계층 간 소득격차가 갈수록 더 커졌기 때문인데, 지난해 4분기 소득분배 지표가 사상 최악인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가구의 월평균 소득은 461만 원으로 전년도 4분기보다 3.6% 증가했다. 이는 2012년 4분기의 5.4% 증가 이후 증가폭이 가장 큰 것이다. 그런데 소득계층별로 살펴보면, 고소득층과 중간층은 소득이 증가한 반면에 하위 40%에 속한 저소득층은 소득이 감소했다. 즉, 가구 소득 상위 20% 구간의 2018년 4분기 소득은 932만4천 원으로 2017년 동기에 비해 10.4% 늘었지만, 놀랍게도 소득 하위 20% 구간은 월평균 명목소득이 123만8천 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17.7%나 줄었다.


그 결과, 5분위(상위 20%) 계층의 소득이 1분위(하위 20%)의 몇 배인지를 보여주는 지표인 ‘5분위 배율’이 5.47배로 나타났다. 이는 관련 통계를 내기 시작한 2003년 이후 4분기 기준으로 격차가 가장 크게 벌어진 것이다. 최근 5년 동안의 4분기 기준 ‘5분위 배율’의 추세를 살펴보면, 2014년 4.54, 2015년 4.37, 2016년 4.63, 2017년 4.61이었고 2018년엔 5.47로 급증한 것이다. 참고로 가구 소득 하위 20~40% 구간(2분위)의 2018년 4분기 소득도 4.8% 줄어든 277만3천 원으로 집계됐다. 반면에 소득 하위 40~60% 구간(3분위)은 411만 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1.8% 증가했다. 그리고 소득 상위 20~40% 구간(4분위)은 가구 소득이 557만3천 원으로 전년 동기에 비해 4.8% 늘어났다.


1분위 가구의 소득이 줄어든 가장 큰 이유로는 근로소득과 사업소득의 감소가 꼽힌다. 1분위 가구는 고령·여성·저학력자의 비중이 커서 임시·일용직이나 영세 자영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들의 근로소득(43만5백 원)과 사업소득(20만7천3백 원)은 전년 동기보다 각각 36.8%와 8.6% 감소했다. 경기 둔화로 지난해 4분기에 임시·일용직(-15만1천 명)과 직원이 없는 자영업자(-8만7천 명)가 크게 줄었는데, 그 직격탄을 저소득층이 맞은 탓이다. 실제로 소득 1분위 가구주 가운데 무직인 비중은 55.7%로 전년 동기(43.6%)보다 12.1%포인트나 증가했다. 게다가 1분위의 가구당 취업 인원수는 0.64명으로 전년 동기(0.81명)보다 21%나 줄었다.


한편, 고령화도 소득 1분위의 소득을 끌어내리는 요인이다. 1분위의 평균 나이는 63.4살로 전년 동기의 61.7살보다 1.7살 많아졌다. 1분위에서 가구주가 70살 이상인 가구의 비중이 2017년 4분기 37%에서 지난해 4분기 42%로 5%포인트 증가했다. 1분위에 고령 가구의 비중이 확대됐다는 것은 그만큼 빈곤 가구가 많아졌다고 추정할 수 있는 부분인데, 우리나라의 노인 빈곤율은 2017년 현재 42.2%로 OECD 평균인 13.5%의 3배를 넘는다.


# 가난한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통계청의 ‘2018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 따르면, 2017년 현재 우리나라의 상대빈곤율은 17.4%(OECD 평균은 11.8%)이다. 이것은 중위소득의 50% 이하인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하는데, 여기서 중위소득은 전체 가구를 소득 수준에 따라 정렬한 상태에서 딱 가운데 위치한 가구의 소득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소득 불평등이 심하기 때문에 중위소득의 크기가 형편없이 작은 편이다. 그런데 어떤 가구의 소득이 중위소득의 절반도 안 된다는 것은 실제로는 절대빈곤에 가까울 정도로 충분히 가난할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여기에 속하는 가난한 인구가 2017년 현재 전체의 17.4%나 된다.


그럼, 2018년엔 상대빈곤율이 어떻게 될까. 좀 전에 소개한 통계청의 ‘2018년 4분기 가계 동향 조사’ 결과를 보면, 소득 하위 20% 구간에 속한 가구들의 월평균 명목소득이 2017년 4분기에 비해 17.7%나 감소했고, 5분위 배율은 2017년 4분기의 4.61에서 2018년 동기엔 5.47로 급증했다. 이렇게 더 커진 소득격차 만큼이나 2018년도 상대빈곤율은 전년에 비해 더 커졌을 개연성이 높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들 상대빈곤자들이 얼마나 복지국가 체제와 공적 사회보장의 보호와 도움을 받고 있는지, 바로 이 부분이다. 


우리나라가 추구해야 할 핵심적 목표는 격차 사회의 해소이고, 이를 위한 최우선적 과제가 바로 상대빈곤율을 줄이는 것이다. 주요 선진 복지국가들의 상대빈곤율이 5∼10% 수준이고 OECD 평균이 11.8%인 점을 감안할 때 우리나라의 상대빈곤율 17.4%는 높아도 너무 높다. 이에 문재인 정부는 ‘제2차 사회보장 기본계획’을 통해 상대빈곤율을 2017년 17.4%에서 2023년 15.5%로 낮추고, 2040년엔 OECD 평균 수준인 11.3%로 낮춘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 목표를 지켜보며 많은 분들은 두 가지의 의문을 가질 것이다. 하나는 왜 격차 사회의 해소를 위한 상대빈곤 감축 속도가 이렇게 더디냐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렇게 많은 상대빈곤자들을 어떻게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을 것인지, 바로 이런 문제가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 송파 세 모녀 사건, 앞으로도 계속 생길 수밖에 없을까?  


당시 송파 세 모녀의 상태를 요약해서 표현하자면, 근로를 통한 자립적 경제생활을 이어가는 데 실패했고 결과적으로 빈곤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 시점에서 공공부조, 즉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수급자도 아니었다. 송파 세 모녀는 복지의 사각지대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이들은 소위 ‘비수급 빈곤층’이었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대빈곤자들 중 상당 부분은 절대빈곤에 가깝다. 하지만 이들 중 일부만이 공공부조의 제도적 도움을 받고 있다. 사각지대가 구조적으로 너무 크고, 그래서 지금도, 또 앞으로도 송파 세 모녀의 비극은 계속 일어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상대빈곤층, 그중에서도 특히 ‘비수급 빈곤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논리적 방안으로 크게 두 갈래의 해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하나는 공공부조인 국민기초생활보장의 포괄 범위를 크게 확충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근로를 통한 자립적 경제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경제와 복지 제도를 유기적·통합적으로 잘 작동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전자는 공공부조를 통해 빈자들을 더 넓게 보호하자는 것이고, 후자는 복지국가의 보편적 사회보장 체제를 통해 경제사회적 격차와 불평등을 최소화함으로써 빈자의 비중 자체를 줄이자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난 5년 동안 이 두 가지 과제를 얼마나 잘 수행했을까. 돌아볼 필요가 있고 따져봐야 한다.


먼저, 공공부조의 역할 강화부터 따져보자. 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의 최저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을 유도할 목적으로 공공부조 법령인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이 1999년 9월 7일 제정됐고, 2000년 10월 1일부터 시행됐다. 박근혜 정부는 기존의 통합 급여체계를 개별 급여 방식의 맞춤형 급여체계로 개편하기 위해 2014년 12월 30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개정했고, 2015년 7월 1일부터 개정 법률을 시행했다. 그래서 현재는 통합 급여가 아니라 생계‧의료‧주거‧교육‧자활‧장제‧해산 등 총 7종의 개별 급여가 소득 수준에 따라 맞춤형으로 제공되고 있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로 선정되기 위해서는 소득인정액 기준과 부양의무자 기준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먼저 소득인정액 기준을 보면, 가구의 소득인정액이 기준 중위소득의 일정 비율 이하라야 하는데, 생계급여를 받기 위해서는 기준 중위소득의 30% 이하라야 하고, 의료급여는 40%, 주거급여 44%, 교육급여는 50% 이하라야 한다. 다음으로 부양의무자 기준을 보면, 부양의무자(1촌의 직계혈족 및 그 배우자)가 없는 경우이거나 혹은 부양의무자가 있는 경우에는 법령으로 정한 부양 능력이 없어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수급자 수는 2018년 말 기준으로 174만 명(생계급여 123만 명, 의료급여 140만 명, 주거급여 153만 명, 교육급여 31만 명)이다. 박근혜 정부가 기초생활보장제도를 기존의 통합 급여에서 개별 급여로 개편한 가장 큰 목적은 급여를 단 하나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을 줄이겠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맞춤형 급여 개편 전후를 비교해보면, 수급자 수는 2015년 164만 명에서 2018년 174만 명으로 단지 10만 명 정도만 늘었다. 그런데 기준 중위소득의 30% 이하에 해당하는 생계급여 수급자 수는 2015년 126만 명에서 2018년 123만 명으로 오히려 3만 명이나 줄었다.


결국, 송파 세 모녀 사건 이후 우리나라의 경제사회적 양극화는 더 심해졌지만 공공부조의 역할과 포괄 범위는 별로 달라진 게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통계청의 ‘2018년 가계금융복지조사’ 결과에서 드러난 2017년 상대빈곤율 17.4%가 우리나라의 빈곤 현실을 가장 정직하게 담고 있다고 간주해보자. 2018년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 174만 명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3.4%이다. 그렇다면 17.4%에서 3.4%를 뺀 나머지 14%, 전체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상대빈곤자들은 아무 탈 없이 잘 살고 있을까.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안다. 이들은 극심한 민생불안에 시달리며 어렵게 살고 있다.


전체 인구의 14% 모두가 비수급 빈곤층으로 공공부조의 잠재적 포괄 대상이 될 필요는 없다. 또 그렇게 되는 게 바람직한 것도 아니다. 최대한 위로 올라가서 자립적 경제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그런 방향으로 유도해야 할 것이다. 그렇더라도 공공부조 대상자에 당장 포함시키거나 잠재적 포괄 대상으로 간주하고 지원 체계를 갖추어야 할 대상자는 기존의 공공부조 대상자 수만큼은 될 것이다. 정부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비수급 빈곤층은 2014년 당시 거의 120만 명 수준이었는데 차츰 줄어들어 2018년 현재 89만 명이라고 한다. 2014년 당시 120만 명이라면 전체 인구의 2.4%가 비수급 빈곤층이라는 건데, 상대빈곤율 17.4%에 견주어 상식적으로 판단해볼 때 이는 과소하게 평가되었을 개연성이 높다.


어찌됐던, 2014년 120만 명이던 비수급 빈곤층(이 숫자가 옳다고 간주한다면!)이 2018년엔 89만 명으로 줄었다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문재인 정부가 국민기초생활보장 부양의무자 기준을 단계적으로 폐지함으로써 생활이 어려우나 지원을 받지 못하는 ‘비수급 빈곤층’을 줄여나간다는 계획을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1월부터 수급자 및 부양의무자 가구에 노인 또는 중증 장애인이 모두 포함된 경우에는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했다. 그리고 2018년 10월부터 주거급여에 대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18년 현재 비수급 빈곤층이 89만 명으로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2019년 1월부터 부양의무자 가구에 중증장애인(장애인연금 수급자)이 포함된 경우, 그리고 수급자 가구에 만 30세 미만 한부모가구 및 보호종료아동이 포함된 경우에도 생계급여와 의료급여에 대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했다. 또 2019년 1월부터 부양의무자 가구에 노인(기초연금 수급자)이 포함된 경우 생계급여에 대해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했다. 아울러 2022년 1월부터 부양의무자 가구에 노인(기초연금 수급자)이 포함된 경우 의료급여에 대해서도 부양의무자 기준을 폐지할 예정이다. 이렇게 해서 2022년까지 문재인 정부는 비수급 빈곤층의 수를 47만 명으로 줄일 계획이다.


# 보편적 사회보장 정책이 중요하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이 일어났던 2014년 거의 120만 명이나 되던 비수급 빈곤층이 현재 89만 명 수준으로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사건이 끊이질 않는다. 지난달 3일에도 중랑구에 살던 모녀가 또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이 가족에겐 기초연금 25만 원 외에 어떤 정부지원금도 없었다. 비수급 빈곤층의 비극인데, 5년 전에 일어났던 송파 세 모녀 사건과 유사한 경우다. 왜 자꾸 이런 일이 생길까. 우리 사회에 민생과 복지의 사각지대가 여전히 크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는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달구어진 냄비처럼 언론의 뜨거운 조명을 받다가 금방 식어버린다. 언론의 반응도 전형적인데, 즉자적이고 피상적인 해법을 요구한다. “왜 그분들을 미리 발견하지 못했느냐, 발로 뛰고 찾아내서 긴급복지를 지원했다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 아니냐”, 이런 식이다.


그런데 이런 방식은 극히 부차적인 해법이다. 당사자가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수급자가 될 의지가 없거나 수급자 낙인을 거부하면 지방정부가 찾아내기도 어렵거니와, 설사 찾아내더라도 굶어죽지 않을 만큼의 최소복지를 제공받는 공공부조 수급자들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게 능사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구조적 해법을 제도화해야 한다. 무엇보다, 전체 국민의 3.4%만 보호하고 있는 현행 국민기초생활보장 제도를 더 확충해야 한다. 상대빈곤율 17.4%, 절대빈곤율 5∼8%인 나라에서 3.4%의 빈자만을 보호한다는 건 지나치게 소극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공공부조에 지나치게 큰 부담을 주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은 해법이다.


그래서 보편주의 사회보장이 중요하다. 일자리와 소득 및 사회서비스 보장이 유기적·통합적으로 이루어지도록 해서 누구에게나 사회보장과 근로를 통한 자립적 경제생활을 보편적으로 보장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적정한 삶, 기본 생활이 잘 보장되려면 일자리 문제나 경제문제와 함께 보편적 복지가 잘 제도화돼야 한다. 그래야 애초에 빈곤층으로 잘 떨어지지 않게 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빈곤층으로 떨어지게끔 방치해놓고, 이들 중의 일부 극빈자들만을 공공부조를 통해 보호하려니까 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것이다. 결국, 빈곤층으로 추락하지 않게끔 보편적 사회보장이 제도적으로 잘 작동하도록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보편적 사회보장의 중요성을 ‘송파 세 모녀’ 사례로 설명해보자. 어머니 박 씨의 남편은 12년 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장녀는 당뇨와 고혈압에 시달렸고, 만화가를 꿈꾸었던 차녀는 편의점 아르바이트 등을 했다. 그런데 두 딸은 신용불량자여서 일자리를 찾기가 쉽지 않았고, 이들 가족의 생계는 식당 일을 하던 엄마 박 씨가 책임지고 있었다. 그런데 박 씨가 자살 한 달 전에 넘어져 오른쪽 팔을 다치면서 식당 일을 못하게 됐다. 그때부터 이 집의 소득은 단절됐다. 두 딸은 소득이 없었으므로 엄마 박 씨가 식당 일을 해서 벌던 월 150만 원이 이 가구의 총 수입이었다. 이 정도의 가구 소득이면 절대빈곤선을 넘나드는 상대빈곤 가구에 속한다.


만약 송파 세 모녀가 보편적 복지국가의 국민이었다면 어땠을까. 아마도 빈곤을 이유로 자살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당연히 4대 사회보험이 작동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엄마 박 씨가 일하던 식당이 산재보험에 가입해 있었을 것이고, 산재보험의 급여로 평소 받던 임금의 약 80% 정도를 수령했을 것이다. 고용보험에 가입해 있었더라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식당들 대부분은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장녀는 보편적 국민건강보장 제도를 통해 당뇨와 고혈압에 대한 치료와 건강관리를 제대로 받았어야 했다. 차녀는 만화가의 꿈을 키울 수 있도록 교육과 직업훈련의 기회를 누릴 수 있어야 하고, 그 기간 동안에는 보편적 복지로 구직수당을 당연히 받을 수 있어야 했다.


우리나라는 고용보험과 산재보험의 적용 대상 획기적으로 확대해 사각지대를 해소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특수 형태 근로종사자 및 프리랜서 예술인으로 확대하고 보험료 지원 등을 통해 자영업자의 가입을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고용보험 피보험자 규모를 2018년 1,343만 명에서 2023년까지 1,500만 명으로 늘리겠다는 것이다. 산재보험 적용 대상도 2023년까지 특수 형태 근로자 중 건설기계업종(11만 명)과 1인 자영업자(65만 명)로 확대하고 무급가족종사자도 임의가입을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이 지나치게 양극화돼 있고, 고용보험에 포함되지 못하는 불안정 노동자가 구조적으로 많이 존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고용보험이 없어도 공공부조 대상자로 추락하는 것 대신에 직업적으로 재기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별도의 소득보장 제도가 필요하다. 그래서 문재인 정부는 2020년부터 한국형 ‘실업부조’ 도입하기로 했다. 중위소득의 60% 이하에 해당하는 근로빈곤층과 청년층(중위소득의 60~120%)의 취업을 촉진하기 위해 취업 지원 프로그램을 성실히 이행한 참여자에게 매월 50만 원씩 6개월간 구직촉진수당을 지급할 계획이다.


# 5년 후 우리가 더 행복해지려면


문재인 정부는 제2차 사회보장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5년 후엔 현재 OECD 28위인 국민행복 수준을 20위로 높이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평균적인 행복 수준이 높아지려면 중하위 계층의 행복지수가 향상돼야 한다. 최대한 빠르게 상대빈곤율을 낮추고 비수급 빈곤층의 규모를 줄여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복지국가의 경제-일자리-복지가 유기적·통합적으로 작동해야 한다. 소득(사회보험+사회수당)과 사회서비스를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를 획기적으로 강화하되, 먼저 사각지대를 없애는 데 노력을 집중해야 한다. 돌봄 경제 분야에 투자를 적극 확대해서 양질의 일자리를 크게 늘려야 한다. 또 비숙련 노동자들과 고령자들이 종사할 수 있는 일자리를 사회서비스 분야에서 최대한 많이 만들어야 한다.


국민기초생활보장 수급자의 범위를 넓히고 생계급여액도 확충해야 한다. 또 어려운 처지에 놓인 빈자들이 비교적 쉽게 국민기초생활보장의 수급자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그래야 비수급 빈곤층 문제의 갈등적 구조가 어느 정도 해결될 수 있게 된다. 대신에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는 6개월 또는 1년 이내에 ‘탈 수급’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문제는 부정수급 등의 도덕적 해이인데, 의도적인 부정수급의 경우에는 엄벌에 처하도록 해야 한다. 국민의 세금을 훔치고 사회 공공성을 해친 범죄 행위로 간주하는 게 옳기 때문이다. 부정수급에 대한 방지 장치가 어느 정도 마련돼야 공공부조의 제도적 강화가 보다 완전해질 수 있다. 세금을 내는 국민들로부터 제도 확충에 대한 정치적 동의를 받기가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고용보험을 강화해야 한다. 사각지대를 최대한 없애고 급여 수준도 높여야 한다. 그리고 고용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저소득 실직자를 위한 ‘한국형 실업부조 제도’를 최대한 앞당겨 도입해야 한다. 보건의료와 복지를 포함한 사회서비스에 대한 보편적 보장 체계를 확립해야 한다. 이는 일자리의 보고이자 동시에 삶의 과정에서 보편적으로 요구되는 지출을 줄여준다. 여기에 투자하는 것은 경제성장을 위한 사회투자이자 동시에 사회임금의 비중을 늘리는 것이다. 이는 결국 경제성장뿐만 아니라 가계의 가처분 소득을 늘이고 소득계층 간 불평등과 격차를 줄여준다. 무엇보다, 일자리를 만들고 사람들의 능력을 키우는 데 돈을 많이 써야 하다. 이것은 보편적 복지와 함께 가는 ‘적극적 복지’의 요체다. 사람에 대한 적극적 투자이자 혁신적 경제성장의 중요한 요건이다. 이게 가능하려면 적극적 재정 정책이 요구된다. 재원 마련을 위한 논의, 즉 복지국가 증세에 대한 적극적인 정치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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