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라면 간절히 소망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부활이다.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하나님을 믿은 사람은 죽어도 다시 살아나고, 무덤 속에 있는 자까지 깨어나 기뻐 뛴다고 한다. 정말 죽은 사람의 육신이 다시 살아날까?
실제로 사람이 죽었다가 육신이 살아난 경우가 성경에 나온다. 구약에서는 엘리야가 살린 사르밧 과부의 아들, 엘리사가 살린 수넴 여인의 아들이 있다. 신약에서는 예수님이 살린 나인성 과부의 아들, 회당장 야이로의 딸, 마리아 마르다의 형제 나사로와 베드로의 기도로 살아난 과부 도르가와 사도 바울의 기도로 살린 청년 유두고가 있다. 성경뿐 아니라 거의 드물지만 뉴스나 인터넷에서 육신이 실제로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볼 수 있기도 하다.
다만 공통적으로 이들은 죽은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이다. 육신이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들 중에 몇 년 전에 죽은 사람은 없다. 무덤 속에 묻혀 육신이 사라진 사람 중에 그 육신이 살아난 사람은 성경에도, 세상에서도 없다. 예수님이 살려준 사람들의 육신도 결국은 수명이 다해서 모두 그 육신이 죽어서 땅에 다시 묻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볼 때 사람의 육신이 죽어서 땅에 묻히고 썩어서 결국 흙으로 돌아갔는데, 육신이 다시 부활해서 살아난다는 것은 믿기 힘들다.
부활은 육신이 아닌 영적 부활
신약 성경 누가복음(9:60)을 볼 때 사람의 육신을 두고 한 말인지, 영을 두고 한 말인지 구분해서 봐야 된다고 앞서 설명했다. 성경에서는 사람의 죽음이 육신이 죽는 육적 죽음(히브리서9:27)과 영혼의 죽음(에스겔 18:4, 창세기 2:17)이라는 두 가지 죽음을 말하고 있으니 부활 또한 육신의 부활과 영혼의 부활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은 분명히 살리는 것은 영(요한복음 6:63)이라고 말씀했으니, 육적 부활이 아니라 영적 부활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맞지 않겠는가.
요한복음(5:24~29) ...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그래서 요한복음을 보면 예수님은 육신이 죽은 시체들에게 살아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육신은 살아있으나 신앙이 죽은 자들에게 신앙이 살아나라고 말씀하신 것이지, 실제 육신이 죽은 자에게 다시 살아나라고 하신 말씀이 아닌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마음과 심령이 죽은 자들과 사망권에서 살아가는 자들, 선한 행실이 죽은 자들에게 살아나라 부활하라 말씀한 것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이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면서, 신앙적으로 볼 때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신이 죽은 시체가 다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살아나는 영적인 부활이다.
우리가 부활을 제대로 모르면 부활을 이룰 수 없다. 부활의 개념을 육신 부활, 시체 부활로 잘못 배우고 믿으면 우리는 육신이 죽기 전까지 부활을 이룰 수 없게 된다. 육신이 죽어야 부활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활의 개념을 육신이 죽은 상태에서 살아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의 변화에 그 중심을 두고 봐야 한다. 변화된 삶이 부활이고, 그에 따라 영이 사망권에서 생명권으로 나오는 것이 부활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육신이 살아있으면서도 부활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육신이 공중으로 올라가는 휴거 일어날까?
신앙인들은 ‘부활’과 동일하게 성경에서 말하는 ‘휴거’를 육신이 실제 공중으로 올라간다고 믿고 있다. 신약 성경 데살로니가전서(4:16~17) 말씀을 근거로 믿는 사람들은 휴거되면 영원히 죽지 않고 산다고 한다. 실제로 한국에서는 1992년 다미선교회로 인해 전국이 떠들썩했다. 이장림 목사는 10월 28일 자정에 휴거가 일어난다고 주장했고, 이를 믿은 사람들은 상당수에 달했다. 당시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과 성경 요한계시록을 근거로 휴거를 주장한 다미선교회의 가르침을 육신의 휴거를 이루는 것으로 적지 않은 사람들이 믿었다.
▲ 다미선교회 교인들이 휴거를 알리는 전단지를 배포하고 있다.대망의 1992년 10월 28일 자정에 이르도록 다미선교회 사람들은 ‘승천복’이라고 부르는 흰색 옷을 입고 열광적으로 찬송가를 부르며 뜨겁게 예배를 드렸다. 다미선교회 건물 밖은 가족과 친구, 애인을 찾으러 온 사람들과 기자들, 호기심에 몰려든 구경꾼들이 뒤섞여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KBS, MBC, SBS 등 TV 방송국과 외신 기자들까지 모두 취재에 열을 올렸다. 하지만 자정이 되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누구는 “형제 여러분! 우리나라 시간이 아니라 예루살렘 시간으로 자정입니다!”하고 외쳤지만 그 이후로도 별다른 일은 없었다. 당시 이를 취재하던 한 기자는 “이들은 하늘나라가 아닌 집에 돌아갔습니다”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휴거 소동이 끝난 뒤, 다미선교회는 휴거 소동에 대한 사과문을 발표했다.
▲ 1992년 10월 28일 다미선교회는 공중으로 올라가는 휴거가 일어나지 않자 사과문을 발표했다.여기서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사실 한 가지가 있으니 바로 기독교에서 휴거를 가르칠 때 언제 어디서 휴거될 지 모를 뿐, 다미선교회와 동일하게 우리의 육신이 공중으로 올라간다고 가르치고 믿고 있다. 정말로 육신이 공중으로 올라가는 휴거가 일어날까?
휴거도 영적 휴거다! 변화다!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우리 육신이 공중으로 휴거되는 일은 세상에서 단 한 명에게도 일어나지 않는다. 육신 휴거는 예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단언컨대 일어나지 않는다. 이는 성경을 문자 그대로 보고 믿었기 때문에 생겨난 오해다. 고린도전서(15:50)에 분명히 사람의 육신의 한계를 말했으며 요한복음(6:63)에 사람의 육신보다 영혼이 귀하다고 말씀했다. 천국은 영의 세계이니 영이 가는 곳이며, 육신은 절대 갈 수 없고 영혼이 가는 세계다. 과수원지기가 농사를 지을 때 일 년 동안 거름 주고 가꾸어서 가을이 되면 열매만 따서 담아 가고 나무는 그대로 두듯이,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육신의 열매인 영혼만 거두어 천국에 데려가신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 우리가 이뤄야 할 부활이 죽은 육신이 살아나는 시체 부활이 아니라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는 영적 부활이듯이 휴거도 마찬가지다. 우리 죽은 육신이 살아나서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영혼이 부활되고 휴거되는 것이다. 이 땅에서 육신이 살아있을 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믿고 행해 선하게 신앙생활을 하며 사는 것이 부활된 것이며 휴거된 것이다. 신앙의 차원, 믿음의 차원, 행함의 차원이 변화된 것이 부활이며, 더욱 몰라보게 차원 높여 변화된 것이 휴거된 것이다.
▲ 휴거는 변화다. ‘변화’를 휴거로, 또는 ‘올라간다’를 휴거로 표현하니 휴거를 특별한 것으로 생각하는데, 하나님이 시대에 원하는 뜻을 이루는 것이 시대마다 이뤄진 휴거였다. 차원을 높인 것도 휴거라고 할 수 있고, 자기가 소망하고 희망하던 것이 이뤄진 것도 자기에게는 휴거라고 표현할 수 있다. 변화되고 변화되어 최고 차원으로 좋게 변화되는 부활이 바로 휴거다.
2000년 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듣고 믿고 따른 사람들은 하나님을 종처럼 믿고 섬기다가 아들처럼 믿고 섬기며 사랑하고 살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구약시대에서 신약시대로 부활되고 휴거된 것이다. 이 시대에는 성경의 예언대로 예수님이 영으로 재림해 보이는 사명자를 통해 역사하신다. 그 말씀을 믿고 따른 자들은 하나님 앞에 자녀 차원에서 사랑하는 신부 차원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그렇게 신약시대에서 성약시대로 즉, 구시대에서 새 시대로 부활되고 휴거되는 것이다.
철광석 광산에서 원석을 캐내고, 똑같은 철광석을 녹여 철을 뽑아낸다. 하지만 이 철을 가지고 만드는 자가 만들기에 따라 비행기가 되고 자동차가 되고 자전거가 된다. 만드는 자가 만드는 대로 변화되듯이, 사람은 자신의 육신을 가지고 깨닫고 행하는 대로 자기 영혼이 변화된다. 육신이 말씀을 듣고 믿고 행하며 변화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선하게 살면 자기 영혼이 변화되어 결국 하나님 앞에 신부의 영혼이 된다. 때가 되어 육신의 허물을 벗고 천국에 가면 변화된 영의 아름다움과 빛이 권세가 되어 영원히 누리게 된다.
▲ 휴거는 현재 진행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