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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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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의 리허설 테이크
S#3. 세종문화회관 뒤뜰 노천카페
중년의 배우 이창직과 조영호 인터뷰 중이다.
조영호 : 대학로 터주대감 이창직 배우님을 세종로에서 뵈니 느낌이 많이 다르네요.
이창직 : 허허허, 다르긴. 하긴 오늘 영호연출이랑 인터뷰 한다고 좀 차려 입고 나왔지.
조영호 : 아… 차려 입으신 거군요;; (웃음)
이창직 : 그럼, 맨날 광화문에 츄리닝 입고 출근하는데. 집도 가까우니까 대충 편하게.
조영호 : 삼청동 대저택에 사신다는 소문이 대학로에 파다합니다.
이창직 : 대저택은 무슨,, 대출 받고 몇 십 년 된 집 한 채 겨우 장만한 거지.
조영호 : 아니 그래도, 연극 배우 생활하면서 전세 집 살기도 힘든데 자가소유 주택을, 그것도 시내 한복판 삼청동에 가지고 계시는 것 자체가 이슈거든요.
이창직 : (민망해하며) 허허허. 이사 수 십 번 다니고 대출에 대출 끼면서…
조영호 : 오늘 ‘연극인생 33년, 부동산 장만하기’를 소개해주세요.
이창직 : (민망해하며) 허허허. 공연 관련한 인터뷰 아니었어?… 뭐 연출하는 사람이 부동산에 대해 더 관심이 많아?
조영호 : 부동산에 관한 독립영화도 하나 찍었어요. ’더하우스’라고. 개봉해야 하는데 극장도 부동산장사라, 쉽지가 않네요.
이창직 : 대한민국 뭐든 그렇지. 부동산이랑 꼬여있다고.
조영호 : 그래서 더 궁금해요. 아이 둘을 키우면서 연극하면서 주택장만, 이게 가능한 일인가요?
이창직 : 그래! 비법을 알려줄게. 처음 결혼을 하고 91년도에 계동에 500에 7만원짜리 월세집에서 신혼을 시작했어. 그 다음에 1500짜리 전세로 옮겼지. 이때까지만 해도 단칸방 생활에서 못벗어났는데, 애가 태어나고 방2개짜리 전세로 옮겼지. 그러면서 96년도에 빚을 내서 대학로에 승희(아내이자 연극배우)가 ‘허수아비’라는 막걸리집을 시작한 거야.
조영호 : ‘허수아비’ 정말 유명했죠. 현금을 막 퍼날랐다는 전설의 막걸리집!
이창직 : 그정도는 아니었고, 막판에는 적자가 좀 있었어. 암튼 난 그 뒤에 난타를 한 3년 하면서 세계 방방곡곡 공연을 하고 다녔는데 이때 장모님과 합쳐서 아이들을 맡기고 온가족이 힘을 모아 일을 했거든. 그러다가 2003년에 시립극단 오디션을 보고 월급쟁이 생활을 시작하게 된거야. 연봉이 많지는 않지만 안정적인 생활을 한거지. 그 해에 삼청동에 엄청난 대출을 끼고 집을 산거고, 지금도 이자를 엄청 쏟아 붓고 있어요. 허허허.
조영호 : 2003년이면 대출 왕창 해주던 부동산 거품시기네요.
이창직 : (웃음) 그런 식이지. 허허허. 그 바람에 집 있어서 연극인 지원 혜택 같은 거 신청도 못해보고 굶으면서 살고 있다우.
조영호 : 아티스트답게 엔딩을 씁쓸하게 표현하셨지만, 실은 그 사이에 승희선배님은 주경야독으로 낮에는 장사, 밤에는 공부를 해서 대학교수까지 하시고 현재 통합예술치료 박사과정도 밟고 계시니;; (조영호 연출은 작년 2013년에 이창직의 아내 이승희 와 연극[분장실]을 공연한 바 있어 근황에 빠삭하다)
이창직 : 그러게 승희가 고생 많았지. (웃음) 속 사정 잘 알면서 뭘 물어봐.
조영호 : 인터뷰잖아요. (웃음) 그러는 와중에 방송이나 영화 출연도 짬짬이 하신 걸로 알고 있어요.
이창직 : 응, 2008년 영화 ‘신기전’부터 시작해서 최근 ‘관상’까지 꾸준히 했지.
조영호 : 서울연극제 연기상도 수상하신 적 있죠?
이창직 : 외부작업을 통해 상을 받긴 했지. 2004년에. 세종은 배우들의 자유의지를 존중해주니까.
조영호 : 꾸준히 연간 몇 작품씩 세종 무대에 서시지만, 이번 ‘봉선화’ 앵콜은 좀 뜻깊으신 것 같아요. 얼마 전 대학로에서 뵈었을 때도 강추하시고.
이창직 : 아, 이 작품 정말 한국청년이라면 꼭 봤으면 하거든. 친일파와 애국부인(위안부 독려하던 부인들)이 사학재단을 만들고 대학이사장이 되어 부를 독식하는 가운데, 그들이 위안부의 아들을 사위로 맞게 되면서 집안의 근본을 파헤쳐나가는 외손녀딸 때문에 골머리를 썩는 이야기인데, 작년에 초연 때보다 더 사실적인 배경을 그려주고 있어서 교육적으로도 좋은 연극이라고 생각해.
조영호 : 아, 저도 올해 12월 국립극장에서 친일파 후손과 독립운동가 후손의 땅싸움을 소재로 브레히트의 ‘코카서스의 백묵원’ 각색해서 올라갈 예정인데, 정말 요즘 같은 현실은 과거로 돌아가서 반성하고 다시 일어서야 할 때 같아요.
이창직 : 그렇다니까요. 세종문화회관에서 이런 작품이 올라간다는 것은 한국 연극인들의 의식세계가 그만큼 높아졌다는 것이기도 하지.
조영호 : ‘연극은 시대의 정신적 희망이니까요!’ 그럼, 식사하러 가실까요?
이때 봉선화에서 외손녀딸 및 위안부로 출연하는 여배우들을 만나 한 컷 찍는다.
이창직과 조영호, 노천카페에서 일어나 세종로 뒷골목 맛집의 세계로 떠난다.
사진/'봉선화' 여배우들 사진 순서 (왼쪽부터) 이경, 김현정, 박수현, 강보미, 김정아(조연출)
F.O.
2014-04-28 조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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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조영호의 Rehearsal Take
S#1. 무용연습실
고등학생들이 한창 무용연습을 하고 있다.
그들 중 여고생 조영호의 모습도 보인다.
곧 청년 박윤희가 연습실로 들어와 훈련에 합류한다.
S#2. 탈의실 앞
남녀 탈의실에서 각각 나오고 있는 박윤희와 조영호.
박윤희 : (불쑥) 학생, 무용과 가나봐?
조영호 : (잠시 주저하다가) 아니요, 취미로 하는 거에요…
박윤희 : 좋네, 고등학생이 취미생활도 하고! 대학은 안 가?
조영호 : (자신있게) 연극과 갈거에요!
박윤희 : (놀라며) 그으래..?! (가방을 뒤적인다) 나도 연극 하는데!
조영호에게 연극 초대권을 내미는 박윤희.
S#3. 공연장 안
객석에 앉아서 진지한 표정으로 연극을 관람 중인 조영호.
Camera pan, 무대 위 수많은 ‘말’ 중 하나로 출연 중인 박윤희.
‘앨런’으로 출연 중인 배우 조재현이 “에쿠우스!”를 외치면서 F.O.
S#4. 서울예대 남산 드라마센터
연극과 신입생들이 모두 드라마센터 대극장으로 향하고 있다.
오리엔테이션 프로그램북을 들고 있는 조영호.
누군가 그녀의 어깨를 툭 건드린다.
뒤돌아보면,
환한 미소로 서 있는 박윤희 C.U.
자막 : 24년 후
S#5. 두산아트센터
두산아트센터 로비.
두 여기자 장민영과 구하나, 배우 박윤희와 인터뷰 중이다.
장민영 : 박근형 연출과의 작업은 이로써 2번째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윤희 : 배우들한테 많이 맡기시는 분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연극에 대한 어떤 틀이나 기본 등, 지켜야 하는 것들을 많이 파괴하시는 분이세요. 그래서 그냥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어떤 재능이나 그런 걸 자유롭게 많이 열어주시는 분이세요. 아주 꼼꼼하게 대사 읽는 것부터 하나하나 체크해 주시는 분들과도 작업해 봤는데, 박근형 연출은 무대 올라가서 정 아닌 것만 빼달라고 요구 하는 분이에요. 그리고 일단은 본인 극단 작업 외에 나머지 외부 배우들을 데리고 할 때는, 음... 이렇게 말하면 조금 웃긴가? 잘하는 배우들을 캐스팅 하시는 분이세요. 검증된 배우들을 캐스팅 하는 분이죠. 그러니까 스스로 할 수 있는 분들을 많이. 아무튼 배우들한테 자유롭게 많이 맡기시는 분입니다.
구하나 : 연습 중 연출과 술자리를 많이 가지는 편인가요?
박윤희 : 박근형 연출과의 술자리는 거의 매일. 하하. 그리고 술자리에서 작품얘기가 정말 많이 나와요. 과거 얘기하기 좀 그렇겠지만, 그전에 제가 처음 시작 할 때는 술자리에서 정말 연극얘기 정말 많이 했거든요. 작품 얘기를 하다가 싸우기도 하고 그랬죠. 근데 어느 순간 그런 자리가 없어졌어요. 서로 너무 과하게 배려하다 보니 술자리에서는 작품 얘기 잘 안 하게 되고, 서로 간섭하는 것에 대해 경계를 하는 분위기가 형성되니 이제는 선후배 배우들 간에 갭도 더 커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박근형 선생님은 워낙 술을 좋아합니다. 정말 달콤하게 술을 마시는. 어제도 또 한잔 했는데, 좋은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술자리를 통해서 은근히 고민을 많이 하게 하시는 분이세요. 이십 여 년을 넘게 연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잠이 안 와요, ‘아 공연이 이틀 남았는데 내가 그걸 해결 못했구나’ 뭐 이런 생각들 때문에요. 전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아니지만, 대화가 필요하고 또 자기점검을 위해 연습 끝난 뒤 모임이 있을 때마다 거의 가요.
장민영 : 연극만 하면서도 건실하게 가정을 꾸리는 몇 안 되는 남자배우신데요, 어떤 계기로 연기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박윤희 : 군대 전역한 89년도에 입단한 실험극장부터 연극 이력을 시작을 해요. 그 때 데뷔가 최민식 형과 했던 에쿠우스였구요. 연극을 시작한 계기는요. 저는 제가 잘생긴 줄 알았어요. 탤런트가 되고 싶었어요. 그래서 배우가 되려면 기초를 쌓으려면 연극을 해야 된다. 지금 친구들도 그런 친구들이 많잖아요. 사실은 저도 굉장히 막연하게 시작을 했어요. 지금은 근데 가장 재미있는 일이 됐고, 가장 흥미롭고. 그리고 그런 얘기 많이 하거든요. 이십 몇 년을 하더라도 정말 연기 하는 거 어렵고, 캐릭터 만드는 거 어렵고, 받았던 지적을 또 받고... 매일 그래요. 근데 그게 너무 재밌어요. 지금은 연극해서 먹고 살지만, 연극해서 먹고 산 지 불과 2~3년 밖에 안됐어요. 이십 여 년은 못 먹고 살았어요. 항상 아르바이트 했구요. 요즘은 또 이렇게 관이나 단체, 국립극단, 명동, 두산 같은 곳에서 쉬지 않고 하니까 저축은 못 하더라도 가족 건사하면서 사네요, 두 딸하고 집사람하고 같이 사는데. 생활비 정도는 돼요. 처음엔 흥미롭고 재미있어서 연극을 시작했지만, 하다 보면 곧 어려움이 닥치죠. 하다가 막히면 공부도 하고 알면 알수록 점점 호기심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계속하게 된 거죠. 그러면서 영화나 드라마 오디션도 봤지만 떨어지고... ‘그래, 연극을 하자.’ 참고 버티다 보니 지금 이제 연극배우가 된 겁니다. 어찌되었든 연극은 지금도 여전히 제게 가장 흥미로운 일입니다.
구하나 : 하다가 막히면 공부를 했다고 하셨는데, 서울예대 연극과도 일을 하다가 뒤늦게 가신 건가요?
박윤희 : 제가 공부를 못해서 다른 전문대에 갔었는데 적성에도 안 맞았죠. 그 뒤 실험극장에서 연극을 하던 시절, 전문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연극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연극을 하면 안 되겠구나. 이론적인 공부가 필요하겠다.’ 그래서 공부를 다시 해서 서울예대 연극과에 입학을 했습니다. 이 나이에, 근래에는 대학원도 수료를 했어요. 늦은 공부를 하다 보니, 점점 궁금한 것도 더 많아지고, 알아야 될 것도 많아서 공부는 끊임없이 하고 있어요.
장민영 : 지금은 남산아트센터로 바뀐 드라마센터에서 서울예대 연극과 졸업작품 주인공을 꿰차서 당시 대학로의 엄청난 기대주였다고 들었어요. 배우생활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혹은 힘들었던 작품 소개해주시겠어요?
박윤희 : 다 힘들어요. 연극은 다 힘든데, 다 재미있구요. 음, 사실은 근래 했던 작품은 다 인상 깊어요. 역할도 좋은 역할을 맡았고, 좋은 연출가들하고 작업하고, 할 때마다 사실 관심을 가져주셔서요. 하지만 터닝 포인트가 됐던 작품이 하나가 있죠. ‘심판’이라는 작품인데, 그게 제가 처음으로 주인공을 한 작품이에요. 대학 졸업작품에서 주인공을 하고 대학로로 나갔지만, 매일 단역하고 조그만 역만 하다가, 18년 만에 처음으로 주인공 한 작품이에요. 인상 깊다기 보다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죠.
장민영 : 그걸로 신인상을 받으신거죠?
박윤희 : 네. ‘심판’은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어요. 그 작품을 준비할 당시, 집이 경기도였는데 연습실까지 왕복으로 3시간 반이 걸리더라구요. 그 시간을 아껴서 연습을 하자고 생각했죠. 그래서 집사람의 양해 하에, 연습실 위에 있는 고시원을 잡아서 생활했습니다. 원래 집에서 나오는 시간에 연습장으로 내려와서 연습하고, 배우들이 다 가고 나서도 계속 연습하다가 집에 도착할 시간에 고시원으로 올라와서 자고 그랬죠. 그렇게 두 달을 했어요. ‘아 이거 마지막 기회다.’라는 생각을 했죠. 주인공 누가 함부로 안주잖아요. 그렇게 준비했던 게 나름대로 조금 결실을 맺었고, 그 이후에 사실 일이 풀리기 시작했거든요. 네, 그래서 그 작품을 잊을 수가 없어요.
구하나 : 연극,뮤지컬,영화,드라마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 중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연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다양한 매체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후배들에게 한 말씀 전해주시겠어요?
박윤희 : 이거 어려워요. ‘여러분들 꿈을 가지세요, 힘을 내세요.’라는 말을 많이들 하시잖아요? 저는 그렇게 이야기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배우의 과정이 너무 힘들거든요. 그 힘든 과정을 20년 동안 버티다가 포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중요한 건 꿈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에요. 연기에 전혀 관련이 없는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단기목표를 가졌으면 해요. 그래야 자꾸 슬럼프가 안 생기거든요. 목표를 너무 멀리 두면, 슬럼프가 생겨서 쉽게 지쳐버려요. 제 좌우명 중 하나가 ‘백각이 불여일행’ 이에요. 백번을 깨달아도 내가 한번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연극 하는 사람들 중에 연극을 조금 했다고 비판만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열 번 말 하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행동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힘든 걸 알고 그걸 견디는 게 중요한 거지, 깨닫는 것만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S#6. 서재
인터뷰 장면이 한 장의 사진으로 Dissolve되어 책상 위 모니터에 나타난다.
Camera track out 되면, 듀얼모니터를 바라보고 있는 조영호.
그녀는 기사의 마지막 문구를 적고 있다.
모니터 위로 신문명조체의 글자가 빠르게 타이핑 된다.
자막 : “혹자는 백 번의 움직임보다 한 번의 깨달음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오늘 배우 박윤희는 깨닫는 것보다 행동으로 실천하여 하루하루를 견디라고 말하고 있다."
F.O.
2014-04-28 조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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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21세기의 세계화 시대, 창의력 갖춘 전문 기술인 양성”
사진설명/김포대학교 경찰행정학과 양승돈 학과장, 김영현 교수, 고영욱 교수와 학생들(사진)
정보산업사회의 고도화라는 시대의 흐름에 부응하면서, 지와 덕을 겸비한 인간형성을 바탕으로 실용적인 이론과 기술을 연마해 국가와 사회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전문직업인을 양성하고 있는 김포대학교. 지난 12일 경기도 가평군 가평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 2014 청정-가평 제23회 전국합기도선수권대회에서 경찰행정학과 양승돈 학과장을 만났다.
# 이번 합기도선수권대회에 처음 출전해 좋은 성적을 거뒀다. 비결과 소감은?
우수한 학생의 입학은 질 높은 학교 교육을 통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통상 입학하는 학생의 경우 무도단증 1-2개는 기본적으로 취득하고 입학하는 학생들이 많다. 그런 학생들에게 꿈과 희망을 품을 수 있도록 수업시간 외 시간을 활용해 집중지도 한 것이 좋은 성과를 낸 것 같다. 이번 대회는 좋은 경험이었다. 앞으로 경찰행정학과 학생들이 관련대회에 더 많이 참가해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 학과장님이 학생들에게 가장 중점을 두고 강조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교육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인성이다. 요즘 학생들이 스펙쌓기에 여념이 없지만 인성이 배제된 자기개발은 사상누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우리 학생들에게는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정신력을 함양하고 기본적 인성을 가진 전문인의 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 경찰행정학과의 어떤 학과인가. 교육목표와 비젼은?
국민의 안전과 신체를 보호하고 국가 질서를 유지하는데 근간이 되는 경찰 분야와 개인의 사유재산의 안전.보호하는데 근간이 되는 경비.경호 분야를 중심으로 경찰 분야 및 경비.경호 산업 등에 관련된 체계적인 기초지식 및 이론 교육을 기본으로 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또 서북권지역 유일학과로 특성화, 공항 등 지역과 연관된 경비.경호 분야 취업루트 개발이라는 세 가지 교육목표를 수립해 공공안전인력이라는 인재를 양성하고 있다.
# 그렇다면 경찰행정학과 운영방향은?
경찰행정학과는 서북권내에 위치한 대학교 중 우리대학교에만 신설한 유일한 학과로, 우리 사회는 갈수록 ‘위험사회’의 요소들이 증대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공직윤리와 책임의식을 바탕으로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고 사회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이해와 전문과목 및 행정분야의 다양한 지식, 실무능력을 습득해 공공의 안전과 질서를 유지하면서, 사회의 복잡 다양한 문제해결을 위한 관련분야의 전문지식을 함양해 증가하는 치안 및 민간 안전관리 분야의 전문지식을 배워 치안과 민간 안전 분야의 수요와 군의 전문화된 인력 수요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필요로 하고 있다. 이러한 사회의 필요성을 반영해 사회의 공공의 안녕과 질서유지를 위한 봉사와 일치시킬 수 있는 인재양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4-04-23 심종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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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의 리허설 테이크
S#2. 두산아트센터
두산아트센터 로비. 두 여기자 장민영과 구하나, 배우 박윤희와 인터뷰 중이다.
장민영 : 연출과 술자리를 많이 가지는 편인가요?
박윤희 : 박근형 연출과의 술자리는 거의 매일. 하하. 그리고 술자리에서 작품얘기가 정말 많이 나와요. 어제도 또 한잔 했는데, 좋은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술자리를 통해서 은근히 고민을 많이 하게 하시는 분이세요. 이십 여 년을 넘게 연기를 했는데도 불구하고 잠이 안 와요, ‘아 공연이 이틀 남았는데 내가 그걸 해결 못했구나’ 뭐 이런 생각들 때문에요. 전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은 아니지만, 대화가 필요하고 또 자기점검을 위해 연습 끝난 뒤 모임이 있을 때마다 거의 가요.
장민영 : 연극만 하면서도 건실하게 가정을 꾸리는 몇 안 되는 남자배우신데요, 어떤 계기로 연기를 시작하게 되셨나요?
박윤희 : 군대 전역한 89년도에 입단한 실험극장부터 연극 이력을 시작을 해요. 그 때 데뷔가 최민식 형과 했던 에쿠우스였구요. 연극을 시작한 계기는요. 저는 제가 잘생긴 줄 알았어요. 탤런트가 되고 싶었어요. 사실은 저도 굉장히 막연하게 시작을 했어요. 지금은 근데 가장 재미있는 일이 됐고, 가장 흥미롭고. 지금은 연극해서 먹고 살지만, 연극해서 먹고 산 지 불과 2~3년 밖에 안됐어요. 이십 여 년은 못 먹고 살았어요. 항상 아르바이트 했구요. 요즘은 또 이렇게 관이나 단체, 국립극단, 명동, 두산 같은 곳에서 쉬지 않고 하니까 저축은 못 하더라도 가족 건사하면서 사네요, 두 딸하고 집사람하고 같이 사는데. 생활비 정도는 돼요.
구하나 : 하다가 막히면 공부를 했다고 하셨는데, 서울예대 연극과도 일을 하다가 뒤늦게 가신 건가요?
박윤희 : 실험극장에서 연극을 하던 시절, 전문지식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죠. ‘아, 내가 연극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구나. 이론적인 공부가 필요하겠다.’ 그래서 공부를 다시 해서 전공을 했습니다. 근래에는 대학원도 수료를 했어요. 늦은 공부를 하다 보니 궁금한 것도 더 많아지고 해서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어요.
장민영 : 배우생활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혹은 힘들었던 작품 소개해주시겠어요?
박윤희 : 터닝 포인트가 됐던 작품이 하나가 있죠. ‘심판’이라는 작품인데, 그게 제가 처음으로 주인공을 한 작품이에요. 졸업작품에서 주인공을 하고 대학로로 나갔지만, 매일 단역하고 조그만 역만 하다가, 18년 만에 처음으로 주인공 한 작품이에요. 인상 깊다기 보다 감회가 새로울 수밖에 없죠.
장민영 : 그걸로 신인상을 받으신거죠?
박윤희 : 네. ‘심판’은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어요. ‘아 이거 마지막 기회다.’라는 생각을 했죠. 주인공 누가 함부로 안주잖아요. 그렇게 준비했던 게 나름대로 조금 결실을 맺었고, 그 이후에 사실 일이 풀리기 시작했거든요. 네, 그래서 그 작품을 잊을 수가 없어요.
구하나 : 연극,뮤지컬,영화,드라마 다양한 매체에서 활동 중이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요즘 연기자가 되고 싶어 하는 친구들이 많은데, 다양한 매체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후배들에게 한 말씀 전해주시겠어요?
박윤희 : 이거 어려워요. ‘여러분들 꿈을 가지세요, 힘을 내세요.’라는 말을 많이들 하시잖아요? 저는 그렇게 이야기 해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왜냐하면 배우의 과정이 너무 힘들거든요. 그 힘든 과정을 20년 동안 버티다가 포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중요한 건 꿈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에요. 연기에 전혀 관련이 없는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단기목표를 가졌으면 해요. 그래야 자꾸 슬럼프가 안 생기거든요. 목표를 너무 멀리 두면, 슬럼프가 생겨서 쉽게 지쳐버려요. 제 좌우명 중 하나가 ‘백각이 불여일행’ 이에요. 백번을 깨달아도 내가 한번 실행에 옮기지 않으면 소용이 없어요. 연극 하는 사람들 중에 연극을 조금 했다고 비판만 많이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무의미하다고 생각하거든요. 열 번 말 하는 것보다 한번이라도 행동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힘든 걸 알고 그걸 견디는 게 중요한 거지, 깨닫는 것만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요.
갑자기 조연출이 다가와서 뭔가 얘기한다
박윤희, 기자들에게 인사를 하고는 연습장소로 들어간다.
F.O.(편집/조영호, 취재/구하나, 장민영)
2014-04-23 조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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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 경호 경비쪽에서 한 획을 긋고 싶다”
복잡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21세기 현대사회는, 고도로 지능화된 다양한 유형의 범죄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범죄는 개인이나 가정뿐 아니라 기업이나 시설 등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지능.사고력.정보를 의미하는 ‘INTELLIGENCE’와 안전.보호.경호를 의미하는 ‘SECURITY’의 의미로, 외국 대통령과 한국의 경호기관에서 다년간 근무했던 요원 및 현장에서 풍부한 노하우를 지닌 각 분야 전문가들로 구성된 ㈜ 인텔리젼스 씨큐리티 박상현 대표이사를 만났다.
# 현재 한국 경호시장은?
한 마디로 현재는 과도기다. 예전에는 운동 좀 했거나 조직폭력 등의 동원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용인대가 국내 최초의 경호학과 개설로 많은 졸업생을 배출해, 전국 대학에 용인대 출신들이 현재 교수로 재직하고 있고, 또 전공자들을 계속 배출하다보니 예전에 있던 사람들과 전공자들이 섞여있는 상황이다. 조만간 정리가 돼 미국이나 일본처럼 원자력발전소, 항만 등이 민간인들에 이양되면서 그 영역이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상승평준화로 한국의 인력이 굉장히 좋아 과도기가 지나면 경호시장은 상당히 좋아 질 것으로 전망된다.
# 그렇다면 ㈜ 인텔리젼스 씨큐리티가 타 업체와 차이점이 있다면?
일반 경비원을 탈피해 고객을 향한 전문 경호와 경비시스템을 운영한다. 외국 대통령 경호 및 한국 대통령 경호 및 기타 공경호 기관 등 풍부한 경호 경력을 활용해 고객의 안전과 행복을 충족시키고 있다. 기존 경비는 60대 이상의 노령화된 근무자였다면, (저희 회사는) 20-40대의 유단자들로 구성됐다. 수시로 경호, 경비요원들의 상황대처능력 교육 및 업무수행능력평가를 통해 범죄자들을 현장에서 제압이 가능하다. 특히 타 경호업체와 비교한다면 마인드가 다르다. 우리나라 최초로 생긴 용인대학 경호학과에서 체계적인 교육을 받았고 실기적인 부분에서만큼은 우수하다.
# 경호원의 자격 또는 구비조건은?
법적으로 규정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무도는 기본이다. 경호원이라는 직업이 일반적이 아니다보니 VIP를 위한 희생정신이나 가치관 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런 마음이 없다면 경호원이라 할 수 없다. 지시만으로는 안 되고 경험을 통해 위기 상황에서 위기대처 능력과 순발력을 겸비해야 한다. 또한 많은 책을 통해 교양을 쌓는 것과 함께 꾸준한 운동이 필요하다.
# 그동안 경호활동을 하면서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봉고대통령 선거 기간이었는데 야당 쪽에서 과격한 반대로 군인들과 경찰특공대들이 도로를 점거했다. 지금 대통령이 되신 당시의 국방부 장관이 운전중 바리케이트를 넘어서다가 총격을 받기도 했다. 또 말라리아도 두 번이나 걸리기도 했다. 특히 가봉 같은 경우에는 공권력이 세서 사실 치안은 좋은 편이었지만, 개인휴대물로 실탄 50발을 항상 소지했다. 가봉은 프랑스 식민지여서 불어를 사용한다. 당시 중국인들은 6천명-8천명 정도 거주했고, 한국인들은 교민들을 다 합쳐 100명 정도로, 불어로 중국인을 ‘시누아’라고 불렀다. ‘시누아’는 두 가지 뜻이 있다. 하나는 돈 많은 중국인이란 뜻이고, 또 다른 하나는 비하하는 말로 우리말로 굳이 옮기면 ‘짱게’ 정도 된다. 상당히 불쾌해 어떻게 혼내줄까 고민한 적도 있었다.
마이클 잭슨을 경호 했을 때는 숙소 신라호텔 옆방을 경호원들이 사용한 적도 있고, 피아니스트 막심 무라비차 전속 경호담당, 2002년 FIFA WORLD CUP 각종 경호, SM 엔터테인먼트사 소속 연예인 전속 수행경호, 히딩크 감독 수행, 골프선수 박세리, 피겨여왕 김연아, KFA 정몽준 회장, 오페라-아이다, 카르멘 VIP 수행경호 등 각종 스포츠 경기의 경호를 맡았었다.
# 회사가 지향하는 목표는?
쟁쟁한 대기업이 많지만, 개인적인 능력으로만 따진다면 그들보다 낫다고 자부한다. 자본금이라던가 규모는 작지만 어떤 임무가 맡겨진다면 어떠한 큰 회사보다 더 뛰어난 수행능력이 있다.
# 앞으로 학교폭력이나 성폭력 등 사회적인 문제들로 인해 경호의 필요성이 더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그럴 것으로 예상되지만, 다만, 비용적인 문제 때문에 급격히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의뢰 건수가 조금씩 많아지는 정도가 아닐까 생각한다.
박상현 대표이사는 끝으로 “회사 대표이면서도 지금도 필드를 누비고 있다. 우리나라 경호원이 20만 명 정도로, 운동하던 사람, 주먹 쓰던 사람 등 다양하다. 하지만 경호는 고객의 마음까지 다치지 않게 해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은 하루아침에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면서, “이런 가치관과 마음가짐을 가진 경호원들이 구축돼 있어 고객들이 만족할 수 있도록 임무 수행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박 대표는 “후배에 떠밀려 얼떨결에 시작했지만 벌써 7년차가 됐다. 민간 경호 경비 쪽에서 한 획을 긋고 싶은 개인적 인 바람이 있다”면서, “누구든지 믿을 수 있는 경호업체가 되겠다”고 강조했다.
2014-04-23 심종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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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 감각과 여성적 감수성으로 햄릿 재해석’
2014년은 영국의 대 문호 셰익스피어의 탄생 450주기를 기념하는 해다. 현대적인 감각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재해석해 감각적이고 미학적인 움직임과 다양한 영상이 더해진 극단 물결의 ‘햄릿, 여자의 아들’의 송현욱 연출을 지난 3일 대학로예술극장에서 만났다.
Q. 올해가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인데, 특별히 ‘햄릿, 여자의 아들’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지, 혹은 이 작품에 남다른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A. 사실 의도가 있던 것은 아니었는데, 우연히 450주년이었다.(웃음) 현재 세종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지난 2005년도에 이미 한번 각색해서 학생들과 함께 만들었던 작품이었다. 여성적인 관점에서 햄릿을 해석해보고자 했고, 언젠가 꼭 제대로 된 극장에서 올리고 싶다고 희망하고 있었으나 여유가 없었다. 셰익스피어 작품은 여러모로 여유가 있어야 하는데, 극장규모, 출연진, 무대...여력이 없어 햄릿을 올리기 어려웠다. 그런데 지난해에 ‘돈데보이’라는 작품을 무대에 올렸다. 이 작품이 사후 지원작으로 선정돼 지원받게 됐다. 이게 어쩌면 내가 셰익스피어 작품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올리게 되었다.
Q. ‘햄릿’은 워낙 유명한 작품이라 각색하기에 어려움이 많았을 것인데, 각색하면서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A. 햄릿을 볼 때 마다 ‘to be or not to be. Death the question?'의 이분법적인 사고,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삶이고 죽음인지, 그리고 무엇이 사랑이고 증오인지 등의 많은 갈등, 인생에 대한 많은 수수께끼 때문에 고민하고 그것에 대한 질문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게 됐다. 그 수많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중에 하나가 여성적인 세계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Let (it) be‘라는 것을 마지막에 얘기한다. ’그냥 놔두자‘ 굉장히 순리를 따르게 되는 말이다. 언제든 올 것은 오고 안 올 것은 안 오고, 신의 섭리를 따르게 되는 것이다.
사실, 처음에 햄릿이 분노와 슬픔을 갖게 되는 것이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어머니의 욕망 때문이다. ‘엄마’라는 존재에 대해서 남자들은 ‘어머니와 창녀’라는 이분법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데, 그런 편견을 넘어서 차츰 변하게 된다. 오필리어에 대한 잘못, 어머니라는 모성신화에 대해 갇혀 있었던 사고들이 성장해가는 것이다. 이성적 판단을 추구하는 대표적인 인간이기에 무엇이 진실인지, 정의인지, 이런 것들에 대해 무수한 고민을 했고, 또한 그는 남들이 보지 못하는 현상의 이면, 본질을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런 것들의 최고봉인 햄릿이 ‘Let be’가 되어가는 과정은 여성에 의한 변화라고 보았다. 오필리어와 거트루트를 통한 변화라고 본 것이다. 특히 마지막에 거트루트가 독배를 마시는데 사실, 원작에서는 왜 거트루트가 독배를 마시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다. 독이 든 것을 알고 마시는지, 모르고 마신건지, 아들에 대한 감정은 어떤 것인지, 남편에 대한 마음은 어떤 것인지 나와있지 않다. 저는 어머니가 독배를 마신 사건이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보고 거기서부터 이야기를 풀어 나갔다.
Q. 이 작품에서는 거트루트가 독이 들었다는 것을 알고 마시는 것으로 보았는데?
A. 그렇다, 알고 마신다. 결국은 아들에 대한 사랑, 남편에 대한 사랑, 이 두 가지를 다 포용하는 것이다. 그들은 서로가 원수일 수 있지만 거기에서 그 누구에게도 신념을 포기하라고 종용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고 두 남자가 극한까지 다다른 상황이기 때문에 그 상황에 그녀가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양쪽모두를 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어머니적인 세계관이 햄릿에게 굉장히 큰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상상해본 것이다. 그래서 연극의 마지막 부분이 조금 다르게 연출됐다.
Q. 이 작품은 무용과 연극을 결합시켰다.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지?
A. 요즘에 TV를 켜면 다양한 채널이 정말 많고 드라마도 영화도 굉장히 많다. 그런데 TV나 영화와 같은 스타일의 연기를 해서는 거리감도 있고 또 공연장을 일부러 찾아오는 관객에게 같은 스타일의 모습을 보이는 것보다는 보다 스타일리쉬하고 연극적인 스타일을 개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또 하나는 아버지의 영향이다. 추상조각의 선구자였던 아버지 때문에 새미 앱스트랩을 무척 좋아하게 된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내 작품이 여성적이고 실존적이거나 스타일은 반추상적인 취향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런 새로운 스타일의 작품을 관객들이 접하게 하고 싶고 이런 새로운 스타일을 좋아하는 분들도 생기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갖게 됐다. 즉, 방송이나 매체의 연기와는 다른, 새로움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하고 싶다.
Q. 그래서인지 배우들의 선이 매우 아름답다.
A. TV는 작가의 예술, 영화는 편집의 예술, 그러나 연극은 배우 예술이다. 온전히 책임을 져야하기 때문에 몸의 선, 동선마저도 미학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Q. 그러면 이 작품을 본 관객들이 이것은 꼭 마음에 담아갔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면?
A. 저희 극단 스타일이 무용과의 결합을 추구하고 있고 상징적인 표현을 많이 쓰고 있다. 그래서 좀 어렵게 볼 수는 있지만 (제) 연극을 보는 시간동안은 굉장히 어린아이 같은 마음으로 즐기고 스스로 생각하고 느끼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 특히, 이번 작품을 통해서는 요즘의 시대는 아버지의 존재가 너무 무너져 있기 때문에 오히려 이런 현대에 필요한 것은 어머니적인 세계관이 아닐까 한다.
모든 것을 포용하는 것이다. 정의를 찾는다는 것은 불의가 있어야 정의가 있는 것이다. 남성들의 세계는 수직와 수평, 선으로 이뤄져야 한다. 본인들은 수평이라고 하지만 그건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고 선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상.하, 좌.우로 나눠져 있으나, 여성적인 세계관은 원이다. 모든 것을 두루두루 안아주고 끝과 시작의 경계가 없는 그런 세계를 찾아갔으면 좋겠다. 오늘도 보니, 관객들이 많이 우시던데, 본인들의 어머니를 생각하면서 우시는 것도 기대하진 않았지만 좋은 시간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2014-04-08 김미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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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호의 Rehearsal Take
사진/안토니오 페트리스 연출가
(인터뷰) 연출 안토니오 페트리스-오페라 아티스트 전병호-솔오페라단 노이룸 부단장
S#1. 예술의 전당, Café Bauhaus (Day, In)
이탈리아 연출가 ‘안토니오 페트리스’가 오페아 아티스트 ‘전병호’, 그리고 솔’오페라단 ‘노이룸’과 함께 앉아있다. 그들은 연출가 ‘조영호’와 인터뷰 중이다.
조영호 : (페트리스에게) 한국 배우들과의 작업은 어떠한가?
페트리스 : 정말 훌륭하다. 음감이 정확하고 해석이 훌륭해서 이탈리아 배우들과의 합작에 전혀 무리가 없다. 기대 이상이다.
노이룸 : 옆에 계셔서가 아니라, 페트리스 교수는 정말 전병호씨 칭찬 일색이다. 민망할 정도다.
전병호 : (쑥스러워하며) 이번이 두 번째라 호흡 맞추는 게 훨씬 편했다. 2년 전에 ‘세빌리아의 이발사’도 함께 했다.
조영호 : (페트리스에게) 한국은 두 번째 방문인데, 어떤 것이 주로 인상 깊게 느껴지나?
페트리스 : 방문 기간 내내 주로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했지만, 정말 새로운 문화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주로 사람에 관심이 많다. 사람이 가장 흥미로운 존재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건, 한국인들도 나에 대해 흥미를 갖는다는 것이다.
조영호 : 나도 이탈리아인 연출가를 만나는 건 처음이라 지금 매우 이 자리가 흥미롭다.
페트리스 : (크게 웃으며) 그거다!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세상을 움직이게 만든다! 경복궁을 가 봤는데, 이런 멋진 공간을 만들어낸 한국’인’들에 대해 궁금해지는 것처럼!
조영호 : 멋지다. 정말 연출가적인 관점이다. (전병호에게) 페트리스 교수는 매우 유쾌한 사람인가?
전병호 : 페트리스 교수는 재미있는 장면을 잘 만든다. 오페라는 어렵다는 인식이 있는데, 페트리스 교수가 연출하는 오페라는 완전한 코미디라고 할 수 있다. 극의 해석으로 인해 코미디를 유발시킨다. 그것이 오페라 연출의 실력인 것 같다.
노이룸 : 실제 코미디를 정말 많이 유발시키는 인물이 바로 전병호씨가 연주하는 네모리노 역할이다. 똑 같은 장면을 재미있게 풀어내는 남다른 재능이 있다.
페트리스 : 코미디는 어렵다. 어렵지만 해결하고 난 뒤 만족감이 크다. 게다가 어느 정도 음악이 해결해주는 커뮤니케이션의 완성도가 있어서 뮤지컬처럼 모든 사람들을 웃게 만드는 힘이 생기는 것 같다. 나는 그 힘을 만들어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리고 전병호는 음악적 완성도가 높아 코미디의 힘이 매우 큰 연주자이다.
전병호 : 과찬이다. 그건 극의 해석이 만들어주는 재미요소인 것 같다. 페트리스 교수는 그냥 동선만 짜는 연출가가 아니다. 짧은 기간에도 모든 장면을 해석해주고 이해시키는 지적인 사람이다. 그 에너지로 코미디를 만드는 것이다.
노이룸 : 전체적으로 연출가와 전병호씨의 호흡이 잘 맞는 것 같다. 좋아하는 감각도 비슷하고! 이번 솔’오페라단과 로마 오페라극장의 이런 대규모 합작이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 (웃으며) 사실 정말 어렵다. 그렇지만 한국 오페라의 대중화와 수준 높은 공연문화를 위해 꼭 해야 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한다.
조영호 : 한국의 오페라 시장이 그다지 크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그에 비해 이번 [사랑의 묘약]은 상대적으로 큰 사업규모인 것 같은데, 경제논리가 맞는지 모르겠다.
노이룸 : 경제논리로 보면 이런 의미 있는 작업은 하기 힘들다. (웃으며) 오페라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총체적인 종합예술이다. 이 분야가 성장할 수 있도록 정책적인 지원이 꼭 필요하다. 이탈리아는 이미 대중적인 오페라임에도 대부분 국가지원으로 공연을 이끌어낸다.
전병호 : 많은 한국인들이 음악가로써 세계적인 위치에 있고 인정받고 있지만, 정작 한국에 돌아와서는 그 행보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대학 강의 또는 레슨을 빼면 순수하게 공연으로 생활할 수 있는 연주자가 드물다. 행사도 약간은 하고...
조영호 : 한국에서의 예술가들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백조’란 말인가? 우아하지만, 쉼 없이 발을 저어야 하는…
모두는 웃는다.
전병호 : 이외수씨가 그랬던가. 예술을 선택하고 배부르고자 하냐고…?
조영호 : 연극을 하는 입장에서 볼 때, 오페라 쪽은 그나마 조금 더 부유하게 보였는데… 조금 우울해진다.
전병호 : 밖에서는 그렇게 보이나? 아니다. 우리는 ‘예술일용직노동자’이다.
다시 일동 웃음.
사진/[사랑의 묘약] 오케스트라 지휘자 잔카를로 데 로렌조를 비롯한 출연진(사진 좌측 두 번째 전병호 오페라 아티스트, 좌측 일곱 번째 조영호 선임기자)
조영호 : 리얼리티를 기반으로 한 영화는 산업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유럽에서도 산업혁명 후 소극장 문화가 생기면서 사실주의 연극이 주를 이루었고, 이후 시장이 커졌다. 물론 시대의 요구였을 수도 있지만, 지금도 여전히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대중이 있다. 오페라는 이에 어떻게 반응하고 있나?
페트리스 : 물론 오페라도 변하고 있다. 현대적인 해석을 하기도 하고 새로운 변화를 추구한다. 그러나 근본이 흔들리는 재해석 작업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최근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는 매우 파격적인 오페라를 시장에 내놓기도 하는데, 간혹 대중들이 너무 낯설어하며 주제에 대한 왜곡을 하기도 한다.
조영호 : 이탈리아가 오페라 종주국이라 전통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도 있을 것 같다.
페트리스 : 물론 이탈리아인으로서 오페라를 한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긴 하지만, 뭐든 정형화된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근본이 흔들리지 않는 선에서의 변화를 추구하는 걸 즐긴다.
조영호 : 아드리아 국립 음악원에서 오페라 교육도 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떤 수업을 맡고 있나?
페트리스 : 기초적인 발음부터 오페라연기 훈련은 물론 극장의 역사, 복식사까지 다양한 수업을 하고 있다.
조영호 : 현장에 한국인들도 많이 있지 않나?
페트리스 : 훌륭한 재원들이 많다. 오페라에 국적 혹은 인종의 문제는 없다. 잘하고 못 하고의 문제만 남아있을 뿐이다. 결국은 해석과 음악의 힘이 실력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조영호 : (전병호에게) 한국의 오페라 교육은 어떠한가?
전병호 : 지금은 대학과 현장에서 연출가를 키워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다. 연주자는 많다. 대부분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분들이고 실력이 뛰어나다. 그러나 이들을 데리고 섬세한 해석으로 무대에 올려줄 연출가가 부족한 현실이다.
조영호 : 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 오페라 공연이 많지 않은 국내 현장에 대해 약간의 아쉬움이 있을 법도 하다.
전병호 : 독일에서 9년간 오페라 공연을 하고 왔는데, 한국은 연출가 부족으로 인해 다양한 작업을 하기 어렵다. 더구나 오페라 시장이 크지 않기 때문에 작업 환경상 디테일한 연습을 위한 충분한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따라서 연주자가 해석과 표현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 이것은 한국에서 작업하는 오페라 연주자들만의 과제인 것이다. 좋은 연출가가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산업적으로 오페라 시장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에, 정책적으로도 많은 조율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조영호 : 결국은 정책이 또 문제다. (노이룸에게) 국내는 현재 스타마케팅을 적절히 활용한 뮤지컬 시장이 비대해진 상황이다. 기획자로서 오페라만의 매력을 언급한다면?
노이룸 : 단 한가지! 오페라는 몇 천 석 극장에서도 마이크를 쓰지 않는다.
조영호 : (깨달음) 아하!! 새삼 확연히 다른 게 느껴진다. 완전한 음악적 검증은 오페라에서만 살아있다는 뜻인가?
노이룸 : 바로 그거다. 오페라는 순수하게 실력만으로 살아남을 수 있는 예술장르이다.
전병호 : 음악이 그렇다. 30대에 시작해서 세계 최고가 된 파바로티가 그 상징 아닌가?!
조영호 : 희망이 느껴진다. (페트리스에게) 마지막으로, ‘솔’오페라단과 다시 한번 작업한다면 어떤 작품으로 한국에 방문하고 싶나?
페트리스 : 음… (고민하다가) 베르디의 작품을 좋아한다. 문화적 차이를 넘어서 음악적으로 한국 연주가들과의 작업은 매우 만족스럽기 때문에 다시 한다면 O.K.이다.
마침, [사랑의 묘약] 오케스트라 지휘자 잔카를로 데 로렌조를 비롯한 출연진들이 café 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모두 반갑게 인사하며 기념촬영을 하는 동안 서서히 F.O.
조영호 선임기자.
극작가, 연극연출가, 영화감독, 칼럼니스트. 現 극단'매미들' 상임연출가, (주)네오무비 대표, 예술교육공동체 NABA CENTER 상임위원
2014-04-05 조영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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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에서 백제를 만나다”.
하남문화원 부설 하남향토문화연구소 이강범 소장은 지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관내의 유적지 및 일본과 중국의 하남과 관련된 유적지를 일일이 답사하며 적어온 답사일지와 ‘도미나루가 사사하는 백제도성’, ‘한산의 소재연구’라는 두 편의 논문을 모아 “하남에서 백제를 만나다”라는 제목의 책자를 1월 29일 발간하였다.
이강범 소장은 “하남에서 백제를 만나다”는 책을 펴내면서 우리지역에 대한 역사 정체성이 확립되지 못하고 혼란을 거듭하고 있는 이유는 시민들이 우리지역의 역사를 등한시 한데서 온 것이라 말하며, 시민이 알아야 하고 시민들의 관심이 모아져야만 역사 정체성 확립은 가능한 일이라며 본인이 집필한 책이 시민들로 하여금 조그마한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에서 이 책을 펴내게 되었다고 말한다. 또한 이소장은 본인이 사비를 들여 발간한 1000부의 책자들 중에서 하남시민들이 접할 수 있도록 700부를 하남문화원에 기증, 시민들과 공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 말했다.
이 소장이 출간한 “하남에서 백제를 만나다”의 책 내용은 하남에 산재한 대부분의 문화재 및 유적지가 수록되어 있으며, 일일이 답사하며 학계의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하여 저자의 사견을 첨부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객관적인 시각으로 우리지역의 문화재를 바라볼 수 있도록 배려를 하였고, ‘도미나루가 시사하는 백제도성’, ‘한산의 소재연구’라는 두 편의 논문을 통하여 우리지역이 한성백제의 중심일 수밖에 없다는 논거를 제시하고 있어 시민들로 하여금 커다란 반향을 일으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하남문화원 유병기 원장은 이 소장께서 사비를 들여 만든 소중한 책자를 기증해 주신데 대하여 매우 감사하고 고마운 일이라고 말하고, 문화원 주관으로 출판기념회를 기획하였으나 저자의 고사로 인하여 다른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하면서 책자의 내용이 우리지역의 역사를 알리는데 조금의 모자람도 없을 뿐 아니라 일찍이 우리지역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자료들이 발간되어 시민들에게 홍보 했어야 하는 안타까움이 있었는데, 이번 이강범 소장의 “하남에서 백제를 만나다”는 책의 출간과 함께 학계의 논란이 되고 있는 우리지역의 고대 정체성에 대하여 시민들이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포문을 연 것이라 매우 기쁜 일이라고 말하면서 이 소장님의 뜻이 헛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시민들에게 알리겠다고 말했다.
하남문화원은 “하남에서 백제를 만나다”의 책이 하남에서 널리 읽힐 수 있도록 각계 기관 및 단체, 학교 등에 배포하기 위하여 발송부를 준비 중이며, 아울러 이강범 소장을 모시고 하남시민들을 위한 하남역사 특강을 준비 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2014-02-14 정종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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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남시, ‘김병완 작가와의 만남’을 통해 인생을 바꿔 보세요!
하남시 신장도서관은 오는 12월 19일(목) 오전 10시부터 시민을 대상으로 ‘김병완 작가와의 대화’를 갖는다.
이번 강연은 ‘독서로 위대한 인생을 살아라!’를 주제로 11년차 직장인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기까지의 경험과 인생을 바꾸는 독서법에 대한 내용으로 진행된다.
공부법, 독서법, 기업 경영전략 분석, 인물비평, IT 등 경계를 넘나들며 신들린 작가로 불리는 김병완 작가는 2011년 ‘공부의 기쁨이란 무엇인가’,‘48분 기적의 독서법’을 시작으로 ‘인생을 바꾸는 기적의 글쓰기’,‘나는 도서관에서 기적을 만났다’, ‘오직 읽기만 하는 바보’, ‘마흔 즈음에 읽었으면 좋았을 책들’등 1년 9개월 동안 39권의 책을 집필하기도 했다.
도서관 관계자는 “김병완 작가와의 만남으로 독서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나아가 인생을 풍요롭게 가꾸어 갈 수 계기가 될 것”이라고 귀띔하였다.
하남시민이면 누구나 무료로 참여 가능하며 12월 3일 신장도서관 홈페이지
(http://hanamlib.go.kr/silib)의 ‘도서관 행사 신청’란을 통하여 접수하면 된다.
2013-12-03 박이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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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철도원’ 김행균 역곡역장, 대통령 취임식 특별초청 대상자로 추천
부천시는 원미구 중4동에 거주하는‘아름다운 철도원’김행균 역곡역장을 2월 25일에 열리는 제18대 대통령취임식 특별초청 대상자로 추천했다.
김행균 역곡역장은 2003년 영등포역 근무 중 역구내 선로에서 아이를 구하고 새마을호 열차에 양발을 잃는 사고를 겪고 1년간의 치료 후 현업으로 복귀, 살신성인의 자세와 불굴의 재활노력으로 사회의 귀감이 되었다.
김 역장은 이후에도 매년 1월 인천, 부천 보육시설에서 생활하는 아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나눠주기 위하여 정동진 해돋이 열차여행과 태백산 눈썰매장을 6회에 걸쳐 총 1,620명을 무료 초청하였으며, 역곡역 나눔의 쌀독을 운영하여 총 220포(20kg)의 쌀을 인근 독거노인과 어려운 이웃에게 나눔의 정을 실천하는 등 지속적인 사회공헌 활동을 해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 관계자는 “역경을 딛고 일어서신 것 뿐 아니라, 항상 다른 사람을 돕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는 김행균 역장님이 우리 부천에 계신 것이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지금처럼 앞으로도 우리의 귀감이 되어 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한편, 시는 2월 25일 여의도 국회의사당광장에서 열리는 제18대 대통령취임식에 부천시는 김 역장과 ‘자원봉사 실천가’ 이규섭씨, 김만수 부천시장, 한선재 부천시의회의장 등 총 4명을 참석대상자로 제출했다.
2013-02-04 편집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