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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3-07 16:4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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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안티고네’는 고대 그리스 3대 비극시인 중의 한 명인 소포클레스의 작품으로, 오이디푸스 가문의 연대기인 3부작 ‘오이디푸스 왕’ ‘콜로노스의 오이디푸스’ ‘안티고네’ 중 가장 먼저 완성 됐지만, 줄거리 상으론 마지막 3부에 해당한다.

극단 ‘이수(理秀-배우의 몸과 마음을 다스린다는 뜻)’는 다양한 고전 희곡을 바탕으로 현 시대에 맞춰 재창조하는 첫 번째 작품으로 ‘안티고네’를 선택했다. 현대적인 옷을 입고 있지만 원작에 충실하면서 그리스비극의 구성마저 따르고 있다. 극의 배경인 테베의 시민들이 코러스를 맡고 있는데 현대 인간 군상들을 모습으로 나타나지만 원작에서 말하고 있는 주제를 춤과 노래로 표현하는데 굉장히 멋있었다. 작품에 몰입시키는 힘이 상당하다.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과 부인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난 딸로 형제로 폴로니케스와 에테오클레스 쌍둥이 오빠들과 여동생 이스메네가 있다. 오이디푸스 왕의 오래된 이야기로부터 시작하지만 굳이 1부와 2부를 이야기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데에 문제는 없다.

코러스의 서막이 끝나면 안티고네와 이스메네의 대화가 시작된다. 크레온의 법령에 위반되지만 오빠인 폴로니케스의 시신을 묻어주자는 상의를 한다. 이 대화에 이 작품의 주제가 들어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티고네는 하나뿐인 여동생마저 반대하는 일을 기어이 실행하고 그 때문에 크레온 왕과 팽팽하게 대립한다.

테베를 지키려다 죽은 에테오클레스는 영웅으로 기리지만, 자신의 조국을 공격한 폴로니케스는 죽어서도 들판에 버려져 매장되지도 못한 채 들짐승들에 시신이 훼손되도록 내버려두어야 한다는 것이 크레온 왕의 새로운 법이었다. 하지만 안티고네는 이 새로운 법에 정면으로 저항한 것으로, 현실적으로는 두려울 수밖에 없음에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서 도망하지 않은 것이다.

크레온 왕은 모든 것을 다 가진 인물로 노련하게 그녀를 회유하려 하지만 비극적인 가족사 가운데 살아남은 안티고네의 마음은 흔들림이 없다. 사람들이 만들어 낸 법은 그럴 듯해 보이고 실질적인 힘을 과시하지만 실은 변함없이 이어져 내려오는 신의 법을 지키겠다는 것이다. 국법을 강요하는 크레온 왕과 신법을 지키겠다는 안티고네.

또한, 폴로니케스의 매장이라는 문제는 두 사람에게 의미가 다르다. 크레온에게는 폴로니케스가 ‘배신자’였지만 안티고네에게는 ‘가엾은 오빠’였다. 크레온에게는 ‘그의 행위’가 중요했고 안티고네에게는 ‘그의 존재’가 중요했던 것이다.

사실, 사람이란 그가 누구인가도 중요하고 어떤 사람인가도 중요하다. 다만, 어디에 중점을 두느냐는 또 다른 문제이다. 그래서 안티고네의 이야기는 테베의 사람들에게도 안타까운 일이 됐으나, 국법이 두려워 누구도 그녀를 도와주지 못했다. 하긴, 아들인 하이몬의 간청과 저항에도 고집을 꺾지 않은 크레온이니 누가 나섰다고 해서 달라지지는 않았을 지도 모른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은 크레온의 부당함에 점점 분노해 간다.

눈이 먼 테레시아스의 예언은 인상적이었다. 죽은 자는 산자의 세상에 억지로 놓아두고 산자는 죽은 자처럼 매장한 것이 크레온의 죄라는 것으로, 죄에 대한 대가를 듣고 나서야 폴로니케스의 시신을 수습하고 안티고네를 찾아가지만 이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안티고네와 아들 하이몬의 시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제야 그는 고통 속에서 아들과 아내의 죽음이 자신의 탓임을 깨닫는다.

힘을 가진 자는 그 힘을 휘두른다. 어쩌면 자신도 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건 아니라는 것을...그래도 손에 쥔 것을 휘둘러보고 싶은 것이다. 어디까지 가질 수 있는지 알고 싶은 것이다. 오이디푸스 왕가의 비극을 지켜보았고 안티고네와 이스메네를 부탁받아 키워주었던 크레온 왕. 그에게 안티고네가 누이의 딸이고 아들의 약혼녀였다면 좋았을 텐데. 그랬다면 그는 살아있는 그녀를 죽은 자처럼 매장하는 잔인함보다 조금의 동정심을 베풀었을 지도 모른다. 그랬다면 그는 아들과 아내를 거의 동시에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알 수 없는 것이 운명이기에 가지 않은 길이 아름다운지도 모르겠다.

한 나라의 공주로 태어나 온 가족의 비극적인 삶을 지켜본 안티고네와 이스메네. 한사람은 양심에 따라 신법을 지키고 사랑을 행하다 죽고, 한사람은 끝까지 살아남았다. 어느 쪽이 옳다 라고도 말할 수 없지만, 언니가 죽은 후, 이스메네도 온전히 살아남았다라고 말하기 어렵지 않을까? 늘 마음이 아팠을 테니. 살아남아달라는 마지막 당부를 지키느라 살아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미치자 문득 이스메네가 안타깝다.

사람의 행위보다 그 사람의 본질에 중점을 두었던 안티고네. 그녀에겐 세상을 움직일 힘은 없었다. 공주라지만 숙부에게 키워진 허울 좋은 치장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녀는 거대한 힘에 맞서 자신의 마음을 지켜냈다. 분명 그녀도 두려웠을 텐데. 가혹한 운명에 맞서 비굴하게 굴복하지도 무너지지도 않았다. 대단한 사람이다.

보이는 것에 좌우되는 세상에 살고 있으니 당연시 하게 된다. 자꾸 겉으로 꾸미려는 데에 급급해 마음의 힘은 점점 사라져간다. 안티고네처럼 마음을 지키고 누군가를 본질로 받아줄 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생각하니 한숨이 나왔다.

“세상에는 자기주장을 하는 사람, 자기 말이 옳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만 결국에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의 말입니다.” 하이몬의 말이다. 그 주장이 옳다고 한들 무슨 소용인가? 소중한 사람들을 잃어버리게 된다면........그러나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것이고 성숙해져서 지혜로워질 수 있다면 그리 허무하지는 않을 수도 있겠다. 크레온 왕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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