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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3-16 18: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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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셰익스피어 막심 고리끼의 대표작, 연극 ‘밑바닥에서’가 김수로 프로젝트의 고전 1탄으로 공연된다. 프로듀서로 성공한 김수로의 ‘김수로 프로젝트’는 2년 동안 8편의 공연을 올려 관객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고 신뢰감마저 생성되는 시점이다. 그래서 상업적인 작품보다 고전 연극을 선택한 도전이 의미 있고 더욱 반갑다. “성숙하게 고뇌하고 논의해봐야 할 것을 관객들과 나눠야할 때”라는 김 프로듀서의 말이 이뤄지길 바란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창시자이며 프롤레타리아(노동자계급) 문학에 크게 공헌한 러시아의 대표적인 작가 막심 고리끼의 연극 ‘밑바닥에서’는 토굴과 같은 지하 숙소를 배경으로, 여러 유형의 인간을 그려내고 있다. 1917년 혁명으로 붕괴된 제정 말기 러시아 사회상을 재현해 밑바닥 군상으로 전락한 인물들과 배경을 통해 당시 사회의 부정과 모순을 드러내고 인생의 의미를 일깨우는 작품이다.

몰락한 남작, 고기만두를 파는 끄바쉬냐, 알코올 중독으로 자신이 제일 좋아했던 구절마저 다 잊어버린 배우, 도둑 페페르, 혼자 이곳을 빠져나가려고 발버둥치는 자물쇠 장수 끌레시치, 그의 아내로 병에 걸려 죽음을 앞 둔 안나, 한때는 지식인이었지만 이젠 사기꾼에 불과한 도박사에 전과자인 싸친, 웃음을 팔고 사는 나스쨔, 끄바쉬냐를 쫓아다니는 메드베제프, 모자장수 브부노프 등 저마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순례자라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노인 ‘루까’가 나타난다. 비좁고 더러운 토굴 같은 숙소를 벗어날 생각조차 못하는 그들을 위로하고 한탄에 가까운 이야기를 들어 준다. 루까의 말이 허울 좋은 거짓말이라고 치부하면서도 위안을 얻고 희망을 갖게 되는데...

병으로 죽어가는 안나의 곁에 앉아 그녀의 살아온 이야기를 들어주고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는 루까. 죽으면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고 안식을 얻을 거라는 말에 안나는 고통스러운 삶이지만 좀 더 살고 싶다고 한다. 죽음 뒤에 확실한 안식이 기다리고 있다면 좀 더 고통스러워도 견뎌내겠다며.

정말 살아있다는 것에 집착하는 것은 죽음이 가까운 사람들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준 것만으로 충분히 삶의 의지를 갖게 되는 안나의 모습은 안쓰럽고 한편으론 제대로 된 이야기를 듣고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아까운 목숨들이 버려지는 것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더 이상 내려갈 곳도 없는 밑바닥에서 아무 생각도 없이 살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두가 나름의 생각과 고민 가운데 자신의 삶을 마주하고 있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안나마저 안식이 보장돼 있다면 끔찍한 삶이어도 좀 더 살아가고 싶다고 절규할 만큼.

도둑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어릴 때부터 주변의 학대를 받아온 페페르는 유부녀인 바실리사의 애인이면서 그녀의 여동생 나타샤를 사랑한다. 무엇보다 그녀는 자신의 삶을 함부로 여기는 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녀와 함께 한다면 어쩌면 자신도 책임감이 있는,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소망한다. 두 사람이 루까의 도움으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한발 내딛으려는 순간,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져버린다.

아무 의미 없는 시간 같아도 끊임없이 솟아나는 희망과 절망의 사이에서 그들은 존재한다. 때로는 술 한 잔에 모든 것을 다 쏟아내면서, 지나간 날들을 회상하면서, 서로의 존재를 비웃고 또 보듬으면서. 그 곳이 비록 누구도 원치 않았던 밑바닥일지라도 말이다.

살아있기에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워도 살아있기에 가질 수 있는 희망. 그 때문에 더욱 좌절한다 해도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희망인 것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곱씹게 되고 문득 마주치는 데쟈뷰 속에서 이 작품이 떠오른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이라 희망한 김 프로듀서의 인터뷰가 떠오른다. 확실히, 시간이 지날수록 진하게 느껴지는 여운이 있다. 고전의 여운은 마치 진한 에스프레소 같다. 혀끝에 여전히 남아있는 것처럼 쉬이 지워지지 않고 자꾸만 생각난다.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성찰을 전하는 연극 ‘밑바닥에서’는 오는 30일까지 대학로 예술마당 4관에서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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