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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5-05 16: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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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연극 '봉선화'의 한 장면

세종문화회관 M 시어터에서 서울시극단의 김혜련 예술감독, 윤정모 작, 구태환 연출의 ‘봉선화’를 관람했다.

‘봉선화’는 일제시대, 종군 위안부 문제를 객관적 입장이 아닌 가족의 입장에서 다룬 연극으로, 종군 위안부 동원에 관계한 일본인의 증언을 소개한다.

1943년부터 1945년 8월 8일 패전(敗戰)까지 일본 야마구치 노무보국회 동원부장으로 일했던 요시다 세이지는 1991년 11월 21일 훗카이도 신문과의 회견에서 ‘유언하는 심정’으로 조선 여성들을 일본군 위안소로 강제 연행한 자신의 체험을 털어놓았다.

요시다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도 자신이 조선 여성들을 강제 연행하여 종군위안부로 보낸 사실을 생생하게 밝혔다. 요시다는 ‘인간 사냥꾼’이 되어 부녀자 6천명을 연행한 자신의 비인도적 행위는 뒤늦게나마 눈물로써 참회했다. -중략-

요시다 일행은 경찰 30~50명을 대동하고 경찰용 호송 트럭으로 예정된 마을을 급습한다. 우선 경찰 병력을 절반으로 나누어 마을 전채를 포위하여 도망가는 사람을 막고 나머지는 마을 사람을 한 곳으로 모이게 한다. 마을 사람이 전부 모여도 정신대로 끌어갈 만한 여자는 3~4명에 불과했다. 도망가는 사람들은 경찰이 사정없이 목검(木劍)으로 내리치고, 울부짖는 여자들을 후려갈기며 젖먹이 아이를 팔에서 잡아떼며 억지로 트럭에 실었다.

아이를 업고 나온 여자들은 반 광란상태였다. 아기를 여자로부터 떼어내 노인에게 던져 주고 머리채를 질질 끌어 무조건 호송차에 실었다. 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아이가 울면서 호송차를 뒤 쫓아왔다. 그 아이를 팽개쳐 밀어내고 애원하는 노인은 발길질로 넘어뜨렸다. 온 마을이 공포의 도가니로 변했다. 마을에서 반항할 만한 젊은이들은 이미 군대나 노무자로 끌려가고 없었기 때문에 크게 반항하지 못했다. 더구나 무장한 경찰관들이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항거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요시다는 주로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를 뒤지면서 이러한 방법으로 '인간 사냥'을 저질렀다. 이렇게 끌어 모은 여자들은 수백 수천명에 이르렀는데 화물열차에 실려 부산으로 이송되어 관부연락선에 태워졌다. 시모노세키를 거쳐 서부군사령부에 인계하는 것까지가 요시다의 임무였다. 끌려온 조선 여성들은 대부분 중국이나 남방의 일본군 위안소로 보내졌다.

요시다와 같은 임무를 가진 수만 명의 사람들은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군부의 명령을 착착 실행했다. 조선인을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일본을 위하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인 강제 종군위안부를 포함한 강제 연행 관련의 공식 기록이나 관계 문서는 패전 직후 일본 내무성 사무차관의 통첩에 의해 모두 소각 처분되었다. 그래서 일본 정부는 종군위안부 문제에 대해 관여한 바 없다고 우겨 온 것이다. 이에 대해 요시다는 “자신의 체험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군과 경찰 및 행정기관이 일체가 되어서 한 일이었다.”고 증언했다.

연극 ‘봉선화’에서는 어머니가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온 현재 대학학장인 아들과 할머니가 위안부였다는 사실을 상상도 못하고 성장해 온 손녀가 위안부 문제를 다룬 박사학위논문을 준비하면서 벌이는 부녀간의 갈등과 일제시대, 할머니의 위안부로서의 고난의 삶이 복선으로 전개되는 연극이다.

무대는 스크린, 망사막, 백색바탕의 가리개를 중간 막으로 장면변화마다 상하 좌우로 사용하고, 영상으로 실크 스크린에 일제시대, 종군위안부들의 모습을 투사하면서 연극을 이끌어간다. 사각의 입체조형물을 사용해, 소녀들의 놀이터 장면에 배치하고, 일본군들이 위안부들과 벌이는 육체접촉 장소로 묘사되기도 하면서, 탁자와 의자를 들여와 대학 이사장실이나, 학장실의 대도구로 사용하기도 한다.

대단원에서 종국위안부였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나 그 묘소가 영상으로 투사되고, 그 아들이 슬픔에 못이겨 쓰러지기까지, 무대는 출연자들의 연기와 조화를 이룬, 무대전체의 변화가, 하나의 움직이는 조형예술작품 같은 느낌의 공연으로 창출되었다.

연극의 도입은 대학 이사장인 할아버지가 예술대학장인 사위에게 대학총창 직을 맡기려는 자리에, 손녀가 역사다큐멘터리 작품을 제작하는 재일동포청년과 함께 등장한다. 손녀는 그 자리에서 학위논문으로 일제시대의 종군위안부문제를 다루겠다는 이야기를 한다. 그러자 어른들은 모두 얼굴을 찌푸린다. 그리고 그러한 논문을 준비 못하도록 조처한다.

장면이 바뀌면 일본패망과 함께 귀국한 종군위안부였던 아내를 박대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술주정뱅이 아버지와 이를 힘을 다해 말리는 아들, 그리고 아들까지 두들겨 패는 아버지의 모습이 펼쳐진다. 아버지는 결국 술로 인해 저세상으로 가게 되고, 아들이 아버지를 살해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주위사람들이 하게 된다. 연극에서는 바로 그 종군위안부의 아들이 장차 대학의 총장이 되려는 현재 예술대학 학장이자, 여주인공인 손녀의 아버지다. 그렇기에 할머니의 일을 부끄럽게 생각하는 아버지로서는 딸의 논문준비를 적극 반대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전혀 모르는 딸은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다. 딸은 종군위안부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발고 그 당사자인 자신의 할머니를 만나게 된다.

할머니는 참혹한 세월과 역사적 질곡을 견디고 이겨낸 여인답게, 의젓하고, 자애롭고, 아름다운 심성으로, 아들의 출세에 방해가 되지 않으려고, 아들과 멀리 떨어져 홀로 살고 있음이 알려진다. 물론 손녀는 자신의 친 할머니인 것을 모르고 다가간다. 그리고 종군위안부의 삶이, 불량배에게 죽도록 얻어맞은 것처럼 억울한 일이지, 부끄럽거나, 수치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딸의 이러한 움직임에 아버지도 자신의 어머니를 남모르게 찾아 나선다. 그리고 백발의 어머니의 모습을 눈물을 삼키며 몰래 지켜본다. 그런데 이러한 아버지의 행동을 딸의 친구인 재일동포청년이 영상으로 잡는다.

대단원에서 아버지와 딸이 할머니 문제로 맞닥뜨린다. 그러나 아버지는 딸 앞에서 끝까지 부인을 한다. 그러자 딸은 며칠 전 돌아가신 할머니의 묘소 의 영상을 아버지에게 보여드린다. 아버지의 통곡과 슬픔이 아버지를 실신시키기에 이르고, 아버지는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딸이 아버지에게 다가가 끌어안고 일으켜 세우고, 부녀가 깊게 포옹하는 장면에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이창직, 강신구, 김신기, 주성환, 최나라, 이재희, 황연희, 이경, 권재원, 박신운, 김대현, 박수현, 이수형, 강보미, 김현정, 인혜선, 이민주, 최문혁, 김수금 등 출연자 전원의 열연과 호연은 관객을 시종일관 연극에 몰입시키고, 감동적인 마무리까지 이끌어 간다.

드라마트루크 양윤석.김경주, 작곡.음악감독 김태근, 무대미술 임일진, 미술어시스트 오미연, 조명 김학철, 조명프로그래머 김정태, 조명오퍼 설정식, 조명크루 조성준.유태림.진진동.이전한, 음향 이유진, 음향크루 김원심.송민준.계명준, 소품 서현석, 의상 홍정희, 의상어시스트 최서진, 분장 김선미, 다큐영상 강영만, 무대감독 장연희, 무대조감독 박창명, 조연출 김정아, 홍보 위더플랜, 진행 김바우, 기획 이강선 등 스텝진의 열정이 하나로 되어, 서울시극단의 김혜련 예술감독, 윤정모 작, 구태환 연출의 ‘봉선화’를 걸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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