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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7-21 11:3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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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유문서 마지막 부분.

“편전은 명쾌하고 신묘하고 강력하길 따를 활이 없다”

영화 ‘역린’에서 정조가 환궁하는 길에 염탐하는 자의 기척을 느끼고 편전(대나무통에 넣어서 쏘는 매우 짧은 특수한 화살, 일명 애기살)을 쏘면서 한 말이다.

국립중앙도서관(관장 임원선)이 새롭게 공개하는 정조 9(1785)년의 고문서를 보면 편전은 정조 자신이 좋아했던 화살이기도 하지만 멀리 함경북도의 진영에서도 널리 사용된 화살임을 알 수 있다. 이 고문서는 함경북도(咸鏡北道) 길주목(吉州牧) 소속 서북진병마첨절제사(西北鎭兵馬僉節制使) 윤빈(尹鑌)이 벼슬에서 교체되면서 작성한 길이 7미터에 달하는 해유문서(解由文書)이다. 해유문서란 조선시대 관리가 교체될 때 후임자에게 업무를 인계하면서 작성하는 문서를 말한다.

무기류, 병서류, 그리고 군량미에 이르기까지 모두 350여 항목에 이르는 내용을 세세히 기록하고 있는 이 고문서는 특히 300여종에 이르는 무기류의 현황이 흥미롭다. 무기류를 궁시(弓矢 : 각종 활과 화살), 화약병기(火藥兵器類 : 총통, 조총, 화약, 탄환, 폭탄, 화약심지 등), 사살무기(射殺武器 : 창, 칼), 신호장비(信號裝備: 징, 북, 취라, 각종 깃발), 방어장비(방패, 마름쇠)등으로 상세히 구분하고 있고 그 내역을 살펴보면 무쇠 탄환 1만 4,111개, 마름쇠(菱鐵 ; 일종의 지뢰 역할을 하는 무기로 적이 오는 길목에 뿌려 놓는 끝이 뽀족한 서너 개의 발을 가진 쇠못) 4,997개, 편전 670개, 조총 343개, 쌀, 콩, 조, 보리, 기장 등 군량미도 꼼꼼히 기록하고 있다.

조선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면서 국방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고, 18세기에 들어 국가방위를 한층 강화하고자 했다. 특히 정조는 즉위년부터 국방력의 강화를 강조했다. 조선 후기는 남방의 왜구보다 북방의 여진족에 대한 위협이 점차 증대했던 시기여서 이 고문서를 통해 당시 북방에 대한 군사력의 실체를 알 수 있다.

또한 문서 뒷부분에 경자년(1720), 을사년(1725), 병오년(1726), 정미년(1727), 임자년(1732), 을유년(1765)으로 나눠 기록된 내역을 보면 조총에 사용되는 납으로 만든 총알(鉛丸)과 화약이 다량 추가됐다. 이를 통해 18세기 북방의 국경지역에 화약병기가 꾸준하게 보급되고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현존하는 조선시대 해유문서는 100여 건, 이 가운데 지방 무관직 관원의 해유문서는 7건으로 매우 적은 수량이다. 또한 지역적으로도 함경도 지역의 고문서는 학계에 보고된 것이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이 자료는 조선시대 가장 북단 지역인 함경북도 길주목 서북진이 소유한 각종 물품에 대해 상세히 알 수 있는 해유문서로서, 조선후기 함경북도의 국방태세를 살펴 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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