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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10-15 16:3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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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안녕하세요, 저는 한강 일보 정치부장입니다. 의원님께서 걸어오신 길, 그리고 앞으로 추구해 나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서 몇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어린 시절 유성엽은 어땠나요? 꿈 많은 어린 시절 얘기부터 좀 해 주시죠.

A. 제 고향은 전라북도 정읍시 옹동면이라고 하는, 정읍에서도 작고 척박한 면(面)입니다. 옹동면은 상두산.비봉산 자락을 등지고 앞으로는 동진강이 유유히 흐르는, 그야말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전형적인 시골마을입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전주로 전학가기 전까지의 제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죠. 비록 가난했지만, 부지런하신 아버지와 어머니 덕분에 굶지는 않았고, 장손자를 끔직이 사랑하신 할머니의 배려로 넉넉한 마음만큼은 부잣집 아이들 못지않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유별난 개구쟁이였습니다. 마을 또래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골목대장 노릇하면서 온갖 말썽은 다 부렸던 것 같아요. 그나마 공부를 곧 잘 해서 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정도였으니깐요. 지금도 그때 개구쟁이 친구들과 가끔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그 시절을 이야기 하며 웃곤 합니다. 그 시절 기차는 구경하지 못했지만, 가끔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며 신기해 하면서 비행기 조종사가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갖기도 했지요.

Q. 처음에 내무부 공무원으로 행정에 입문해서 민선 단체장과 국회의원까지, 중앙 지방, 행정과 정치를 넘나든 경력이나, 탄탄대로를 걷다가 한 순간 무소속이 되서 골리앗과 외로운 싸움을 전개한 이력들은 다른 정치인한테서는 쉽게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특이한데요, 정계 입문 과정을 좀 말씀해 주시죠. 나름대로 고생도 하셨을 것 같은데요.

A. 대학시절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국가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죠. 저 또한 당시 대학생들과 의식을 함께 하면서도 학생운동에는 깊게 참여하지 않고 혼돈과 방황의 시절을 보냈습니다. 공부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친구들과 뭉쳐 다니며 막걸리 마시고 떠들고 그랬습니다. 막연히 방송기자를 꿈꿨었습니다만 제 작은 아버지께서 기자도 제대로 하려면 뭔가 머릿속에 들은 것이 있어야 한다면서 목표를 정하고 책을 진지하게 읽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행정고시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운이 좋게도 아주 빠른 시간내에 쉽게 합격했습니다. 숙명처럼 주어진 제 길이 공무원인가 보다 생각하며 내무부를 지원했습니다.

사실 저는 행정보다는 정치에 관심을 더 가지고 있었거든요. 당시에는 지방자치가 구현되지 않았지만, 결국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가 분명히 구현될 것이라고 예상했었습니다. 그래서 발령 희망부서를 내무부로 신청했습니다. 중앙행정과 지방행정을 두루 섭렵할 수 있고, 또 운이 좋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임명직 시장이나 군수도 경험해 볼 수 있기 때문이었죠.

결과적으로 저는 그때의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42세 때인 2002년에 민선 3기 정읍시장에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민선 시장에 취임하면서 다진 각오는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해서 정체된 도시에 활력을 불어 넣어 보자였습니다. 외부 지원에만 의존하지 말고, 우리 시민의 힘과 역량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했던 것입니다. 정읍을 제일의 축산도시로 만들고, ‘단풍미인’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서 정읍의 한우와 쌀을 전국에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민이 주체가 되는 관광상품을 만들었습니다. 산간 오지로 인적이 드물던 산내면 옥정호변에 구절초를 심어서 이제는 매년 10월이면 ‘옥정호 구절초 축제’를 내방하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산내면에 전략적으로 재배를 권장했던 ‘노랑고구마’를 구절초 축제와 같은 시기에 수확, 관광객들께 또 다른 즐거움도 선사하게 되었습니다. ‘구절초 축제’와 ‘노랑고구마’는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고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는 성공적인 관광 컨텐츠로 자리매김 하게 된 것입니다. 정읍시장을 역임하면서 저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과 자산 즉 향토자원을 십분 활용해서 내생적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하면 분명 돌파구가 있다는 평소 지론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 사회를 거치면서 중공업 중심의, 국토의 수도권과 동남권 중심의 성장 전략의 결과물은 지역간에 심한 불균형으로 나타났고, 상대적 폐해는 고스란히 지방, 농촌으로 전가되고 있습니다. 부익부 빈익빈 악순환의 연속인거죠. 적어도 농촌이 도시와 공생공존 할 수 있는 토대가 필요하고 제도적인 뒷받침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래서 시장(市長)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 정책과 제도를 정비할 수 있는 국회의원의 권능을 찾아 나섰습니다.

2008년 18대 총선 출마를 준비하면서 비교적 성공적인 시장을 역임했고 또 당시 50% 내외에 이르는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민주당의 공천을 당연히 받을 것으로 낙관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부족함으로 공천을 받지 못했고, 부득이 정읍시민의 뜻을 직접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읍발전을 위해 한번 열심히 뛰어보라는 시민들의 압도적 지지(61%)로 당선되었습니다. 이후 두 번에 걸쳐 민주당 복당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당에서는 구체적인 이유조차 얘기해 주지 않고 복당시켜 주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오로지 시민만 바라보고 무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의정활동에 매진했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도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당선되었습니다.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내무부에서 공직을 시작한 이후 전북도청 공무원을 거쳐 민선 3기 정읍시장에 당선되기까지 비교적 주류(主流)의 입장에서 승승장구해 왔다고 평가한다면, 본격적인 중앙정치를 시작하면서는 본의 아니게 비주류(非主流) 입장이 되어 외롭고 험난한 길을 헤쳐 나오게 되었습니다. 재선 국회의원이 되어서야 민주당에 복당하게 되었고, 복당해서도 계속해서 당의 개혁과 정치 혁신을 위해 비주류의 입장에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행정과 정치, 중앙과 지방, 주류와 비주류 등 그 동안 제게 주어졌고 감내해 왔던 상황이야 말로 제가 앞으로 정치를 계속해 나가면서 예상되는 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될 큰 밑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Q. 처음 국회의원에 도전했을 때 당에서 공천장을 받지 못했는데요, 그때 아마 경선을 위한 배수 압축 과정에서 배제됐던 것이죠? 당시 심정은 어떠했나요?

A. 공천문제는 지금 우리 새정치민주연합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고질병입니다. 공천과정의 투명성, 객관성, 공정성 확보야 말로 정당개혁의 요체입니다. 하지만 우리 야당은 몇 차례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당대 당 통합, 시민단체 수혈 등 이합집산의 연속이다 보니 투명하고 객관적이며 공정한 공천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없는 것이죠.

저 자신이 민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호남에서 연거푸 무소속으로 두 번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었다는 것은 제가 잘 해서라기보다 공천과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유권자가 심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7.30 재보궐선거 참패 또한 공천의 실패로부터 비롯된 것 아닙니까. 우리 야당의 공천파동이 참신하고 유능한 인재들이 모일 수 없게 만드는 독소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 어떤 경쟁자들보다 정읍과 대한민국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공천에서 탈락하고 보니 그 실망감과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라도 우리 새정치민주연합이 차기 총선 공천과정의 투명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공천권을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당원과 국민들께 돌려드리려는 진지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Q. 한 동안 지방분권이 큰 흐름을 이루다가 최근에는 목소리는 줄어들었습니다. 민선 정읍시장을 경험한 유 의원께서는 평소 지방자치에 대한 신념이 강하신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소신을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A. 저는 지금 우리나라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차고 올라서지 못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분석합니다. 하나는 농업을 경시하고 있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이명박 정부 이후 현재까지 신중앙집권적 정치행정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업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요, 지방자치에 대한 저의 신념은 큰 틀에서 분권(分權)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는 분권이야 말로 지방의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이고, 지방의 성장이 곧 국가경쟁력 강화로 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국 226개 기초단체가 제각각 특색 있는 발전전략을 마련해서 서로 경쟁하며 발전해 나간다면 종국에는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 철학을 구현함으로써 수도권 과밀화 현상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은 피폐한 농업과 농촌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중앙과 지방간의 분권, 입법과 행정간의 분권, 행정부 내부의 분권 등 한곳으로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권한과 권능을 과감하게 풀어야 짐도 덜고 부담도 덜 수 있습니다. 서로가 짐을 나눠지고 가볍게 훨훨 날아보자는 뜻입니다.

앞으로 개헌을 할 때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분권형 권력구조 개편에만 머물지 말고 큰 틀에서 나라 전체의 분권을 담아내야 합니다.

Q. 중앙 정치에 큰 꿈을 가진 인재라는 유권자들의 평가도 있습니다. 그 만큼 유 의원께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일 텐데요, 지역에서 유권자도 많이 만나시죠? 의정 활동은 어떻게 준비하는지요


A. 정읍에서 나고 자란 제가 세상을 향해 도전한 이후 다시 정읍에 돌아온 것이 2002년 정읍시장에 출마하면서 입니다. 29년 만이었죠. 그리고 지금까지 정읍을 떠나지 않고 국회로 출퇴근 하고 있습니다. 정치발전 과제 중에 중요한 하나가 정치와 국민간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라는 생각에서죠. 제 의정활동 근간은 지역주민과 함께 문제나 현안을 고민하고, 즉시 국회에 가서 의정활동에 반영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역민들과 자주 만나게 되고 또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많이 듣게 됩니다. 지역민과의 만남 자체가 제게는 소중한 배움의 장인 셈이죠. 시장 4년과 국회의원 6년, 그리고 중간 공백기 2년을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고 또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직능적인 분야 말고 세대별로 즉 젊은 세대와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는 점은 개선해 보고 싶습니다.

Q.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책위 수석부의장과 함께 국회 농해수위 야당 간사를 맡고 계신데요, 주요 역할은?

A. 미국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이먼 쿠즈네츠 교수는 “후진국이 공업화를 통해 중진국이 될 수는 있어도, 진정한 농업 농촌의 발전 없이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농민 없는 국가는 없다”면서 중농주의 정책을 펼쳤고, 프랑스가 오늘날 요리의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된 원동력을 농업의 발전에서 찾은 바 있습니다.

이렇듯 세계적인 리더들은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주요한 지도자들은 농업에 대한 개념이 전무합니다. 그저 공산품 수출을 위해 내주어야 할 시장으로 밖에 인식하지 않습니다. 대단히 안타깝고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농해수위 야당 간사로서 김우남 위원장님, 그리고 여당 간사인 안효대 의원님과 함께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가 소관하는 정책의 주요 안건과 일정 등을 협의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고 계시겠지만 WTO 체제에 이어 각종 FTA에 따른 개방화로 우리 농업과 농촌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 박근혜 정부의 쌀 시장 전면 개방 추진으로 불안과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마련 통보한 관세율을 어떻게 관철시켜 낼 것인가, 또 앞으로 유지해 나갈 것인가 아주 중요한 기로에 놓여있습니다. 우선 성난 농심을 달래고, 정부정책의 신뢰도 제고를 위해서 국제협의 기구 대표단에 농민대표의 참여를 보장하도록 정부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쌀 관세율 법제화를 강력히 주문하고 추진해 가려 합니다. 나아가 지금 논의 중인 한중FTA는 우리 산업구조를 통째로 뒤흔들어 놓을 정도의 파급효과가 예상됩니다. 충실한 보완, 보전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농업의 붕괴는 명약관화합니다. 정부가 어떠한 대책을 어떻게 마련하고 있는지 면밀히 짚어보고 충실한 대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점검해 나갈 계획입니다.

Q. 새길 새로운 세상을 희망하는 정치 메시지를 지닌 전북의 다크호스에서 전국의 다크호스로 우리나라 야당의 초석을 하고 싶어나는데, 유 의원께서 가지고 계신 장기 비전을 말씀해 주십시오.

A. 우리 전북은 야당사에서 큰 족적을 남기신 지도자를 많이 배출했습니다. 정읍 출신으로 국회 부의장을 역임하신 백봉 라용균 선생님, 그리고 유신정권 하에서 야당당수를 역임하신 소석 이철승 선생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스승이시자 17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을 역임하신 김원기 의장님, 전북출신의 최초 대통령 후보로 나선 정동영 상임고문님, 당 의장을 역임하신 정세균 상임고문님 등 기라성 같은 정객의 산실이 바로 우리 고장 전북입니다. 이 분들의 큰 뜻을 계승하고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할 몫은 바로 우리 후배 정치인들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그 몫을 맡아 나가야 한다면 저 또한 주저하지 않겠다는 다부진 각오로 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우리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고 통일을 이루어 가면서 동북아시아 공동체를 견인할 주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정신과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20세기 정치경제 시스템에 연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 정치·경제발전을 토대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대폭 해소하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한계를 분명히 극복해서 ‘21세기 새로운 정치경제 모델’을 정립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안고 있는 국가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과감히 풀어내고, 남북통일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비해 나가야 합니다. ‘문명서진론(文明西進論)’에 발맞춰 세계사 흐름의 중심이 되고 있는 한․중․일 공동체를 선제적으로 주창하고 견인해야 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공동체가 중심이 되어 세계를 이끌어 가겠다는, 세계사적 책무도 기꺼이 짊어져야 할 것입니다.

Q. 즐기는 스포츠나 여가는?

A. 스포츠를 관람하는 것은 즐겨하지만, 직접 참여할 기회는 많이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전국의 주요 명산을 답사하려고 노력합니다. 산의 좋은 기운도 듬뿍 받고, 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바람직한 시간을 갖기 위함이죠.

Q. 외교학을 공부 하신 걸로 압니다. 또한 선거 유세때 보면 대중 연설을 탁월하게 하신다고도 정평이 나 있습니다. 혹시 강습을 받은 적이 있으신가요? 주제와 현안에 대해서 요점과 맥락을 잡는 일이 쉽지는 않은 일인데요.

A. 사실 저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입니다. 처음에 정치 시작하면서 대중연설을 할 때는 아주 어색하고 낯설었죠. 긴장도 많이 하고요. 그런데 마이크를 잡고 제 자신의 소신을 목청껏 피력할 때는 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중 속으로 파고 들어가게 됩니다. 그들의 속내를 긁어주고, 누군가를 향해 대신 실컷 욕도 해 주고 싶은 그런 심정으로 말이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제 연설이 매우 선동적이라고들 하시더군요.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란게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유권자들이 궁금해 하고 답답해하는 것 요점을 잘 짚어서 적절한 단어를 선택해 시원하게 내 뱉어 주는 것. 물론 지적하는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은 충실히 마련해야겠죠. 그래서 요즘 정치인들은 공부를 많이 해야만 합니다. 현장을 얼마나 다니고 공부했는지는 대중 연설을 해 보면 바로 알수 있거든요. 아는 만큼 보이고 또 그 만큼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G2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나라는 아주 전략적인 외교관계를 성립해 나가야 할텐데요, 유 의원 생각을 말씀해 양강의 중간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스탠스에 대한 생각을 밝혀 주십시오.

A.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 그리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상징인 중국. 두 강대국이 벌이는 시소게임의 중간에서 우리나라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기 위한 많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지나치게 경도된 인식과 사고를 한다면 우리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위험한 지경으로 내몰릴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부작용을 해소하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나라의 흥망을 알 수 있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은 왜와 명 사이에서, 정묘호란은 명과 청 사이에서 균형 잃은 외교에서 비롯되지 않았습니까. 결국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자립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물거품이 되면서 500년 조선의 역사가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지게 되었고요.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엄중한 시기라고 봅니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사소한 실수로 큰 낭패를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선 미국과 중국을 향한 전략적 접근을 위해서 남북간 상호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통해 마련된 신뢰의 토대가 이명박 정부를 거쳐 풍비박산되면서 아주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민족동질성을 회복하고 신뢰를 돈독히 함으로써 한반도 정세의 안정화를 도모해야 합니다. 안정된 정세를 기반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실리를 극대화 할 수 있는 외교 수완이 모색되는 것이죠. 우리 한반도가 유럽의 성공적인 중립국 스위스와 같은 완충지가 될 것이냐, 아니면 화약고 발칸반도와 같은 열강들의 각축장이 될 것이냐 하는 기로에 서 있는 것입니다.

Q. 유 의원은 문화, 농업, 경제, 통상 등 두루 섭렵한 몇 안되는 정치인 중에 한 사람인데,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신다면, 그리고 앞으로 유성엽 의원 개인의 정치적 목표와 로드맵을 간략히 밝혀 주신다면.





A. 21C는 문화와 생명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문화와 복지를 향유하며 100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하는 시대가 열려야 합니다. 또한 문화와 생명이 산업의 주요 컨셉이 되어 국부를 창출하는 시대가 열려야 합니다. 우선 이러한 문화와 생명의 21C를 효과적으로 열어가기 위해서는 지방 분권이 필수적입니다. 지방분권을 위해 국세와 지방세의 현재 비율(8대 2)을 5대 5까지 균형을 이뤄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자치를 위한 재정권을 보장해 줌으로써 지방의 내생적 발전전략이 가능하게 하고, 이를 국가 경쟁력으로 승화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과 같이 재정권을 중앙이 틀어쥐고 지방을 좌지우지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조례의 위상을 법률과 같이 높임으로써 자치입법권을 강화해야 합니다. 법률로 전국을 획일화하고 규제하는 것은 자치입법권을 극도로 제한함으로써 자치단체를 서열화하는 ‘Number 1’을 지향할 뿐 특색있는 ‘Only One’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안됩니다.

만일 제가 지금 안전행정부 장관이라면 지방분권을 위한 지방재정권과 자치입법권 강화를 위해서 제도적인 혁신을 역점적으로 추진해 나갔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국가 발전을 위해 기여하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앙정치에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은 문화와 생명으로 우뚝 일어서는 분권화된 대한민국을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안으로 탄탄하고 밖으로 유연한 국가를 만들어 보는 것, 그것이 제 중앙정치의 최종 목표점입니다. 제가 어느 역할을 맡든 이러한 대한민국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을 작정입니다. 정치 인생의 마지막은 제 고향 정읍시에서 시의원을 한번 하면서 정치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런 후 정읍 땅에서 살다가 정읍 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끊임없이 도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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