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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10-29 11: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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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지 김준성 정치부장.


박근혜 대통령은 10월 28일 이희호 여사를 만났다. 그 뉴스를 접하면서 박근혜 대 통령의 정치적 타이밍 포착 역량을 다시 한번 생각 하게 된다. 정치적 타이밍의 중요성을 이야기 한 분은 한국 정치의 핵심인 김영 삼 전대통령이다.

그는 “정치는 타이밍”이라는 어록을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정치적으로 물러서는 시기와 정치적으로 앞으로 나서는 시기, 기자회견을 자청하는 시기나 침묵하는 시기를 선택하는 타이밍이 좋은 정치인은 김영삼으로 회자된다.

지난 1978년 어느 날 김대중은 이전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진영에서 정치적인 역할을 하다가 민주화 투쟁을 위하여 김대중의 진영에 합류한 참모를 통하여 “김대중이 박정희 당시 대통령에게 만나서 정치 현안문제를 풀고 싶다는 정치적인 입장을 표명하려 하지만 곧 그 일이 여의치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박정희와 김대중은 생전에 만나서 국정에 대하여 상대방을 배려하면서 서로 1970년대에 마주 보고 협상, 대화, 소통을 한 적이 별로 없었다.

김대중은 “생전에 박정희를 만나서 헌법 개정, 민주화로의 연착륙을 시도하지만 만날 수 없는 강경노선들이”김대중과 박정희 세력에서 다수를 이루던 1978년에서 1979년 정국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김대중의 이런 유연 태도에 내심으로 반대하던 당시의 비서진들은 “이런 대화주의자인 김대중의 정치적인 언행을 이해하기 힘들었다”고 말한 바 있다.

두 정치인이 1978년경에 만나서 대화로 한국 정치를 풀어 가는 소통의정치를 했다면 우리가 열망하는 민주화를 이루는 과정에서도 평화로운 단계를 거치는 절차와 과정을 만들기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국민들도 이 두분의 사이에서 유연한 참모가 존재했다면 절차의 민주화를 보다 앞당기는 역사가 만들어지는 광경을 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박근혜 대통령이 오늘 29일날 국회에 출석하여 김대중 노무현 계파가 다수를 이루는 야당의원들 앞에서 연설을 하고, 이어서 김대중 노무현의
정치적인 후계자들을 만난다. 이는 박정희의 후계가 김대중의 후계를 만나는 것과 오베랩된다.

대통령에 당선되기 전에 김대중의 동교동 사저를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에게 “전라도, 경상도를 통합 시킬 가장 적임자는 박근혜 당신이다”는 발언을 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인 앞날을 위해서 서로 이심 전심을 교환한 적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동교동 김대중 사저를 방문한 후에 김대중과 박정희는 간접 대화를 한 것이다. 무엇보다 정치적 언행에서 단어 하나도 토씨 하나도 중시하는 김대중과 박근혜의 동교동에서의 대화는 박정희와 김대중의 화해를 시작한 정치적 대화였다. 정치행위 효시로서 정치인들은 지금도 좋은 만남으로 김대중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만남으로 평가 한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이희호 여사가 북한 방문을 열망하는 것을 말하려 만난 것은 잘한 일이라는 여론이 높다. 아쉬운 것 중의 하나는 박정희와 김대중의 생전의 만남이 아니었나 싶다.

“정치적 만남은 선(善)이고, 정치적 불통은 비선(非善)” 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나는 정치를 위해서 이희호 여사와 박근혜의 만남은 박정희와 김대중의 만남이라는 생각이 든다.

지역 감정해소를 위하여 분투를 해온 이정현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의 조경태의원은 우리 정치역사에서 평가를 제대로 해야 한다. 아울러 지역 감정을 극복하기 위한 박근혜 대통령의 이희호 여사 만남이 하루 뒤인 29일 야당과 대통령만남이 잡힌 후에 이뤄진 타이밍은 정치적으로 절묘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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