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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11-18 15: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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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하(金芝河, 1941- )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시인이다. 본명은 김영일(金英一)로 원주중학교를 졸업한 뒤 중동고등학교를 졸업, 서울대학교 미학과를 진학해 학생극 ‘혈거부족’ ‘임야의 집’에 출연하고, ‘혈맥’을 비롯해 대학극 연출도 했다.

서울대 재학 중 4.19와 5.16 군사 정변을 겪었고, 6.3사태 등을 접하면서 학생운동에 깊이 관여하게 된 그는 1970년 정치인과 재벌, 군장성과 고위공직자의 부패, 그리고 비리를 질타한 시 ‘오적(五賊)’을 발표해 체포.투옥됐으나, 박정희 대통령의 배려로 석방된다. 그 후 황토길을 발표해 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한다.

1973년 4월 소설가 박경리의 딸 김영주와 결혼해, 아들 김원보와 김세희 형제가 태어났다. 그러나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체포돼 긴급조치 4호 위반혐의로 사형을 선고 받았으나, 그 후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가 1975년 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된다.

이후 ‘인혁당 사건’의 진실을 밝혔다가 재차 구속돼 재판에서 무기징역에 징역 7년형을 추가로 선고받았다가, 1980년 12월 형집행정지로 석방 후 한때 해남에서 은거생활을 했다.

1980년대 이후 김지하는 각 종교의 생명 존중 사상을 수용하고 생명 운동을 벌인다. 1991년 분신 정국 당시 같은 해 5월 5일 조선일보에 쓴 ‘젊은 벗들! 죽음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라는 글에서 그들의 죽음을 강하게 만류한다. 이는 생명에 대한 그의 존경심에서 나온 진정한 충고였으나, 이를 두고 일부 인사들은 김지하의 진정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변절운운하면서 그를 헐뜯기 시작했다. 1990년 대 이후 박두진, 고은의 시, 황석영, 최인훈, 이청준, 박경리 등의 작품과 함께 그의 직품도 유럽과 미국에 번역돼 소개되기도 했다.

김지하는 80년대 이후, 그리스도교사상과 불교의 미륵사상, 화엄사상, 유교, 선불교.기(氣)철학 등의 여러 사상들을 교리에 얽매이지 않고 재해석해, 이를 모두 융합, 수용해 생명사상을 제창했고, 풍자력을 갖추면서도 생명사상을 바탕으로 한 담시와 서정시를 썼다.

시집으로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 ‘시삼백’ ‘’황토길‘ 등이 있고, 회고록 ’흰 그늘의 길‘과 저서 ’김지하 사상전집‘이 있다.

김지하는 출옥 후 심기를 갈아 앉히려고 난을 치기 시작했다. 그는 미학과 선배 무위당(无爲堂) 장일순(張壹淳) 선생에게서 사군자 치는 법을 배웠다.

무위당(无爲堂) 장일순(張壹淳)(1928-1994)은 강원도 원주에서 출생해 여운(旅雲) 장경호 밑에서 한학을 배우고, 우국지사 박기정(朴基正)에게 서화를 배웠다. 1946년 서울대 미학과를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고향인 원주에 낙향해 살았다.

1954년 지인들과 함께 원주에서 대성중고등학교를 설립하고, 1960-70년대에는 천주교 원주교구장 지학순(池學淳) 주교에게 발탁돼 강원, 경기, 충청의 농촌 광산지역의 농민과 노동자 교육을 펼쳤다. 장일순은 반독재투쟁과 함께 원주지역에서 협동조합운동을 일으켰고, ‘한살림 운동’을 시작해 살림의 문화를 만들어 나갔다. 김지하와 부모에게 원주시 학성동 지학순(池學淳 1921-1993) 주교관 옆에 집을 마련해 준 것도 장일순의 힘이다.

장일순은 카톨릭 신자면서도 불교와 유학, 노장사상에 조예가 깊었다. 특히 해월 최시형의 영향을 받아 ‘걷는 동학’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서화에도 뛰어난 그는 특히 난초를 잘 그렸다. 난초 그림에 얼굴이 묻어나는 ‘얼굴난초’로 유명하다.

이번 선화랑(대표 김창실)에서의 김지하의 ‘반산’ 展은 산수, 꽃, 난초, 매화, 달마 등 100여점이 전시된다.

역대 난초그림으로는 조선시대의 묵란화(墨蘭畵)에는 문인서화가인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필란도(筆蘭圖)’, 秋史 김정희(金正喜 1786-1856)의 ‘불이선란(不二禪蘭)’, 난초 그림의 쌍벽인 흥선대원군 이하응(李昰應 1820-1898)과 운미(芸楣) 민영익(閔泳翊, 1860-1914)의 난초가 걸작이고, 작품마다 서권기(書卷氣)와 문자향(文字香)이 감돈다.

장일순과 김지하의 난초에선 서권기(書卷氣)와 문자향(文字香) 뿐만 아니라, 난 잎마다 춤사위를 펼치는 듯한, 형태의 율동감이 충만하다. 난초뿐만 아니라, 매화도 앞에서면 살아있는 꽃보다 더한 생동감과 요염함까지 나타난다. 장일순의 서화가 정중하고 은인자중 한데다가 고아한 멋을 내포하고 있다면, 김지하의 그림은 동적이고 춤사위를 보는 듯싶고, 그 기운이 천지사방으로 전파되는 느낌이다.

그림에 쓴 글자도 약동적이고, 생명감에 차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낙관(落款)도 음각(陰刻) 양각(陽刻)으로 제대로 찍히고, 수준급 전각(篆刻) 낙관이다. 우리나라 최고의 전각서예가(篆刻書藝家)인 충남 예산 출신의 석봉(石峯) 고봉주(高鳳株, 1906-1993) 선생의 전각 솜씨를 본 듯한 낙관이다. 고봉주는 서예가이면서도 전각예술가이기에, 1990년대에까지 일본 왕의 옥새를 새겨주기도 했다.

김지하(金芝河) 시인이 호를 노겸(勞謙)으로 정한 것도 눈에 띈다. 노겸(勞謙)은 공로가 있어도 겸손함을 잃지 않는다는 의미다.

전시장을 둘러본 한 관객은 “서화의 분위기에 흠뻑 취하고 몰아의 경지로까지 들어가게 되는 근래 보기 드문 독특하고 탁월하고 기억에 남는 전시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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