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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5-05-21 10:0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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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제공/극단 산울림.

나뭇잎 하나 없는 앙상한 나무 한그루. 낡고 초라한 옷과 구두를 걸친 초로의 두 남자. 블라디미르(디디)와 에스트라공(고고). 그들은 ‘고도’라는 남자를 기다린다. 약속을 한 것도 아닌지 언제 어디서 만날지 모른 채 그저 ‘기다릴’ 뿐이다. 지나가던 포죠와 럭키를 만나 실없이 시간을 보내지만 오늘도 소년이 심부름이라며 외친다.

‘고도씨가 오늘 밤에는 못 오고 내일은 꼭 오시겠다고 전하랬어요!’

리얼리즘에서 부조리극으로 넘어가는 계기를 만든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는 우리 연극사에서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올해로 초연 45주년과 산울림 소극장 개관 30주년, 임영웅 연출 인생 60주년까지 기념하여 역시 ‘고도를 기다리며’가 관객들과 만났다. 그동안 함께 해온 명배우가 총출동했다.

“이제 그만 가자”
“안 돼”
“왜?”
“고도를 기다려야지”
“참, 그렇지”

참 그렇지 하는 고고의 표정이 애처롭다. 기다림에 지쳐 목이라도 메자 하지만 오래된 그의 허리띠 대용 넥타이는 허무하게 끊어져 버린다. 피식 웃음이 나면서도 한숨이 나온다. 내일도 또 고도를 기다려야하기에.

긴 기다림에 지쳐 의미 없는 장난, 농담 따먹기, 심지어 서로 욕을 퍼붓기도 한다. 포죠와 럭키를 만나 보내는 시간도 의미 없기는 마찬가지다. 그들은 왜 같이 다닐까? 지배에 대한 집착이나 속박인 줄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뜨끔하다.

작가 자신이 2차 대전 중 남프랑스 브쿨루스에 숨어서 전쟁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상황을 연극적으로 만들어낸 작품이다. 기약 없는 기다림의 부조리를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기다림의 지루함, 그걸 즐길 수 있는 인간이란 없다. 기한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말 그대로 하늘과 땅 차이이기 때문이다.

디디와 고고는 ‘고도’씨를 만났을까. 도무지 상상할 수가 없다. 기다림이 가능한 단 하나의 이유는 언젠가는 반드시 만나게 되어있다는 확실함 때문인데도. 어쩌면 만남을 상상하기보다 잘 기다릴 수 있는 마음가짐이라도 익혀두어야 할까. ‘고도’를 만나지 못한 모두가 또 다른 디디이고 고고이기에.

이번 기념비적인 공연에는 정동환, 정재진, 이호성, 박용수, 송영창, 안석환, 이영석, 한명구, 박상종, 김명국, 정나진, 박윤석, 김형복 총 13명의 배우가 참여했다. 무대디자이너 ‘박동우’, 조명디자이너 ‘김종호’, 의상디자이너 ‘박항치’ 최고의 제작진이 임영웅 연출과 역대 공연 중 최고의 완성도를 만들어 자랑했다.

덜컥 작품을 선정하고 대본을 읽다 ‘이거 큰일났다!’ 했던 연출의 걱정은 분명 어려운 부조리극에 대한 부담 때문이었을 터이다. 그러나 1969년 초연당시 작품은 때맞춰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수상작에 대한 호기심은 전석 매진으로 이어져 여전히 그 기록이 깨지지 않았다니 작품은 자신의 명운도 스스로 결정하는 것인지, 그 작품이 산울림과 임연출의 대표작으로 지금까지 살아남았으니 말이다.

임영웅표 ‘고도를 기다리며’는 세계 연극계에서도 인정을 받았다. 1989년 한국극단으로선 이례적으로 이 연극의 본고장인 프랑스 아비뇽 페스티벌에 초청되었고 1990년에는 사뮈엘 베케트의 고향인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역사적인 공연을 하기도 했다. 임영웅은 당시 “더블린에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공연한다는 것은 한국에서 외국 극단이 ‘춘향전’을 공연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유명한 소감을 남겼다. 이 외에도 폴란드·일본 등 수많은 해외 초청공연과 평단과 관객들의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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