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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05-10 10: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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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재천 기자]청산리 전투를 대승으로 이끌고, 광복 후 초대 국무총리를 지낸 이범석 장군을 기리는 ‘철기 이범석 장군 제45주기 추모제’가 오는 11일 오전 11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에서 (사)철기이범석장군기념사업회(회장 박남수) 주관으로 열린다.

이 날 추모식에는 이경근 서울지방보훈청장을 비롯한 각계인사와 유족, 기념사업회원, 시민 등 3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참석 내빈의 추모사, 헌화.분향, 묵념 등의 순으로 진행된다.

이범석 장군(1900.10.20.~1972.5.11.)은 서울 용동에서 출생했다. 1915년 여운형의 권유로 중국으로 망명한 이후 민족지도자 신규식의 주선으로 운남강무당(雲南講武堂)에 입학해 기병과(騎兵科)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3.1운동 소식이 전해지자 독립운동에 동참키 위해 장교직을 사직하고 신흥무관학교의 고등군사반 교관으로 취임해 독립군 장교 양성에 주력했다.

1920년 4월에는 왕청현에 있는 북로군정서로 가서 사관연성소를 창설한 뒤 600여명의 생도들을 독립군 장교로 교육해 부대의 전투 역량 강화에 기여했다. 이는 한국독립군 전사 가운데 가장 찬란한 전과를 올린 청산리 대첩의 기반이 된다.

1920년 10월 21일, 보병 1개 대대를 인솔하고 청산리 백운평에서 유리한 지형을 이용해 일본 토벌군 주력 부대를 강타하여 수천 명의 사상자를 내게 한 대전과를 올렸고, 이후 김좌진 장군과 함께 북로군정서군을 지휘하면서 일본군과 10여 차례 격전을 치러 큰 승리를 거두었다.

1940년 9월 17일에는 한국광복군 창설에 참여해 참모장으로 임명됐다. 이후 광복군 총사령부의 핵심 부대라 할 수 있는 제2지대장으로서 미국 전략정보국(OSS)과 합작해 국내 진공작전 수행 계획을 세우는 등 항일투쟁을 적극 전개하다 광복을 맞았고, 1946년 6월 3일 500여명의 광복군 동지들과 함께 인천항을 통해 조국에 돌아왔다.

1946년에는 조선민족청년단을 결성해 민족국가 건설에 힘썼고,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초대 국무총리 겸 국방부 장관으로서 국가의 기틀을 마련하고, 국군 창설과 육성에 크게 공헌했다.

정부에서는 장군의 공훈을 기려 1963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수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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