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7-08-12 07:15:18
기사수정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늘푸른연극제(위원장 정대경) 극단 동양레퍼토리의 노경식 작, 김성노 연출, 이우천 협력연출의 <반민특위(反民特委)>를 관람했다.

노경식(1938~) 선생은 1938년 전북 남원 출생으로 1950년 남원용성국교(41회) 및 1957년 남원용성중(3회)을 거쳐 남원농고(18회, 남원용성고교의 전신)졸업. 1962년 경희대학교 경제학과(10회)를 졸업하고 드라마센타 演劇아카데미를 수료했다.

1965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희곡 <철새>로 등단하고, 한국연극협회 한국문인협회 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및 이사. 한국 펜클럽 ITI한국본부 한국희곡작가협회 회원. 서울연극제 전국연극제 근로자문화예술제 전국대학연극제 전국청소년 연극제 등 심사위원. 추계예술대학 재능대학(인천) 국민대 문예창작대학원 강사 및 <한국연극>지 편집위원.’남북연극교류위원장’등을 역임하고, 2017년 문재인 대통령 후보 지지성명에 앞장선 훤칠한 모습의 미남 극작가다.

주요수상 : 백상예술대상 희곡상, 한국연극예술상(1983), 서울연극제대상(1985), 동아연극상 작품상, (1999) ‘대산문학상’(희곡) 수상, (2003) ‘동랑유치진 연극상’ 수상, (2005) ‘한국희곡문학상 대상’ (한국희곡작가협회), (2006) ‘서울시문화상’ 수상, (2009) ‘한국예총예술문화상 대상’ (연극) (2015) 한국연극협회 자랑스러운 연극인상 등을 수상했다.

2004년-2012년 <노경식희곡집>(전7권)/ 연극과인간, 2004년 프랑스희곡집 (‘하늘만큼 먼나라’ 외), 2011년 <韓國現代戱曲集 5> (일본어번역 <달집> 게재)/ 日韓演劇交流센터, 2013년 <압록강 이뿌콰를 아십니까> (노경식 산문집)/ 도서출판 同行, 2013년 <구술 예술사 노경식>/ 국립예술자료원, 역사소설 <무학대사>(상하 2권) <사명대사>(상중하 3권) <신돈>/ 문원북 등의 저서가 있다.

공연작품으로는 1971년 <달집> 국립극단/ 명동국립극장, 1982년 <井邑詞> 극단 민예극장/ 문화회관대극장(아르코), 1985년 <하늘만큼 먼나라> 극단 산울림/ 문화회관대극장(아르코), 1994년 <징게맹개 너른들>(뮤지컬) 서울예술단/ 예술의전당 대극장, 2005년 <서울 가는 길>(佛語번역극) 파리극단 ‘사람나무’/ 대전문화예술의전당, 2013년 <달집>(日語번역극) 東京극단 ‘新宿梁山泊’/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2016년 <두 영웅> 극단 스튜디오 반/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 외 40여 편을 발표 공연했다. <두 영웅>은 노경식 작가의 등단 50주년 기념공연이다.

연출을 한 김성노는 홍익대학교, 방송통신대학교, 경기대학교 공연예술학 석사출신으로<리틀 말콤>, <등신과 머저리>, <에쿠우스>, <검정고무신>, <홍어> <아버지> <두 영웅>등 활발한 연출활동을 이어오며 백상예술대상 신인 연출상, 동아 연극상 작품상, 서울연극제 연출상 등을 수상하고 ‘신춘문예 단막극 제’, ‘아시아연출가전’, ‘연출가포럼’ 등 기존 사업과 더불어 ‘한국연극100년 시리즈’, ‘차세대 연출가 인큐베이팅’ 등 신규 사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오고 한국연출가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서울연극협회 산악대 대장으로 활약한 건강하고 훤칠한 미남인 중견 연출가다. 현재 동양대학교 교수로 재직 중이다.

<반민특위(反民特委)>는 2005년 9월 극단 미학의 광복 60주년기념공연작으로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에서 정일성 연출로 초연되었다.

김명수, 오지영, 김경미, 정상철, 맹봉학, 곽인호, 이창호, 장우진, 이돈용, 이람, 방용원, 김동일, 허인구, 강석, 배성호, 김태현, 최우형, 김재홍, 강진영, 이상현, 차문수, 김관표 등이 출연해 호연과 열연으로 갈채를 받았다.

제작 홍유진, 무대 김종선, 조명 백승희, 음향 한철, 의상 손진숙, 소품 구본주, 홍보 장성집, 마케팅 박미향, 조연출 김동일, 김시번, 박진원, 무대감독 조명훈, 기획 고무곤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발휘되어 공연은 성공작이 되었다.

영화로는 2015년에 <반민특위(反民特委)>를 소재로 만든 영화 <암살(暗殺, Assassination)>은 7월 22일에 개봉하여 8월 15일 관람객 천만 명을 돌파한 최동훈 감독의 대 성공작이다.

전지현, 이정재, 하정우, 오달수, 조진웅, 최덕문, 이경영, 박병은, 김의성, 김홍파, 진경, 허지원, 정규수, 김인우, 이영석, 우상전, 정인겸, 송영재, 탕견, 조승우, 김해숙 등이 출연해 남우주연상과 여우주연상, 감독상, 작품상 그 외의 청룡영화상, 평론가협회상, 춘사영화상 등을 휩쓸어 수상했다.

1948년 제헌의회가 구성되자 국회의원들은 이승만 정부의 반발을 무시하고 반민법을 제정한다. 이 법은 반민족행위자의 범주와 처벌 규정, 특위의 구성과 활동, 특별재판부 구성을 담고 있다.

이 법에 따라 구성된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반민특위(反民特委))'는 1948년 10월 12일 저명한 독립운동가이자 국회의원인 김상덕을 위원장으로 선출한다.

김상덕 위원장은 와세다 대학을 다니다 2.8 독립선언을 주도해 1년간 옥고를 치른 후 중국으로 망명해 일제 타도의 선봉에 섰던 독립투사다. 그는 경북 고령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학교를 다녔고, 중국에서 독립투쟁을 벌이다 남한에서 돌아온 후 납북돼 북한에서 여생을 보내게 된다.

반민특위는 국민들의 열화 같은 성화를 업고 의욕적으로 출발한다. 반민특위가 가장 먼저 검거한 친일파는 화신재벌 총수 박흥식이다. 그는 조선비행기 공장을 세워 일제의 침략전쟁에 기여한 인물로, 해외도피를 기도하다 체포된다.

이어 만주에서 일본 헌병의 앞잡이로 무려 250여 명의 독립투사를 붙잡아 17명을 처형한 악질 친일파 이종형을 잡아들인다. 그는 마포형무소에 수감된 후에도 "내가 감옥에 들어온 건 빨갱이를 잡는데 앞장서서 사방에 적을 만든 탓"이라고 고래고래 악을 쓰기도 한다.

이어 3.1운동 당시 33인의 한 사람이었다가 변절한 최린, 친일 변호사 이승우, 평안북도 특고과장을 지내면서 많은 독립투사를 잡아들인 악질 경찰 이성근, 고종황제의 당질로 매국 활동을 한 이기용을 구속한다. 이기용은 자택 응접실에 일왕 히로히토의 사진을 걸어놓고, 일본 왕실로부터 받은 훈장 30여개를 진열해놓아 조사관들을 놀라게 한다.

반민특위는 1949년 1월 25일 드디어 악질 중의 악질인 친일경찰 노덕술을 체포하는데 성공한다. 그는 전국 도처에서 독립운동가를 무차별적으로 체포해 여러 명을 고문해서 죽인 친일경찰의 상징이다. 노덕술은 수배 중에도 번호판을 단 경찰 지프에 경호원까지 태우고 서울 시내를 활보하고 다닌 인물이다.

노덕술이 체포되자 이승만은 노기충천하여 김상덕 등 특위위원들을 경무대로 불러 그를 석방하라고 강요한다. 특위위원들은 단호히 거부한다. 국내에 지지기반이 약한 이승만은 어떻게 해서든지 친일파를 보호해 장기집권의 무기로 써먹을 생각을 하고 있다. 반민특위와 정부 사이에 '전운'이 감돌기 시작한다.

먼저 일제 경찰 출신들이 발 빠르게 움직인다. 제일 먼저 반민특위 요인들을 암살하려는 음모가 진행된다.

서울시경 수사과장 최난수와 사찰과 차석 홍택희는 테러리스트 백민태를 불러 국회의원 3명을 납치해 38도 선상의 어느 지점으로 끌고 오면 그 다음은 경찰이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지령을 내린다. 그러나 겁을 먹은 백민태가 검찰에 자수하면서 이 음모는 무산된다.

친일경찰들은 급기야 법을 깡그리 무시하고 "실력으로 반민특위 특경대를 해산시키자"며 준비에 들어간다. 습격 전날 밤 시경국장 김태선에게 계획을 전해들은 내무차관 장경근은 "앞으로 발생할 모든 사태의 책임은 내가 진다. 웃어른께서도 말씀이 계셨다"며 이승만의 사전 양해가 있음을 암시한다.

이렇게 해서 친일경찰들은 1949년 6월 6일 백주대낮에 국가기관인 반민특위를 습격한다.

물리력을 빼앗긴 김상덕 위원장과 특위 위원들은 사퇴서를 제출하고 자리를 떠난다. 이런 와중에 반민특위를 국회에서 지지해주던 김약수 부회장 등 소장파 의원들이 '남로당의 프락치'라는 혐의로 대거 구속된다.

이어 반민특위의 정신적 기둥인 백범 김구마저 암살당하면서 '친일파 처단'은 물 건너가 버리고 대한민국은 '친일파의 천국'으로 전락한다.

한국전쟁이 터지자 김상덕은 북한 내무서원들에 의해 이북으로 끌려간다. 그 뒤의 소식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2006년 9월 3일 북한을 방문한 독립운동가 유족들에 의해 평양 용궁동에 있는 재북인사묘역에 묻혀 있다는 사실만 확인되었을 뿐이다.

이승만 정권은 국회에서 반민특위에 힘을 실어주던 국회의원들과 백범 김구를 제거하자마자 반민특위를 해체하고, 반민족행위와 관련된 모든 특별법을 지워버린다. 물론 수감돼 있는 친일파들을 모두 석방하고 이들을 군과 경찰, 행정부의 요직에 두루두루 앉힌다.

이렇게 해서 한반도 남쪽이 친일파들의 수중에 떨어지자 독립운동가들의 존재는 까마득하게 지워져 버리고 만다.

무대는 배경에 영상을 투사해 역사적 시대적 사건과 인물을 상세히 부각시킨다. 여러개의 작은 무대를 계단식으로 가설하고, 무대 좌우에도 작은 무대를 설치해 장면변화에 사용한다. 오케스트라 박스에까지 동선을 활용, 무대 끝에 앉아 오케스트라 박스에 발을 내려놓기도 한다. 배경 가까이 설치한 높은 무대 뒤쪽으로도 군중장면이 연출되고, 무대 좌우로 등퇴장 로가 있다.

연극은 도입에 배경 가까이에 정렬된 인물들이 일본제국에 충성을 맹세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배경에 원폭투하 영상이 투사되고, 일제가 패망하는 장면에 이어 이승만이 백색의상과 백색 모자를 쓰고 등장한다. 연극은 신문사 정 기자의 취재장면에서 시작된다.
그의 아내는 임신 중이다. 친일파를 소탕하기 위한 반민특위의 결성과 그 활동을 취재하던 중, 일제 강점기 경찰관 노릇을 했던 조선인들이 대거 경찰관으로 기용되고, 또한 친일행각을 벌인 조선인들 중 그 수뇌 급 인물들을 반민특위에서 체포해 처단하려 하자, 이승만의 옹호 하에 친일파들이 오히려 득세를 하기 시작하고 반민특위 위원장인 김상덕 같은 애국지사를 외면하는가 하면, 반일투쟁을 벌인 인사를 적색분자로 몰아붙이는 해괴한 풍조가 형성된다. 친일파 제거를 부르짖는 제헌의원을 공산주의자로 몰아 처단하려하고, 심지어 반공을 명분으로 반민특위를 집단으로 습격하는 사건까지 벌어진다.

결국 정의가 득세하지 못 하고, 불의가 날개를 펴는 당시의 상황을 보며, 정 기자는 만삭의 아내와 태어날 자식을 위해, 해방된 조국이 옳고 바른 나라, 정의가 승리하는 정치풍토가 형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지만, 그게 아득해 보이고 요원하니, 그저 술잔을 기울이는 장면에서 효과음악으로 들리는 동요노래소리 와 함께 연극은 끝이 난다.

권병길, 정상철, 이인철, 김종구, 유정기, 최승일, 배상돈, 문경민, 장연익, 민경록, 이승훈, 노석채, 장지수, 이영수, 이창수, 양대국, 임상현, 김대희, 김춘식, 김민진, 이 준, 정진명, 최원석, 정나라, 윤지영, 김민정, 이재은, 박지원, 정애란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열연은 조화를 이루어 극적 분위기 창출의 원동력이 된다. 이인철의 이승만 역, 권병길과 정상철, 김종구와 문경민의 성격창출에 따른 연기력, 이승훈과 노석채의 훤칠하고 단아한 모습에 따르는 성격설정과 호연, 장연익과 장지수의 독특한 성격설정과 연기력은 기억에 남는다.

무대감독 송훈상, 조연출 김성은, 기획 임솔지, 무대 김인준, 조명 김재억, 음악 서상완, 의상 김정향, 분장 박팔영, 영상 황정남, 소품 조운빈, 진행 정창훈 등 스텝진의 열정과 기량이 어우러져, 늘푸른연극제(위원장 정대경) 극단 동양레퍼토리의 노경식 작, 김성노 연출, 이우천 협력연출의 <반민특위(反民特委)>를 연출가와 연기자의 기량이 조화를 이루어, 향후 5대 광역도시에서의 공연을 권장할만한 걸작 서사극으로 창출시켰다./박정기 공연문화칼럼니스트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할용해주세요.

http://www.hangg.co.kr/news/view.php?idx=31286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리스트페이지_R001
최신뉴스더보기
리스트페이지_R002
리스트페이지_R003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