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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2-24 20:4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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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신여성 도착하다’전 전경

[오재곤 기자]국립현대미술관(관장 바르토메우 마리)은 ‘신여성 도착하다’전을 오는 2018년 4월 1일까지 덕수궁관 전관에서 개최한다.

‘신여성 도착하다’는 개화기에서 일제강점기까지 근대 시각문화에 등장하는 ‘신여성’의 이미지를 통해 이제까지 남성 중심적 서사로 다뤘던 우리나라 역사, 문화, 미술의 근대성을 여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전시이다. 이를 위해 회화, 조각, 자수, 사진, 인쇄 미술(표지화, 삽화, 포스터), 영화, 대중가요, 서적, 잡지, 딱지본 등 500여 점의 다양한 시청각 매체들이 입체적으로 소개된다. 특히 근대성의 가치를 실천하고자 한 새로운 주체 혹은 현상으로서의 신여성에 대한 다각적인 접근과 해석, 통시대적인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 현대 작가들이 신여성을 재해석한 신작들도 소개된다.

‘신여성’이라는 용어는 19세기 말 유럽과 미국에서 시작해 20세기 초 일본 및 기타 아시아 국가에서 사용됐다. 국가마다 개념의 정의에 차이가 있지만 여성에게 한정됐던 사회 정치적, 제도적 불평등에 문제를 제기하고 자유와 해방을 추구한 근대 시기에 새롭게 변화한 여성상이라 할 수 있다.

사진설명-‘대한독립여자선언서’, 1919, 50x31.5cm, 독립기념관 소장, 1919년 2월 간도에 있는 애국부인회가 조선 독립을 선언한 대한독립여자선언이다. 민족지도자 33인이 3.1.독립선언서를 발표하기 전, 여성들이 제국주의에 항거한 역사적 사건이란 점에서 의의가 있다.

조선의 경우, 근대 교육을 받고 교양을 쌓은 여성이 1890년대 이후 출현했다. 이 용어는 주요 언론 매체, 잡지 등에서 1910년대부터 쓰이기 시작해 1920년대 중반 이후 1930년대 말까지 빈번하게 사용됐다.

당시 조선의 여성들은 제국주의, 식민주의, 가부장제 그리고 동서양 문화의 충돌이라는 억압과 모순의 상황을 경험했다. 피식민인이자 여성으로서 조선의 ‘신여성’은 근대화의 주된 동력으로 작동할 수 없는 이중적 타자로 위치했고 ‘근대성’의 분열적인 함의를 드러내는 대표적인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

전시는 총 3부로 구성됐다. 1부 ‘신여성 언파레-드’, 2부 ‘내가 그림이요 그림이 내가 되어: 근대의 여성 미술가들’, 그리고 3부 ‘그녀가 그들의 운명이다 : 5인의 신여성’으로 진행된다.

1부는 주로 남성 예술가들이나 대중 매체, 대중가요, 영화 등이 재현한 ‘신여성’ 이미지를 통해 신여성에 대한 개념을 고찰한다. 교육과 계몽, 현모양처와 기생, 연애와 결혼, 성과 사랑, 도시화와 서구화, 소비문화와 대중문화 등의 키워드로 점철된 신여성 이미지들은 식민 체제하 근대성과 전근대성이 이념적, 도덕적, 사회적, 정치적 각축을 벌이는 틈새에서 당시 신여성을 향한 긴장과 갈등 양상이 어떠했는지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사진설명-김주경,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 1929, 캔버스에 유채, 97.5х130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김주경(金周經, 1902-1981)의 ‘북악산을 배경으로 한 풍경’은 1929년 제8회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작가가 세 번째로 특선을 받은 작품으로, 일본 유학시절의 작품경향을 보여준다. 원경에 펼쳐진 북악산의 풍광을 바탕으로 서구식 건축물이 늘어선 도시풍경을 그리고 있는 이 작품에는 빛, 그리고 볼륨감과 원근감의 표현에 대한 작가의 관심이 드러난다. 건물 사이로 난 길은 화면 안쪽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빨간 양산을 들고 그 길을 걷고 있는 여인의 모습이 관람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비록 뒷모습만 묘사됐지만, 흰 원피스를 입고 홀로 경성 거리를 걷고 있는 여인의 모습은 주변의 근대적 도시풍경과 자연스럽게 어우러진다.

근대기는 미술뿐 아니라 영화, 광고, 잡지 등의 매체를 통해 여성의 신체가 이미지로 소비된 시대라 할 수 있다. 조선시대까지는 열녀전이나 풍속화, 미인도 같은 경우를 제외하면 여성 재현 전통이 부재했다. 여성이미지가 공적인 영역에서 시각적 볼거리로 재현되기 시작한 것은 개화기 딱지본 소설의 표지화나 ‘대한매일신보’나 ‘매일신보’의 상품 광고 등에서부터 시작됐다. 1920-30년대는 신문과 잡지의 출판이 활발해지고 영화 공연과 박람회 등 시각적 대중문화가 형성되면서 여성이미지는 매혹의 서구 문물과 상품, 소비의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기호로서의 역할을 했다.

다른 한편 조선미술전람회나 각종 사진공모전 등을 통해 여성은 이상적 ‘미인’ ‘향토적 정서’ ‘조선 전통’ ‘근대적 취미’ ‘현모양처’ 등을 표상하는 이미지로 수없이 만들어졌다. 특히 ‘신여성’ ‘별건곤’ 같은 대중잡지들의 표지화, 만화, 컷 등을 통해 재현된 여성이미지들은 실제로서의 여성이기보다는 굴절된 식민공간 속에서 따라가야 할 서구문명에 대한 선망과 좌절, 욕망을 투영하는 담론의 장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2부는 창조적 주체로서의 여성의 능력과 잠재력을 보여주는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으로 구성됐다. 이 시기 여성 미술가들의 작품은 상당히 희귀하다.

근대기 여성교육은 부덕을 기르고 국민으로서의 역할을 강조하는 현모양처 교육이었다. 소학교에서 여자미술학교에 이르기까지 정절과 순종, 근면, 성실 등의 규범을 양처의 역할로 가르쳤던 상황에서 여성이 미술가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근대기 여성들에게 화가가 된다거나 도화교사가 되는 것은 잊혀졌던 자기를 찾는 행위이자, 자기의 능력을 자각하는 행위이다. 또 여성에게 허용 가능한 사회적 활동이었다. 1910년대를 전후로 미술계에서 활동한 첫 여성은 기생 출신의 서화가들로, 이들은 사군자나 서예에 특기를 보였다. 서예와 사군자부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제외되면서 점차 미술의 범주에서 배제되면서 기생 서화가들은 그들의 특수한 신분과 맞물려 근대적 의미로서의 화가로 인정받지 못했다.

사진설명/여성잡지섹션

1920년대부터 기생 서화가들 대신 고급미술의 영역에 자리 잡은 것은 여학교나 미술학교 출신의 신여성 집단들이다. 동양화가로는 정찬영, 정용희, 이옥순, 이현옥, 배정례 등이 조선미술전람회를 통해 활동했고, 1940년대 박래현, 천경자가 동경의 여자미술학교(당시 여자미술전문학교, 현 女子美術大學, 이하 여자미술학교)를 졸업하고 들어와 신세대 동양화가로 주목받았다.

서양화가로는 나혜석, 이갑경, 나상윤, 정온녀 주로 동경의 여자미술학교 출신들이 활동을 했으나, 여성의 경우 화가는 극소수에 불과했고, 대부분은 공예, 특히 자수 전공자가 많았다. 해방 이후 자수가 미술의 영역에서 배제됨에 따라 수많은 여자미술학교 출신들의 자수 관련 활동이 근대미술의 역사 속에서 누락됐다는 것은 근대기 한국미술의 또 다른 이면이다.

이를 통해 근대기 여성 미술교육과 직업의 영역에서 ‘창작자’로서의 자각과 정체성을 추구한 초창기 여성 작가들의 활동을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3부는 남성 중심의 미술, 문학, 사회주의 운동, 대중문화 등 분야에서 선각자 역할을 한 다섯 명의 신여성 나혜석(1896-1948, 미술), 김명순(1896-1951, 문학), 주세죽(1901-1953, 여성운동가), 최승희(1911-1969, 무용), 이난영(1916-1965, 대중음악)을 조명한다.

20세기 이전의 여성은 남성의 안사람이자 자식들의 어머니로서 현모양처라는 이상적인 모델을 따르는 삶을 살았으나, 근대가 되면서 조금씩 여성의 활동반경이 넓어졌다. 남성이나 가족의 부차적 존재로서가 아닌 자신의 능력과 개성을 통해 스스로의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몇몇 여성들은 여전히 남성 중심적인 사회적 조건과 분위기 속에서도 두각을 나타냈다.

사진설명/정찬영, ‘공작’, 1937, 비단에 채색(4폭 병풍), 173.3x250cm, 유족 소장/정찬영(鄭燦英, 1906-1988)은 1906년 평양 태생으로 1925년 경성미술전문학교에 입학하게 되면서 그림에 입문했다. 1926년 당시 채색화가로 저명했던 이영일로부터 그림을 배우게 되면서 이후 작품세계의 가닥을 분명히 할 수 있었다. 그녀는 스승의 화풍을 기반으로 한 세밀한 채색화조화를 통해 제8회(1929), 제9회(1930) 조선미전에 입선하면서 두각을 나타냈다. “두 딸을 낳고 나서 얻게 된 외아들의 돌잔치를 하고 난 후 기쁜 마음을 화사하게 깃을 편 공작으로 표현한 작품”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제16회 조선미전의 입선작이다.

화가 나혜석, 무용가 최승희, 음악가 이난영, 문학가 김명순, 여성운동가 주세죽은 바로 각자의 분야에서 시대적 한계와 어려움을 극복했던 대표적인 인물들이다. 나혜석은 여성 최초로 개인전을 연 화가이자 가부장제를 부정하고 금기를 깨뜨리는 글쓰기로 주목받은 여성해방론자요, 소설가였다.

1세대 여성문학가로 활발하게 활동했던 김명순은 여성이 남성뿐만 아니라 제국주의, 자본주의에 의해 타자화되는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했고, 주세죽은 조선 여성이 겪어야만 했던 겹겹의 고통을 극복하려했던 사회주의 운동가, 독립운동가였다. 또 최승희는 여성 최초로 창작현대무용을 발표했고, 이난영은 가수로서 조선 민중의 심금을 울린 ‘목포의 눈물’로 주목받았다.

20세기 이전의 전통적 사고가 아직 강했던 근대에 이들의 행로는 순탄할 수 없었고, 당대에는 객관적 평가도 받지 못했다. 이들의 행보, 또 부딪혔던 어려움은 근대라는 시대 속 여성의 모습을 반추케 하는 거울에 다름 아닌 것이다.

사진설명/천경자, ‘조부(祖父)’, 1943, 종이에 채색, 153×127.5cm,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천경자(千鏡子, 1924-2015)는 근현대기를 대표하는 여성 화가이다. 1944년 동경의 여자미술학교(당시 여자미술전문학교) 일본화부를 졸업한 후 일본화에 근간한 채색인물화를 그리며 작가로 성장했다. 그녀의 예술적 성공 이면에는 20대의 이른 나이에 결혼과 이혼을 모두 경험했던 쓰라린 아픔도 있었고, 이는 이후 작품세계의 기저에 깔린 정서로 작용하기도 했다.

이에 3부에서는 이들 5인의 신여성을 오마주하여 새로운 해석을 시도해 당시 신여성들이 추구했던 이념과 실천의 의미를 현재의 관점에서 뒤돌아본다.

당시 찬사보다는 지탄의 대상이었던 이들 신여성들은 사회 통념을 전복하는 파격과 도전으로 근대성을 젠더의 관점에서 다시 고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이에 더해 현대 여성 작가(김소영, 김세진, 권혜원, 김도희/조영주)들은 5인의 신여성을 오마주한 신작을 통해 당시 신여성들이 추구했던 이념과 실천의 의미를 현재의 관점에서 뒤돌아본다.

바르토메우 마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이번 전시가 한국 근현대 사회에서 가장 큰 도전과 논쟁의 대상이었던 근대 식민기의 신여성을 통해 기존의 모더니즘 이해에 의문을 제기하고 한국의 근대성을 온전하게 복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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