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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9-24 19:5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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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은 세종대왕(재위 1418-1450) 즉위 600주년(즉위일 음력 1418. 8. 11.)을 맞아 세종시대 문화유산의 정수를 보여주는 국가지정문화재 4건을 상설전시실 1층 중.근세관 조선실에서 특별 공개한다.

▲ 예겸의 시에 대한 성삼문의 답시, 《봉사조선창화시권》, 조선 1450년, 종이에 먹, 33.2x1600.0cm, 보물 제1404호(국보 승격 예정)


[강병준 기자]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은 세종대왕(재위 1418-1450) 즉위 600주년(즉위일 음력 1418. 8. 11.)을 맞아 세종시대 문화유산의 정수를 보여주는 국가지정문화재 4건을 상설전시실 1층 중.근세관 조선실에서 특별 공개한다.


이번 공개 대상은 지난달 국보 승격이 예고된 ‘봉사조선창화시권奉使朝鮮倡和詩卷’(보물 제1404호), ‘비해당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보물 제1405호)을 비롯해, 최근 구입한 ‘월인석보月印釋譜’권20(보물 제745-11호), ‘목우자수심결언해牧牛子修心訣諺解’(보물 제1848호)로 한 곳에서 만나기 어려운 귀중한 문화재들이다.


국보 승격 예정인 ‘봉사조선창화시권’(1450년, 세종 32)과 ‘비해당소상팔경시첩’(1442년, 세종 24)은 세종시대 문예부흥을 이끌었던 정인지鄭麟趾(1396-1478), 신숙주申叔舟(1417-1475), 성삼문成三問(1418-1456), 김종서金宗瑞(1383-1453) 등의 친필親筆을 볼 수 있는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 김종서, <오언고시五言古詩>, 《비해당소상팔경시첩》, 조선 1442년, 종이에 먹, 제1면 31.4×17.6 cm, 제2면 32.6×20.4 cm, 보물 제1405호(국보 승격 예정)



‘봉사조선창화시권’은 명나라 황제 경제景帝(재위 1449-1457)의 즉위를 알리러 온 명나라 사신 예겸倪謙(1415-1479)과 그를 맞은 집현전 학사 정인지, 성삼문, 신숙주가 주고받은 시들을 모은 것으로, 조선의 문인과 명나라 사신이 문학으로 교유交遊하며 외교를 수행한 모습이 담겨 있는 이 시문들은 한중 문학사와 외교사에 있어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비해당소상팔경시첩’은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1418-1453, 호 비해당)이 남송南宋 영종寧宗(재위 1194-1224)의 친필인 소상팔경시瀟湘八景詩를 보고 이를 주제로 집현전 학사를 중심으로 한 문인 21명(고려시대의 문인 이인로李仁老, 진화陳澕 포함)의 시문을 엮은 것이다.


소상팔경은 중국 호남성湖南省 동정호洞庭湖 부근 여덟 곳의 아름다운 경관으로, 현실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상경理想景으로 여겨 시문이나 그림으로 많이 나타냈다. 안평대군이 이 시문과 함께 그리게 했던 그림 ‘소상팔경도’는 안견安堅(15세기 활동)이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아쉽게도 전하지 않는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7월 구입한 ‘월인석보’권20(1459년, 세조 5)과 ‘목우자수심결언해’(1467년, 세조 13)는 세종대왕이 백성을 위해 창제한 훈민정음의 초기 모습과 사용 양상을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재이다.


‘월인석보’는 최초의 불경 언해서로, 세조世祖(재위 1455-1468)가 수양대군首陽大君 시절 어머니 소헌왕후昭憲王后(1395-1446)의 명복冥福을 빌면서 지은 석가釋迦의 일대기인 ‘석보상절釋譜詳節’(1447년)과 세종이 ‘석보상절’을 읽고 감탄하며 석가의 공덕을 찬송하면서 지은 ‘월인천강지곡月印千江之曲’(1449년)을 함께 편집해 간행한 책이다. ‘월인석보’의 글씨체는 ‘훈민정음’보다 실용적인 형태로 바뀌었다. 이는 문자로서 훈민정음이 생명력을 얻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목우자수심결언해’는 고려시대 승려 보조국사 지눌普照國師 知訥(1158-1210)이 쓴 ‘목우자수심결’을 세조世祖(재위 1455-1468)가 직접 구결口訣하고, 신미信眉(1403-1480)가 훈민정음으로 번역한 책이다. 마음을 닦는[修心] 문제를 간단명료하게 서술한 이 책은 선禪을 배우려는 사람들의 기본 필독서였다.


이와 함께 2016년 구입해 처음 선보이는 ‘혼천의’(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99호)도 만날 수 있다.


천체의 움직임을 관측하는 혼천의는 동아시아에서 왕도정치王道政治 이념을 구현하는 상징적인 도구였다. 조선시대 혼천의는 세종대에 처음 제작된 이후 그 제도가 조선 후기까지 이어졌다. 이번에 출품하는 ‘혼천의’는 1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현재도 구동이 가능할 만큼 보존 상태가 양호하고 조형적으로도 매우 뛰어나 가치가 더욱 높다.


▲ 혼천의, 조선 19세기, 나무, 36.5×35.0㎝,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9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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