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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10-28 19:35:12
  • 수정 2018-10-28 19:3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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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희동 황창배미술관에서 이재온 황창배미술관장 기획 황창배 북한 기행전을 관람했다.



연희동 황창배미술관에서 이재온 황창배미술관장 기획 황창배 북한 기행전을 관람했다.


황창배(1947~2001) 화백은 지난 1998년 금강산 관광이 성립되기 한해 전인 1997년 중앙일보사 통일문화연구소가 기획한 ‘북한문화유산조사단’의 일원으로 선정되어 국내 화가 최초로 북한을 방문했다. 그가 15일 동안 평양의 을밀대와 대동문을 비롯해 구월산, 정방산, 박연폭포, 선죽교, 성불사, 등 황해도와 평안도 지역을 둘러보며 그린 그림 이번 황창배 화백 북한 기행전에 40여점이 전시되었다. 작은 크기의 그림들은 현장에서 그렸고, 대형화폭의 그림들은 돌아온 뒤 커다란 화폭에 옮겨 그렸다. 수묵화, 수채 화, 아크릴 화 등 다양한 기법이 동원됐고, 비구상이나 추상적 화풍이 아닌 사실주의의 가까운 구상화다.


1998년 인사동 선화랑에서 북한기행전을 열었을 때 황창배 화백은 “아직도 북한 땅을 밟았을 때의 감동이 생생합니다. 화가로서나 자연인으로서 벅찬 행운이었죠. 그림에서는 이념을 떠나 담담하게 대상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처음엔 북한에서 받은 이미지를 추상적 현대미술로 표현할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나 작업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구상 쪽으로 가게 되더군요. 추상이든 구상이든 결국은 똑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라고 말했다.




방북 당시 강한 인상을 받은 명소를 한데 모은 '북한 환타지아', 북한 동포 30명을 그린 '북한 답사 중 기억에 남았던 사람들' 등 현장 스케치 30여점과 대형화폭으로 옮긴 200호 대작 10점이 전시되었다.


황창배 화백은 서울미대를 다닐 당시 연극반 반장이었다. 필자가 연출한 <혈거부족> <악령> <안네프랑크의 일기> <악마의 제자> <인형의 집> <안티고네>에서 주인공을 맡아 열연했다. 최근 판문점에서 남북정상이 만나는 장소에 걸린 그림이나, 청와대에 걸린 화제가 된 그림들도 서울미대 연극반 출신인 민정기 화백과 임옥상 화백의 그림이다. 둘 다 황창배 화백의 후배다. 대학에서 연극을 한 것이 탁월한 표현력의 기초가 된 듯싶다.


1947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회화과 및 동대학원을 나온 황 화백은 월전 장우성 화백에게 동양화를, 철농 이기우 선생에게 글씨를 각각 배우며 기초를 닦은 뒤 80년대 초부터 본격적인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먹과 아크릴, 화선지와 캔버스 등 동서양의 재료를 혼합해 기존 한국화의 틀을 깨는 파격과 변화를 추구하는 등 역동적이면서도 자유분방한 그림세계로 독자적인 추상적 한국화 세계를 구축해왔다.

77년 국전 문공부장관상, 78년 국전 대통령상, 87년 선미술상 등을 수상했으며 90년에는 도쿄아트엑스포에 참가하기도 했다. 황 화백이 약관 31세의 나이로 동양화에서의 대통령상 수상은 대단한 화재가 되었다. 그 당시 그는 명지전문학교에 재직 중이었는데 대통령상 수상으로 유럽미술관 순방이라는 혜택을 받게 되어 일찍이 서양의 현대미술을 접할 수 있게 된다.


그 후 그는 동덕여대 교수로, 경희대학교 미술교육과 교수로, 이화여대 미대 교수로 몇 차례 대학을 옮기더니 이화여대 교수라는 영광의 자리마저 불과 5년 만에 그만두고 전업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그리고 충북 증평 산골짜기에 작업실을 마련했다.


황창배 화백이 불과 54의 나이로 운명하기 전까지 그의 인생에 가장 많은 걸작을 남긴 곳이 바로 증평 화실이다. 그리고 청주대학교 대학원에서 잠시 강의를 하게 되면서 청주와의 인연도 갖게 되었다.



방북 1호 작가인 황창배 화백은, 중앙일보사의 통일문화연구소가 남북문화교류 사업으로 추진한 ‘북한문화유산조사단’의 일원으로 1997년 12월 16일부터 12일간 방북했다. 당시 언론인 권영빈 단장과 최창조 서울대 지리학과 교수, 통일문화연구소 유영구 연구팀장과 김형수 차장으로 구성된 조사단이 함께 했다.


2017년 김달진 미술자료 박물관이 미술사가와 평론가 등 24인의 미술전문가에게 조사한 결과 ‘재평가되어야 할 한국화가 1위’ 작가로 또 ‘한국적 신 표현주의를 모색한 작가’로 황창배 화백이 꼽혔다. 세계3대 미술잡지인 프랑스의 월간지 '보자르'는 1997년 그의 작품세계에 대해 '자유에의 길'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황창배 화백의 북한기행전을 관람하며, 금번 남북화해의 정치적 현황이 발전적으로 방향으로 이루어져, 남과 북의 많은 화백이 그동안 답사하지 못했던 남과 북을 방문해 역사적 명화를 그릴 기회가 오기를 기대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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