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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11-14 20:4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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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왕 암살을 계획했던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가 오는 17일 92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서훈(敍勳)된다.



[김경석 기자]일왕 암살을 계획했던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가 오는 17일 92년 만에 독립유공자로 서훈(敍勳)된다.


박열의사기념관은 지난해 영화 ‘박열’개봉에 따른 국민들의 지지와 새로 축적된 연구 성과들을 바탕으로 지난 4월 가네코 후미코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상신청서를 제출했다.


이에 국가보훈처는 그녀를 독립유공자로 선정해 ‘순국선열의 날(11월 17일)’에 발표를 할 예정이다. 이로써 그 동안 박열(朴烈)의 지원자로서만 그 역할이 알려졌던 가네코 후미코는 당당히 대한민국의 독립유공자로서 이름을 드러내게 됐다.

 


가네코 후미코는 1903년 일본의 가나가와(神奈川県)현 요코하마(橫浜)에서 출생했다. 당시 아버지가 그녀를 입적시키지 않아 무적자(無籍者)로 친척집을 전전하면서 힘든 시기를 보내야했다.


이후 고모의 양녀로 들어가 충북 청원군 부용면(현재 세종시 부강면)에서 약 7년 동안 모진 학대를 당했다. 1919년 3.1 운동 당시 조선인들의 독립의지에 크게 감명을 받았고, 그 해 일본으로 돌아와 여러 사상가들과 교우하여 아나키스트가 됐다. 


그녀는 1922년 3월 도쿄에서 박열을 만난 뒤 재일조선인 아나키즘 항일 운동에 투신, 필명 박문자(朴文子)로 활동하면서 독립운동을 옹호하고 일제의 탄압 정책을 비판했다. 이면으로는 일왕 부자를 폭살키 위해 박열을 도와 의열단(義烈團)과 연계한 폭탄 반입을 추진했다. 이후 체포돼 대역죄(大逆罪)로 사형 판결을 받았고, 무기징역으로 감형되자 1926년 7월 23일 생을 마감했다.



당초 그녀의 묘는 문경읍 팔영리(現 산 58-1번지)에 조성됐으나, 일제의 철저한 감시 속에 방치된 채 잊혀졌다. 이에 1973년 아나키즘 독립지사들이 뜻을 모아 묘역을 정비하고 기념비를 세웠고, 지난 2003년 박열의사기념공원 조성과 함께 현 위치로 이장했다.


한편 기념관에서는 지난 2003년부터 일본의 가네코 후미코 연구회와 교류하여 매 홀수 년 7월 23일 가네코 추도식을 열고 있다. 짝수 년에는 일본의 야마나시에서 열린다.


관계자는 “이번 포상으로 박열의사기념관은 부부 독립 운동가를 모시는 현충시설이 된 것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앞으로 기념관 리뉴얼, 자료수집과 공개 강연회, 학술세미나 등을 개최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할 것이고 기념관으로서의 가치와 의미 창출에 정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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