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9-01-23 21:21:12
  • 수정 2019-01-23 21:27:55
기사수정
지난 10일 오후 4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전막 시연 간담회에는 강신일, 정보석, 박정복, 김도빈 네 명의 배우가 자리했다.

▲ 사진/권애진 기자


[이주미 기자] 지난 10일 오후 4시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에서 열린 전막 시연 간담회에는 강신일, 정보석, 박정복, 김도빈 네 명의 배우가 자리했다.


연극 ‘레드’는 미국 추상 표현주의의 대표 화가 마크 로스코의 이야기로, 작가 존 로건은 어느 작품들처럼 화가 로스코의 생애를 훑기보다는 그의 중년 시절에 있었던 한 사건에 모티브를 두고 있다.


1958년 뉴욕 시그램 빌딩에 자리한 ‘포시즌즈 레스토랑’에 걸릴 벽화를 의뢰받은 마크 로스코가 40여 점의 연작을 완성했다가 계약을 파기한 사건에서 “그는 도대체 왜 그랬을까?”라는 질문에 집중하고 있다. 작가는 더 나아가 가상의 인물인 조수 ‘켄’을 등장시키고, 처음부터 끝까지 로스코와 켄, 단 두 사람의 대화로 극이 진행된다.


▲ 사진/권애진 기자


올해로 다섯 번 째 시즌을 함께 맞이한 강신일은 “8년 전에 처음 작품에 제안 받아영광스럽고 기뻤다”면서, “초연 때는 인물의 깊이에 대한 이해에 노력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마크 로스코라는 인물을 친숙하게 표현하기 위해 테이블 작업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사실 이번 시즌은 절대 안 하겠다고 굳게 맹세를 했다”면서, “아직도 이해할 부분이 많고 나도 어쩔 수 없이 소멸해가는 세대에 속하는데 이번 시즌은 그러한 연민이 깊다는 생각이 있다. 매 시즌마다 다른 감정이 들고 새롭다”라고 말했다.


이 공연의 무대는 로스코의 작업실로, 무대 위에는 각종 붉은색 물감, 물감이 든 양동이, 부러쉬 등으로 가득하다. 축음기에서는 로스코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공간을 압도하는 사이즈의 미술작품들은 조명에 따라 각기 다른 느낌의 강렬한 색감을 풍겨낸다. 배우들은 작품에 대해 연구하고, 캔버스를 짜고, 물감을 섞고, 거대한 캔버스에 땀을 흘리며 직접 밑 칠을 한다. 그러면서도 짬짬이 밥을 먹는다. 이것은 예술가의 삶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삶이기도 하다.


▲ 사진/권애진 기자


이 재현을 통해 관객들은 마치 한 예술가의 작업실에 함께 있는 듯한 흥미를 느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로스코와 켄이 쏟아내는 격렬한 대화 속에는 철학, 예술, 종교, 미술, 음악 등을 넘나드는 인문학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하다. 또 낯선 미술 사조와 니체, 피카소, 잭슨 폴락 등의 이름이 언급되면서 현란한 미학적 수사들이 동반되지만 이해할 수가 없다. 


이 작품은 실존 인물 로스코와 씨그램 사건의 원인과 결과를 담고 있지만, 이 공연에서 하고자 하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 이전 세대와 앞으로 올 세대의 충돌을 말하고 있다.


강신일이 표현하는 ‘레드’를 보고 빠지게 됐다는 정보석은 “관객으로는 즐거운 작품이지만 로스코라는 인물을 감당하기에 저는 작고 초라하고 힘들었다”면서, “이번에 다시 하겠다고 말하기 전까지 망설였던 만큼 어려운 인물로, 그때보다는 무엇을 고민했고 그림 속에 담아내고자 했는지 이제는 조금 알거 같다”면서도 여전히 어렵다고 말했다.


▲ 사진/권애진 기자


피카소의 ‘입체파’를 몰아낸 마크 로스코의 ‘추상표현주의’가 앤디 워홀의 ‘팝아트’에 의해 위기를 맞는 것처럼, 새로운 것이 이전의 것을 누르는 것은 정치, 문화, 사회, 경제, 종교 등 인류의 모든 분야에서 벌어져 온 현상처럼, 극 중에서 마크 로스코는 말한다.


“아들은 아버지를 몰아내야해. 존경하지만 살해하는 거야”라고. 그러한 의식을 통해서 인류는 생존해 왔다. 옛 것이 자리를 내어 줌으로써 새로운 것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도도한 자의식에 사로잡혀 견고한 성처럼 새로움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마크 로스코와 로스코의 편협하고 닫힌 사상을 당돌하게 지목하면서 변화를 종용하는 켄 . 구세대를 대표하는 마크 로스코와 신세대로 대표되는 켄의 서로 다른 가치관의 치열한 논쟁은 관객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제공하는 한편 ‘인간의 삶,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되면서 성찰의 시간을 제공해준다.


작품명 ‘레드’ 단어 그대로에 대한 생각에 대해 김도빈은 “이 작품을 하기 전에는 레드, 블랙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면서, “사실 레드하면 떠오르는 건 ‘열정’으로, 2002년 붉은악마가 생각난다”고 말했고, 박정복 역시 “열정”이라고 답했다.


▲ 사진/권애진 기자


정보석은 “창조, 성숙에 동반된 열정”이라고 말했고, 강신일은 “로스코가 레드에 집착하고 이미지를 창출하려는 모습이 연기를 통해 내 안에 감춰진 것들을 찾아가고 끄집어내는 면이 있다. 연기라고 말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 작품의 제목 ‘레드’는 ‘살아있음에 대한 열망이자 열정’이다. 로스코는 진실을 추구하고, 불멸을 꿈꾸는 인물로, 그는 끊임없는 삶의 불균형 속에서 ‘레드’라는 무기를 가지고 매순간 살아있기 위해 분투한다.


극 중 마지막 장면인 거대한 ‘레드’ 캔버스 앞에서 그림의 속삭임 속으로 빠져드는 로스코의 담담한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관객들 또한 잊혀 졌던 진지함과 열망을 품고 공연장을 나서게 된다.


▲ 사진/권애진 기자


끝으로 강신일은 “내용을 알지는 못하더라도 늙은 사람과 젊은 사람의 관계에만 보여준다면 다분히 신파적인 요소로, 그 생각에는 변화가 없다”면서, “‘레드’라는 연극이 하나의 음악 같았으면 좋겠다. 배우의 대사들이 하나의 합주 2중주처럼 배우의 동작 하나가 무용 같은 느낌으로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공연은 오는 2월 10일까지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강신일, 정보석, 김도빈, 박정복 출연.


▲ 사진/권애진 기자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할용해주세요.

http://www.hangg.co.kr/news/view.php?idx=52550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리스트페이지_R001
최신뉴스더보기
리스트페이지_R002
리스트페이지_R003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