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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3-12-12 15:5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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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봉화 만산고택’ 대문채

문화재청은 경상북도 봉화군 춘양면 의양리에 있는 ‘봉화 만산고택(奉化 晩山古宅)’을 국가지정문화재인 중요민속문화재 제279호로 지정했다.

‘봉화 만산고택’은 조선 말기 문신으로 통정대부(通政大夫)와 중추원 의관(中樞院 議官)을 지냈고, 만년에 도산서원장을 역임한 만산 강용(晩山 姜鎔, 1846~1934) 선생이 1878년 건립했다.

‘ㅁ’자형의 본채와 좌측에 서실, 우측에 별도의 담장을 두르고 별채를 배치하여 사대부 집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특히 안채로의 출입을 사랑채 우측 감실(龕室, 신주는 모셔 둔 방) 뒤로 난 중문으로 하게 한 측면출입형(側面出入形)은 19세기 봉화를 비롯한 경상북도 북동부 전통 반가(班家)에서 자주 나타나는 건축적 특징이다.

만산(晩山) 현판은 흥선대원군이 친필로 하사했고, 서실(書室) 처마 밑에 있는 한묵청연(翰墨淸緣, 글을 통한 좋은 인연) 편액은 영친왕이 8세 때 쓴 글로 왕실과의 밀접한 관계를 보여주고 있다. 별채 칠류헌(七柳軒)은 영친왕을 비롯한 조선 말기의 여러 문인들과 학문을 교류하던 장소로 활용됐다. 고택은 소장 전적류 3,500여 점과 함께 주거 민속 등 전통 주생활 문화가 잘 보전되고 있다.

한편, 문화재청은 경상북도 안동의 ‘안동 향산고택(安東 響山故宅)’과 충남 예산의 ‘예산 수당고택(禮山 修堂古宅)’을 국가지정문화재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 예고했다.

‘안동 향산고택’은 향산 이만도(響山 李晩燾, 1842~1910) 등 3대에 걸쳐 독립운동가를 배출한 ‘3대 독립운동 가문’의 고택으로 독립운동사의 지역적 상징성과 역사성을 간직하고 있다. 19세기 초중반에 지은 것으로 추정되는 안채와 사랑채가 튼口자형으로 구성돼 있고, 집안 내력과 독립운동에 관한 3,000여 점 이상의 전적류와 유품 등 유물도 잘 보전되고 있다. 현재 경상북도 민속문화재 제9호이다.

또 ‘예산 수당고택’은 아계 이산해(鵝溪 李山海, 1539~1609)의 손자 이구의 부인 전주이씨(1588~1668)가 1637년 창건했고, 1846년 중수(重修)를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 지세에 따라 높은 곳인 동쪽에 안채를, 서편에 사랑채를 병렬로 배치한 고택은 한말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수당 이남규(修堂 李南珪, 1855~1907) 등 4대 충절인물을 배출한 곳으로 건축적.역사적 가치가 크다. 17세기 이후 생성된 다량의 고문서와 집안 유물들은 수당가의 변화와 조선후기 사회경제 상황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인근 수당기념관에 전시하고 있다. 현재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68호이다.

한편, 문화재청은 이번에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된 ‘봉화 만산고택’이 체계적으로 보존되고 역사문화관광자원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해당 지방자치단체와 협력해 나갈 계획이다. 또 ‘안동 향산고택’과 ‘예산 수당고택’은 30일간의 지정 예고기간 중에 수렴된 의견을 검토하고 문화재위원회의 심의 절차를 거쳐, 중요민속문화재로 지정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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