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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2-03 11:3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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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랑시어터에서 극단 인어(人語)의 최원석 작, 고(故) 신호, 최원석 연출의 ‘변태(變態)’를 관람했다.

무대는 객석에서 내려다 볼 수 있는 조그만 도서대여점이다. 벽면이 없이 탁 트인 공간에 울타리처럼 선반이 연결이 되어 군데군데 책을 올려놓았다. 무대중앙바닥 여기저기에 낮은 책꽂이와 차곡차곡 꽂힌 서양화전집을 비롯해 문학전집과 시집, 그리고 여러 종류의 책이 보인다.

오른편 벽면과 내실로 들어가는 입구에도 책을 쌓아놓았고, 왼쪽 등퇴장 로로 들어오면 정면의 도서대여점의 입구가 있어, 바닥에 깔린 작은 보료를 밟고 안으로 들어오게 되어있다.

중앙에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고, 무대 왼쪽 객석 가까이에 작은 탁자와 의자가 있고, 기타가 한 개를 기대어 놓았다. 중앙의 낮은 책꽂이 위에는 한사람이 누울 정도의 공간에 컴퓨터가 놓여있고, 돌려놓았지만 아마 CD 꽂이인 듯싶다.

연극이 시작되면 도서대여점 주인인 시인에게 부근 정육점 주인이 자신의 시를 읊은 후 평과 함께 시 강의를 듣는다. 정육점주인은 아버지대로부터 육 곡간을 해, 소시 적부터 고기를 저미고 썰고 분리하는 일을 해왔으며, 50대가 되자, 자신의 작업을 글로 쓰면서 시작(詩作)을 하게 되고, 마침 한동네 거주하는 국문과 출신이자 등단시인인 도서대여점 주인에게 시작에 관한 지도를 받는다.

정육점 주인은 시집을 내기를 원하고, 도서대여점 주인도 동의를 한다. 도서대여점 주인은 기왕에 시집을 내려면 등단을 한 다음 시집을 내도록 하자며, 권위 있는 시 전문출판사와 평론가 몇 사람을 소개해 주기로 약속한다. 정육점 주인은 감사의 표시로 금일봉을 카페 주인에게 쥐어준다. 그 때 학교선생노릇을 하는 시인의 부인이 등장한다. 정육점 주인의 시집발간과 등단 계획을 들은 부인은, 그럴 필요가 없다며, 등단을 아니 해도 시집을 낸 사람이 얼마든지 있다며, 와인이나 마시자고 한다. 세 사람은 와인을 마시며, 기타반주에 맞춰 노래도 부른다.

그러면서 문인들의 삶이 경제적으로 궁핍하다는 현실적인 이야기, 도서대여점을 하면서 월세 돈도 제 때에 내지 못하는 남편이 시인의 길을 가기보다는 차라리 소 도살장 같은 곳에 취직을 하는 편이 생활에 훨씬 도움이 되리라는 부인의 넋두리가 계속된다.

장면이 바뀌면 도서대여점에서 홀로 있는 부인이 전화를 받는다. 정육점 주인의 시가 등단이 되었고, 권위 있는 출판사에서 시집 출판을 하겠다는 전화다. 그 때 도살장에서 지친 몸을 이끌고, 닷새 만에 일자리를 포기한 도서대여점주인이 들어온다. 부인은 정육점 주인의 시인등단과 시집출판소식을 남편에게 전한다. 남편은 놀라며 폭소를 터뜨린다. 사실 정육점주인의 시는 시인들의 시어(詩語)라든가 문장과 표현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과는 달리, 고기를 썰며, 살점이 흩어지고, 피가 튕기고 하는 작업을 직설적으로 묘사한 것뿐이기에 등단시인으로서는 어이없어 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시적언어나 현학적 표현보다 직설적이고 평 이한 표현을 대중이 받아들이고 선호함을 어쩌랴?

부인은 남편에게 포르노 사이트 좀 그만보고 시집을 내라며 닦달을 한다. 남편은 부인의 소리에 화를 버럭 내며 밖으로 나간다.그 때 정육점 주인이 원고를 들고 도서대여점으로 들어온다. 부인은 정육점주인에게 시집을 내지 말고 육필원고를 자신에게 맡기면 직접 시집을 내주겠다며 그의 원고를 맡아둔다. 그리고 기타를 배우라고 권한다. 정육점 주인은 고기를 썰던 손으로 기타가 웬 말이냐고 펄쩍 뛰지만, 고기를 다루는 재주 있는 손이니 기타도 금세 배울 것이니, 염려 말라고 부추긴다.

부인은 무능한 시인인 남편과 경제적인 능력이 확실한 정육점 주인을 비교하게 되고, 자신도 모르게 몸과 마음을 정육점 주인에게 기울인다.

장면이 바뀌면 정육점주인의 시집이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라, TV방송국에서 정육점 주인인 새로 등단한 시인과 인터뷰를 한다는 내용이다.

남편이 들어와 부인에게 그 소식을 듣고, 다시 한 번 폭소를 터뜨리지만, 한편으로는 순수문예가 퇴조하고 대중문학이 밀리언셀러로 부상하는 현실에 마음이 오그라들 뿐이다.

부인은 남편에게 시집을 내라며 닦달을 하고 종당에는 집에서 나가살라며 소리를 지른다. 남편도 버럭 화를 내며 밖으로 뛰어나간다. 이 때 등단시인이 된 정육점 주인이 부인을 찾아와 도서대여점을 자신의 문학 동호회 모임장소인 북 카페로 사용을 하겠다며 일체의 비용을 지불할 것을 약속하고, 부인이 문학 동호회 회장을 맡아달라는 부탁까지 한다. 기왕에 몸과 마음을 정육점 주인에게 기울인 부인이 그 청을 거절할 리가 없다.

장면이 바뀌면 북 카페 부부는 결국 법정에서 합의이혼을 하기에 이른다.

대단원은 북 카페로 바뀐 도서대여점자리에서, 기타를 배운 정육점 주인의 자작시 낭송과 연주가 시작되고, 성황을 이룬 회원들의 갈채 속에서 문학 동호회를 성공적으로 마친 정육점 주인이, 문학회회장인 부인을 연회장으로 정중히 초대하면서 먼저 퇴장을 하면, 북 카페에 홀로 남은 부인이 온몸을 뒤흔들며 추는 춤의 율동이 한동안 계속되면서 연극은 마무리가 된다.

이유정이 도서대여점의 부인으로 출연해 열연과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장용철이 도서대여점을 하는 시인으로 출연해, 현재 대중소설가나 대중가요가수, 그리고 대중연예인들의 풍족한 삶에 비해, 순수 문인을 비롯, 순수 예술인들이 경제적으로 고난한 삶을 영위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연기해 관객과의 공감대를 형성시킨다. 김귀선이 정육점주인이자 시작(詩作)을 하는 인물로 등장해 호연으로 갈채를 받는다. 전여빈이 이혼법정 판사로 출연해 선을 보인다.

무대 한규남, 그래픽디자인 김세인, 조연출 조혜진, 등 모두의 노력과 열정이 드러나, 극단 인어(人語)의 최원석 작, 고(故) 신호, 최원석 연출의 <변태(變態)>를 한편의 문제작이자 걸작연극으로 창출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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