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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2-23 19: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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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크로이드 살인사건’의 성공으로 유명 인기작가가 된 아가사 크리스티. 그녀는 1926년 12월 느닷없이 실종됐다가 11일 후, 교외의 한 호텔에서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로 발견된다. 평생 동안 이 사건에 대해서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아가사 크리스티.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인가?

어린 시절, 아가사의 팬으로 같은 동네에 살던 꼬마 탐정 레이몬드는 소설가로 성장한다. 표절비에 걸려 재기불능이 된 그는 희미한 기억의 실마리를 쫓아 아가사에게 편지를 띄운다. 들추고 싶지 않았던 아가사와 끝내 알아내려는 레이몬드.

극 속에서 ‘미궁 속의 티타임’이라는 가상의 작품과 테세우스의 신화를 교차시키면서 신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아가사의 실종 사건을 소재로 인간의 내면을 ‘라비린토스(미궁)’에 비유해서. 겉으로 볼 때는 화려하게 성공한 여류 추리 소설가였지만 실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나약한 인간일 뿐이라는 것. 또한 순식간에 빠져들 수 있는 어두운 감정의 소용돌이는 괴물 미노타우르스가 지키고 있는 미궁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미스터리 추리물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아니 좋아하지 않았더라도 한 두 권쯤은 읽었을 법한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은 여류작가 특유의 섬세함, 독특함, 장르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로맨틱함마저 갖고 있다.

그녀의 걸작들을 읽다 보면 살인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살인이란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살인이란 어리석은 자들의 실패한 선택이라는 것으로, 그래서 살인하는 장면은 한 번도 쓰지 않았다는 아가사의 신념은 자신에게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나자 급격히 흔들리기 시작한다. 단단히 내린 뿌리가 통째로 흔들리는 것이다.

주인공답게 아가사(배해선, 양소민)가 거의 모든 장면에 등장하면서 아가사 주위의 인물들도 흥미롭게 설정 됐다. 남편인 아치볼드 대령(황성현), 오랫동안 곁을 지켜온 하녀 베스(추정화, 한세라), 다음 소설뿐 아니라 사생활까지 파고드는 집요한 기자 폴(홍우진, 오의식), 소년탐정답게 여기저기 휘젓고 다니지만 인지하지 못한 채 사건의 중심에 서 있는 레이몬드(박한근, 김지휘, 윤나무), 그리고 실종 11일 동안 아가사를 보살펴준 매력적이고 신비로운 남자 로이(김수용, 진선규, 박인배).

모든 배우들이 호연을 하고 있지만 아가사 역의 배해선 배우는 발군의 실력을 입증하고 있다. 작품 전체에 흐르고 있는 분위기, 텐션감은 상당한데 그 중심을 제대로 잡고 있다. 젊은 시절에서 황혼까지, 사건을 이끌어가면서도 중립적으로 주변을 냉정하게 판단, 사건을 전달할 때도 흔들리지 않는다. 이 배우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아가사’를 볼 이유가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

한사람, 한사람이 입체적으로 살아 있어 흥미진진할 뿐 아니라 뮤지컬 넘버 역시 인물 관계를 중심으로 분위기를 달리했다. 특히 아가사와 로이의 탱고는 함축하고 있는 바가 많은데 작품을 볼 때 눈 여겨 보면 훨씬 더 즐겁게 볼 수 있다. 두 사람 사이의 텐션과 설명할 수 없는 동질감은 마지막에 가서야 느낄 수 있는 이 작품만의 매력이다.

추리소설가로서의 아가사, 사람으로서의 아가사를 일으켜준 건 분명 그녀의 작품을 기다리는 독자들이었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 옳은 선택을 할 수 있는 힘을 주는 것도 분명. 그래서 아가사는 테세우스가 됐다. 라비린토스. 피할 수 없다면 부딪혀야한다. 용기라는 검을 쥐고, 믿음이라는 빨간 실을 단단히 묶고서. 복잡하고 어려워도 출구가 분명 존재하니까.

뮤지컬 ‘아가사’는 실제 있었던 사건을 모티브로 새롭게 재구성하면서 매력적인 작품을 만들어 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유명작품이 아닌 작가에 초점을 맞춘 것이 신선했고 창작자들이 겪는 고뇌도 살짝 엿볼 수 있다. 한지안 극작, 허수현 작곡, 김태형 연출이 함께 했다.

캐스팅은 환상적인 캐스팅 그대로, DCF대명 문화 공장2관 라이프웨이 홀 개관작으로 오는 3월1일부터 4월 27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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