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4-02-23 20:38:39
기사수정

구한말, 우리 왕실 마지막 로얄 패밀리 고종과 순종, 명성황후를 만나고 왔다. 지난해 서울 예술단의 ‘잃어버린 얼굴1895’에서 얼마나 아프게 만났던가를 생각하면 정말 우스울 정도로 다른 느낌의 뮤지컬이었고 그래서 좋았다. 사극 팩션이라는 신선한 장르이다 보니 끊임없이 이 이야기는 믿거나 말거나 픽션 중의 픽션이라고 상기시켜준다. 그 또한 재미있게 느껴진다.

어쩌면 있었을 지도 모르는 책이라면서 궁궐 내시였던 자신의 증조부가 치매에 걸려서 쓴 책, 라스트 로얄 패밀리를 소개하는 해설자 역할은 극의 흐름을 잘 이끌어갔다. 단 6명뿐인 배우들은 해설자뿐만 아니라 대부분 여러 가지 역할을 감당하고 있고 작품 안에 잘 녹아들어 맛깔스럽다.

간단해 보이는 무대는 단아하고 깔끔했지만 예인대회를 열 때는 좀 더 다른 모습으로 변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격자무늬 뒤로 살짝 비치는 밴드의 모습, 현악기와 전자 악기가 적절히 조화돼 고급스럽고 편안한 음악도 좋았다. 하지만 악기소리에 비해 배우들의 소리가 너무 날카로워 가끔 고음에서는 불편했다. 밸런스는 나쁘지 않았지만 음향은 조금 조절해서 배우들이 더 자유롭게 자신의 소리를 객석에 전달할 수 있었으면 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겪고 있는 순종이 가출했다라는 소재로 시작된 이야기는 기발한 언어유희와 재치있는 애드립들로 풍성한 웃음을 준다. 앵 애수의 가가오독은 반짝 빛났고, 소개하는 방법이나 극중 반영되는 부분은 정말 작가가 공들인 부분인 것이 티가 난다.

마음을 나눌 벗 하나 없는 순종, 그런 순종에게 세상과의 유일한 통로였던 폴 내관, 마음이 약하고 우유부단해 보이는 아빠 고종과 극성스럽고 고집스런 기가 센 엄마 명성황후, 그리고 남사당패를 다시 일으키려는 꼭지 꼭두 남매의 대활약이 눈부시다.

결국 우리 역사의 가장 슬픈 로얄 패밀리였던 고종과 명성황후, 순종도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는 우리네와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을지도 모른다. 역사 비틀기에 지나지 않는 팩션이라고 해도, 지금의 우리 현실에서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는 그들의 이야기는 자연스레 마음에 파고드는 힘을 갖는다. 과도한 기대와 압박 속에 갇혀 꿈꾸는 것도 하지 못하던 아이가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어내면서 자신을 발견하고 또한 자기만이 할 수 있는 무엇을 찾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은 그래서 행복한 기분마저 든다. 믿거나 말거나, 픽션 중의 픽션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척이는 그래서 자신만이 만들 수 있는 세상을 만났을까? 암울하고 어려웠던 그 시대를 살아가면서 짧았기에 더 찬란했던 며칠간의 가출은 그에게 어떤 빛으로 남았을까 궁금하기만 하다. 작은 만남을 통해 마음에서 마음으로 이야기가 전해지고 어려움 속에서도 버텨나갈 힘을 얻었을 거라고 마음대로 결론지을 수 있었다. 픽션 중의 픽션이니 이 정도의 망상은 귀엽기만 하다?

누군가의 꿈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의 길을 찾아간 척이처럼, 이 즐거운 작품을 통해 한숨마저 유쾌한 웃음이 되기를 바라볼 뿐이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할용해주세요.

http://www.hangg.co.kr/news/view.php?idx=9708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리스트페이지_R001
최신뉴스더보기
리스트페이지_R002
리스트페이지_R003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