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후조리원 ‘포름 알데이드’ 과다 검출 신생아 위험 노출
인체에 치명적인 이른바 ‘새집 증후군’으로 알려진 ‘폼 알데하이드’가 일부 산후조리원에서 기준치(다중이용시설 0.10ppm, 아파트 등 주거공간은 0.17ppm)를 무려 3배나 초과한 것으로 드러나 신생아는 물론 산모의 건강에 치명상을 주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포름 알데이드’로 널리 알려진 새집 증후군은 이미 알려진 바와 같이 지난 2002년 처음 사회문제화 돼 현재 신축 아파트를 비롯한 자동차와 가구는 물론 의료기관과 지하역사 등 신,개축을 하는 모든 건축물에 이 물질을 기준치 이하로 규제하고 있다.
정부가 이와 같이 다중이용시설과 거주시설에 포름 알데이드와 톨루엔(페인트,접착제,방부제 등에 함유되어 있는 화학성분)을 강력히 규제하고 있는 것은 이를 과다하게 흡입할 경우 두통을 동반한 구토와 피부염을 일으킬 수 있고, 피부암, 호흡기 질환 등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성을 알면서도 건설사와 일부 다중이용시설 사업자들이 규정을 위반하는 것은 친환경제품에 대한 인식부족은 물론 비교적 저렴하고 공사가 손쉬운 방법을 택하기 때문으로 이로 인한 국민들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 할 수 있어 보다 강력한 규제 방안이 마련되거나 기 시설물에서 유해물질의 방출을 막아 줄 수 있는 후속 조치가 절실한 상황이다.
특히 지난 1월 실내 공기질 분석을 위한 조사에 따르면 서울시 성북구의 모산후조리원의 경우 허용기준치인 0.10ppm을 4배 이상 초과한 0.42ppm을 보였고, 인천시 남동구 소제 모산후조리원도 0.37ppm을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설 운영자는 실내 공기질 개선을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고 있지 않아 산모와 신생아 건강에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하루에도 수만명이 이용하고 있는 대표적 다중이용시설인 영등포역사와 영등포, 동대문지하상가 그리고 이 마트 가양점, 국립현대미술관 등도 정부가 요구하고 있는 기준치를 훨씬 넘어서고 있지만 정부는 물론 이들 업소들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는 형편이다.
환경부(대기 보전국)가 지난 2006년 전국 4,454개소의 다중이용시설(찜질방,의료기관,보육시설,노인복지시설,산후조리원 등)에 대한 공기질 점검에 나서 모두 39개업소에 적발, 이 중 25개업소에 모두 6,5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고, 14개업소에 대해서는 시설개선명령을 내리는 등 단속을 벌였지만 처벌 규정이 미약해 제대로 기준을 지키는 업소는 드물다는 것이 관계자의 말이다.
따라서 현행 실내 공기질 개선과 관련한 법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적극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현행 법규(다중이용시설 등의 실내공기질관련법 제3조1항에 의하면 지하역사와 연면적 2천제곱미터 이상인 지하상가, 버스 터미널과 대합실 그리고 공항, 항만시설, 도서관과 박물관, 의료기관, 실내주차장, 국공립보육시설, 노인전문병원을 비롯해 산후조리원 등 시설물 대부분이 이 법에 의해 규제를 받고 있고, 이를 위반할 경우 광역시 및 지자체장은 당해 위반행위를 조사 확인한 후 1천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고 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위반 업소들이 실내질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는 위반업소에 대해 영업정지를 비롯한 강력한 행정조치를 취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이들 업소들에 대해 1~200만원의 과태료만 내면 된다는 안일한 의식이 자리 잡고 있어 법 개정을 통해 보다 강력한 행정조치와 함께 업주들의 실내 공기질에 대한 중요성을 정부 차원의 적극적 홍ㅇ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편 환경시민단체인 (사)환경과사람들과 함께 저소득층의 주거공간 실내 공기질 향상을 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주)함께하는 세상‘(www.hamgge.co.kr, 새집 증후군 처리 시공업체)유기창 대표도 포름 알데이드에 대한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유기창 대표는 어린이집과 산후조리원 등 다중이용시설에서 포름 알데이드를 비롯한 화학성 유해성분이 대량 검출되고 있는 것과 관련, “휘발성 유기 화합물의 기준 초과률이 매년 증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지적하고 “국민 보건 차원에서 정부는 물론 관련 업체들은 인체에 치명적 영향을 줄 수 있는 공기질 향상에 대한 의식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강조하면서 시설 개선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우리민족의 문화 창조 역사
세계 역사상 문자를 공식적으로 4번씩이나 만든 민족은 우리민족 밖에 없다. 세종대왕이 지금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한글을 창제 하실 때, 가림토문자 38자에서 20자나 모방 하였다는 사실은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인지 서문에서 밝혀져 있으니 입증된 셈이다.
이두문자 또한 선조들이 만들어 사용하였다는 것도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니, 더 이상 신라의 원효대사와 요석공주 사이에서 태어난 이두문자의 총 정리자 “설총” 이야기는 생략하기로 하겠다. 일본의 오래된 절인 이세신궁이나 중국의 오래된 사찰 등에서 가끔 발견되기도 하는 가림토문자 또한 선조들이 만든 문자이다.
가림토문자(38자)를 그대로 사용하든지 아니면 한글 28자를 옛날처럼 전부 사용하게 되면 짐승의 소리까지도 흉내 낼 수 있다고 하니 선조들의 지혜가 얼마나 훌륭했는지 짐작이 간다. 지금 한. 중. 일이 같이 사용하는 한자(漢字)도 기록에 의하면 동이족인 우리 선조들이 만든 글(契)자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안호상 박사가 문교부장관 시절 대만을 방문하여 “임어당 선생”을 만난 자리에서, 우리민족은 한글을 사용하여 너무나 편하다고 하며 한글은 세계의 어떠한 문자도 마음대로 발음할 수 있는 편리한 문자임을 자랑하면서 한자의 어려움을 한글과 비교하며 말 했더니, 임어당 선생이 정색을 하며 말하길 “한문도 동이족인 그대들의 선조가 만든 문자인데 왜 한글 만 자랑하느냐”고 하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렇듯 우리 선조들 은 공식적으로 네 번(한글. 이두문자. 가림토문자. 한자)씩이나 문자를 만든 세계 최고의 문화민족 인 것이다. 우리가 이러한 선조들의 후손됨이 어찌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현재 일본의 극우세력들 즉 황국사관에 젖은 사람들이나 수십 년간 한 번도 바뀌지 않고 정권을 쥐고 있던 자민당에서는 마치 일본 사람들이, 섬에서 자생 하였거나, 중국이나 유럽 부근으로부터 와서 일본을 건국하였고, 지금 사용하는 말 또한 우랄알타이계와 다른 것으로서 독특하다고 선전하며 천황도 만세일계라면서 거짓말을 하고 있다.
그러한 내용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이들 정치인들이 일본국민들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일본(日本)이라는 국호는 해의 뿌리라는 뜻의 한자표현이며, 국기 또한 붉은 태양을 뜻하고 있다.
이것은 대략 서기 670년경에 정해졌다고 일본학자들은 말하고 있다. 주목해야 할 점은 그 당시에는 이라고 표기는 했어도 지금처럼 이라고 읽은 것이 아니라, 라고 읽었다는 사실이다.
그런 사실은 서기 750년 무렵에 편찬된 것으로 짐작되고 있는 萬葉集(만엽집)에 실려 있는 노래에 한자로 이라고 표기돼 있는 모두가 라고 읽혀져 있는 것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덧붙인다면, 는 지금의 경북 고령지방을 중심으로 번창했든 우리의 고대부족국가(우가야)의 국호로, 일본열도에 건너가서 지금의 지방에 정착하고, 그 지역에 새로운 나라를 세운 우리조상들이 붙인 이름인 것이다. 지금 그 지역을 이라고 부르는 까닭도, 우리조상들이 그곳에 새로운 나라를 세웠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가야인은 슬프다”중에서: 박병식 저)
참고적으로 말하면 우리민족은 세계에서 유일할 정도로 태양을 좋아하고 숭배하며, 태양 그 자체가 생활의 일부분이었다. 예를 들어 지금도 스스로를 “나”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원래는 “라”였다.
“라”에서“ㄹ”이“ㄴ”으로 소리 바꿈 하여 “나”로 되었다. 즉 “라(나)”는 태양이라는 뜻이며, “이집트” 에서는 태양신을 말한다. 태양의 옛 표현 말은 “아. 하. 라”였는데 아버지의 “아”와 같이
옛날부터 지금까지 우리민족이 가장 많이 부르는 노래인 “아리랑”은 바로 “태양처럼 높으신 님, 즉 하나님” 을 뜻하는 순수 우리 고어인 것이다.
일본사전에 국호 “일본(日本)”(태양의 뿌리라는 뜻) 이 말은 “삼한에서 사용하던 말로써 그 뜻이 아름다워 만년에 변치 않을 국호로 삼는다.”라고 적혀있다. 그러니 일본말 전체가 우리의 옛 가야 말인 것은 분명하며 우리말과 똑같은데, 일본 학자들도 인정하고 있듯이 모음이 3개(ㅡ,ㅐ,ㅢ) 빠져 탈락함으로 인하여 변화된 것이다.
예:1.사람을 졸졸 따라다닌다.=日本: 조로 조로
2.물건을 슬슬 끌어당긴다.=日本: 스루 스루
3.터벅터벅 걸어간다. =日本: 도보 도보
요즈음 중국 공산당정권이 우리민족의 상고역사를 훔쳐가서 자기네들의 역사로 만들기 위해 “동북공정”과 “탐원공정”등 몇 가지 공정들을 추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이미 20여 년 전부터 우리나라의 눈치를 살피면서 물밑작업을 해왔다는 것이 최근에서야 들통 난 것이다. 왜 그들은 그들만의 역사로 만족하지 못하는 걸까? 그 이유는 간단하다. 한족들이 아무리 땅이 넓고 큰 나라라고 잘난 척해도, 역사가 훨씬 길고 오랜 문화선진국인 조선족의 수준으로 보면 항상 아래로 내려다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55개 소수민족 중 유일하게 역사를 알고, 자부심이 강하며, 언제 또 그들을 지배하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도 그렇다!
다음호에 계속....
-
황칠명인 구영국교수의 전통문화산책(9)
달포 만에 숲속에 들어서니 귀여운 작은 박새가 봄으로 녹는 대지위에서 자신의 영역을 지키기 위해 이 나무 저 나무를 계속 옮겨 다니며 구역의 경계로 텃새 질을 한다. ‘거리’라는 헬기를 타고 바라본 먼 남해 바다 밑에선 푸르게 시린 정어리 한 떼가 맨 앞 주장인솔자를 필두로 우리나라 바다 밑을 재미있게 어종조사인 듯 순찰하고 다닌다.
깊고 고요한 산 속 잔잔한 사기 장인이 빛은 백자도자기 옆에선 화금청자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불그무레하여 수줍은 홍매가 꽃망울을 힘차게 터트리고, 복잡하고 시끄러운 도시 궁궐 옆에선 노란 개나리가 바람을 가르며 사르륵 사르륵 피어나고 있다.
국보1호인 남대문 복원공사가 한창인 가운데 보물1호인 동대문 앞길엔 반원형을 돌아가며 앞으로 줄줄이 나가는 수많은 자동차들이, 각자 제 갈 길로 오가며 오늘도 하루 내 내 숨 쉴 겨를 없이 매우 분주하더니 국토의 하단아래 목포의 야간 멸치잡이 그물처럼 바쁘다.
분주하긴 궁중연회에 등장했던 우리의 학(두루미)도 매한가지이다. 3월초면 궁의 천정 그림에서 떠나 시베리아로 먼 길을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학은 십장생 중에서 유일한 아름다운 새인데 전 세계 14종류가 있다고 한다. 현재 지구상엔 몇 백 마리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하지만,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6.25전쟁 전만하여도 수천마리가 11월 하순에 겨울을 나려고 해마다 시베리아나 몽골등지에서 먼 거리를 날아서 우리나라에 왔었다. 그런데 이제는 그 개체가 얼마 남아 있지 않아서 안타깝게도 세계적으로 각 나라마다 관심을 갖고 지극히 보호해야 할 희귀 조류가 되어 버렸다. 모두가 인간의 못된 욕심 때문에 머리가 빨간 피부를 가진 역사적인 새가 희생되고 사라진 결과이다.
무자비한 사냥총에 의해서 그러하고, 극한 독극물 농약에 의해 그렇고, 빠져나올 수 없는 덫을 놓은 올가미에 의해 수없이 죽고, 무자비한 개발에 의한 서식지의 잠식으로 말미암아 상당수의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던 두루미가 척박한 땅위에 죽었다. 이럴 즈음 멸종 위기를 염려했던 일본은 오래전부터 인공부화를 통한 연구를 활발히 지속해 오고 있었기에 두루미 보존을 위한 인간의 노력은 그나마 겨우 빛을 찾고 있다.
비행기가 활주로에 착륙할 때 랜딩기어에 가해지는 압력은 무려 100톤에 가깝다. 두루미가 지상에 착지할 때는 발을 밑으로 쭉 뻗어 몸을 세우고 긴 날개와 꽁지를 펴서, 날라 오던 바람의 막강한 저항을 삭이며 가속도를 줄여 천천히 내려앉는다. 비행기 역시 땅에 착지 할 때에는 큰 양쪽 날개를 밑으로 내린다. 이렇게 바람의 저항을 이용하는 것은 두루미나 비행기나 매 일반이다.
몸이 무거운 두루미는 여느 작은 새처럼 자신의 날개 힘으로만 날 수 없기 때문에 바람을 이용하는데 바람이 부는 쪽으로 목을 앞으로 빼고 날개를 힘차게 위아래로 움직여 반복적 추진력을 통한 전력질주로 이륙한다. 그 무겁고 커다란 우리의 비행기의 이륙원리도 매 마찬가지다. 그래서 동일하다. 이는 동물의 행동이나 인간의 기계적 생태행동학이 같다는 애기이다. 따라서 이것은 부정할 수 없는 의도되지 않은 자연행위와 의도된 행동이 틀리지 않단 이야기이기도 하다.
두루미의 울음소리는 무려 3km밖에서도 들을 수 있다 한다. 뿐만 아니라 우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데 알이 태어나 기뻐서 소리 질러 우는 울음소리하고 암수 짝짓기 할 때 서로 좋아 죽고 못 살아 우는 울음소리는 분명히 다르다고 한다.
또 두루미의 암 수 구별은 울음소리로 알 수 있다. 수컷이 한번 울고 나면 바로 이어서 암컷이 두 번 울기 때문인데 구별법은 그 소리가 한번 ‘뚜룹’ 하고 두 번 ‘뚜르르’이다.
두루미의 수명은 얼마나 될까? 장수의 개념인 십장생의 관점에서 보는 수명이 150년이지만 실제 150년을 살고 죽었는지는 아직 확인 된 바가 없는데, 인공적으로 최적의 환경을 보호한 동물원에서는 82년을 산 적이 있다하나 대략 야생 두루미의 수명은 30년에서 50년의 수명으로 보고 있다. 만약 자신이 새라면 어떤 새 이고 어떤 자태이고 싶을까.
두루미의 자태는 신선의 자태라고 했다. 신선이 학을 타고 있는 그림은 천상의 세계에선 무릉도원이 아니런가.
두루미는 봉황처럼 절대 썩은 먹이를 먹지 않는다. 썩는 다는 것은 병이 드는 것이고 병이 들면 생명이란 것을 심장에서 내려놓아야 한다.
관료의 관복 흉배에, 궁중 그림과 민화와 십장생그림에, 샤머니즘의 이해 논리에 접하면서, 국왕의 집무실 천정에, 사찰의 엄숙한 공포에도 학은 늘 살아 있으며 존재해 왔음을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잊지 않고 있다.
봄이 이처럼 연민으로 전통 가슴속을 파고드는 지금 우리가 학(두루미)처럼 살아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하고 생각해보니 행복해 진다.
그리고 필자가 아는 사랑하는 이웃 지인들 모두 어느 좋은 길일에, 슬픔이 없는 천상의 이상세계로 학과 동무하며 순수하게 소풍 갈 수 있는 저 하늘 길에, 천년을 같이 가야하는 인연을 소중히 생각하며 잘 여며가는 사람들이었으면, 이 봄 정말 좋겠다.
-필리핀 국립대 석좌교수-
-
<연재>"昔氏王族의 600年 秘史"
새삼스레 이야기할 필요도 없겠지만, 오늘날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우리나라 역사 내용은, 고려시대에 편찬된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바탕을 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되는 것은, 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자세히 읽어 보노라면, 너 나 없이, 매우 이상스럽다는 느낌을 가지게 마련인 대목이, 적지 않다는 데에 있다.
우선 우리나라의 創國記錄(창국기록)부터가 그렇다.
東明王(동명왕)이 고구려를 세운 이야기나, 溫祚王(온조왕)이 백제를 건국하게 된 사연, 그리고 신라를 세운 朴赫居世(박혁거세)에 관한 설화 등, 그들 세 나라의 건국에 대하여는, 나름대로 자세한 기록을 하여 두었다.
그러면서도, 그들 보다 2천여 년이 앞섰을 뿐 아니라, 그 어느 것보다 중요한 통일조선의 創建(창건)에 관해서는, 오직 중국사에서 인용한 記事(기사)가 몇 줄 있을 뿐이니, 이 어찌 怪異(괴이)하다 않겠는가?
그 탓으로, 우리의 건국사는, 애매모호한 소위 단군신화 속에 파묻혀 있게 되었으며, 그 때문에 우리는, 자랑스러운 檀紀(단기) 4334년 대신, 우리민족의 역사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西紀(서기) 2001년을 맞이하게 돼 버렸다.
그러나 이 글을 쓰는 목적은, 우리의 檀君史(단군사)를 소홀히 다룬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편찬자의 大罪(대죄)를 꾸짖으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저지른, 어찌 보면 단군사의 누락보다도 더 엄청난 잘못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삼국사기" 신라 文武王(문무왕) 2년(서기 662년) 2월조를 보면, '本彼宮(본피궁)의 財貨(재화)-田莊(전장)-奴僕(노복)을 中分(중분)하여, 그 반을 김유신과 김인문에게 나누어 줬다'는 짤막한 기록이 보인다.
본피궁이란, 모두 다 아는 바와 같이, 昔氏王家(석씨왕가)를 지칭하는 것이다. 석씨왕가의 모든 재화와 노복들마저 모조리 나라가 몰수하여, 그 절반을 다시 반으로 나누어, 김유신과 김인문에게 나눠 주었다는 사실을 전하는, 이 느닷없이 삽입된 기사는, 실로 알지 못할 수수께끼로 휩싸여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서기 662년이라면, 數百年(수백년) 동안 혈투를 계속하여 오던 숙적 백제를, 비록 당나라의 힘을 빌리기는 했지만, 끝끝내 멸망시키는 데에 성공한 경사스러운 때다. 그런 국가적으로 기쁜 때에는 으레, 전국적으로 대대적인 사면령을 내리는 것이 상식일 텐데, 오히려 전례가 없는, 석씨왕가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단행됐다니 어찌된 일인가?
왜 하필, 이 더 없이 기뻐해야 할 때에,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신라 三王家(삼왕가)의 하나인 昔氏王室(석씨왕실)에 대하여, 문무왕은, 그토록 무자비하고도 가차없는 철퇴를 내렸을까?
문무왕은, 석씨왕실에 대한, 서릿발 같은 날벼락 처단을 집행한 다음 달인 3월이 되어서야, 죄인들에 대한 전국적인 사면을 선포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편찬자는, 석씨왕실의 재산을 몰수한 사실만을 기록해 놓았지만, 사실은 이 때, 석씨 성을 가진 모든 사람들을 잡아들여, 지위의 상하를 막론하고, 모조리 처단해 버렸다. 그 결과, 오늘날의 석씨는, 전국에 살고 있는 사람을 모두 합쳐도, 8천명에도 미치지 못하는(1985년 통계) 稀姓(희성)으로 전락돼 있다.
신라의 3왕실 가운데서, 김씨와 박씨는, 그 자손이 각각 880만명과 350만명에 가까운 방대한 수를 헤아리는 大姓(대성)으로 자라난 사실에 비춰 볼 때, 석씨들이 얼마나 철저하게 가혹한 滅門之禍(멸문지화)를 당했는지 상상하고도 남는다.
한 사람 또는 몇몇을 처형한 것이라면 모르되, 석씨 전체에 대하여, 지금 생각하여도 끔찍하고도 소름이 끼치도록 처참한 처분이 취해졌다면, 거기에 대하여, 그 당시의 온 나라 사람들이 납득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을 것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무왕이 왜 석씨왕실뿐 아니라, 모든 석씨에 대하여, 그토록 혹독한 처벌을 내렸는가에 관하여, 편찬자는 단 한 마디 설명도 하지 않고, 입을 꽉 다물어 버렸다.
더욱 주목해야 할 일은, 김내물왕(金奈勿王)이 왕위에 오른 서기 356년부터, 고려가 건국된 때까지, 거의 600년 동안의 우리나라 역사에는, 석씨 성을 가진 사람이 단 한사람도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들의 문중에서, 侍郞(시랑) 昔載興(석재흥), 兵部令(병부령) 昔時宗(석시종), 左僕射(좌복사) 昔運尼(석운니), 密直司(밀직사) 昔漢一(석한일) 등이 연달아 등장하게 되는 것은, 고려조에 들어선 다음, 文宗(문종) 때가 지나서부터이다.
더구나, 석씨족보에는, 昔脫解(석탈해)의 23世孫(세손)이라고 하는 석재흥이, 始祖一世(시조일세)라고 되어 있을 뿐, 석씨왕실의 마지막 임금인 訖解王(흘해왕)의 손자 恬(념)과 姓(성) 이후, 석재흥에 이르는 계보가 빈칸으로 남아 있다.
우리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석씨족보의 공란 뒤에는, 석씨 조상들이, 600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동안 겪었으면서도, 문자로는 한 마디도 자손에게 남기지 못한, 기막히도록 서러운 사연이 적혀 있을 것이며, 후세의 모든 사람에게 보내는 애절한 호소도 담겨져 있을 것이다.
이 글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의 편찬자가 밝히지 않았던 석씨들이 겪은 참변의 실상을, 일본 古代史(고대사)와 옛 문헌에 남아 있는, 단편적인 기록을 열쇠로 삼아 파헤쳐 밝혀내고, 그 뒤에 숨어 있는, 600년에 걸친 놀라운 이야기를 처음으로 세상에 알리려는 것이다.
독자는, 이 글을 읽어감에 따라, 오늘날 일본이라고 불리는 나라 사람들이, 알고 보면, 바로 우리와 핏줄로 이어져 있는 겨레임을 깨닫게 된다.
그와 동시에, 두 나라 사람들이, 신라가 건국한 때부터 시작하여, 7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의 650여년 동안, 왜 서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을 계속했는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 21세기로 발을 내디디는 우리 민족의 장래를 위해서는, 전후 약 6년(서기 1592~1597년) 계속됐던 임진왜란이나, 36년 동안의 일본식민통치를 운운하기보다, 이렇게 숨겨져 있는 기막힌 역사의 진실을 파헤쳐 직시하고, 그 뒤에 숨어 있는 우리 고대사의 참 모습을 되찾는 슬기를 가져야 할 것이다.
일제의 쇠사슬에서 벗어난 지 반세기 이상 지난 오늘까지도, 한일 두 나라 사람들의 마음속 이 구석 저 구석에는, 아직도 서먹한 앙금이 남아 있는 게 현실이다.
거기에 대해서는, 먼 앞날을 내다보지 못하는 한일 정치인들의 안목에도 문제가 있겠지만, 해방이 된지 50년이 지나도록, 일본고대사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게을리하고 있는 우리 사학자들의 책임이 더욱 크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런 뜻에서, 두 나라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끈질긴 더덕때를 말끔히 씻어 없애는 세척제가 되어 줬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이 글을 여러분 앞에 보내려 한다.
21세기를 맞이한 인류는, 지금 우주식민지의 건설에 착수했다고 할 수 있다. 20세기 초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꿈 같은 일이 현실로 다가섰다.
그런 기적을 가능케 한 것은 "사과는 왜 땅으로 떨어질까?"고 생각한 ‘아이작 뉴턴’의 "왜?" 하나로부터 비롯되었다.
‘뉴턴’의 "왜?"는, 대우주의 만유인력법칙을 발견케 하여, 인류의 꿈을 무한한 우주공간 속으로 뻗어 나가게 했다.
그리고 이 글에 담겨져 있는 숱한 "왜?"는, 망각의 時海(시해) 속에 파묻혀졌던, 우리의 ‘아이덴티티’를 되찾게 해 줄 것이다.
가라민족문화연구원(韓民族文化硏究院) 학술고문 故 박 병 식
자료제공 한민족문화연구원
-
가수 김장훈 독도공연 성황링에 맞쳐
가수 김장훈이 독도공연을 성황리에 마치고 돌아오는 선상에서 “온갖 악재를 뚫고 독도에 깃발꽂고 걸지게 한판 공연하고 집으로 갑니다. 정신차려보니 꿈이었네요. 그 눈물도, 그 웃음도, 그 노래들도...”라고 자신의 미투데이 공연후기를 남겼다.
-
차살 때 등급 결정은 잘록한 허리에서 나온다
가장 많이 판매된 베스트셀링카는 누구나 알 수 있지만, 가장 인기 있는 등급은 확인이 쉽지 않다. 하지만 소비자들이 공통적으로 선호하는 등급은 따로 있어 추후의 중고차 거래까지 염두에 두고 가급적 선호도 높은 등급을 구입하는 이들도 있다.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인기 있는 차량은 어떤 등급일까?
배기량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세그먼트에 딱 맞는 배기량이 인기가 높았다. 지난 1월 신차판매량을 배기량 기준으로 나누어 조사한 결과 준중형은 1,600cc모델, 중형은 2,000cc 모델처럼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원조 배기량에서 가장 많은 판매를 기록했다.
대표적으로 ‘YF쏘나타는 중형급 기본 배기량인 2000cc의 Y20’이 4천여대 판매된데 비해, F24(배기량 2400cc)의 120대에 그친 것이다. 소형차가 준중형차를, 중형차가 대형차를 넘보는 시대지만 소비자들은 기본에 맞는 차를 더욱 선호하는 것이다. 크다고 모두 좋은 것은 아니었다.
사양과 옵션에 따라 나뉘는 등급은 어느 수준의 인기가 좋을까? 인기등급을 유추할 수 있는 중고차 매물량을 조사한 결과 각 모델별 최저, 최고등급은 거래가 극히 적었고 중간급에 속하는 자동차 등급이 가장 많이 거래되고 있었다. 신차판매와 중고차의 수요, 매물량이 비례하는 것을 감안하면 전 등급의 잘록한 허리인 중간등급의 인기가 가장 높은 것이다.
대표적으로 대형차 ‘그랜저TG’는 ‘Q270 럭셔리’가, 중형차 ‘YF쏘나타’는 ‘Y20 프리미어 최고급’형이, 준중형 ‘아반떼MD’는 ‘M16 LUXURY’의 거래가 가장 활발했다. 또한 소형차 ‘엑센트’는 ‘4도어 1.5’가 가장 많았다. 차종 구분 없이 모두 중간수준 등급의 인기가 가장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중고차 카즈 매물담당자는 “중고차를 구입하는 사람은 예산과 니즈가 구체적이기 때문에, 지나치게 낮거나 높은 트림은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최고 트림의 높은 등급 차보다는 중간 등급에 풀옵션이 적용된 중고차가 인기가 많아, 가장 빨리 팔리는 차는 중간 등급의 풀옵션카다”라고 전했다.
-
“초도 물품비만 있으면 창업 가능”
최근 창업시장에서 열정과 전문성으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며,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소자본 창업이 가능하게 하는 기업이 있어 찾아가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맞는 새로운 직업을 찾는 과정에서 창업이라는 도전을 감행하곤 하는데 이때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이 체인본사의 건전성과 투자에 대한 수익성 그리고 일시적인 유행이 아닌 꾸준한 지속성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
기자가 찾은 업체는 이러한 사안을 모두 만족하고 있으며, 소자본 창업이라는 또 다른 매력과 체인본사에서 요구하는 보증금과 시설비가 없다는 강점을 지니고 있어 소개하고자 한다.
서울 강동구 천호동에 소재지를 두고 있는 (주)신일식품(대표 김연암)은 여주(암팔라야, 주 서식지 필리핀, 일본명칭: 고야)라는 열매를 주 재료로 당뇨와 다이어트에 효과를 볼 수 있는 당하차를 개발하여 체인점 방식으로 운영을 하고 있는 업체이다.
여주(암팔라야)는 의약품이 아닌 천연식품으로 과거부터 원기회복과 질병치료를 위한 민간요법의 재료로 활용되어 왔으며, 특히 펩타이드성 물질인 카라틴과 식물인슐린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당뇨병에 좋은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한 번의 복용으로 효과를 보는 것이 아니라 꾸준한 복용이 이어져야 하는 자연식품으로 지방분해를 촉진시키며, 레몬이나 딸기에 비하여 비타민C가 4배가량 많이 함유되어 있고 가열을 하더라도 성분의 변화가 미미하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친환경 유기농재배로 생산한 국내산 재료를 티백형식으로 만들어 보리차처럼 끓여 먹을 수 있는 당하차로 출시하여 창업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손쉽게 창업을 할 수 있게 하고 있었다.
(주)신일식품은 창업에 있어서도 초도 물품비만 있으면 창업이 가능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창업조건의 거품을 뺐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주)신일식품 김연암 대표는 “앞으로 여주를 이용해 다이어트제, 숙취해소제, 항암효과제를 개발 출원예정이며, 추가로 여주음료를 출시할 예정에 있다”며 “여주를 많은 사람들이 애용하는 건강식품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희망했다.
-
“왜 우리역사만 신화인가?”
기원전 3000년에 왕권 강화를 목적으로 이집트 파라오의 하루는 목욕재개부터 시작하여, 국민들에게 보여 주기 위해 고대 이집트인들의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숫 하마 잡는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고(왕 제도 이미 존재) 또한 그때의 “풍요와 즐거움의 극치” 가 파피루스에 기록 되어 있다.
기원전 2700년경 에는 제2왕조 때인데 이때부터 태양신 “라“(Ra :라 =나)를 처음 숭배하기 시작 하였고 새로운 건축기술이 발달하여 당시 행정담당 서기들의 글과 그림이 파피루스에 남아 있다.
기원전 2500년 쿠푸왕 때는 20년이 걸려 2.5톤짜리 돌 230만개로 대 피라밋이 완성 되었는데, BC 5세기의 그리스 기록에는 그 무거운 돌을 어떻게 옮겼을까? 라고 기록 되어 있다. 당시 이집트의 역사는 그리스인들이 많이 왜곡 하였던 것이다. 이 기록들은 서양 학자들에 의해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또 나일강을 이용하여 돌을 옮기며 시나이반도에서 아스완과 더 밑으로 누비아까지 땅을 개척 하였을 뿐만 아니라 조각품 중에 유리로 만든 “눈“과 미 이 라 의 부패방지를 위한 특별 처리까지 하였다.
BC1279~BC1212 파라오 “세띠”의 아들 람세스 대왕 때는 쌍으로 쏠 수 있는 활이 개발되었다고 기록 되어 있으며, 돌을 쪼개고 다듬는 기술이 개발되어 실용화 된 것이 이미 1000년 이 넘었다고 기록 되어 있다.
한편 아시아의 우리민족 시조 중 한사람인 치우천황은 기원전2700년 경 에 이미 청동기로 무기와 갑옷과 농기구를 만들고 사용 하였지만(동두철액: 머리는 동이며 갑옷은 쇠) 신화로만 기록되어 알려지고 있다.
은나라 때의 “기자가 조 선 으로 갔다” 는 그 조선이 어느 지역이며, 태양족인 우리민족이 살았던 곳 마다 “광명 의 땅 (아사달)”으로 이름 지어, 조선. 부여. 가라(야). 한. 북경. 조양. 평양. 왜. 일본...등으로 기록된 우리 고어가 한자(漢字)로만 표시된 것을 언어학으로 연구 하지도 않는다.
치우천황 보다 약400년 후의 인물인 “단군”(기원전 2333년)도 신화로 만들고, 마치 곰과 호랑이가 변해서 사람이 된 것처럼, 유전학적으로도 이치에 맞지 않은 억지 표현을 하였고, 비유법 을 직설법으로 의도적인 해석을 하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이 얼마나 무리하고 고의적인 왜곡된 해석인가.
또한 기원전 551년의 공자와 기원전 372년의 맹자는 대나무에 “옻“으로 글을 써서 기록(과두문
-
황칠명인 구영국교수의 전통문화산책(8)
오랜만에 대지위로 단비가 내렸다. 이제 곧 봄이 오고 대자연의 아름다움과 이로움이 인간생활에 축복과 풍요로움과 위대함과 고마움을 새삼 느끼게 해 줄 것이다.
봄이 달려오면 당장 맨발로 뛰어나가서 제일먼저 누구를 맞이할까? 생각만 해도 사뭇 즐거운 일인게다.
아침 이슬을 먹고 사는 달팽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살아가고, 반딧불이가 나들이를 간 후 오색딱따구리의 나무 쪼아대는 소리에 노루가 잔뜩 긴장을 하고, 멧돼지가 꼬리를 흔들며 촉각을 세워 경계를 하고, 팔색조가 후박나무위에서 멀리 먹이를 향해 집중하고, 산양이 계곡 바위에서 동료와 가족을 지키기 위해 서로 선 보초를 선다. 자연의 이치는 우리가 사는 만큼이나 지구를 순환적으로 자연현상을 보호 하고 있다.
자연의 위대함은 얼마나 무한적인가. 산과 바다, 태양과 대지, 바람과 구름, 인간과 동물 등 어느 하나 지금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잡힐 듯 말 듯 한 물이 증발하여 구름이 되고 다시 비가 되어 떨어져 지하수가 되고 강이 되어 바다가 된다. 빗물이 모이고 모여서 큰 바다가 되니까 바다란 결국 작은 물방울 하나하나 이다. 그러니 결코 크다 하여 자랑하지 말고 작다하여 무시하지 말아야 하며 궁극적으로 크고 작은 것은 하나이기 때문에 한 속 이다.
앞으로 우리 인간들은 해저도시를 건설하고 우주를 개발하여 우주공간에 집을 짓고 사는 날이 도래할 것이기 때문에 우주와 바다를 개척해야 한다.
우주의 평균온도는 섭씨 영하 270도로 추정하고 있는데 비해 지구중심부의 온도는 약 5,000도를 넘지 않고, 우주의 나이는 약 150억 살 이지만 지구는 약 46억 살 이다. 우주는 끝없이 팽창과 수축을 반복 하는 반면 은하는 점점 멀어져 가고 있다. 은하는 빛(세상에서 가장 빠른 물체)의 빠르기로 움직이는데 은하가 있는 곳이 바로 우주의 끝인 셈 이란 것도 알아야 한다.
이 은하엔 천억 개의 은하가 존재하고 각각의 은하에는 또 천억 개나 되는 별들이 있다고 하니 이 은하계 일원의 하나인 지구에 살고 있는 위대하다는 한 인간도 대우주 앞에선 전혀 조금도 위대 하지 않다. 그러므로 내공을 쌓듯 마음을 내려놓고 늘 겸허해야 하지 않을까?
지난 여름밤 옥상에서 반짝이던 별들은 저마다의 색깔이 각기 다 틀렸는데 그것은 별의 온도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며, 별에도 일정한 수명이 있는데 수십억 년이 지나면 빛을 잃고 사라진다. ‘신성’은 바로 이러한 별의 현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이제 전통의 중요한 품위 부분을 애기하고자 한다. 그럼 전통의 품의라는 측면으로 접근해보면 고유의 황칠달항아리는 그 대상으로 적격이다. 설명되는 이유는 이렇다.
황칠달항아리는 햇볕이나 백열전구 밑에서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칠흑같이 어두운 깊은 밤에 수려하고 은은한 달빛아래에서 감상해야 황칠달항아리의 최고 진수를 맛 볼 수 있다. 또 달빛이 쏟아져 내리면서 황칠의 금색과 절묘히 조화되면 한없이 상상할 수 없는 흡인되고야마는 바로미터 감흥에 젖는다. 따라서 이것은 여기 우리 선조들의 뛰어난 감수성과 기술성과 예술성을 접하게 됨과 동시에 전통문화의 보존이 이토록 절실하게 해야만 하는 까닭에 연유하여 이해하게 될 것이다.
실바람이 부는 어떤 달밤에 지인과 소박한 약주 잔에 달을 담아 마신 적이 있다. 잔속에 들어 있는 달에는 자꾸 보면 볼수록 또렸한 나 자신의 모습이 담겨 있었는데 언제나 부정할 수 없는 백제황칠장인의 모습이었던 것을 후에 세월과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잊혀 지지 않는 장인의 제 모습은 선조와의 교감의 모습이라 해야 할 것 같다. 항상 부족한 제 자신을 생각하며.
필자는 ‘달맞이하러 가자’ 는 말을 참 좋아한다. 왜냐면 달에는 토끼의 꿈과 희망이 있어서이고 견우와 직녀가 있어서이기도 하고, 제일 으뜸의 생각은 북두칠성이 하늘에 있기 때문이다. 또 거기에 우리민족의 지주 정신이 되는 ‘아리랑’이 있어서이다
달에는 정성을 들여 희망이 잇고 달빛에는 감흥이 있어 황칠달항아리가 살아 있다. 달맞이하러 가는 것은 한 속인 황칠달항아리를 보러 가는 것이다.
이태리의 가죽장인은 한사람이 하루에 혼자 한 개의 가죽핸드백을 만든다. 전부 모든 공정을 혼자 다 해서 완성 한다. 이른 바 명품핸드백이다. 꼼꼼하고 완벽하게 만드는 존경해야할 장인정신이다.
우리나라에도 이태리 장인이 부럽지 않은 훌륭한 장인이 각 분야에 많다. 다만 아쉬움이 있어 말하자면 명품을 만드는 국제적인 이름의 전통장인이 많았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 이다.
인간의 손으로 만드는 천하의 명품은 우주의 별빛처럼 이와 같이 세상에 더욱 빛난다.
-필리핀 국립대 석좌교수-
-
한강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
‘다리’라는 용어는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이동을 위한 수단’과 ‘강과 하천을 건너기 위하여 설치한 목적물’이라는 표현을 볼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한강에 놓여진 수 많은 다리들도 이러한 맥락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강에는 언제부터 다리가 존재했으며, 다리의 설치로 인한 이해득실은 어떻게 형성되었던 것일까?
문헌을 살펴보면 조선시대 때 왕이 선왕의 능을 참배하기 위하거나 온천을 가는 등 나들이를 할 때 큰 배 수십척을 동원해 엮어 그 위에 널빤지를 설치하여 기마 5-6필이 자유롭게 가로로 서서 건널 수 있는 부잔교를 세우곤 하였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러나 이러한 부잔교는 일시적인 다리에 불과하고 설치시에도 민간의 배를 동원해 설치에 한달, 해체에 한달이 걸리는 등 많은 시간이 소요되어 백성들의 원성을 사는 부작용이 많았던 기록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다리는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그 효과는 어떻게 표출되고 있을까?
서울을 기준으로 한 생활권의 확대와 교통량의 증가, 물동량의 확대로 인하여 다리의 필요성은 절실했지만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나루가 번창하던 것이, 1897년 경인철도부설공사와 1899년 용산과 노량진을 연결하는 한강철교의 착공을 시작으로 현대식 다리가 설치되기 시작하여 지금은 서울에서만 30개에 육박하는 다리가 세워졌고 한강 지류까지 따지면 수백개에 달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철교인 한강철교는 길이 26마일의 경인철도를 개통하며 설치 되었으며, 1900년에 정식 개통을 맞이하였다. 또한 경부선 복선화 계획에 의하여 1912년 제2철교가 준공 되었다. 그런데 우리의 토목기술이 발달되어 개통된 다리가 아니라 외세가 침탈의 목적으로 개설하였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한반도에 대한 강대국의 이권쟁탈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경술국치 6년 뒤인 1916년 최초의 인도교가 건설되었으며, 중앙차도가 4.5미터, 좌우보도 각 1.6미터로 기공 되었으며, 교통량 해소를 위한 새 인도교는 1934년에 착공하여 1936년에 완공 되었는데 폭 20미터에 길이는 10,005미터였다.
이렇게 설치된 한강의 다리들은 6.25를 맞으며 수난의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남하하는 북한군을 저지하기 위하여 국군이 다리를 폭파함으로서 수많은 사상자와 물량이동에 영향을 받게 되었는데 1958년 재 가설로 다리의 기능을 회복하기에 이른다.
이후 한강의 다리는 1968년 시작된 한강개발계획의 핵심 사업으로 추진돼 1970년 5월 16일 마포대교를 시작으로 구양화대교, 제2한강교 등 순차적인 준공을 보이며 한강 이남과 이북을 잇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현재도 한강을 잇는 다리들은 하루에 수백만의 자동차와 사람, 전철이 이동하는 중요 통로로서의 역할을 감당하고 있으며 묵묵히 흐르는 강물에 몸을 맡기고 있다.
다음호에는 한강의 다리에 대해 조금더 깊게 살펴보겠다.
류덕선 전 경기도의회 의원
-
훼손된 경교장 3월부터 공사 들어가
서울시가 1945년 해방이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마지막 청사이자 백범 김구 선생 등 임시정부 각료들의 숙소로 사용된 종로구 새문안길에 위치한 경교장(京橋莊)을 내년 8월 15일 광복절까지 완벽 복원한다.
경교장은 1945년 11월 중국으로부터 환국한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청사로 사용하던 곳으로, 김구 주석 서거 이후 미군주둔지, 주한 대만대사관저 등으로 사용되다 1967년 고려병원(현 강북삼성병원)이 매입해 병원 건물로 사용해왔다. 이 과정에서 내외부가 크게 변형돼 복원 필요성이 제기돼 왔다.
서울시는 지난 2010년부터 추진해온 경교장 복원이 오는 3월부터 원형 훼손된 벽체 철거를 시작으로 본격화 된다고 밝혔다.
서울시는 경교장 복원을 위해 그동안 강북삼성병원의 협조로 경교장 내 모든 병원시설을 이전 완료(2010. 6. 30)하고, 각계 전문가로 구성된 복원자문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복원 설계 및 문화재청 현상변경 허가(2010.10.13)를 완료했다.
특히 서울시는 경교장을 대한민국 임시정부 각료 귀국 당시의 모습으로 진정성 있게 복원하고,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 경교장에서의 임시정부와 김구 선생의 활동상, 경교장의 역사 등을 제대로 알 수 있는 전시공간으로 조성할 계획이다.
이번 경교장 복원은 상해(1993)-중경(2001)-항주(2007) 등 중국에 있는 임시정부청사 복원에 이은 마지막 복원으로 일련의 임시정부 청사 복원에 방점을 찍게 됐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청사는 항일 독립운동을 총 지휘했던 사령부이자 독립운동의 상징이었다. 현재 중국 내에는 임시정부 관련 사적지가 많이 남아 있는데, 그 가운데 원형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던 상해-항주-중경 청사가 1990년대~2000년대 초반에 중국 정부와 우리나라 독립기념관, 그리고 삼성 등 여러 기업의 후원으로 이미 복원됐다.
서울시는 복원 추진과정에서 경교장 전체의 원래 모습을 관련 사료 및 지적도, 관련 사진, 증언, 백범기념관 등의 고증을 거쳐 역사상 최초로 규명했다.
그동안 ‘朝鮮と建築(조선과 건축, 1938년 발행)’ 등을 통해 경교장 내부는 부분적으로 알려져 있었지만, 경교장의 전체 규모나 원형은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었다.
서울시의 조사 결과, 지금은 강북삼성병원 건물과 주차장으로 둘러싸여 있는 그 공간에 넓게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고, 한옥도 1채 있었으며, 경교장 남쪽에 정문(주출입문)이, 동쪽으로 부출입문이 별도로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또한 경교장 동쪽에는 연못·다리·차고 등 부대시설이 있었고, 경교장의 전체 면적이 5,267.44㎡(1,593.40평)나 되었던 것도 밝혀졌다.
서울시는 이러한 경교장의 원 모습을 누구나 알기 쉽게 모형으로 제작해 원래 모습과 복원될 경교장의 미래상이 궁금한 시민들에게 3월 1일부터 용산구 효창공원 내 백범기념관 2층 전시실에 모형들을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서울시는 경교장의 복원공사 현장을 광복절인 8월 15일과 임시정부 환국일인 11월 23일에는 국민들이 복원 진행과정을 직접 볼 수 있도록 현장을 공개할 계획이다.
현장 공개는 전문가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강북삼성병원에서 임시정부 청사로 원형 회복 중인 경교장을 직접 볼 수 있는 드문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뮤지컬 ‘모차르트!’ 스타 발굴 프로젝트
지난 2010년 세종문화회관을 가득 채우며 흥행 돌풍을 일으켰던 뮤지컬 의 작곡가이자 세계적인 거장 ‘실베스터 르베이’가 그의 이름을 걸고 개최하는 의 한국예선이 오는 3월 21일부터 시작된다.
세계 12개 도시에서 동시에 치러지는 예선전의 한국예선은 EMK뮤지컬컴퍼니 주관으로 진행되며, 한국예선의 우승자에게는 유럽 본선 진출자격과 함께 뮤지컬 ‘모차르트!’의 타이틀 롤이 주어지게 된다.
이번 대회를 주최하는 실베스터 르베이는 “세계각국에서 공연하며 많은 스타들을 봐왔지만 한국은 특별한 나라이다. 를 공연한 임태경, 박건형, 박은태, 김준수 등 뛰어난 모차르트들을 능가할 멋진 스타탄생을 기대하고 있다”며 한국 예선에 대한 기대감을 보이기도 했다.
한국 예선을 주관하는 EMK뮤지컬컴퍼니 역시 숨어있는 새로운 뮤지컬 스타를 찾기 위해 지원자들에게 요구되는 30유로의 대회 공식 참가비에서부터 준결승 진출 시의 해외항공 및 숙박비까지 전액을 제공하는 등 이번 대회에 특별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또한 한국예선 우승자를 의 주역으로 캐스팅할 의사를 밝혀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EMK뮤지컬컴퍼니의 엄홍현 대표는 “국내 최초로 열리는 이번 대회는 유럽 뮤지컬 무대로의 교두보 이자 한국 뮤지컬계를 뛰어넘어 세계적인 뮤지컬 스타로 발돋움 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 이라 말하며 이번 오디션이 한국 뮤지컬 배우들의 실력을 해외에 널리 알리는 또 한번의 계기가 될 것 이라 전했다.
국내에서 이미 흥행에 성공한 를 비롯하여 2012년 공연을 앞둔 , , 등 세계적으로 흥행성과 음악성을 인정받은 뮤지컬 음악을 작곡한 실베스터 르베이의 이름 아래 런던, 프라하, 서울, 도쿄 등 전세계 13개국 각 도시에서의 예선 통과자들은 오는 6월 실베스터 르베이의 고향인 세르비아에서 준결승과 결승을 치르게 된다.
최종 결승 우승자는 5000유로의 우승상금을 비롯하여 부다페스트의 오페라와 뮤지컬 극장에서 상연하는 공연에 출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여자 만 18세부터 26세, 남자 만 18세부터 30세 이내이면 학력이나 기타 자격제한 없이 누구나 지원 가능하다.
-
“세시봉 그후 45년, 조영남콘서트”
지난 추석에 이어 올해 설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을 계기로 1960-1970년대 포크 음악 세대가 재조명되며 과거로의 음악 여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조영남은 무교동 음악감상실 세시봉 무대에 처음 오른 1966년 이후 45년 지난 2011년 3월 10~11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추억의 음악과 함께 자신이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을 예정이다.
모스틀리 60인조 오케스트라와 인천오페라 합창단이 함께하게 될 이번 콘서트는 클래식과 대중음악 현대미술을 넘나드는 조영남의 다채로운 예술 세계와 삶 자체를 총 망라한 대규모 콘서트가 될 예정이다.
특히 조영남의 세시봉 데뷔 이후 45년의 음악 인생을 되돌아 보는 시간으로, 조영남 공전의 히트곡뿐만 아니라 세시봉 시절에 부르던 노래와 입담으로 꾸며질 예정이어서 더 큰 기대가 모아진다.
시대의 종합예술인 조영남은
대중가수로서 최초로 예술의 전당에서 공연했으며, 화가로서는 힐튼 호텔에서 현대 미술전을 개최했다. 문학, 미술, 음악 등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만능예술인으로서의 모습보다는 관객들에게 좀 더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가는 가수 조영남. 관객석 구석을 누비며 살갑게 악수를 건네는 그의 모습에서 아버지의 향수를 느낄 수 있는 조영남의 추억여행을 통해 잔잔한 감동과 유쾌한 웃음을 선사할 것이다.
조영남 콘서트 예매사이트 1위 달성!
조영남의 서울 단독 공연인 는 지난 2월 14일 국내 공연 예매사이트 ‘인터파크’, ‘옥션’의 공연-콘서트 랭킹 예매순위 1위를 차지하며 세시봉의 맏형 조영남의 파워를 입증해 보였다.
조영남 게스트 이미자와 듀엣 호흡! 옛 추억의 감동 무대 ‘기대만발’
세시봉 그후 45년, 조영남 콘서트는 예매율 1위 돌풍과 함께 이미자의 게스트 지원으로 춘삼월 가장 주목할 콘서트로 꼽히고 있다. 작년 연말 디너쇼 맞대결을 펼치던 두 사람이 이번에는 한 무대에서 듀엣으로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려 준다.
당대 최고의 가수로 손꼽혔던 이미자가 조영남의 콘서트에 양일간 게스트를 나오는 것도, 여느 무대에서 거의 보여주지 않았던 듀엣무대를 선보이는 것도 이들의 오래된 추억 때문이라고 한다. 그 시대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과는 끈끈한 소통을 새로운 세대들과는 음악이 주는 힘으로 소통하기 위한 이들의 만남은 조영남 콘서트를 추억 속으로 빠져들 수 있는 이시대 최고의 공연으로 만들기에 충분하다.
조영남 작품의 모델은 이경실, 최유라, 박미선, 이성미!!
공연 당일 세종문화회관 로비에서는 화가 조영남을 만나게 될 예정이다, 화투를 모티브로 한 그림으로 유명한 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관객에게 제공함으로서 그림이 있는 공연으로 차별화 할 예정이다.
이날 전시에는 조영남의 대표적 상징물이 되어버린 화투 그림과 바둑알 그리고 소쿠리 등의 오브제 작품뿐 아니라 음악 세계, 현대인도 못 알아 먹는 현대 미술 등 그가 저술한 7권의 문학을 이번 전시회를 통해 총 정리해 선보일 예정이다.
또한 전시 작품 중에는 조영남이 직접 그린 연예인 지인들의 모습이 함께 있어 보는 재미를 더 할 것이다. 그의 모델로는 평소 절친으로 알려져 있는 이경실, 최유라, 박미선, 이성미가 함께해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가수 김수미 그녀는 누구?
가수 김수미는 초, 중, 고 학창시절 부여국악원에서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4호 “산유화가” 만오(晩悟) 박홍남(朴弘男)에게 사사받아 국악원수련 중 국악대회 등 각종대회 수상하는 등 재능을 높이 평가받아왔다.
또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다니는 내내 신동가수로 많은 축하무대에 초대될 만큼 왕성한 활동을 어려서부터 해왔으며 고등학교를 졸업 후 본격적으로 활동해 왔다.
가수 김수미는 동료 선 후배 가수들과 최전방 군부대 위문공연 및 교도소, 소외된 곳 등등 수많은 무대에서 그의 존재를 인정받아 왔으며 지난 8~90년 밤무대에서도 그의 인기를 가름할 만큼 하루 5~6곳 이상 무대에 올랐다.
또한 댄스가수로 활동할 시절,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국내유명 프로덕션 등 많은 곳에서 러브콜을 받아왔다. 하지만 그녀는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모두 거절했다고 한다. 무명가수가 러브콜을 받고자 동분서주 하고 있는데 반해 그녀는 이를 모두 거절했고 지금도 기획사 없이 나 홀로 가수로 활동을 하고 있다.
무대만 올라가면 끼를 발산, 180도 바뀌는 그녀는 조금 전 무대아래에서 보았던 얌전한 모습은 무대 위에서는 볼 수 없다. 하지만 관중은 무명가수가 무대로 올라오면 냉담하다. 그러나 그녀가 노래를 마치고 무대 아래로 내려오면 여기저기서 앵콜과 함께 함성이 터진다. 역시 가수는 무대 위에서 빛이 난다.
그러나 오랜 세월 본인 곡 없이 타인의(동료) 노래만 한다는 것이 늘 꼬리표 같이 따라다녔고, 결심 끝에 작곡가 송영수, 작사가 노왕금氏를 만나 1집 타이틀곡 “당신은 청개구리”라는 곡을 지난2006년에 제작하게 되었고 꿈에 그리던 본인의 노래를 발표 하였다.
그녀는 첫술에 배 부르는 법 없듯, 1집 “당신은 청개구리”라는 곡으로 큰 기대보다는 존재를 알리는데 고심을 많이 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2009년 2집 “왜떠나”를 발표했다. 2집 “왜떠나”는 1집 타이틀곡 작사를 맞았던 노왕금씨로 부터 선사받아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아직까지 방송사에서 그녀의 실력을 봐주지는 않지만 전국 각종 행사에 많은 초대를 받고 있는 가수 김수미는 본인 일에 최선을 다하며 한 우물을 고집하고 있다. 학연, 지연, 인연을 고집하지 않고 오로지 실력과 노래로 인정받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 진정 프로다웠다.
간간히 매체를 통해 그녀의 노래가 흘러나오기는 하지만 아직 많은 횟수를 말할 수 있는 상항은 아니다. 그러나 전국에 있는 많은 이벤트업체로부터 인정받고 있는 실력파 가수다.
가수 김수미는 국악인 어머니 피를 이어받아 그 끼를 저버리지 못하고 연예계에 발을 디뎌 온 세월도 어느 듯 26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고 한다.
경북취재본부 임미종기자
-
가수 나비 세바퀴 출연해서 조형기 펑펑 울린 이유가?
여자 솔로가수들이 대세인 요즘 ‘잘 된 일이야’로 꾸준한 인기를 모으고 있는 가수 나비가 MBC 버라이어티 “세바퀴”에 출연하여 감동의 물결을 일으켰다고 한다.
소속사 itm엔터테인먼트 담당자는 “나비가 가수 데뷔 후 처음으로 출연하는 버라이어티다. 라디오 고정 게스트나 음악 프로그램 등의 무대에는 많이 서 봤으나 게스트들과 섞여서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지 본인 스스로가 많이 걱정했다.”며 “개인 장기를 무엇을 선보일까 많은 고민을 한 결과 동요를 R&B 버전으로 불러 색다른 느낌을 주고자 하였는데 그 노래를 듣고 조형기씨가 감동하셔서 표현을 진하게 해주셨다.”고 전했다.
또한 관계자들에 의하면 현장에서 부른 동요는 나비가 직접 선곡 한 “산토끼”와 “아기 공룡 둘리” 로 시원한 가창력과 멋진 노래 실력을 선보여 함께 출연한 게스트들까지 뜨거운 박수를 보낼 정도였다고 한다.
나비는 지난 11일부터 3일간 홍대 상상마당에서 첫 콘서트를 열어 전석 매진이라는 성공을 하였으며, 음원 또한 순위가 계속 상위권에 머물며 2011년을 자신의 해로 조금씩 만들어 가고 있다.
-
달샤벳, ‘드림하이’ 최종회 출연
데뷔 곡 ‘수파 두파 디바(Supa Dupa Diva)’로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신예 6인조 걸그룹 달샤벳 멤버들이 인기리에 방영중인 '드림하이‘의 기린예고 학생이 됐다.
달샤벳은 지난 27일 경기도 한 세트장에서 진행된 KBS 2TV 월화드라마 ‘드림하이’ 최종회 녹화에 참여해 무사히 촬영을 마쳤다.
이날 촬영에서 달샤벳 멤버들은 끼 많은 기린예고 학생들로 깜짝 출연해 극중 백희(함은정 분)와 호흡을 맞추며 드라마 연기에 처음으로 도전했다.
촬영을 마친 달샤벳 지율은 “인기 절정의 드라마 ‘드림하이’ 최종회에 출연하게 돼 영광이다. 멤버들 모두 첫 드라마 출연이라 약간 긴장했는데 스태프 분들이 편하게 해주셔서 즐겁게 촬영할 수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한편, 달샤벳 멤버들이 카메오 출연하는 ‘드림하이’ 마지막 회는 지난달 28일 밤 9시55분에 방송 되었다.
사진설명: (왼쪽부터) 수빈, 세리, 지율, 비키, 아영, 가은
-
소이현, 베트남 전통의상 ‘아오자이’ 인형몸매 과시
배우 소이현이 베트남 전통 의상인 '아오자이'를 입고 환상적인 인형 몸매를 뽐낸다.
채널 올리브는 순백의 아오자이를 입고 베트남 호치민 일대를 여행하는 소이현의 아름다운 자태를 2011년 2월 27일 밤 11시 방송했다.
채널 올'리브와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공동 기획한 ‘잇시티-소이현의 인도차이나를 맛보다!’는 전 지구촌이 당면한 과제인 기후변화의 심각한 문제를 알리기 위한 취지로 제작됐다.
방송에서 베트남 전통의상인 ‘아오자이’의 공정과정을 세밀하게 소개한다. 제작진에 따르면, ‘아오자이’는 몸매의 곡선을 살리기 위해 신체 27개 부분의 치수를 재야 제작할 수 있을 정도로 공정이 섬세하다. 완벽한 몸매가 아니면 아름답게 소화하기 힘든 옷이다. 특히, 소이현은 인형몸매와 맑고 선한 눈매로 현지인들의 주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소이현은 아오자이 차림으로 호치민의 식도락 여행을 떠난다. 소이현은 쌀국수, 월남쌈, 베트남의 빈대떡 반 세오, 달콤한 핸드드립 커피를 소개한다. 이 밖에 벤탄 야시장, 사이공 강을 운행하는 디너 크루즈도 공개되었다.
이와 관련, 압구정 세미성형외과 박상현 원장은 “소이현씨는 선한 눈매와 균형 잡힌 몸매를 갖고 있는 여배우이다. 이번 방송을 통해 국내 시청자들에게 아름다운 베트남 외식 문화 그리고 기수변화의 문제점을 소이현씨의 안내로 시청할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베트남은 세계에서 6번째로 기후변화 대응 능력이 취약한 나라이다.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메콩강 일대의 곡창지대가 소금물에 덮이는 등 심각한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
소이현과 포토그래퍼 이영진은 베트남 호치민시와 메콩강 유역 일대의 기후변화와 이로 인해 영향을 받고 있는 지역주민들의 생활상을 사진에 담았다.
-
<심장이 춤춘다> SORI(김소리) 네번째 디지털 싱글앨범
길을 걷다가 한 남자와 마주한다. 거리 한복판에서 멈춰선 그녀의 발걸음, 그 남자를 보자마자 그녀의 심장이 미친듯이 뛴다. 예전에 사랑했던 한 남자를 잊지 못하고 아파하다가 세월속에 묻어두었던 그 남자를 어느 날 갑자기 거리에서 마주치게 되자 미친듯이 날뛰는 여자의 심리를 심장에 비유해 표현한 노래다.
곡의 시작부터 치고나오는 기타와 아코디언이 역동적인 멜로디 라인을 잘 감싸주고 있으며 슈프림팀의 폭발적인 랩핑이 이곡에 더욱 힘을 실어주고 있다.
또한 멈추지 않을 것만 같은 비트와의 대조적으로 서정적인 스트링이 여자의 감수성을 잘 나타내주고 있으며 때론 거칠게 때론 부드럽게 곡 사이사이 연결되는 악기와 목소리가 들을때 마다 지루하지 않고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시인 원태연 작가가 직접 작사에 참여해 그 여자의 아픈 심정을 “심장이 춤춘다.”, “눈물이 춤춘다”고 시적으로 표현해 주었다.
그동안 보아왔던 비걸 소리의 모습은 잠시 잊고, 감수성을 가득 안고 새롭게 돌아온 그녀의 감성적인 목소리에 지금부터 빠져보자!
-
씨엔블루, 3월 21일 컴백 확정
남성그룹 씨엔블루가 3월 21일 첫 정규앨범을 발표하고 가요계로 돌아온다.
씨엔블루는 지난 28일 오전 공식 홈페이지에 티져사진을 공개하고 3월 21일 컴백을 예고했다.
씨엔블루는 당초 2월 28일 티져를 발표할 예정이었지만, 뮤직비디오 촬영이 늦어지고 새로운 곡이 계속해서 나오면서 시기를 늦췄다. 앨범 후반작업에 박차를 가해온 씨엔블루는 결국 3월 21일로 첫 앨범 출시를 확정했다.
씨엔블루는 28일 공개한 사진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공개하고 첫 정규앨범에 대한 기대를 키우고 있고 있으며, 씨엔블루는 4명의 각기 다른 블랙의 옷차림의 흑백으로 표현하여 시크하고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씨엔블루는 이날 티저 사진 공개에 이어 3월 7일 1차 티저 영상을 공개할 예정이다.
씨엔블루 소속사 FNC뮤직 측은 “씨엔블루는 이번 첫 앨범을 위해 많은 것을 준비했다. 출시일이 한번 늦춰진 만큼 더 높은 완성도와 더 많은 만족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외모 콤플렉스 극복 컨설팅 “시청자 감동”
온스타일 프로그램 ‘패션 오브 크라이2’가 몸매 콤플렉스를 갖고 있는 여성의 전-후 모습을 공개해 시청자들의 높은 관심을 받았다.
지난 2011년 2월 26일 밤 11시 방송된 온스타일의 ‘패션 오브 크라이 2’는 기성 속옷을 입을 수 없을 정도로 너무 빈약한 가슴 사이즈 때문에 콤플렉스를 갖게 된 한 여성의 사연을 전했다.
메이크오버를 의뢰한 24세의 여진씨는 신체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자신감을 되찾아 당당하고 멋진 여성으로 거듭나기 위한 출연자의 깜짝 놀랄 메이크오버 과정이 생생하게 공개됐다.
이날 방송에서 전문가 ‘패크 군단’의 도움으로 일주일만에 100% 달라진 의뢰인의 모습이 눈길을 끌었다. 자가지방 이식 수술을 통해 기성 속옷을 입을 수 있는 가슴 사이즈가 된 의뢰인은 날씬한 몸매를 드러내는 원 숄더 미니드레스와 킬힐을 매치해 매혹적인 S라인 몸매를 선보였다. 또한, 언밸런스 헤어 스타일, 스모키 메이크업까지 더해 화려한 섹시미를 발산했다.
스타일리스트 김성일은 “단점을 커버하고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다양한 스타일링 노하우를 알려주겠다”며, “조금만 자신의 몸매와 패션 아이템에 관심을 가진다면, 주변에서 알아주는 패셔니스타가 될 수 있다.”는 유용한 정보를 공개했다.
청담동 지방흡입전문 포즈클리닉 황세일 원장은 “이날 방송에서 의뢰인의 사연을 통해 외모 콤플렉스가 소극적인 성격과 사회적으로 불합리한 평가를 받는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자가지방 이식 수술을 통해 의뢰인이 외모에 자신감을 회복하는 과정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패션 오브 크라이 2’ 연출자 양송철 PD는 “2% 부족한 스타일 감각을 가진 시청자들의 외형적인 메이크오버 뿐 아니라, 콤플렉스로 괴로워하는 내면 또한 보듬어줄 수 있는 프로그램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며, “특히 이번 출연자의 경우 콤플렉스 때문에 마음의 상처가 많았다. 메이크오버를 통해 자신감을 되찾고 밝게 변한 모습에 MC와 패크군단, 스태프들 모두 보람을 느꼈다.”고 전했다.
한편, ‘패션 오브 크라이 2’는 다양한 고민을 가진 시청자들의 스타일 변신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게 해주는 기적의 메이크오버 프로젝트 프로그램이다. MC들이 매주 국내 최고의 전문가들과 팀을 이뤄, 각각 사연을 의뢰한 시청자들을 1명씩 맡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변신할 수 있도록 돕는 내용을 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