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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3-17 17: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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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린 연주가 시작된다. 서글프고도 힘이 있는 소리. 꼭 채찍질하는 소리처럼 들린다. 그 소리에 피아노와 더블베이스, 타악기가 더해져 음악이 흐르면 어느 넓은 종마 장에 말들이 서 있다. 젊고 윤기가 흐르는 말들 속에 늙고 초라한 말이 서 있다. 음악극 ‘홀스또메르’의 첫 장면이다.

음악극 ‘홀스또메르’는 톨스토이의 ‘어느 말 이야기’를 각색한 작품으로, 음악극이니 만큼 음악이 이야기의 흐름을 이끌어가고 대사를 읊을 때에도 주제와 내용의 강도를 더욱 높여주고 있다.

이 작품은 홀스또메르와 세르홉스키 공작의 삶을 대비시키되, 말의 시각을 1인칭으로 놓아 우화로서 너무 무겁지 않게 다가서고 있다. 삶과 죽음, 사랑과 고통, 미(美)와 추(醜), 젊음과 늙음 등을 선명하게 드러내면서 산다는 것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진다.

순종인 부모에게서 얼룩빼기(잡종)말이 태어난다. 처음에는 그 얼룩 때문에 홀대를 받지만 러시아의 경기병 세르홉스키 공작이 그를 사가면서 그는 ‘얼룩말’이 아니라 ‘화려한 말’이 된다. 그의 행복한 시절은 짧게 끝난다. 공작의 연인이었던 마찌에가 다른 남자와 도망을 하자 공작이 홀스또메르를 무리하게 달리게 해 뒤를 쫓다가 불구가 된다. 그는 결국 이리저리 팔려 다니다가 자신이 태어났던 종마 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자신보다 더 늙고 초라해진 공작과 재회하지만 공작은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가 원해서 얼룩빼기로 태어난 것이 아님에도 외양만보고 잡종으로 분류하고 혹시라도 새끼가 태어날까 거세를 시키는 인간들의 잔인한 모습이 불편하다. 보이는 것이 중요한 세상을 살고 있으니 어느새 그러한 시각이 당연해진 때문일까.

말들의 세계에서도 ‘힘’이란 보이는 것에 있었다. 윤기가 흐르는 털의 색, 힘이 넘치는 다리, 아름다운 외양. 하지만 세르홉스키 공작은 홀스또메르의 숨겨진 재능과 아름다움을 알아보았다. 공작의 소유가 된 2년 동안 자신의 기상과 질주할 수 있는 자유를 맘껏 누리면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내는 홀스또메르. 그의 이름은 넓은 보폭을 가졌다는 뜻이다. 누구보다 빠르고 자유로웠지만 결국 세르홉스키 공작의 소유욕 때문에 학대당하고 불구가 된다.

공작의 소유욕은 ‘내 것’이 많으면 많을수록 행복해진다고 착각하는 인간들의 욕망을 꼬집는다. 결국 홀스또메르도 공작의 소유였기 때문에 ‘화려한 말’로 살 수 있었던 것이고 그가 불구가 되자 공작은 쓸모없는 것, 이 잡종 말! 이라고 폭력을 가한다. 어쩌면 마찌에를 찾아내었다고 해도 그는 똑같은 일을 당했을지 모른다. 결국 말 못하는 약자에게 온갖 분통을 쏟아내고 말테니까.

‘내 것’에 대한 애정은 없으면서 단지 양적으로 늘리기에만 집중하고, 빼앗기는 것에 엄청난 분노를 느끼는 소유욕은 상대방에게도 자신에게도 가해지는 폭력의 극대화였다. 이야기에서 세르홉스키 공작은 마찌에를 잃음과 동시에 젊음과 당당함, 부를 탕진하고 초라하고 가련하게 늙어간다. 상실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이다. 홀스또메르는 공작과 있을 때 “그는 사랑하지는 않고 잔인하고 차가웠지만 당당했다”고 말한다. 공작의 소유욕은 무분별한 삶을 가속화시키고 망가뜨렸던 것이다. 자그마한 행복은 그에겐 가치가 없었을 지도 모른다. 화려하고 강하고 자극적인 것만이 의미가 있었을 테니까.

1막에서는 “누구나 중후하게 늙을 수도 있고, 추하게 늙을 수도 있고, 혹은 중후하고 추하게 늙을 수도 있다” 고 말들의 입을 빌려 얘기하고, 이어 2막에서는 “누구나 중후하게 늙을 수도 있고, 추하게 늙을 수도 있고, 때론 가련하게 늙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마지막 말이 달라지는 것은 세르홉스키 공작의 말로 때문일까?

보브린스끼 공작의 종마 장에서 해후한 세르홉스키 공작과 홀스또메르. 홀스또메르는 그를 알아보지만 공작은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어떻게 날 알아볼 수 있었겠습니까?”라는 홀스또메르의 슬픈 목소리와는 달리 “내게도 저 얼룩빼기와 비슷하게 생긴 말이 있었어”라는 공작의 말은 허무하기 짝이 없다. 혹시 알아보았다고 해도 인정할 수 없었으리라. 늙고 초라한 자신과 똑같아진 홀스또메르를. 이제 죽음이라는 당연한 끝을 바라보게 되었다는 것도.

음악극 ‘홀스또메르’는 연극적이지만 끊임없는 음악이 흐르고 있는데 그 음악이 유려해 좀 더 작품을 잘 표현하고 이해시키고 있다. 톨스토이는 이 작품을 통해 대조와 원자화를 통해 ‘날 것 그대로의 삶의 진실’을 선명하게 드러내고 종국에는 홀스또메르의 전 생애를 축조해 냄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질문하고 있다.

젊은 말들을 연기하는 앙상블의 호흡이 좋은데 각자의 캐릭터를 살리면서도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말들의 움직임을 잘 보여주고 있다. 얼굴을 감싼 가죽과 말꼬리를 형상화한 간단한 분장으로 이미 종마 장의 말들이 되어 있다. 늙은 말이라고 왕따하고 학대하다가 홀스또메르의 삶의 이야기를 열심히 듣는 그들, 관객들도 어느새 그들에 이입되어 작품 안으로 들어가게 된다.

톨스토이의 삶과도 연결되어 있는 ‘홀스또메르’의 인생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오는 30일까지 영등포 타임스퀘어 내 CGV 신한카드아트홀에서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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