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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3-22 13:3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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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엘 도르프만(Ariel Dorfman)의 ‘과부들’은 2012년 극단 백수광부의 47번째 정기공연 작품으로 동아 연극상 작품상, 올해의 연극 베스트3(한국 연극 평론가협회),공연 베스트7(한국연극)로 연극계 주요 상을 휩쓴 화제작이다. 칠레 현대사의 비극을 합창과 춤을 곁들인 고대 그리스 서사극 형식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계곡을 둘러싼 작은 시골 마을. 마을에는 여자들만 남아있다. 군대에 끌려가 생사조차 알 길 없는 남자들을 기다린다. 마을은 군대의 강력한 통제 속에 있고 여자들은 가능하면 그들과의 마찰을 피하려고 한다. 늘 강가에 앉아 아버지, 남편, 아들들을 기다리는 쏘피아를 비난하면서.

어느 날, 강을 따라 시체 한 구가 떠내려 온다. 고문과 부패로 얼굴조차 알아볼 수 없게됐지만 쏘피아는 자신의 아버지라며 소유권을 주장한다. 그러나 마을의 평화유지를 책임지는 중위는 불편한 질문들이 제기될 것이 두려워 그녀의 요구를 무시하고 시체는 비밀리에 불태워 버린다.

이후, 또 한 구의 시체가 떠내려 오고 같은 상황이 반복되자 새로운 대위는 쏘피아의 주장을 묵살하고 다른 과부에게 시체를 양도하고 장례식을 치른다. 하지만 동네의 서른 여섯 명의 과부들 모두가 시체 소유권을 주장한다.

언젠가 본 이야기가 떠올랐다. 유괴된 소녀의 엄마가 아이의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녀의 아이를 죽인 유괴범은 또 다른 피해자들이 있다. 아이의 실종신고를 내놓고 기다리고 있을 부모들에게 차마 당신 아이가 죽었다는 말을 전하기 두려워하는 수사관에게, 아이의 엄마가 말한다. “이들의 엄마를 지옥에서 구해주세요”

공연을 보는 내내 그 말이 떠올랐다.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가족. 손가락하나만이라도 있어 장례를 치르게 하는 편이 낫다고 한 대위의 말이 옳다. 그들은 왜 그토록 잔혹한 짓을 했을까? 끝내 여자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저항할 때까지 통제하다 못해 억압하고 폭력을 행사한다.

군부독재 치하에서 일어난 실종, 고문, 폭력으로 얼룩진 사회. 너무나 낯익어 소름끼칠 정도다. 다만, “생사여부를 알려주고 장례를 치르기를 원하고 그들의 죽음에 책임이 있는 자들을 벌하라”라는 쏘피아의 주장은 하나도 틀리지 않다. 사람이 살아가는 사회라면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그런 주장을 했다고 어린 손주를 인질로 삼아 고문 하는 군인들.

군인이란 나라를 지키는 것이 아니었던가? ‘나라’는 무엇이고, ‘군인’은 누구인가? 군인들의 총 칼에 대항하는 과부들의 무기는 죽은 자를 위한 노래와 함께 맞잡은 손, 그뿐이었다.

총으로 쏘피아와 그녀의 어린 손주를 위협하는 대위의 모습은 이미, 비겁하다. 그에게 그녀들의 이야기는 그저 귀찮은 일거리일 뿐이며 자신을 향한 음모이다. 그러나 곧 닥칠 죽음 앞에서 다정하게 쓰다듬으며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쏘피아의 차분한 목소리는 숭고함마저 느껴졌다. 과연 누가, 죽은 자이며 누가, 살아있는 사람인가?

어떠한 위협 앞에서도 결코 꺾이지 않는 쏘피아의 의연한 모습에 뭉클했다. 또한 과부들이 마침내 서로의 손을 잡고 똑바로 앞을 향하는 모습에 먹먹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또 보이는 사람들을 향한 예우. 그녀들이 곧 그들이기에.

힘을 가진 집단은 어째서 그 힘에 휘둘려 ‘사람’이기를 포기하는가? 맹목적인 복종으로 이루어진 그 세계는 과연 제대로 살아갈 수 있는 곳인가 하는 의문이 든다. 만일, 그들이 속한 집단이 패한다면, 그들의 아내들도 ‘과부들’이 될 터인데. 그들이 강에 떠내려 오는 시체 한 구가 될 터인데. 거기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는 것인지, 외면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확실한 것은 숨이 붙어 있다고 해서 ‘산 자’는 아니라는 것 뿐.

마지막에 아직 말을 못하는 동생에게 소녀가 말한다. “난 기다리겠어, 네가 말을 할 때까지. 말을 배워야해. 이야기들이 외치고 있어” 그래, ‘살아있는 자’의 이야기를 전할 사람이 있어야한다. ‘죽은 자’들에게 외쳐야한다. ‘산 자의 이야기’를.

숭고한 희생과 저항의 화신 쏘피아 역에 예수정, 현실적이고 조직적인 대위 역에 한명구를 비롯, 전국향, 이지하, 박완규, 박윤정 등 탄탄한 연기력을 갖춘 배우들 대부분이 다시 참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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