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처장 박승춘)는 영국 육군 대장 안소니 파라 호커리(Anthony Farrar-Hockley)를 4월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중공군은 지평리 전투에서 패배하고 서울마저 다시 국군이 수복하자 1951년 4월 총 70만이라는 대병력을 한반도에 집결시켜 대공세를 시작했다. 이는 문산에서 화천에 이르는 110km의 전선에 중공군 36개 사단과 북한군 1개 군단을 투입해 단숨에 서울을 함락하려는 전략이었으나, 임진강 전투에서 영국군 글로스터 대대 800여 명은 중공군 3개 주력사단 4만 2,000명을 상대로 사력을 다해 맞섰다. 이 과정에서 중공군의 발이 3일 동안 묶였고 한국군과 유엔군은 안전하게 철수해 수도권 북방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하고 서울을 사수할 수 있었다.
중공군 3개 사단의 인해전술에 맞서 글로스터 대대원 800명중 41명의 전우만이 살아남은 처절한 전투를 치뤘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역만리 한국 땅에 파병되어 이름없는 곳에서 자유와 명예를 위해 싸우다 산화한 영국 글로스터 대대의 숭고한 희생을 두고 그들은 말했다. 당신들의 미래를 위해 우리는 오늘을 바쳤다고 (“For your tomorrow, we gave our today').
인해전술을 앞세운 공세로 비록 글로스터 부대는 와해됐고 파라-호커리 는 “무기를 내려 놓으라”는 항복 명령을 자신의 입으로 외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고 생각됐지만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고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고 되뇌였다.
이 전투는 비록 졌지만 군인으로서 본분을 다해 결과적으로 서울로 신속하게 진격하는 역할을 맡고 있는 중공군 63군 3개 사단이 작전에 차질을 빚게 만들어 중공군의 사기를 크게 떨어뜨리고 중공군 남하작전을 실패하게 만들었다.
벤 플리트 미8군 사령관은 “글로스터 대대는 현대전에 있어서 단위부대의 용기를 과시한 가장 뛰어난 귀감”이라고 격려했다. 글로스터 대대는 완전히 포위된 상태에서 많은 희생을 감내하며 끝까지 ‘대영제국 군인’의 명예를 지켜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