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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4-23 16: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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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스트 박사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학․석사를 마친 지성인이었으나, 진리를 향한 끝없는 그의 탐구심은 방향을 잃어 마술에 몰두하고 점성술과 예언에까지 심취하다 결국 악마와 영혼을 건 내기에 이르게 되어 결국 살해당한다. 16세기 실존했던 인물로 알려진 파우스트 박사의 이야기는 그 시대 독일에 널리 알려져 있었고, 셰익스피어와 동시대인 크리스토퍼 말로의 ‘파우스트 박사의 비극적인 이야기-Tragical History of Doctor Faust’는 실제 영국 유랑극단에 의해 독일에서 자주 공연됐다.

파우스트 박사의 이야기는 많은 예술가들의 영감을 불러 일으켰고 괴테 역시 그러했다. 평생에 걸쳐 ‘파우스트’를 완성한 것이다. 읽다 지쳐 결국 내려놓게 된다는 이 심오한 작품은 오랫동안 문학, 음악, 미술 등의 작품으로 재창조되며 끊임없이 사랑받고 있다. 연극 ‘메피스토’는 ‘파우스트’를 박사가 아닌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 초점을 맞췄다. 언제부턴가 이야기의 주체로서 점점 존재감이 커지는 것은 메피스토의 유혹이 실제 우리의 욕망과 맞아떨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다 이룬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러한 상황을 보게 될 때면 “왜?”라는 의문이 생긴다. 다 이룬 것처럼 보이는 그 사람은 무엇 때문에 그러한 선택을 한 것인가 자연스레 의문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의 마음에 깊이 침전돼 있을 이유를 알 수는 없지만, 다만 한 가지 그가 이루어 낸 모든 것을 더해도 넘어설 수 없을 만큼 깊은 절망이 있었을 것은 자명하다. 그래서 파우스트도 말했다. “허무하고 허무하다. 모든 것이 무의미한 밤이로다.

허무함에 시달리던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의 유혹에 자신을 넘겨주고 만다. 최고가 되기 위해 놓았던 것들 중 여전히 그에게 아쉬움으로 남겨진 것들, 그 모든 것을 더한 것은 바로 ‘그레첸’이었다. 젊음을 되찾고 순수하고 사랑스러운 시골처녀와의 사랑을 원한 것이다. 그것이 파우스트 박사의 이상향이었다. 그는 사랑을 이루지만 결국 그레첸은 그의 욕망을 위한 제물이 되고 만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박사는 모든 것을 돌려놓으라고 절규하지만 이미 늦어버린다.

악마 메피스토펠레스. 그는 누구인가? Mephistopheles는 빛을 사랑하지 않는 자, 혹은 사랑해서는 안 될 빛이라는 뜻이 있다. 연극에서 그는 환각과 꿈을 통해 파우스트에 곁에 바싹 다가온다. 박사가 가장 바라는 이상향을 꿈꾸게 하고 열정적으로 원하게 만들고 계약서에 사인하지 않을 수 없게 그를 몰아간다.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게 도와주는 최고의 조력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결국 가장 소중한 것을 훔쳐가려는 자, 그가 메피스토인 것이다.

연극 ‘메피스토’는 여배우 전미도를 악마 역으로 캐스팅했다. 연기력도 좋지만 목소리가 아름다운 여배우였던 전미도의 변신은 “미쳤다”는 말이 나올 만큼 충격적이었다. 주로 남자들이 맡아왔던 메피스토 역을 굳이 여배우가 한다는 것이 흥미로웠는데 섹시한 느낌보다 중성적인 느낌으로 살려냈다. 무엇보다 탁성을 사용한 발성으로 인간이 아닌, 무엇인가가 공기 속에서 말을 걸어오는 느낌의 대사들은 오싹하리만치 대단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지 않고 자꾸만 제자리로 돌아가려는 파우스트 박사를 달래고 협박하고 가끔은 비겁하리만치 비위를 맞춰주지만 메피스토는 가장 원하는 담보물을 얻었기에 신과의 내기에서 이길 수 있으리라고 자신만만하다. 그렇기에 하잘것없는 인간인 파우스트에게 때로는 굴복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것이다. 원하는 것을 위한 집념이 어디서 많이 보던 모습이라 섬뜩하다.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한다”는 대사는 파우스트의 모습을 대변한다. 그는 허무하다면서도 그 상황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비록 잘못된 선택이었지만. 그래서 메피스토는 그를 책망할 수 있었다. “내가 당신에게 달라붙었소. 아니면 당신이 나를 불러들였소?”라고. 그리고 그 답은 오히려 파우스트 박사를 구원해준다. 타락을 선택한 것도, 유혹에 붙들려 타락을 시작한 것도 자기 자신임을 깨닫는 순간, 그는 “잘못을 인식하고 더 나은 것을 지향하려는 노력으로 구원받는 것”이다.

결국 인간이 이를 수 있는 구원이란,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부터가 아닐까? 그 다음은 인간이 어찌할 수 없으니 신이 필요하게 되겠지만. 괴테가 이 작품을 통해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그러한 노력이 있기에 신은 인간을 포기하시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연극의 마지막에 메피스토의 당당한 물음은 점점 힘을 잃어 간다. 신이 인간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그의 유혹은 오히려 인간이 구원을 향해 가는 길을 돕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잘못을 인정하는 일은 어렵고, 그럴 수 있는 인간은 얼마 안 되겠지만.

파우스트역의 정동환 배우가 작품의 중심을 잘 잡아주고 있어 전미도배우의 메피스토가 더 멋지게 놀 판이 준비된 것이 아닌가 생각할 만큼 절묘한 호흡이 돋보인다. 배우들의 일사불란한 움직임, 꼭 필요한 만큼만 움직임으로 신비로움을 더한 무대와 영상, 연극임에도 풍성하게 극의 진행을 채워주는 음악, 서재형 연출과 한아름 작가콤비가 빛을 발하는 멋진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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