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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5-03 14:3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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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봉선화’는 지난해 11월 초연을 통해, 일제 강점기 위안부 문제를 정면으로 다뤄 관객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원작 소설 ‘에미 이름은 조센삐였다’를 작가 윤정모가 직접 극본으로 참여, 위안부로 끌려갔던 여성과 그 아들, 손녀의 이야기까지 아우르고 있다. 해방 후 70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여전히 망언으로 부인되고 있는 역사를 위안부들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가 함께 해결해야할 문제로 제시한다.

예술대학의 학장으로 차기 총장으로 내정돼 있는 배문하는 딸 수나가 ‘식민지 속의 여성’이라는 주제로 석사 논문을 쓴다는 말을 듣고 반대하면서 과거를 회상한다. 일제 강점기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조선인 학병 배광수를 살리고 귀국 후 그와 결혼하지만 평생 폭력에 시달린 어머니를 그는 소중히 여기면서도 괴로워한다. 그런 그의 마음을 아는 어머니는 그의 장래를 생각해 아들의 곁을 떠난다.

한편 딸 수나는 남자친구와 함께 위안부 문제에 대해 조사하던 중 우연히 80년대 익명의 작가 김산해가 쓴 소설 ‘조센삐’를 발견하고, 그 내용이 위안부 기자회견을 한 김순이 할머니의 증언과 거의 같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13살, 14살. 아직 젖가슴도 생기지 않은 꽃 같은 소녀들이 잠시 장에 다녀오던 길에 납치되어 끌려간 곳은 전쟁터였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연극은 대단히 사실적인 묘사를 하지는 않았지만 소녀들이 당한 일들의 잔혹한 실상을 느끼게 한다. 그 와중에도 악착같이 모았던 군표가 패전으로 인해 휴지조각이 되자 피난할 짐을 줄이려고 버리는 장면은 서글펐다. 흩뿌려지는 군표를 잡으려고 필사적으로 움직이는 소녀들의 모습은 얼마나 가련한지.

수나의 논문을 반대하면서 아버지인 문하는 말한다. “너는 그 가족들의 삶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은 있니? 그들이 얼마나 아프게 살아왔을지 생각이나 해본 적이 있느냔 말이다”라는 말을 할 때 그는 아버지가 아니라 위안부였던 어머니를 둔 아픔 속에 여전히 머물고 있는 소년이었다. 자신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가 너무나 소중한데, 그 어머니의 과거를 받아들이는 것이 괴로워서 외면하고 싶었던 아들은 아버지가 되어서도 여전히 성장하지 못한 것이다.

상처는 피가 나고 쓰라려도 약을 바르고 시간이 지나야 딱지가 앉고, 또 떨어져야 새살이 나는 것이다. 아무리 급해도 절차는 밟아야한다. 아무리 아파도 참고 직면해야하는 것이다. 그 과정을 무시하면 제대로 새살이 돋지 못하고 덧나는 것이다. 일생 지워지지 않는 흉터가 생기는 것이다. 장인이 이사장으로 있는 대학의 학장이고, 총장내정자로 성공한 듯 보일지라도.

사실 살아가는 일에 치이다보면 과거의 일들은 나와는 관계없는 듯 지나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나온 과거가 있기에 오늘이 있는 것이다. 구태환 연출가의 말처럼 “과거의 잘못된 것을 바로잡지 못한 현재는 언제나 떳떳하지 못한 것’이다. 연극 한편으로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연극을 본 사람들은 알게 되는 것이다. 달라져야한다는 것을”.

남자친구의 영향으로 대학원 논문주제를 잡았던 수나가 변해가는 과정은 아마도 우리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조금씩 알아갈수록 포기할 수 없는 일이 되고 중요한 의미가 되어 마침내 그녀는 온전히 다가서게 된다. 수나가 사실에 다가설수록 더욱 진지하게 이 문제들을 감싸 안았듯이 이 연극을 본 우리에게도 숙제가 주어졌다. 이제 이 역사를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알아야하는 것이다.

매주 수요일, 일본 대사관 앞에서 23년째 수요 집회가 열린다. 굳게 닫힌 대사관의 문과 블라인드로 가려진 창문들 앞에서 끊임없는 외침이 이어져왔다.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역사의 증인들이 점차 사라져가고 있기에.(정부에 피해 사실을 등록한 234명 가운데 생존자는 55명만이 남았다.) 이 연극이 계속 올려 져야 하는 이유이다. 마지막에 문하처럼 피맺힌 절규를 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한편, 5일엔 어린이날 특별 연극 체험행사 ‘봉선화 피기까지’를 진행하고, 7일엔 한국 독립유공자유족회 분들을 위한 공연이, 그리고 8일엔 어버이날 ‘위안부’ 할머니들을 위한 특별 헌정 공연이 준비돼 있다. 다양한 방법으로 이 공연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접하는 기회가 많아지기를 소망한다. 함께 마음을 모아줄 사람이 늘어가길 바란다.

초연보다 역사적 고증을 충실히 하고 불필요한 부분은 잘라내어 이해를 높인 연극 ‘봉선화’는 원작 소설가인 윤정모 극본, 구태환 연출, 김혜련 예술감독, 서울시극단의 배우들이(이사장-이창직, 배문하-강신구, 배광수-김신기, 배수나-최나라, 순이할머니-이재희, 젊은 순이-황연희, 인숙-이경, 유진호-권재원, 옥분-인혜선, 어린순이-강보미) 함께 하고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오는 11일까지 공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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