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극단 자유의 김정옥 각본, 최치림 연출, 주호성 협력연출의 ‘꽃, 물 그리고 바람의 노래’를 관람했다.
김정옥 (金正鈺) 선생은 1932년 전남 광주에서 의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서울대학교 불문과에 진학했고, 1956년 프랑스로 가 소르본 대학 영화학 연구소에 다녔다. 이 시절 그는 특히 부조리연극의 선구자들인 이오네스코.아라발.주네 등의 연극을 직접 보면서 일찍이 전위 실험연극에 눈떴다. 3년 만에 귀국한 그는 국내 최초로 영화과를 창설한 중앙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그는 학교에서는 영화를 가르쳤지만 학교 밖에서는 연극 활동을 했다.
선생은 1961년 이화여자대학교 문리대 연극반에서 공연한 아리스토파네스의 ‘리시스트라타 Lysistrate’의 연출을 시작으로, 1963년 극단 민중극장의 동인으로 참여해 ‘대머리 여가수’ ‘달걀’을 연출했다. 1966년 극단 자유를 창립해 창립공연 ‘따라지의 향연’을 비롯한 많은 작품을 연출하며 지금까지 이 극단을 이끌어왔다. 또한 그는 ‘영도’ 동인으로 활동하면서 시를 발표했고 1959년 ‘사상계’신인 현상문예에 시 ‘오후’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으며, ‘여기는 언제나’ 등의 시를 발표했다.
선생은 초기에는 주로 몰리에르·골도니 등 유럽 고전 희극과 이오네스코.아라발.올비.베케트 등의 부조리극을 다루었다. 그러나 1970년 최인훈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를 연출하면서 그의 평생의 주제라고 할 수 있는 만남과 죽음에 대한 연극적 놀이가 시작되었다.
이후 ‘무엇이 될꼬 하니’(1978, 박우춘).‘달맞이꽃’(1982, 김병종).‘바람부는 날에도 꽃은 피네’(1983, 김정옥).‘이름 없는 꽃은 바람에 지고’(1987, 김정옥) 등 서정과 낭만이 넘치는 제목의 창작극들을 연출하면서 그의 일관된 주제의식을 드러냈다.
한편 그는 ‘피의 결혼’(1982)과 ‘햄릿’(1993) 등 죽음의 의미를 파멸과 종말로 규정하며 죽음을 공포와 연민의 매개로 사용하는 서양의 고전극을 한국적 장례의식과 굿의 형식으로 재구성하기도 했는데, 이때 죽음을 삶의 친숙한 일부로 놀이화하여 동양적 인생관과 한국적 미학에 접목시켰다.
김정옥 선생은 1995년 6월에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국제극예술협회(International Theater Institute/ITI) 세계 총회에서 아시아인으로는 처음으로 회장이 되었다. 그는 1997년 중앙대 교수에서 정년퇴임했으며, 2000년 한국문화예술진흥원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연극계에 몸담아 오면서 수십년 동안 수집한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2004년 얼굴박물관을 열었다. 2007년에는 고령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연극 ‘국밥’을 연출했다. 대한민국문화예술상(1979).프랑스정부문화훈장(1984).예술문화대상(1989).대한민국예술원상(1993).최우수 예술인상(1995).은관문화훈장(1998) 등을 수상했다.
무대는 개막전 망사막에 영상으로 투사한 연극의 제목이 눈길을 끌고, 연극이 시작되면, 흩날리는 꽃잎 영상과 함께 어린이들의 노래 소리가 들리면서 아름다운 한편의 시가 망사막에 차례로 나열된다.
막이 열리면, 커다란 영사막이 중앙보다 왼쪽에 자리를 잡은 게 보인다. 그냥 평평한 영사막이 아니라, 안으로 부드럽게 휘어져 배경과 약간의 거리를 두고 고정되어 있다. 거기에 그림자 연극과 각종 영상이 투사되면서 장면변화에 대처한다. 때로는 천정에서 흰 망사막이 무대바닥까지 내려와 거기에 숲, 날리는 꽃잎 같은 영상이 투사되어, 극의 분위기와 조화를 이룬다.
진도 씻김굿 장면에는 천정에서 제웅형태를 오려 제작한 백색의 두꺼운 종이를 늘어뜨리거나, 다시 올려 효과를 발휘하고, 마지막 영혼혼례장면에는 백색의 길게 늘어뜨린 천을 출연자들이 끌면서 등장해 신랑각시인형과 제웅, 나뭇잎을 의식에 사용하고, 천정에서 늘어뜨린 그네 같은 걸개로 백색 천을 들어올린다.
대단원에는 합창과 함께 흩날리는 꽃잎과 함께 다시 한 번 시어가 망사막에 나열되면서 극을 마무리 한다. 무대 오른쪽에 타악기 연주석이 있어 극적분위기 상승에 일조를 하고, 음악과 구성진 노래, 그리고 춤이 극의 내용과 절묘하게 어우러져 관객을 깊은 서정과 감성의 나라로 이끌어간다.
내용은 인접한 두 나라가 적대국관계에 들어가 전쟁을 벌이게 된다. 각기 왕자와 공주가 있는 것으로 설정이 되고, 공주가 있는 나라가 패전을 거듭해 백성들과 함께 피란을 나서야 할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공주는 죽은 이들의 한을 풀어주어야 한다며, 제사 올리기를 고집하고 피란하기를 거부한다. 공주의 오라비는 강제로라도 데려가려한다. 전승국의 왕자가 들이닥치고, 포로가 된 공주의 마지막 소원인 망자제사 치르기를 허락한다.
과거 소년소녀시절, 공주는 한 때 숲속에서 호랑이의 습격을 받아 절대 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왕자가 쏜 활에 호랑이가 죽어, 목숨을 건진 일이 있었음이 무대에 재현된다. 그 일로 두 사람의 마음에 사랑의 씨앗이 자라나고, 왕자가 준 단검을 공주가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음도 알려진다. 그러나 공주의 오라비는 공주를 왕자에게 시집을 보내는 것은 정당한 혼례라기보다는 적국에 공주를 볼모로 잡히는 격이라며, 시집을 보내느니, 차라리 죽이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품고 있다.
망자제사를 치르기 전날, 공주는 꿈속에서 왕자와 춤을 추는 꿈을 꾼다. 꿈에서 깨어난 공주 앞에 왕자가 실제로 등장해, 여직 것 공주를 사랑하고 있노라며 무릎을 꿇고 고백을 한다. 그리고 청혼을 한다. 공주의 밝아지는 모습에 관객은 저마다 가슴이 벅차오름을 감지하게 된다. 아! 그러나... 공주 오라비의 자존심을 건 혼사반대로... 그림자연극에서 쏜 화살이 결국.....공주의 운명을 접한 왕자는 스스로.....
대단원에서 망자의 혼례식이 슬픔 속에서 아름답게 치러진다. 출연자들의 씻김굿 행렬과 함께 극락왕생발원(極樂往生發願)이라고 쓴 기치(旗幟)가 관객의 가슴을 적실 즈음, 백색의 꽃송이 같은 공주의 독무가 긴 여운을 남기고, 내려진 망사막에 투사되는 꽃잎의 흩날림과 노래 속에 다시 시어가 나열되면서 공연은 끝이 난다.
정재연, 홍지우, 채진희, 변주현, 박 웅, 오영수, 권병길, 박민관, 염철호, 백종오, 남기오, 김수환, 조이경, 남국현, 강신혜, 김유민, 신혜옥, 양용은, 박성훈, 이준희, 배대영 등 출연자 전원의 호연과 노래가 관객의 갈채를 받는다.
미술총감독 이병복, 제작 이혜정, 무대디자인 임창주, 조명디자인 최형오, 그림자극 백남영, 가면디자인 이수은, 의상디자인 양재영, 도살풀이 안무 김운선, 조명감독 김건영, 촬영감독 권승종, 음향감독 이응도, 사운드디자인 남기오, 조연출 이상은, 무대감독 김현민, 무대진행 정지미, 분장 정완식, 안무 홍지우, 프로두서 오송이, 프로두서 박창민, 공연경영 김재영, 홍보팀장 강유진, 마케팅팀장 전온세 등 제작진 모두의 열정과 기량이 제대로 드러나, 극단 자유의 김정옥 각본, 최치림 연출, 주호성 협력연출의 ‘꽃, 물 그리고 바람의 노래’를 고품격이면서도 가장 한국적이고 친 대중적인 연극으로 만들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