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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7-15 10:5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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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리어를 연기하는 배우, 미네티’는 토마스 베른하르트가 베른하르트 미네티에게 헌정한 ‘미네티-늙은 예술가의 초상’이 원작으로 셰익스피어 탄생 450주년을 기념하는 제2회 셰익스피어 문화축제의 마지막 작품이다. 국내 초연인 이번 공연에서는 배우 오순택 선생이 작품에서 튀어나온 듯 미네티로 분한다.

한 노인이 겨울, 어느 바닷가의 호텔에 들어온다. 시립극단의 단장이 ‘리어왕’을 연기해 달라고 해 약속을 했으나 늦게 도착했다고 하는 그는, 한 때 훌륭한 배우로 활약했으나 어떤 일로 인해 무대에 서지 않은지 벌써 30년이 지나버린 배우이다. 오랜 시간동안 고집을 부리다 결국 호텔에서 쫓겨난 노배우는 대서양 바닷가에서 마지막 연기를 선보이고 사라진다.

노(老)배우의 목소리는 공기를 뚫고 귓가가 아니라 마음에 닿았다. 허스키하고 느릿한 말투, 지친 듯 움직이는 작은 몸짓. 그의 허리끈이 풀려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릴 때에도 결국 자신의 손이 아닌 다른 손이 옷을 입혀줄 정도로 노쇠한 그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누구도 그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는다. 그는 이제 빛나는 무대 위의 배우가 아니기 때문일까.

오순택 선생의 미네티는 힘없고 늙어버린 노배우이지만 관객에 대해, 리어에 대해, 프로스페로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두 눈에 생기가 돌고 깊은 집중력으로 압도해 왔다. 기운 없이 지친 듯한 미네티에 대한 연민이 들다가도 퍼뜩 정신이 들만큼.

극단 단장을 기다리면서 그가 하는 독백은 다만 독백일 뿐이다.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군중이 몰려나와 그의 독백은 흩어져버리기도 한다. 가면을 쓴 그들은 미네티를 무시하고 적대시한다. 그의 말조차 툭툭 끊어먹는다. 그러나 다른 등장인물들의 말도 결국 미네티의 대사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한꺼번에 몰려오는 경이로움은 감동적이다.

‘더도 말고 딱 한번만’ 리어를 연기하고 싶다는 그의 소망은 그러나 극장에서가 아니라 겨울 바닷가에서 이루어진다. 앙소르가 제작한 리어가면을 쓰고 그는 가면을 쓴 것만으로 리어가 되는 것이다. 그의 대사는 딸들에게 버림받은 리어의 것. 세상으로부터 배척당한 그는 마지막으로 저항한다. 막다른 곳에 서 있는 것이다, 그의 인생처럼.

‘연기한다는 것은 제 본성대로 존재하는 것’이라 가르침을 준 스승을 향한 제자들의 헌정 공연이라 공연 후 커튼콜조차 뭉클한 감동이 있다. 배우 오순택 선생이 세상으로부터 떨어져나가 오직 집념으로 살며 예술과 인생에 대한 광기과 저항을 보여주어 깊은 감동과 진한 여운을 전한다.

90이 넘은 명배우에 작가가 헌정한 작품, '리어를 연기하는 배우, 미네티'는 마치 오순택 선생을 위해 기다려온 것 같다. 이번공연은 서울예대 첫 제자인 이윤택이 연출을 맡고, 많은 제자들이 함께 출연하길 희망해 오순택 선생의 미네티 역 이외에는 더블, 트리플이 많아 출연 배우만 해도 40여명에 이르고, 연희단거리패 대표 김소희가 함께 힘을 보태어 노배우와 스승에 대한 존경의 마음으로 바치는 헌정공연이기 때문이다.

오순택 선생은 한국배우 최초로 헐리웃에서 성공한 배우로, 대표작으로는 영화 '007 황금총의 사나이'가 있고, 아시안 배우로는 파격적으로 캐스팅되며 영화, 연극, 뮤지컬, TV드라마까지 다방면으로 활동했다. 또한, 현지에서 다민족 연극 활동을 주도함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서울예대 등에서 연기를 가르쳤고 국립극단에서 마스터클래스를 진행하기도 하며 후학양성에 힘을 쏟았다.

단지 무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존재감만으로 무대를 채워버리는 노배우의 모습은 경이롭다. 연극 '리어를 연기하는 배우, 미네티'는 번역에 류은희, 안무 김윤규, 오순택과 김소희 외에 이승헌, 이민우, 박경찬, 이명행 등이 출연한다. 오는 19일까지 충무아트홀 블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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