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4-08-14 23:52:13
기사수정

괴물처럼 보일만큼 주름진 노안의 사내가 남자의 피를 마시고 젊은 남자로 변신한다. 강렬한 붉은 눈동자, 남자는 기묘한 섹시함과 공간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로 세상 모든 것을 삼켜버릴 것만 같다.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Fresh Blood’ 마지막 장면이다. 살아있는 인간의 신선한 피를 빨아먹으며 영원을 살아가는 괴기스러운 존재임에도 눈을 뗄 수 없이 매력적인.

뮤지컬 ‘드라큘라’는 아일랜드의 작가 브램 스토커(Bram Stoker)의 걸작을 원작으로 ‘지킬앤 하이드’의 프랭크 와일드혼이 아름다운 음악을, 데이비드 스완이 연출을 맡았다. 2001년 샌디에이고에서 초연, 2004년 브로드웨이에 입성했고, 스웨덴, 오스트리아, 영국, 캐나다, 일본 등에서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2014년, 마침내 한국의 관객들과 만난다.

논 레플리카(라이선스 작품이라 해도 수정, 보완이 가능한)방식으로 제작을 하는 만큼, 제작팀의 고민이 좋은 성과를 보이고 있다. 프로듀서 신춘수(오디뮤지컬 컴퍼니 대표)는 앞으로 영국과 호주에서 공연될 예정인데 그 때에 이번 한국 버전을 쓰고 싶다고 작곡가인 프랭크 와일드 혼이 양해를 구해올 정도라며 큰 자부심을 보였다.

전임자의 갑작스런 병으로 트란실바니아의 드라큘라 백작을 찾아온 조나단 하커는 불길한 느낌에 약혼녀 미나를 서둘러 돌려보낸다. 백작의 런던 이주를 돕는 일을 맡은 후 조나단에게 아무런 연락이 없자 미나는 그를 걱정한다. 어느 날 신비한 느낌의 남자를 만나게 된다. 분명 처음 보는 데도 낯설지 않은 이상한 느낌. 다가오는 그를 밀어내면서도 친구인 루시에게 특별한 키스를 하는 것을 보게 되자 질투를 느끼는 자신이 혼란스럽다.

한편 노스페라추에게 아내를 잃고 뱀파이어 헌터로 명성을 날리게 된 반헬싱 교수는 하커의 전임자 렌필드의 이상한 증세를 보고 드라큘라의 존재를 알아챈 후 필사적으로 뒤를 쫓는다. 그 와중에 미나의 친구 루시가 뱀파이어가 되어 희생당하고 미나마저 이상한 증세를 보인다.

사실, 100년이 넘게 사랑받아온 소설답게 스토리는 탄탄하고 클리셰의 전형이라고 할 만큼 익숙하다. 불멸의 존재, 자신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서라면 인간의 목숨쯤은 아무 가책 없이 해칠 수 있는 잔인한 속성, 어찌 보면 영원히 살고 싶어 하는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을 이루어 준다며 달콤한 속삭임으로 자기 자신마저 속이는 존재이다. 그러나 한없이 매력적이고 한없이 이끌리는,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십자가와 마늘, 성경책을 치우고 기다리게 만드는 것이다.

너무나 익숙해서 한숨이 나올 정도의 뻔한 이야기인데도 계속해서 공간을 이동시키는 회전무대, 영상과 적절히 조합한 조명을 통해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분위기를 잘 살려주고 있다. 과하지 않아서 인지 세련된 느낌마저 주고 있다. 무엇보다도 좋은 배우들의 합이 작품 자체를 매력적으로 살아나게 하고 있다.

특히, 드라큘라 역을 맡은 류정한과 김준수는 같은 스토리지만 전혀 다른 매력의 드라큘라로 극을 이끌어 가고 있다. 클래식하고 귀족적인 느낌의 독보적인 배우 류정한의 드라큘라는 그의 최대의 무기인 중저음의 넘버가 귀를 사로잡는다. 넘버와 캐릭터에 맞춤옷인 목소리와 외모가 정말 몇 백 년을 살아오면서 지루하고 지치기도 했을 공허함과 지독한 외로움이 아릿하게 느껴져 안타까울 정도이다. 마침내 가장 원하던 것을 품에 안은 순간, 마지막을 선택하는 장면은 부족한 개연성과 급작스런 전개에도 불구하고 배우의 역량으로 충분히 커버된다.

허스키한 음색과 여전히 소년 같은 김준수 배우는 피를 통한 생명을 보여주고자 빨간 머리를 하고 있는데 판타지적인 존재감을 외모에서도 확연히 느낄 수 있다. 다년 간 뮤지컬 무대에서 갈고 닦은 실력이 빛난다. 인상적인 것은 미나와의 운명적인 사랑의 절실함으로, 그녀를 향한 기다림이어서인지 몇 백 년의 시간도 그에게는 길지 않았던 듯 진심을 다한 애절한 사랑이 먹먹하다. ‘She’와 ‘Loving You Keeps Me Alive’를 보고 있노라면 사랑을 향한 절절함에 절로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특유의 음색은 연기와 더해져 극적으로 가슴에 파고든다.

The Longer I Live, At Last(Finale) 단 두곡의 넘버로 부족한 스토리의 구멍을 드라큘라 역의 배우들이 제대로 메워준다. 자신이 선택했으나 저주받은 운명과의 싸움을 끝내려는 류정한의 드라큘라는 끝까지 고귀함을 잃지 않는다. ‘이제 당신을 만났으니 그만 쉬고 싶어’의 느낌이 든다. 반면, 김준수의 드라큘라는 사랑하는 미나를 눈앞에서 잃을 것을 두려워한다. ‘내가 당신을 포기하면 당신은 살 수 있어. 하지만 난 당신 없인 살 수 없어, 그러니......’라고.

류정한의 드라큘라가 사랑을 품고 평안한 안식을 향한다면 김준수의 드라큘라는 어쩐지 먼 훗날 또 다시 미나를 찾아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불멸의 존재, 신에 반(反)해 생명의 법칙을 거부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잔인한 존재이면서 사랑하는 연인을 잊지 못하고 몇 백 년을 기다려 함께 하기를 꿈꾸는 이중적인 존재, 드라큘라. 운명적인 사랑을 잊지 못하는 드라큘라의 애절한 사랑은 아름다운 넘버를 타고 다가와 어쩔 수 없는 이끌림에 저항하지 못하는 미나의 마음을 이해시킨다. 찰나일지라도 그 뜨거운 열정을 느껴보고 싶어지니까.

뮤지컬 ‘드라큘라’는 핏빛 입맞춤으로 기괴하고 서늘한 분위기를 이어가지만 한편으론 서글프고 안타까운 사랑이 흘러넘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완전히 다른 매력의 류정한과 김준수의 드라큘라는 특별한 아우라와 카리스마로 작품 전체를 압도하고 있다. 실제로 드라큘라가 나오지 않는 장면에선 긴장감이 조금 떨어지는 아쉬움이 있다.

반 헬싱교수 역의 양준모, 루시역의 이지혜가 원 캐스트로 앙상블들과 극을 받쳐주고 있으며 드라큘라의 운명적인 연인 미나 머레이 역에 조정은, 정선아, 미나의 약혼자이자 사랑을 지키키 위해 아픈 맹세까지 하는 조나단 하커 역에 카이와 조강현이 안정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또 렌필드 이승원, 잭스워드 변희상, 퀸시 모리스 양승리, 아서 홈우드 정동효, 뱀파이어 슬레이브 이현정, 김서윤, 신세계는 기묘하고 서늘한 느낌으로 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뮤지컬 ‘드라큘라’는 예술의 전당 오페라 하우스에서 오는 9월 5일까지.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할용해주세요.

http://www.hangg.co.kr/news/view.php?idx=14873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리스트페이지_R001
최신뉴스더보기
리스트페이지_R002
리스트페이지_R003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