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시 윌리엄스의 자서전 작품으로, 비정한 현실을 피해 기억과 환상으로 도피하는 고독한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유리동물원’이 오는 30일까지 한태숙 연출로 명동예술극장 무대에 오른다.
연극 ‘유리동물원’은 해설가이자 작가의 분신인 톰 윙필드가 어머니 아만다와 누나 로라에 대해 회상하면서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억의 연극’으로 톰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는 나레이터 역을 겸하면서 상실감과 좌절에 갖힌 윙필드 가족의 삶을 무대 위에 재현한다.
해설자 톰이 설명하듯 작품 속 시대 배경은 30년대 경제공황과 실직, 가정 파탄으로 인해 좌절과 충격에 빠진 미국으로, 다닥다닥 붙은 성냥갑 같은 서민아파트에서 과거의 향수에 집착하는 어머니와 사회적 은둔자인 누나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톰은 학교를 중퇴하고 아버지의 구두공장에서 일하던 작가 자신의 모습이다.
작가의 가족 역시 남부에서 세인트루이스로 이적한 적이 있고, 작가는 톰과 같이 낮에는 구두공장에서 일한 뒤 밤에 집필했고, 그의 누나는 실제로 정신분열을 앓았고, 그러한 성격상의 장애가 작품 속 로라에게 반영됐다. 톰은 로라를 떠난 후 에도 그녀를 잊지 못한다. 이는 당시 정신분열증으로 오랫동안 괴로워했던 누나를 안타깝게 여기고 그리워했던 작가의 마음이 투영된 것으로 보인다.
극도로 내성적이고 사교성 없는 절름발이 로라와 구두공장에서 일하면서 시를 쓰면서 선원을 꿈꾸고 있는 톰, 과거의 화려했던 꿈을 회상하며 두 아이들에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 어머니 아만다. 모두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자신이 창조한 환상세계로, 영화의 세계로, 또 과거의 추억 속으로 도피하는 고독한 인문들이다.
이 작품에서 그려진 이만다는 살아있는 에너지를 스스로 만들어 늘 희망적 기대를 가진 여자지만, 남부의 전통적 사고방식과 화려했던 과거, 남편이 남긴 옛 추억에 광적으로 집착한다. 비록 남편은 떠났고, 부유한 삶도 무너졌지만, 그리운 과거는 현재의 고난을 견디는 힘이 되기에, 현실의 중압감을 느낄 때마다 신사 방문객과 무도회에 대해 이야기한다. 두 개의 세계에서 살고 있는 그녀는 아들의 성공과 딸에게 찾아올 멋진 신사 손님(구혼자)을 고대하면서 자식들이 남부에서의 영화를 회복시킬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는 현실에서 실현될 수 없는 환상에 불과하다.
연극의 나레이터이자 아만다의 아들인 톰은 가혹한 현실에서 벗어 날 수 있는 모험을 동경한다. 현실은 못마땅하지만 그는 집을 나간 아버지와 같이 쉽게 가족의 생계를 포기할 수 없어 회사 화장실에서 시를 쓰거나 영화관과 술집을 방황한다.
또 수시로 과거로 도피하는 아만다와 달리 로라는 자신만의 세계를 창조하고 있다. 어릴 때 병으로 한쪽 다리가 불구가 됐고, 바깥세상을 두려워해 사회생활이 불가능한 그녀는 학교도 가지 않고 공원, 미술관, 동물원 등을 혼자 다니면서 타인과의 소통이 필요 없는 혹은 불가능한 세계에 갇혀 있게 된다. 점점 더 고립되는 로라는 자신이 돌보는 유리동물들과 같이 꺼내기만 해도 부서질 듯 연약한 상태가 돼 버렸다.
로라의 구원자이자 윙필드가에게 탈출구가 될 수 있었던 짐은 사실 윙필드가 사람들보다 더 철저히 현실적인 이름의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한때 소위 ‘잘 나갔던’ 고교생은 물류창고에서 일하며 야간 직업학교에서 재도약의 미래를 꿈꾸고 있다. ‘구원’의 희망은 결국 더욱 큰 좌절과 실망감을 안겨주지만 짐의 자극으로 인해 로라가 조금이라도 고립된 세계를 깨고 밖으로 나가려 한다.
이 작품은 거대한 벌집같이 밀집된 아파트의 궁핍한 삶, 바둑판처럼 연결된 좁은 골목의 무료한 일상 속에서도 골목 후미진 곳 연인들의 키스, 질펀한 스윙음악과 댄스홀이 동전의 양면과도 같이 서정성을 극대화 한다.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가는 인물들의 위태로움과 공간을 채우는 긴장감은 연출가 한태숙에 의해 섬세하게 그려지는 동시에, 티격태격하면서도 애정에 묻어 나오는 윙필드 가 식구들의 모습은 때론 이야기로 만들어진다.
아만다 역으로 캐스팅된 김성녀는 “굳이 정신이상자가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모두 추억과 과거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살면서 겪었던 사람들을 참고해 과거의 행복을 온 몸으로 표현해낸다.
이 밖에 ‘전쟁터를 훔친 여인’ 등을 통해 연극계 스타로 떠오른 배우 이승주가 시니컬과 아이러니가 동시에 담긴 작가의 분신 톰을, 부서질 듯 연약한 로라 역으로 정운선이, 짐 역에는 심완준이 출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