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자가 걸려있지만 아무도 없다. 어떤 사진이 걸려있는지 알 수 없다. 극이 진행돼야 비로소 빈 액자가 뜻하는 것이 사무치게 아프다. 간결한 무대와 네 사람의 배우, 그러나 무대는 알 수 없는 슬픔과 공포로 서서히 물들어 갔다.
연극 ‘가족의 왈츠’는 지난 2004 국립극장 신작희곡페스티벌 당선작으로, 이어 6월 국립극장에서 초연, 같은 해 10월 연우소극장에서 공연돼 독특한 구성과 깔끔한 스타일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2014년 영화 ‘해무’의 원작 작가인 김민정과 최근 대학로에서 연극 돌풍을 일으킨 ‘유도소년’의 박경찬이 연출을 맡았다.
18년간의 수감생활을 한 아버지가 휴가를 받았다. 귀휴 나온 아버지가 도착할 시간이 다가오자 어머니는 방문을 걸고 들어가 버린다. “네 아버지는 내게 없는 사람이야”라면서, 계단을 오르는 아버지의 발자국 소리가 점점 커지고 인수의 머리와 마음을 복잡하기만 하다. 그리고 다시 흐른 18년의 세월. 세 명의 가족이 식탁에 마주 앉는다.
연극은 내내 인수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현실과 기억, 시간과 공간이 교차되는 형식이다 보니 조금 헷갈리는 면이 없지 않다. 전개되는 시간이 36년이나 되는 까닭이다. 작품이 시간의 순서에 따라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인수의 기억에 의한 것임을 인지하면 조금 이해가 수월하다.
작품을 올리기에 앞서 박경찬 연출은 “기억은 기록이 아닌 해석”이라며 “인간의 기억은 기호(嗜好)를 갖고 있다. 기억의 기호에 따라 가족에 대한 시선도 달라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결국 인수의 기억이 가진 왜곡으로 인해 그의 인생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삶도 다르게 보일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 스스로 물어 볼 기회인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기억이란 얼마나 정확할까? 같은 장면을 보아도 깜짝 놀랄 만큼 다른 이야기들이 ‘진짜’라고 우겨진다. 그만큼, 기억이란 ‘왜곡’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어린 시절의 이야기가 되면 기억에 시간이 더해지기 때문에 기억하고 싶은 무엇만이 남아버린다. 나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실상, 소중하다해서 남겨진 기억을 추억할 뿐, 진실과는 거리가 있는지도 모른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보이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과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연극은 가족의 의미를 묻고 있다. 인수의 기억이 깊숙한 지점에 이르면 서글프고 잔혹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서로 돌아보지 않고 외면해온 가족, 더 이상 도망치지 못하는 순간에서야 마주한 진실은 앞으로의 시간을 변하게 만들어줄까? 이제 제대로 서로를 안아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특별히 이번 ‘가족의 왈츠’는 8, 9월 캐스팅을 다르게 함으로써 같은 작품이지만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무대를 마련했다. 8월에는 ‘가족’팀이 9월에는 ‘왈츠’팀이 공연을 올려왔고 시간을 잘 맞춰본 관객이라면 배우의 해석에 따라 같은 작품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지 흥미롭지 않았을까?
18년 만에 돌아오는 아버지 역할에 손진환, 오병남, 어머니 역에 이현주, 배소희, 기억 속에만 존재하는 이모 역에 성라경, 임유정,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인수 역에 유성진, 서신우가 호연하고 있다. 주관적일뿐만 아니라 취사선택을 하고, 파렴치하게도 왜곡을 일삼는 기억에 대한 이야기, 연극 ‘가족의 왈츠’는 대학로 극장 동국에서 오는 28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