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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09-24 12:5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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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열전 5’의 두 번째 작품인 연극 ‘프라이드(연출 : 김동연)’는 로열셰익스피어컴퍼니를 비롯하여, 여러 극단에서 활동한 배우 출신의 영국 작가 알렉시 캠벨의 작가 데뷔작으로, 2008년 영국 내셔널 씨어터 초연 후 그해 비평가협회, 존 위팅 어워드, 로렌스 올리비에 어워즈 등 평단과 관객의 호평뿐 아니라 상까지 휩쓸었다.

1958년과 2014년을 넘나들며 같은 이름을 가진 세 남녀가 등장해 각기 다른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단순히 성소수자들의 이야기만이 아니다”라는 연출의 소개처럼 인물들이 서로를 향한 사랑과 침묵, 포용과 용서를 통해 성장하는 모습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1958년. 삽화작가인 아내 실비아가 함께 일하는 동화작가 올리버를 집으로 초대한다. 남편인 필립은 아내를 기다리며 올리버와 이야기를 나누는데 호감과 함께 알 수 없는 느낌을 받는다.
2014년. 연인인 필립과 올리버는 올리버의 섹스중독 때문에 결국 헤어지고 그를 잃을 수 없는 올리버는 친구인 실비아에게 고민을 털어놓는다.

1958년.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 ‘죄’로까지 치부되었다. 필립은 올리버를 향한 끌림을 치료받아야하는 병이라고 생각했으며, 올리버 역시 필립을 만나기 이전에는 여자랑 만나 아이를 낳고 살아가다보면 고쳐질 거라고 생각했었다. 용기를 내어 다가서려했던 올리버는 결국 필립에게 가혹한 상처를 받게 된다.

그러나 진실하고자 했던 올리버와는 달리 스스로를 가둬버린 필립이야말로 가장 큰 상처와 아픔 속에 남겨진다.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의미를 알면서도 두려움이란 감옥에 스스로를 가둬버린 것이다. 어쩌면 올리버만이 그를 꺼내줄 수 있는 유일한 열쇠임에도 그는 그 손을 잡지 못했으니까.

실비아는 어느 순간부터 알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신이 잊혀진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얼마나 아팠을까? 그녀의 깊은 슬픔과 아픔, 공허함. 사랑할수록 텅 비어가는 인생. 그럼에도 그녀는 필립이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바랬다. 상냥하고 따뜻하고 지혜로웠기에 그녀의 마음은 그렇게 강인한 의지를 가졌었던가보다.

그토록 아픈 시간에도 필립과 올리버를 향한 따뜻한 배려와 포용을 잊지 않는다. 쓰리고 아프게 베이는 순간에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잃지 않을 수 있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최고의 자부심, 'Pride'가 아닐까?

2014년의 필립과 올리버, 실비아는 과거의 그들과는 다른 사람인지도 모른다. 다만, 길을 잃어버린 영혼, 아프리카를 향한 동경, 필립의 뒷모습, 잠 못 이루는 밤.......대사를 통해 시대를 넘어서 그들의 영혼을 대비시키고 이야기를 교차시킴으로 낭만적인 교감을 갖게 할 뿐이다. 이 기막힌 연출을 통해 3시간이나 되는 러닝타임은 지루함은 커녕 마법의 시간이 된다.

올리버의 지나친 섹스중독으로 헤어질 위기에 처한 두 사람. 그러나 올리버는 그 과정을 통해 알아간다. 필립의 의미를. 그가 곁에 있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의 연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이 누구인지. 그를 그답게 만들어주고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사람이 누구인지. 숨이 끊어져가는 친구를 코가 다 깨지도록 수면위로 끌어올려 끝까지 살리려는 돌고래. “그래, 너는 돌고래니까.”라는 올리버의 말이 뭉클하다.

타인의 시선 때문에 스스로를 찾지 못하던 필립에게 올리버가 말했다. “자신에게조차 진실하지 못하다면,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죠?” 2014년의 올리버와 필립은 상처받고 아파하면서 스스로에게 진실하고자 서로에게 다가선다. 자신이 자신일 수 있고 그런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것, 그들은 진짜 삶을 향하고 있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내가 응원할 테니까.
내 목소리가 당신에게 닿을 때까지. 당신이 당신에게 닿을 때까지.”

작품의 각색을 담당했던 지이선 작가가 원작에는 없으나 쓴 이 대사는 이 연극을 가장 잘 함축하고 있다. 1958년의 실비아가 자꾸만 더 깊은 감옥 속으로 침묵하는 필립을 위해 결국 스스로 그를 떠나면서 한 독백이지만, 어쩐지 자신이 누구인지 고민하는 모두에게 건네는 다정한 위로처럼 스며든다.

두려움이라는 감옥 속에 스스로 갇혔던 58년의 필립과 자존심과 상처보다 사랑하는 마음을 선택한 용감한 2014년의 필립 역에 이명행, 정상윤, 진실한 삶을 찾기 위해 노력했던 58년의 올리버와 필립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찾을 수 있었던 귀여운 올리버 역에 박은석, 오종혁, 사랑할수록 텅 비어가는 아픔보다 사랑하는 이의 행복을 빌어주는 아름다운 사람 58년의 실비아와 삶과 친구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가진 2014년의 실비아 역에 김소진, 김지현, 판타지적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의문의 나치, 치료가 아닌 폭력으로 동성애자들을 대했던 의사, 게이에 대한 긍정적 시선 만들기를 지향하는 편집장, 짧지만 강렬한 등장을 선보이는 1인 3역에 최대훈, 김종구, 좋은 배우들의 호연이 작품을 더 진실하게 전달하고 있다. 연극 ‘환상동화’ ‘심야식당’등의 김동연 연출과 ‘모범생들’의 작가 지이선이 각색을 맡았다.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되면 좀 더 자유로워질지도 모른다. 아프게 깨지고 무너지더라도, 산산조각날 것 같아 두려울 지라도, 진실이 무엇인지 마음 깊은 곳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혹시 그 용기가 필요해 망설이고 있다면 필립과 올리버, 실비아를 만나러 가자. 대학로 아트원 씨어터 2관, 오는 11월 2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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