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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4-11-16 20:5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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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0년간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룬 한국에서 정치계파의 과점 현상이 두드러지게 등장한 것은 1956년 이후다. 이시기는 동족 상잔의 아픈 6.25를 치루면서 농업국가에서 공업국가로 약진하는 한반도에 정당이라는 새로운 제도가 나타나면서 등장한다.

한국 민주당이 1956년경 태동하고 서로 친하거나. 비슷한 가치, 같은 정강 정책을 만들려는 의지에 의해서 친소(親疎) 관련이 매우 밀착되게 나타나면서 계파가 등장 한다.

정치적 특수 이익, special profit of politics 정치적 이익의 방향성이 같은 이들이 무리를 만들며 친밀한 여건하에 모인 인재들의 모임을 계파라고 한다. 우리정치사에서 파동으로 명명되기에 해당이 되는 현상이 하나 존재한다. 여기서 선국 후당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나라가 우선이고, 정당의 이익이 다음이다는 주장이 등장하면서 계파는 자기 이익을 위한 집단을 만드는 것이다.

진산파는 당시의 야당에서 1968-1972 년 사이에는 가장 큰 계파를 지닌 파벌로 성장 한다. 이 시기에는 정치 계파가 가장 강하게 작동한다. 유진산 계파가 커진 것이 바로 진산 파동 전후다. 우리정치사에서 파동으로 명명되기에 해당이 되는 현상이 하나 존재한다.

진산파동 본말(本末)

정치적 중도론의 밭에서 1971년 5월 6일 영등포 갑구가 지역구이던 당시 당 총재가 유진산이다. 그는 내부 협의도 없이 지역구를 모 후보에게 주고 유진산 본인이 1번 전국구 의원의 후보등록을 미리 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신민당의 지역 전국구 의원 접수일이 1971년 5월 25일, 10여일 남은 시기에 접수한 것이다. 1970년 유진산의 지명을 받고도 대선 후보경선에서 이기지 못한 김영삼은 노심초사 중에 김대중이 당권한 대행이 된 것은 당헌에 어긋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김대중의 당권한 대행차지는 아무리 후보가 포함된 입장이라도 법리상 불가능하다는 것을 김영삼이 보고를 듣고는 반격에 나선다. 3일 천하로 마감된 진산파동을 야당인들은 당시에 잊지 못한다. 당권을 그 파동으로 김대중이 가질 수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물론 진산 파동과 2014년 8월 7일 박영선 협상 파동은 다르다. 국회의원 지역구, 비례 대표를 선순위로 자기계파가 차지할 수 있다는 내부의 당권 투쟁 적인 당 계파 과점의 적폐가 일정 기간 그 파동들의 허리체에 매여 있는 것이다. 2014년 세월호 정국에서의 박 대표의 협상방식에 대하여 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이의를 제기. 이를 8.7 파동이라고 부르기 시작하는 당원이 는다.

정치적 심간(心間)

8.7 박영선 1차 파동이후 한국 정치 제세력들은 페이스 북, 댓글 네티즌 정치파워에 휘둘리는 모습을 보여 왔다. 새정치민주연합내의 몇 가지 파벌들은 그들 전통과 연게된 고유 파벌들은 그들의 색체를 견지하면서 성장 하는 셈이다. 정치적 심간의 차이가 이들 파벌의 정책 차이를 만드는 것이다.

진산파동은 2014년 8월7일의 박영선 파동과는 다르다. 그것은 생각의 전개 과정상 세월호법을 둘러싼 정치 파문이라서 그렇다. 2014년 박영선 파동은 그 파동을 일으킨 30년 전의 1971년 진산파동은 다르다,......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이런 파벌들이 업무적으로 서로 장애가 되는 길로 통할 것이다. 이런 파벌들이 한국의 보수 정당, 130석을(2014.11.16일현재) 가진 새정치민주연합에서 무슨 역할을 하는 가를 봐야 할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에는 이런 파벌이 존재한다.

계파 정치의 내밀한 부분을 알아 보기위해 일본의 록히드 사건을 먼저 들여다보자. 파벌 정치가 만연한 일본에서의 스캔들이다. 한국에서는 정치 현실에서 추구하는 이익이 다르다보니 다른 모습으로 파벌이 생성된다,

하나. 학생 운동파

학생 운동파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한국에서의 학생 운동파는 김대중과 김영삼이 나이가 들어서도 젊은 이미지를 고양하면서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고령 대통령도 하려는 정치적 세상의 수학 논리를 갖고 출발한 파벌 인재 영입 패턴이다.

이성헌 연세대 총학생 회장이 김영삼을 연세대에 강연자로 초청하면서 학생 운동파들의 제도권 민주파에서 자리를 얻게할 수 있는 계파 과두 체제의 시작이다. 가능한 늦어도 제도 도입 취지가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절차와 그 내용이 민주적이어야 한다. 민주제도에 흠결을 보이는 세력에 대하여 민주주의 수호 투쟁을 하려는 세력이 바로 제도민주파이다.

둘, 지방 자치 태생파

지자체에서 당선된 이들이 바로 이파에 속한다. 박원순 서울시장, 안희정 충청남도 지사 파가 있다. 6.4 지방선거에서 9개의 광역 자치에서 승리한 이들의 지지세가 나타나는 중이다. 지방 분권은 박원순 시장의 세력이 커지는 중이다.

셋, 민생파

두드러지는 것은 민생 정치 파들의 등장이다. 이는 정치판에서 국가의 미래를 보고 무슨 정치를 할 것인가를 고민한다.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선거에서 출마한 당시 세력이다.

이들 민생파들은 다시 재기를 꿈꾸면서 ‘대륙으로 가는 길’이란 조직을 만들어서 언제인가 찾아올 정치적인 기회에 남북 평화정책을 100% 햇볕정책의 수렴을 강조하는 중이다. 민생파의 리더는 정동영이다. 그는 10년 후 통일이라는 저술을 집필 통일론을 중심으로 활동을 펴는 중이다.

넷, 비근시정치(비非近視政治)파

이들은 파벌로 존재, 네셔널 리즘 Nationalism도 반대하지만, 이념지향을 반대한다. 민생파의 항해를 하다가 이파의 길을 걸을 것으로 평가돼야 한다. 이들 파벌이 근시안적으로 행동하지는 않는다.

다섯, 일자리 집중 추구파

이들은 일자리 정책이 2017년 대선을 좌우 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것을 일하는 워크 페어 Workfare가 이들이다. 이들은 일자리 창출의 공약을 주로 개발한다. 경제 민주화를 위하여 더 노력을 한다. 이들은 을지로 위원회를 통하여 수권 대안 정치를 추구한다. 우원식 최고위원을 축으로 하는 정파로 갈 가능성이 크다. 일자리정책을 가장 중시하는 인재들이 모아져야 한다.

여섯째, 실용주의파

2014년 단통파의 리더격인 조해진의원이 리더로 추구하는 파다. 새누리당이 말하는 정치 시계, 민생 시계를 멈추어 서지 않게 해야 한다고 하는 공약에서는 새누리당의 실용주의 파다. 물질적인 성장을 더 추구하지만 현장에서 문제를 풀려한다.

일곱째, 공약 정책개발파

지역 감정이 없는이 전개되는 무 지역 감정의 정책 파이다. 정책으로 승부를 보려한다. 이들은 현안은 현안대로 진실을 향하여 노력을 집중해가되, 정책을 중심으로 한다. 이들이 다양한 정치 경향을 분석하는 일에 치중하되, 지역감정에 의존하지 않는 정치를 하고 있다.

여덟째, 해외의 계파

브루킹스 연구소는 미국의 민주당 계열의 의원들을, 해리 티지 연구원은 미국 공화당의 미래를 위한 정책 자문을 한다. 이들 외에 미국식 랜드 연구소를 중심으로 하여 정책 방향과 절차를 정해서 정부 집권 후의 나라가 균형 발전 중심주의를 긍정적으로 정책으로 입안하되 이들을 바탕으로 지지세를 모아가게 하는 것이다.

계파는 강함에 의거하여 패권형 계파, 순수 계파, 이미지 단계의 유사계파 이미지계 파벌에 누구 누구가 새로운 가입을 하게 된 소식도 이들에게 알려 지게 된다. 격랑의 세월을 그림자 같이 극복하고 의사당에서 그래도 2위의 의석을 차지하게 된 김대중은 이희호 여사의 의지대로 오늘은 바다 색상의 넥타이를 맸다. 평화 민주당이 70석의 의석을 얻게 된 것은 김대중이라는 파벌의 맹주 인물을 만나게 된 평민계를 차리고 나선다.

지난 1987년 대선에서 ‘재야로부터 비판적인 지지를 받은 김대중’ 후보는 김영삼에게 져서 자존심 상한 득표를 한다. 노심초사 중에 김대중은 자기가 당시 대선에서 비판적인 지지를 받고도 2위를 하지 못한 책임이 시민 재야 세력으로부터 몰리지 않을 것인가를 걱정한다.

김대중은 당총재 대행에 재야에서 성장하다가 평민계파로 당에 들어 온 박영숙 부총재를 당 총재 대행에 맡기고 본인은 정신을 차려, 정치치적인 피신을 한다. 분리 출마로 인하여 야권은 둘로 살림살이를 나눠 갖는다. 아울러 한 지역구에서 한명이라면 김대중과 김영삼은 서로이기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큰소리로 장담을 하던 양 김이었다. 1969년 신민당 대선후보 선출대회에서 1차 투표에서 김영삼은 유진산계의 지지로 421표, 김대중계 382표, 이철승계 76표를 얻는다.

434과반수에서 13표가 부족한 김영삼계는 2차 표결에서 진다. 이철승계가 김대중을 지지 한 것이다. 당시의 이철승 계파의 2인자인 조연하의 김대중 지원이 유효한 것이다. 2차 표결에서 김대중은 458표, 김영삼은 410표를 받은 것이다.

당시에도 계파의 결속력이 유진산계가 지지한 김영삼보다, 김대중의 독자 노선으로 투표를 한 김대중계가 단단한 단합력을 보인 것이다. 이처럼 계파는 정치인이 크는데는 보이는 힘으로 작용 한다.

지금의 김무성 새누리당의 대표 최고위원, 김문수의 파벌, 정몽준 파벌은 나름의 파벌이라고 부를 만한 파워가 생길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은 2015년 2월 8일 전당 대회로 당권, 공천권을 가진 당수를 선발한다. 이런 권한을 탐하는 세력들이 계파 해체를 주장하나 믿는 국민은 많지 않다. 한국 정치에서 이들 계파는 계륵과 같은 존재라는 점에서 유념해서 관찰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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