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으라고 하세요.”국민들이 굶어죽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마리 앙투와네트의 대답이라고 전해졌던 말이다. 훗날, 역사학자들에 의해 그녀를 폄하시키기 위한 루머였음이 밝혀졌음에도 그녀를 떠올리면 자연스레 뒤따라오는 씁쓸한 이야기다. 그녀라면 그런 말을 했을 거라고 믿게 만든 것은 누구인가?
오스트리아 여제의 딸로 프랑스의 왕비에서 아들과의 추문으로 인한 단두대처형까지, 마리 앙투아네트는 극적인 삶으로 인해 수많은 예술의 뮤즈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본 작가 엔도 슈사쿠의 소설 ‘퀸 마리 앙투아네트’에 기초해 극작가 미하엘 쿤체가 각색한 뮤지컬 ‘마리 앙투네트(연출:R.Johanson)’는 ‘모차르트’ ‘엘리자벳’ ‘레베카’에서의 콤비 실베스터 르베이와의 신작이다.
1779년, 프랑스 국왕 루이 16세의 통치 시절, 국민들은 굶주림과 빈곤에 시달리지만,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를 필두로 상류층의 귀족들은 호사스러운 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배고픔에 굶주린 마그리드는 오를레앙 공작의 파티에 숨어들어갔다가 마리 앙투아네트에게 도움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1785년, 오를레앙 공작의 배후 하에 ‘목걸이 사건’이 일어나 마리 앙투아네트는 엄청난 비난을 받게 되고, 시민 혁명이 일어나 마그리드가 이끄는 시위대에 의해 파리로 강제 이동된다. 페르젠 공작이 마리 앙투아네트와 왕실 일가를 구하기 위해 탈출 계획을 세우지만 실패하고, 루이 16세는 단두대에서 처형당한다.
마리 앙투아네트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모든 증오와 분노를 그녀에게 쏟았던 마그리드는 남편과 아이마저 빼앗기는 모습을 보며 혁명의 진정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하게 된다.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는 역사의 수레바퀴 속에 상반된 두 여인의 삶을 대비시키고 있다. 왕비인 마리 앙투와네트와 하층민인 마그리드 아르노. 배경뿐 아니라 성격도 완전히 다른 두 여자는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 마주한다. 모든 괴로움과 불행의 원인을 마리에게 지워버린 시대의 부조리함을 마그리드를 통해 읽을 수 있다.
목걸이 사건, 바렌 도주사건, 단두대 처형 등 익숙한 역사적 사건들이 연이어 나오지만 사건들은 장면적 구성일 뿐이다. 안타깝게도 1막의 운명의 수레바퀴와 극의 마지막에 나오는 우리가 꿈꾸는 정의란 무엇인가는 그저 화려하고 멋졌을 뿐이다. 이야기가 허술하게 짜이다 보니 마리와 페르젠의 운명적 사랑도, 마그리드와 오를레앙공작, 자크 에베르의 얘기도 너무 가볍게 지나가 버린다.
그 아쉬움을 메우는 것은 배우들의 열연이었다. 극 초반에는 ‘마그리드’라는 강력한 라이벌에 비해 약하기만 하던 왕비 마리는 후반으로 갈수록 배우 김소현이 아닌 ‘마리 앙투와네트’ 그 자체가 된다. 특히 아들을 빼앗기면서 모성애를 드러내는 장면은 압권이었는데 그녀 역시 아이의 어머니이기 때문일까. 아들을 빼앗기고 순식간에 백발이 되어버린 여인의 모습은 가련하기 짝이 없다. 그녀 역시 한낱 힘없는 ‘그들’일뿐인 것을.
김소현과 차지연의 인상적인 대립각은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살렸고 두 배우가 상대방의 얼굴에 닿을 듯 가까운 거리에서 ‘Hate In Your Eyes’를 부르며 서로를 향한 적개심을 토해내는 장면은 가장 큰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왔다.
배우들의 호연과 화려하고 아름다운 형형색색의 드레스, 야심차게 돌아가는 회전무대는 극의 전환을 수월하게 하고 장면의 연결 또한 매끄럽게 만들어준다. 파리의 팔레 루아얄, 베르사유 궁전, 쁘띠 트리아농의 정원까지. 아름답고 웅장한 넘버의 유려한 선율 또한 귀를 사로잡는다.
프랑스 대혁명이라는 민중혁명의 의의가 폄하되고, 인간적인 시선을 살리다보니 마리 앙투와네트를 미화시킨 점, 원작을 허술하게 각색해 이야기의 밀도가 떨어지는 아쉬움이 상당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려한 대극장 뮤지컬로서의 기대에 부응해 풍성한 볼거리를 보여주고 있다.
시대의 희생양일 뿐인가, 여전한 의문을 갖게 만드는 주인공 마리 앙투와네트 역에 싱크로율 100% 김소현, 화려한 가창력의 옥주현, 거리의 여자지만 혁명의 중심에까지 이르렀던 마그리드 아르노 역에 차지연, 윤공주, 마리의 운명적인 연인 페르젠 백작 역에 카이, 윤형렬, 전동석, ‘난 왜 나다운 삶을 살 수 없나’ 그저 평범한 남자이고 싶었던 마리의 남편 루이 16세 역에 이훈진, 혁명을 뒤에서 조종한 인물로 그려지는 오를레앙 공작 역에 민영기, 끝까지 마리 곁을 지켰던 아름다운 마담 랑발 역에 임강희, 혁명을 주도했으나 결국 사기꾼에 지나지 않았던 자크 에베르 역에 박선우, 이밖에 마리의 헤어와 드레스를 담당했던 디자이너 역에 문성혁, 김영주 등 국내 내로라하는 뮤지컬배우들이 출연한다. 내년 2월 1일까지 샤롯데 시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