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바냐와 소냐와 마샤와 스파이크(연출:오경택)’는 2013년 브로드웨이 초연작으로, 토니상 최고 작품상, 뉴욕 연극비평가협회 최고 작품상 등 8개의 시상식에서 9개 부문 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장했다. 블랙 코미디의 대가 크리스토퍼 듀랑이 안톤 체홉의 ‘바냐아저씨’ ‘벚꽃동산’ ‘세자매’ ‘갈매기’에서 등장인물들과 사건을 응용한 일종의 체홉에게 바치는 오마주이자 패러디이다.
유식한 대학교수인 부모로부터 안톤 체홉 연극 속에 등장하는 이름을 선물 받은 바냐와 소냐와 마샤, 삼남매를 중심으로 마샤의 어리다 못해 핏덩이 같은 남자친구 스파이크, 악의는 없지만 불길한 예언을 쏟아내는 가정부 카산드라, 순수하고 백치미 넘치는 이웃집 아가씨 니나가 벌이는 잔잔하지만 유쾌하고 한편으론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의미 없이 시간을 보내는 바냐와 우울증과 분노조절장애 증세를 가진 소냐는 부모님을 돌보느라 좋은 시절 다보내고 평화롭지만 의욕이라곤 먼지 한 톨만큼도 없이 지내고 있다. 어느 날 마샤가 어리고 섹시한 남자친구인 스파이크를 데리고 집을 방문한다. 마샤가 방문하는 순간부터 지루할 만큼 심심했던 일상은 뒤죽박죽 소동이 일어난다.
결혼은 커녕 연애도 한번 못해본 소냐는 5번이나 이혼하고도 젊다 못해 어린 남자친구를 데리고 나타난 마샤 때문에 더 우울하고 게다가 바냐와 지내고 있는, 그들의 삶이 고스란히 묻어있는 집을 팔겠다는 선언 때문에 심란하다. 심지어 유명인을 초대하는 ‘코스튬 파티’에 가자며 자신은 백설공주를, 바냐와 소냐에게는 난쟁이를 하라고 한다. 안 그래도 정신없는데 청소부인 카산드라는 아침부터 불길한 예언(?)을 쏟아낸다. 이 소동의 끝은 어디일까?
푸른 왜가리를 기다리는 바냐와 소냐. 좋은 시절이 다 지나간 중년의 두 사람은 무기력하다. 부모님 병간호를 해야 하는 두 사람 때문에 배우로 성공했지만 집에 대한 온갖 비용을 부담하는데다 두 사람의 용돈까지 챙겨줘야 하는 마샤도 의기양양하게 행동하지만 뭔가 의기소침하다. 안톤 체홉의 작품들에서 이름뿐만 아니라 성격, 상황까지 물려받은 세 남매의 모습은 재밌기도 하고 어딘가 짠하기도 하다.
그들의 삶에 결핍 때문이다. 모든 것을 다 가진 사람은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고 또는 내려다보면서 결국 타인을 거울삼아 자신을 비춰보고 있는 것이다. 왜 직시하지 못하는 것일까?
그래서 벌어지는 소동은 그들의 삶을 잔잔하지만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스파이크가 못마땅하지만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는 마샤의 모습, 마샤에게 경쟁심을 느끼고 막 나가는 소냐, 기 센 두 여동생들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는 바냐. 삶이란 거리를 두고 보면 모두가 코미디라더니 그들의 모습 또한 한바탕 코미디이다.
치열한 삶을 살아온 마샤도, 무기력해 보이는 바냐와 소냐도 누구나 그렇듯이 예측할 수 없는 삶의 한 가운데에 있는 것이다. 그들이 가진 불안감은 어쩌면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기에 마샤와 소냐는 느닷없이 울어버린다. 그리고 아무런 설명이 없이도 그들은 그렇게 서로를 받아들인다. 뒤죽박죽 엉망진창이던 하루가 끝나가는 것이다. 해가 뜨고 지듯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하루가 그렇게.
체홉에 대한 오마주인만큼 그의 작품들이 녹아들어있지만 굳이 몰라도 충분히 재미있는 작품이다. 우울한 듯 위트 있는 인물과 상황들을 통해 녹록치 않은 현실에도 희망을 이야기한다. 아침마다 기다리던 푸른 왜가리를 어쩌면 내일은 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
연출에 오경택, 무기력한 바냐 역에 김태훈과 서현철, 분노 조절장애지만 사랑스러운 노처녀 소냐 역에 황정민, 화려한 듯 단단한 마샤 역에 서이숙, 뇌마저 해맑은 스파이크 역에 김찬호, 백치미 이웃집 소녀 니나 역에 김보정, 불길한(?) 예언가 카산드라 역에 임문희가 함께 한다. 2015년 1월 4일까지 대학로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