깜깜한 어둠속, 공연 시작 전의 암전. 어디선가 들려오는 도둑들(?)의 소곤거림에 곧 큰 웃음이 터지고 만다. 1989년 4월 동숭 아트센터 개관기념 초청 공연으로 초연, 2015년 극단 차이무와 (주)이다 엔터테인먼트의 합작 프로젝트 ‘이것이 차.이.다’ 세 번째 작품으로 26년 동안 시대를 풍자하며 사랑받아온 연극 ‘늘근 도둑 이야기(연출: 박정규)’가 공연되고 있다.
이제 ‘마지막 한탕’을 멋지게 해치우고 남은 생을 편안하게 살아보고자 더 늘근 도둑과 덜 늘근 도둑이 엄청난 부를 가진 권력자의 금고에 침입한다. 알아볼 수도 없는 그림이지만 비싼 게 확실하다. 하지만 손도 대기 전에 검거되고 마는데 거기가 어딘지 알고 들어갔느냐는 호통에도 두 사람은 어리둥절하다. ‘그 곳’은 어디였을까?
세상 살아가기 참 힘들다. 서민들은 더욱더 그러하다. 부조리한 일들은 끝도 없이 매일 매일을 채운다. 굳이 신문을 읽지 않아도 미디어가 발달한 세상에선 자신의 핸드폰만 잠깐 들여다봐도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쉽게 접할 수 있다. 편리하지만 피곤한 것이다.
그래서 스마트한 세상 속에서 소소한 연극을 한 번씩 만나는 것은 중요한지도 모른다.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작은 쉼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오래된 시사 연극이라는 편견은 첫 등장할 때 이미 사라졌다. 불쑥 치고 들어오는 대사는 애드리브인지 짜인 것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자연스럽고 덕분에 객석은 웃음바다가 된다.
물건들 앞에서 벌이는 두 사람의 소소한 옛이야기부터 현실 풍자, 심지어 그날의 개정법안도 접하게 된다. 극에 성실하게 임하는 배우들의 깊은 성의를 느낄 수 있다. 말장난조차도 언중유골, 비유하나 버릴 것이 없다. 느닷없는 질문에 대답할 수밖에 없는 관객들은 당황하면서도 극에 빠져드는 것이다.
좋은 대본, 시대를 살아가면서 계속 진화해온 작품은 여전히 살아있었고 그래서 무척 즐거웠다. 하지만 그냥 한바탕 웃고 극장을 나서면서 다 잊혀지는 가벼운 코미디가 아니다. 부조리한 현실에 대한 통렬한 풍자는 한편으론 우습고 한편으론 서글프기 때문이다.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이야기니까.
연극한편으로 무엇이 달라질까 싶은 생각도 들지만 결국 시대를 깨우는 것은 그렇게 작지만 단단한 신념으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닐까. 동조할 수 있는 관객들과 함께 동시대를 만들어가는 것이기에 의미 있는 것이다.
실수조차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배우들의 순발력은 놀랍기까지 하며 화려한 입담과 찰떡같은 호흡으로 관객들을 힘차게 작품 속으로 끌어들인다. 베테랑 배우들과 역사상 가장 젊은 배우들의 합류로 멋진 호흡을 보여준다.
더 늘근 도둑 역에 노진원과 오민석, 맹상열, 덜 늘근 도둑 역에 2003년도에도 같은 배역을 맡았던 박철민, 정경호, 안세호, 과연 제대로 잡을 수는 있는 건지 의심스러운 수사관 역에 박훈, 민성욱, 이형구가 웃음폭탄을 안겨준다. 연장공연에 돌입해 오는 29일까지 소리아트홀 1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