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극장(극장장 안호상)의 국립무용단(예술감독 윤성주)은 신작 ‘적(赤)을 오는 6월 11일부터 13일까지 달오름극장 무대에 올린다.
국립레퍼토리시즌 시작 이후, 국립무용단은 다양한 장르와의 협업과 파격 시도가 돋보이는 작품을 끊임없이 선보이면서 우리 춤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줬다. 패션디자이너 정구호의 ‘단(壇)’ ‘묵향’, 핀란드 현대무용가 테로 사리넨 안무 ‘회오리’, DJ 소올스케이프가 음악으로 참여한 ‘기본활용법’ 등 현대작품을 선보이면서 최근 한국 무용은 가장 협업에 유연한 장르가 됐다.
‘적(赤)-We all dance at the cliff’은 멈추지 않는 구두를 신고 발이 잘려나가더라도 춤을 추는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안데르센의 잔혹동화 ‘빨간 구두’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마치 아슬아슬한 벼랑 끝에서 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춤을 계속 추고 싶어 하는 한 인간의 욕망을 표현한다.
이 작품은 무엇보다도 춤에 집중된다. 영화감독, 영화음악감독, 패션디자이너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였지만, 무용 공연인 만큼 무용수들이 가장 빛나는 무대를 만들고 싶단다.
안무를 맡은 최진욱은 ‘맺고 어르다 푸는’ 한국무용만이 가진 감칠 맛, 빠른 움직임 속에서도 깊이가 묻어나는 한국 춤 특유의 호흡법을 살려 독특한 안무를 선보인다. 날렵한 움직임의 연속임에도, 한국 춤의 호흡은 동작을 한 순간도 단절되지 않도록 부드럽게 연결시킨다. 또 한국 무용 공연에선 보기 드문 에크러배틱한 군무와 남성 2인무 등 다양한 움직임도 돋보인다.
이 작품을 통해 무용연출에 데뷔한 영화감독 임필성은 ‘마담 뺑덕’ ‘남극일기’ ‘일류멸망보고서’ 등에서 매번 자신의 작품에 인간의 욕망을 담아왔다. 그는 인간을 미학적으로 표현해 행위적 몸짓을 활용할 줄 아는 국내 몇 안되는 감독이다.
디테일한 것을 잘 잡아내고, 모션과 감정을 잘 이끌어내기로 충무로에 정평이 나 있는 임 감독은 “현대사회, 욕망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우리 모두가 벼랑 끝에서 춤추는 무용수와 같다”면서, 낭떠러지에 떨어질지라도 끝까지 가보고 싶은 인간의 욕망과 무모함을 이야기한다.
영화 ‘도가니’ ‘악마를 보았다’ ‘광해, 왕이 된 남자’ 등의 영화에서 음악감독으로 이름을 알린 베이시스트이자 작곡가 모그가 음악을 맡았다. 한때 김덕수 사물놀이패와 어울려 공연하고, 뉴욕 언더그라운드를 누비던 베이시스트였는 그는 그동안 접해왔던 국악과 민속음악을 바탕으로, 판타지와 아프리칸.라틴 아메리칸 음악의 요소를 넣어 정열적인 감성을 음악 전반에 녹여냈다.
임필성 감독의 권유에 단박에 승낙했다는 박승건이 의상을 맡았다. 예상치 못한 유쾌함으로 ‘키치(화려하고 눈에 띄며 개성이 중요시되는 스트릿 패션룩)’와 ‘위트’의 대표주자로 불리는 그는 공효진, 배두나 등 패션스타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브랜드 푸시버튼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이다.
무대는 뮤지컬 ‘조로’ ‘미녀는 괴로워’ 등을 디자인한 김태영이 상징성이 깊은 오브제를 활용해 간결하지만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도록 무대를 꾸민다. 무대 한 가운데는 커다란 원형 상징물만이 놓인다. 여러 조각이 기워져 완성된 이 커다란 구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이 투시되는 장치로 공연의 끝에 달할수록 점점 진해져 더욱 붉어진다. 아스라한 줄타기 장면에서는 무대 바닥에 심은 LED조명으로 외줄타기의 밧줄을 형상화하는 등 조명을 오브제로 활용해 시각적 미학을 충족시켜준다.
무용수 송설, 조용진, 이석준, 이재화, 박혜지는 국립무용단에서 가장 활발히 활동 중인 무용수들이다. 이번 작품에서 조안무를 겸하고 있는 박혜지는 유일한 홍일점이지만 남성무용수들 못지않은 에너지와 카리스마를 가진 무용수다.
극 중 박혜지의 욕망의 대상으로 등장하는 조용진은 어려서부터 쌓아온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한 무용수로, 이 작품에서 남성성은 물론, 여성이 가진 고운 선을 소화하면서 섹시함까지 겸비한 색다른 캐릭터를 연기한다.
이석준은 정재무(궁중의 경사스런 잔치에 연행되던 춤)를 국립국악원 무용단에서 3년간 익혀 몸의 균형 감각이 뛰어나고 전통을 바탕으로 한 창작 작업을 하기에 최적화된 무용수이고, 이석준과 함께 남성 듀엣을 선보일 이재화 역시 주목할 만한 무용수이다. 인턴때부터 꾸준히 작품에 선발돼 주역으로 무대에 선 바 있을 만큼 뛰어나다.
또한 송설의 존재감은 상당하다. 그는 남성적인 강하고 굵은 선을 표현하는 무용수로 이번 작품에서는 욕망하는 인간의 이중적인 내면을 조정하는 인물로 활약한다.
부제 ‘We all dance at the cliff’가 말해주듯, 다섯 무용수 모두 벼랑위에서 춤추는 무용수처럼 아슬아슬하고 광기 넘치는 무대를 혼신의 힘을 다해 보여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