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메일전송
  • 기사등록 2015-05-30 18:33:14
기사수정

빠르다. 연희단거리패의 연극 ‘갈매기’를 보며 느낀 첫인상이다. 자칫 가장 가까운 인간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지만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체호프의 작품에서 생기가 느껴진다. 거세지만 기분 좋은 바람 속에 서 있는 것 같은.

연극 ‘갈매기’는 셰익스피어의 그것만큼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작품으로 작가의 가치관, 인생관 등을 엿볼 수 있는 자서전적 작품이다. 게릴라 극장 해외극 페스티벌 체호프전의 두 번째 작품으로 연희단 거리패 대표인 배우 김소희의 단독 연출 데뷔작이다. 평단과 관객 모두에게 신뢰받는 배우이기도한 그는 “배우를 위한 연극이 될 것”이라고 한다.

1막 작가가 되고 싶은 뜨레블레프는 가족의 반대에도 배우가 되려는 니나와 함께 작은 연극을 준비하지만 유명배우인 어머니 아르까디나의 조소에 중단하고 만다. 줄거리나 감정이 아닌 상징으로만 표현하는 뜨레블레프를 이해할 수 없던 니나는 그의 어머니의 연인인 성공한 작가 뜨리고린에게 향하고 마샤는 뜨레블레프를 사랑하지만 거부당한다.

2막에선 뜨리고린과 니나가 나누는 얘기가 주를 이룬다. 뜨리고린은 작가로서 성공한듯하지만 ‘괜찮아, 하지만 톨스토이보단 아니지.’하는 평가를 죽을 때까지 받을 거라 스스로를 조소하고 니나는 유명작가나 배우를 동경하며 최선의 것으로 ‘명예’를 원한다고 말한다. 두 사람이 가까워질수록 니나는 뜨레블레프에게서 멀어진다.

3막, 속도가 더 빨라진다. 마샤는 뜨레블레프를 사랑하지만 기다림 지쳐 메드베젠코하고 결혼을 결심한다. 뜨리고린과 니나의 끌림은 아르카디나와 뜨레블레프의 갈등으로까지 이어진다. 결국 아르카디나는 뜨리고린은 붙잡고 함께 떠나지만 니나에게 은밀한 약속을 잊지 않는다. 뜨레블레프가 울부짖는다, 니나도 잃고 다시는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지 않다고.

4막, 그럭저럭 작가로서 인정받게 된 뜨레블레프. 마샤는 메드베젠코와의 결혼이 후회스럽고 그 역시 그녀의 마음을 알기에 괴롭다. 오랜만에 아르카디나와 뜨리고린이 뜨레블레프를 찾아오는데 깊은 밤에 니나가 저택에 찾아온다. 애절하게 그녀를 붙잡으려하지만 니나는 유명한 배우가 되면 연극을 보러오라며 떠나고 뜨레블레프는 한번 실패했던 죽음을 향하고 이번엔 뜻을 이룬다.

4막으로 이뤄진 작품은 ‘사랑’과 ‘욕망’에 관해 이야기한다. 많은 등장인물들은 사랑하고 있으나 마주보는 사람은 없이 모두 어긋나 있다. 시간이 흐르면 지나간 이야기가 될 것 같은 일들이 여전히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하고 서로를 안아주지 못하고 결코 소통되지 않는 괴로움을 그리고 있다.

탁자 두 개와 의자 몇 개로 이루어진 무대는 자유롭게 이동하며 극의 몰입도를 높이고 있으며 배우들의 유기적인 연기는 때로는 각자, 혹은 광기를 폭발시키며 달려간다. 절망적인 몸짓으로 뜨레블레프를 연기하는 윤정섭이나 무거움 속에서 희극적인 모습으로 숨 쉴 틈을 주는 이원희의 뜨리고린은 매우 인상적이었다.

자유롭게 어디든 날아가는 갈매기처럼 사랑도 꿈도 그렇게 자유로울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사람이 가진 내면의 욕망이란 이상하게도 자유를 갈망하면서도 어딘가에 스스로 묶여있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뜨레블레프가 죽인 갈매기의 시체를 보고 눈을 빛내며 박제해달라고 했던 뜨리고린은 그 부탁 자체를 잊는다. 이제 그에겐 박제한 갈매기는 아무 의미도 없기 때문일까, 뜨레블레프의 가장 찬란한 자유와 사랑인 니나는 이미 그의 것이니.

그 모든 것으로부터 자유해졌다고 생각하다 만난 순간 알게 된다, 여전히 내 것이 아닌 것을 향한 타는 갈증을. 형식자체에서 자유로워야 글쓴이의 영혼이 담긴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니나를 만난 순간, 다시 오래전의 불꽃이 타올라 그녀를 잃은 상실을 견딜 수 없게 되다니. 뜨레블레프어처럼 뭔가를 이룬 것처럼 보이는 것은 중요하지 않은지도 모른다. 정말 원하는 것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단지 그 하나로 인해 모든 것이 사라져버릴 수도 있기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깊숙한 곳에 터질 듯한 욕망과 비틀어진 광기가 있다. 당장 인정하지 않아도 좋다. 연희단 거리패의 연극<갈매기>를 보다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몹시 닮은 누군가가 무대 위에서 당신을 기다고 있을 테니까.

불안정한 청년 뜨레블레프 역에 윤정섭, 그의 어머니 유명 여배우 아르까디나 역에 황혜림, 그녀의 연인 성공한 작가 뜨리고린 역에 이원희, 그를 사랑하는 배우지망생 니나 역에 조우현, 이 밖에 조승희 노심동 이민아 이동준 도창선 황유진이 밀도 높지만 생생하게 작품을 보여준다. 대학로 게릴라 극장에서 앵콜공연을 마치고 30일부터 6월7일까지 부산 가맛골 극장에서 부산관객들을 만난다.

0
기사수정

다른 곳에 퍼가실 때는 아래 고유 링크 주소를 출처로 사용할용해주세요.

http://www.hangg.co.kr/news/view.php?idx=25214
기자프로필
프로필이미지
리스트페이지_R001
최신뉴스더보기
리스트페이지_R002
리스트페이지_R003
리스트페이지_004
모바일 버전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