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시(波市)’란 글자 그대로 ‘물결[波]’을 타고 바다에서 열리는 ‘시장[市]’을 일컫는 말이다. 일찍이 연평도는 흑산도파시, 위도파시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파시로 꼽혔다.
○ ‘파시’란 말이 처음 나타나는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연평도 파시에 관해 “해주 남쪽 연평평(延平坪)에는 석수어(石首魚)가 나서 봄과 여름에 여러 곳의 어선들이 모두 이곳에 모여 그물로 잡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매년 동중국해에서 월동한 조기들은 우리나라 서해안으로 북상, 2~3월에 흑산도, 3~4월에 안마도와 위도를 지나 5~6월에 연평도에 어장을 이루는데, 회유하는 수십 억 마리의 조기를 따라 형성되는 시장이 곧 ‘파시’인 것이다.
○ 발동선의 보급과 어구·어망의 개량으로 연평도의 조기 어획량이 크게 늘어날 당시 연평도는 ‘석수어의 왕국’, ‘전조선의 찬장’, ‘서조선의 대보고’등으로 수식되며, 조기 어업의 중심지였다.
○ 파시철이 되면 연평도는 “사흘 벌어 1년을 먹고 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돈이 흔한 곳이 되었다. 어선들이 갑판 위까지 가득 조기를 싣고 섬으로 들어오면 곧 바로 판매가 이루어졌고, 1년 내내 조용했던 섬마을에는 선박수리를 위한 공장, 생필품 잡화점, 임시우체국과 주재소, 요릿집, 주막, 목욕탕 등의 임시가옥이 세워지면서 하나의 도시가 생성되었다.
○ 연평도의 조기 어획량은 1946년 22,500톤의 어획을 올려 정점을 이루었으나, 1950~60년대에 1만톤을 넘나들 정도로 감소되면서 조기 파시는 막을 내린다. 유자망, 기선저인망 등의 어구를 갖춘 대형화된 동력선들의 마구잡이 어획으로 참조기의 씨가 말라 버린 것이다.
○ 인천시에서는 지난 5월 참조기 치어 35만미를 포함해 2013년부터 모두 125만미를 연평도를 비롯한 인천 연안에 방류하는 등 참조기 자원 회복과 제2의 연평도 파시 복원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 시 관계자는 “우리나라 3대 파시의 명성을 드높였던 연평도 파시가 부활하여 인천이 수산업의 르네상스 시대를 이끌어 나가는데 큰 역할을 해나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