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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7-10-04 20:3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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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윤정 기자]국립극장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김성녀)이 대형 신작 ‘산불’을 오는 25일부터 29일까지 해오름극장 무대에 오른다.

판소리는 물론 그리스비극.서구희곡.동화 등 소재의 다양성을 추구해온 국립창극단은 한국 현대희곡의 이정표로 꼽히는 ‘산불’의 창극화를 통해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에도 쉼 없이 꿈틀대는 인간의 욕망을 절절한 ‘소리’로 전한다.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 속 인간의 행동 양식과 본능을 그려낸다. 1951년 겨울, 전쟁으로 노인과 과부만 남은 지리산 자락 촌락에 젊은 남자 규복이 숨어든다. 과부 점례가 규복을 뒷산 대밭에 숨겨주면서 두 사람의 깊은 관계가 시작된다. 이를 눈치 챈 이웃집 과부 사월이 규복을 함께 보살피자고 점례에게 제안하면서 갈등의 불씨가 점화된다.

차범석의 ‘산불’은 1962년 12월 명동 시절 국립극장에서 이진순의 연출로 초연된 이후, 연극.오페라.뮤지컬 등으로 끊임없이 무대에 올랐다. 한국 사실주의 희곡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작품인 만큼, 동시대 관객의 공감을 얻을 수 있도록 희곡 속 구체적 상황을 무대화하는 것은 창작자들에게 커다란 도전이다.

이번 국립창극단 ‘산불’은 극단 백수광부 대표이자 연극 ‘벚꽃동산’ ‘과부들’ 등을 통해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과 재기발랄한 발상의 전환을 선보여온 연출가 이성열이 맡았다.

이성열 연출은 “사실주의의 정수로 알려진 원작을 비사실적으로, 표현적으로 재해석하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 이번 신작의 연출 방향을 밝혔다. 그는 원작이 지닌 6.25전쟁의 사실적인 상황을 거둬내고, 극한의 상황에 처한 인간의 깊은 내면과 그 보편성에 초점을 맞춰 원작을 현대적으로 해석할 예정이다.

극본을 맡은 최치언은 시대를 넘나드는 액자식 구성 속에 까마귀들.죽은 남자들.점례의 남편 등 새로운 캐릭터를 배치해 새로운 창극 대본을 완성했다.

작곡.음악감독은 영화 ‘부산행’ ‘곡성’ ‘타짜’ 등 여러 영화는 물론 다양한 장르의 실험적 무대로 이름을 알린 작곡가 장영규가 맡는다. 장영규는 전쟁의 비극에 따른 인간 내면의 심상을 자신만의 색깔로 해석해 선보일 예정이다. 그는 ‘새로운 판소리란 무엇인가’라는 고민에서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기존 창극의 작곡.작창 방식과는 다른 시도를 원했던 그는 기존 판소리 고유의 곡조양식과 음절 등을 해체.재조합해 층을 쌓는 방식으로 ‘산불’ 음악이 탄생했다. 배우들의 소리가 돋보이도록 실제 악기를 배제하고 최소한의 미디음악을 사용하고, 또한 6.25전쟁 당시인 1950년대의 민요.동요.군가 등을 변형해 서사를 이어간다. 장영규는 작곡.작창뿐 아니라 효과음까지 직접 창작했다.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에서 들을 수 있는 바람 소리, 활활 타오르는 불의 소리 등이 객석에 앉은 관객을 더욱 깊숙이 극 속으로 이끈다.

작가 최치언과 연출가 이성열은 전쟁이라는 폭력적 상황이 인간을 얼마만큼 극한으로 몰아세울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위해 새로운 장치들을 만들었다. 1951년과 1965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액자식 구조 및 프롤로그.에필로그를 도입해 서사의 입체감을 더한다. 비극적 사건 이전과 이후 점례의 모습을 통해 삶과 죽음의 대비를 보여주고자 한다.

또한 죽은 남자들, 까마귀들, 점례의 남편 종남 등 원작에 없는 캐릭터들을 등장시킨다. 살아남은 마을의 아낙들과 극명한 대비를 이루는 이들 존재를 통해,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로 관객을 이끈다. 특히 희극적 요소도 더해진다. 마을에 단 하나 남은 남자인 김노인과 전쟁에 정신이 나가버린 귀덕, 물건을 팔러 잠시 들른 병영댁 등의 노골적이고도 질펀한 대화를 부각시켜 비극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인간의 한 면을 보여준다.

차범석의 희곡 ‘산불’은 사실주의 문학의 교과서 같은 작품으로, 그 동안의 극 무대는 원작의 지리적.시대적 상황에 충실한 무대디자인을 선보여 왔다. 한편 국립창극단 ‘산불’은 1천 그루가 넘는 실제 대나무로 만든 대나무 숲, 그 한편은 불에 탔고 그 사이로 추락한 폭격기가 보인다. 전쟁의 상흔을 표현한 무대미술이 해오름극장의 거대한 회전 장치(지름 16미터)를 채운다. 나선형의 회전 무대는 비극의 소용돌이에 빠진 마을의 현재를 상징한다. 규복을 숨겨주는 은신처이자 점례.규복의 밀회 공간, 그리고 사월.규복의 본능적 욕망을 꿈틀대는 대나무 숲은 ‘산불’에서 중요한 공간이다. 비극의 목격자이자 또 다른 비극을 잉태하는 이 대나무 숲을 표현키 위해 무대미술팀은 바닥은 거친 마대와 갈대 줄기, 회반죽과 톱밥을 버무려 질감을 살렸다.

국립창극단의 간판배우들이 총출동하는 이번 국립창극단 ‘산불’은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한다. 이소연과 김준수는 일찍이 점례와 규복으로 낙점됐다. 이번 신작의 파격적 캐스팅은 첫 주역으로 데뷔하는 류가양(사월 역).박성우(규복 역)다. 이성열 연출은 오디션 당시 이글거리는 욕망을 눈빛으로 표현한 류가양을 보자마자 단번에 사월 역에 캐스팅했다. 젊은 배우뿐만 아니라 소리 공력이 절정에 달한 유수정.김금미가 양씨.최씨를 맡는 등 안정감 있고 선 굵은 연기를 선보일 중견배우들도 대거 출연한다.

푸근한 인정의 어머니로 때로는 마을사람들의 공출을 도맡는 밉살스러운 양씨는 국립창극단의 대들보 유수정으로, 최근 ‘코카서스의 백묵원’에서 술주정뱅이 판사 역을 맡아 망가지는 연기까지 거침없이 소화해내는 대배우의 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기대해도 좋다.

‘트로이의 여인들’의 헤큐바 역으로 최근 싱가포르 공연에서 극찬을 받은 김금미는 양씨와 대립하는 억척스러운 최씨를 맡았다. 특유의 카리스마가 비극적 배역에서 특히 빛을 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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