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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2-25 19:3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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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랭킹 1위 캐나다에 이어 영국과 스위스 등 강호를 잇따라 격파하면서 4강에 올라 예선에서 우리에게 유일하게 패배를 안겼던 일본을 준결승에서 만나 멋지게 설욕하면서 아시아 팀으로는 최초로 결승에 올랐다.

 

[특별취재팀]세계랭킹 1위 캐나다에 이어 영국과 스위스 등 강호를 잇따라 격파하면서 4강에 올라 예선에서 우리에게 유일하게 패배를 안겼던 일본을 준결승에서 만나 멋지게 설욕하면서 아시아 팀으로는 최초로 결승에 올랐다.

 

한국 컬링 역사상 첫 메달을 은메달로 장식하자 관중들은 기립박수로 위대한 도전의 마지막을 축하했다. 캐나다를 상대했던 지난 15일부터 열하루 동안 이른바 ‘비인기종목’ 컬링은 평창의 주인공이 됐다.

 

주인공들에겐 이 열기가 조금 늦게 전달됐다. 결승전을 마친 뒤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국민 영미’ 김영미는 “아직 감독님에게서 휴대전화를 돌려받지 못했다. 자원봉사자나 관중들께서 호응과 응원을 해주셔서 컬링이 알려졌다는 것 정도만 알고 있다”고 말했다.

 

주장 김은정도 “휴대전화를 받지 못해 아는 것이 없다. 얼마나 유명해졌는지 잘 모르겠다”면서, “한국 컬링에 이만큼 관심을 두고 지켜봐 주시는 분들이 많이 생긴 것 자체가 저희에게는 큰 행복이고 감사할 일로, 빨리 인터넷을 켜봐야 할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은정은 올림픽 대표가 되고 난 이후 과정에 대해 “여태 노력해 선발전까지 마치고 ‘꽃길’만 있을 거로 생각했다”면서, “더 힘들어졌다. 이렇게 흔들리는 게 꽃을 피우기 위해서라며 서로 다독였고, 이끌어주신 분들도 격려해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마음 놓고 컬링 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면 좋겠다”면서, “선수들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서 힘들었는데, 인기와 관심이 많아지면 안 좋은 일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고 발했다. "고 덧붙였다.

 

 

김민정 감독도 “정작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고 과정들이 힘들다 보니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면서, “팀 내에서 자구책으로 많은 것을 해결했다. 선수들이 잘 따라주고, 같이 뭉쳐서 이겨냈다”고 말했다.

 

김 감독은 이어 “이번엔 최고의 자리에 오르진 못했지만, 또 도전할 계기가 됐기 때문에 늘 도전자의 자세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한국 컬링 사상 최초의 올림픽 메달은 의성여고 체육 시간에 싹을 텄다.

 

경북 의성여고 1학년 시절의 김은정은 체육 시간에 ‘체험 활동’으로 컬링을 처음 접했다. 김은정 컬링의 매력에 빠지면서 방과 후 활동 수업 중 하나로 컬링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김은정은 컬링팀에 들어간 뒤 친구 김영미를 컬링팀에 데려왔다.

 

‘영미 동생’ 김경애는 의성여중 2학년 시절 언니가 컬링을 재밌게 하는 모습을 보다가 덩달아 흥미를 느꼈다. 김경애는 친구 김선영에게 함께 컬링을 하자고 권유했다.

 

이들이 학교 끝나고 달려간 곳은 의성컬링훈련원으로, 인구 5만 명 규모의 의성에 2006년 생긴 한국 최초·유일의 컬링 전용 경기장이다. 당시 정부의 스포츠클럽 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지역 학교의 도움을 받아 컬링을 배울 학생을 모집했다.

 

▲ 방송화면 캡쳐

 

모두 평범한 소녀들이었다. 틈이 나면 가족이 하는 복숭아, 자두, 마늘 농장에서 일손을 보태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대가족 속에서 어른을 공경하면서 사는 착한 딸이자 손녀였다. 김영미, 김경애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자리를 스스로 채우는 어려움도 극복했다. 김영미는 이모 같은 리더십, 김경애는 여장부 같은 리더십을 키워나가면서 어린 나이에 가장 역할을 했다.

 

이들은 2006년 문을 연 한국 최초·유일의 컬링 전용 경기장인 의성컬링훈련원에 모였다. 의성컬링훈련원은 당시 정부의 스포츠클럽 사업 대상으로 선정돼 지역 학교의 도움을 받아 컬링을 배울 학생을 모집했다. 여러 학생이 컬링에 관심을 보였지만, 김은정, 김영미, 김경애, 김선영은 방과 후가 아닌 졸업 후에도 끝까지 컬링을 놓지 않았고, 지역 실업팀인 경북체육회에 들어가 전문 선수가 됐다.

 

새 식구도 맞았다. 고교 최고 유망주인 경기도 송현고 출신 김초희가 경북체육회에 새로 입단했다. 김초희는 비록 고향이 의성은 아니지만, 똑같이 합숙 생활을 하고 분위기 메이커 역할도 도맡아 하면서 팀의 미래로 성장하고 있다. 이들은 다섯 선수와 김민정 감독까지 모두 성이 김 씨여서 ‘팀 킴’이라는 이름으로 더욱 하나로 뭉쳤다.

 

김은정은 국가대표 여자컬링 대표팀의 주장인 스킵이 됐고, 김영미는 가장 먼저 스톤을 던지는 리드가 됐다. 오랜 친구인 만큼 김영미는 “영미∼” “영미!!” “영미, 영미!” 등 김은정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의 톤으로 스위핑 지시를 알아듣는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김경애는 팀의 살림꾼인 바이스스킵 겸 서드를 맡았고, 김선영은 작전 수행의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세컨드가 됐다. 이들은 방 세 개짜리 아파트에서 합숙하면서 올림픽 메달의 꿈을 키웠다.

 

 

이렇게 불모지 한국에서 ‘풀뿌리 스포츠’의 성공신화를 만들었다. 한국 컬링의 성공은 척박한 환경에서 꽃을 피워냈다는 점에서 기적에 가깝다. 컬링대표팀 선수들은 많은 지원을 받지 못했고, 팬들의 응원도 없었다. 텅 빈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기 일쑤였다.

 

선수들은 비인기 종목의 설움을 겪었지만, 자신의 손에 컬링의 미래가 달려있다는 사명감으로 스톤을 굴렸다.

 

2014 소치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는 마지막 경기에서 패해 태극마크를 놓쳤지만, 이들은 절치부심 2018 평창동계올림픽만을 기다렸다.

 

올림픽 기간 내내 컬링 열풍을 주도한 '팀 킴' 덕분에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강원도 평창보다 경북 의성을 더 유명하게 만들었다는 농담 섞인 얘기도 나올 정도다. 작은 도시 의성에 딱 하나 있는 컬링장에서 뭉친 ‘팀 킴’은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걸면서 한국 컬링 사상 첫 컬링 메달을 따는 기적을 일궜다.

 

여자대표팀 김민정 감독은 여자 컬링 결승전을 앞두고 “우리는 컬링 역사를 써야 한다는 책임감이 있다.”면서, “그 책임감을 느끼고 여기까지 온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평창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목에 건 여자컬링 대표팀의 김영미가 한때 이름이 촌스러워 개명을 생각했지만 지금은 개명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스킵(주장) 김은정이 스톤을 던진 뒤 스위핑 방향과 속도를 지시하면서 외치는 김영미의 이름 ‘영미’는 국민 유행어가 됐다.

 

김영미는 25일 강릉컬링센터에서 경기를 마친 뒤 “옛사람들이 쓰는 이름 같아 마음에 들지 않았다”라면서, “순우리말의 현대적인 이름으로 개명하고 싶었는데, 이제는 생각 없다. 할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을 자랑스럽게 생각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미-경애 자매의 어머니 조순희(61) 씨는 “딸들이 이렇게 유명해질 것이라고 생각 못했다”면서, “한없이 착하고 예쁘게 자란 딸들이 자랑스럽고 고맙다”라고 말했다.

 

조순희 씨는 경북 의성에서 남편과 사별한 뒤 시어머니를 모시며 두 딸을 뒷바라지하며 딸 김영미-경애 자매를 홀로 키웠다. 조 씨는 의성에 있는 전봇대 제조 공장에서 일했다. 형편이 어려워지면 이웃의 농사일을 돕기도 했다. 김영미-경애 자매는 고생한 어머니를 편하게 모시기 위해 상금을 모아 아파트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순희 씨는 "딸들이 훈련하느라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데, 집에 오면 좋아하는 잡채를 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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