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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천 년 궁성 ‘경주 월성’에 전담해설팀 운영
[오재곤 기자]신라 천 년 궁성 ‘경주 월성’에 관람객들을 위한 교육과 해설만 전담하는 전문해설사들이 상주한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소장 이종훈)는 지난 4일부터 월성 발굴조사 현장에서 출토된 유물과 그동안의 발굴 과정 등을 알기 쉽게 설명하는 전문인력팀 ‘월성이랑(月城以朗)’을 신설해 연중 상시 운영한다.
‘월성이랑’은 신라 천년 궁성인 ‘월성’에 ‘함께 한다’는 의미의 순우리말인 ‘이랑’을 붙여서 ‘국민과 함께 하는 월성 발굴조사’를 의미하고, ‘신라 화랑(花郞)’의 젊고, 활동적이며 진취적인 이미지를 담았다.
‘월성이랑’ 해설사들의 문화재 설명과 교육은 경주 월성 발굴조사의 시작에서 현재에 이르는 과정, 발굴조사 성과와 출토유물에 대한 상세하고 체계적인 내용으로 구성된다.
또한 모든 내용은 계속 진행중인 발굴조사 성과와 새로 나오는 결과를 반영해가면서 주기적으로 추가되거나 교체되기 때문에 자주 찾는 관람객들도 늘 새로운 해설과 교육을 들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해설과 교육은 월성을 방문하는 모든 국민들을 대상으로 한다. 특히 현장체험학습(수학여행, 학생여행, 소풍)으로 월성을 찾는 초.중.고등학생을 위해서 신라와 경주의 역사적 사실을 교육하는 프로그램이 준비됐다. 앞으로 전국 교육청과 연계해 자유학기제도 적극적으로 유치할 예정이다.
문화재청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번에 신설된 교육과 해설 전담팀이 월성의 발굴조사 현장과 출토유물을 통해 국민들에게 더 가까이 가고 소통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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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중 발굴 고려청자 향로 전시
[오재곤 기자]충남 태안 대섬과 전남 진도 명량해협에서 발굴된 고려청자 향로(香爐)를 만나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린다.
문화재청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수중발굴 조사를 통해 확보한 고려청자 향로 8점을 선보이는 기획전 ‘바다에서 건져낸 향기, 청자향로’를 1일부터 오는 9월 17일까지 전남 목포 해양유물전시관에서 개최한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수중발굴 과정에서 온전한 형태의 고려청자 향로가 발견된 곳은 태안 대섬과 진도 명량해협 등 2곳뿐으로, 이 지역에서는 중국의 고대 청동기인 정(鼎)과 유사한 ‘정형(鼎形) 향로’와 동물 장식물이 달린 ‘장식 향로’가 발굴됐다.
태안 대섬 해저에서는 사자 장식 향로가 2점 발굴됐고, 명량해협에서는 기린·오리·원앙 장식 향로 뚜껑과 연못가 풍경이 묘사된 정형 향로가 나왔다.
이외에도 충남 보령 원산도에서 정형 향로와 장식 향로의 파편이 확인되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조형미는 다소 떨어지지만 익살스러운 표정이 인상적인 사자 장식 향로와 연기 구멍이 꽃 모양으로 만들어진 오리 장식 향로 등을 볼 수 있다.
한송이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향로는 불교를 신봉한 고려 사회에서 매우 중요하게 인식된 물품들로, 특히 청자 향로는 고려 왕실과 귀족이 사용했던 귀중품"이라면서, ”바다에서 나온 청자 향로들은 대부분 12∼13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전시에서 특유의 해학과 아름다움을 추구한 고려 사람들의 미의식을 엿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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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리스트 조사위 공식출범, “배제·차별·감시 없도록 할 것”
[오윤정 기자]문화예술계 지원배제 명단인 ‘블랙리스트’ 사건의 전말을 파악할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가 31일 오전 11시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서 첫 회의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문체부 공무원 4명과 민간 전문가 17명 등 21명으로 구성된 조사위원회의 공동 위원장은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과 민중미술가 신학철 화백이 맡았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은 회의 직후 열린 브리핑에서 “새 정부의 적폐청산 첫 과제가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와 제도개선”이라면서, “누구나 배제되지 않고, 차별받지 않고, 감시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블랙리스트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장치까지 만들 것”이라고 말했다.
신학철 공동위원장은 “우리나라는 분단 상황으로 인해 해방 이후 현재까지도 예술가들이 마음 놓고 표현의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면서, “이번 사건을 역사적 교훈으로 삼아 예술인들이 공평하고 공정하게 대우받으며 활동하는 여건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는 진상조사, 제도개선, 백서발간 등 3개 분과로 나뉘어 운영된다. 분과별 위원장은 진상조사는 조영선 변호사, 제도개선은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백서발간은 연극평론가 김미도 씨가 선정됐다.
위원회는 이날 회의에서 공동 위원장과 분과 위원장을 선출하고, 첫 번째 안건으로 블랙리스트로 배제된 사업을 복원하는 방안을 통과시켰다. 진상조사위원회의 운영 기간은 기본적으로 6개월이나, 필요시 위원회 의결을 거쳐 3개월씩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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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거 위기 통영 소반공방 존치될 듯...문화재 지정 가결
사진/문화재청[오재곤 기자]경남 통영시의 도시계획도로 개설로 철거 위기를 맞았던 소반공방이 존치될 것으로 보인다. 소반은 음식을 나르는 작은 상을 말한다.문화재청 대변인실은 문화재위원회 근대분과가 국가무형문화재 제99호 소반 보유자 추용호 장인 공방 등록문화재 지정안을 원안 가결했다고 밝혔다. 위원들은 추 장인의 공방이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 때 민간 공방으로 원형이 남아 있는 건물이라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추 장인이 부친 고 추웅동(1973년 작고) 장인과 함께 100년 넘도록 대를 이어 통영 소반의 맥을 이어온 공간이라는 점도 높이 샀다. 이번 지정안은 문화재청장이 직권으로 상정했다.올해 7월 문화재보호법시행규칙에 문화재청장이 보존 가치가 있는 지방 문화재의 직권 등록 조사 및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는 조항이 신설된데 따른 것이다. 추 장인 공방이 문화재로 최종 지정되면 시행규칙 신설 이후 첫 사례가 된다.문화재청은 앞으로 등록 예고 기간(30일 이상)에 관련 학계와 해당 지방자치단체 등의 의견을 수렴한 뒤 문화재위원회 등록 심의를 거쳐 최종 지정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추 장인의 공방은 지난해 6월 통영시의 도시계획도로 개설 예정지에 포함돼 철거될 예정이었다. 통영시는 1970년대 수립된 도로계획에 따라 도천동 도천테마파크 옆 윤이상 선생 생가터를 지나는 왕복 2차선 도로 공사를 추진했다. 그런데 이 도로가 소반공방을 지나게 된 것이다. 지난해 시는 철거 통보에 이어 추 장인의 집이자 작업실이 있는 공방의 물건을 옮긴 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후 추 장인은 공방 옆에 천막을 치고 노숙 농성을 벌이며 반발했고, 지금까지 공사도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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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도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 ‘한국의 서원’선정
사진제공/문화재청
[오윤정 기자][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24일 열린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회의에서 2018년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으로 ‘한국의 서원’을 선정했다.
‘한국의 서원’은 영주 소수서원(경북 영주), 함양 남계서원(경남 함양), 경주 옥산서원(경북 경주), 안동 도산서원(경북 안동), 장성 필암서원(전남 장성), 달성 도동서원(대구 달성구), 안동 병산서원(경북 안동), 정읍 무성서원(전북 정읍), 논산 돈암서원(충남 논산) 등 한국 성리학 발전과 서원 건축유형을 대표하고 있는 9개의 서원이다.
‘한국의 서원’은 진ㄴ 2011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고, 201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등재신청서를 제출했었으나, 심사결과가 좋지 않게 예측되면서 2016년 4월 신청을 자진 철회한 바 있다. 이후 세계유산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의 자문실사를 받아, 신청 내용에 대한 보완을 계속해왔다.
이번에 제출된 등재신청서 초안에는 자문기구의 권고사항을 충실히 반영했고, 신청서의 완성도가 양호하다는 평가가 내려져 세계유산 등재신청 대상으로 선정됐다. 다만, 보존관리와 활용 부분에 대해서는 추가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됐다.
‘한국의 서원’은 내년 1월까지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1년 반 동안의 심사를 거친 다음 2019년 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 여부가 최종 결정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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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현판 색상 분석 연구 추진
사진제공/문화재청
[오재곤 기자]광화문 현판의 원래 색상을 파악키 위한 연구가 진행된다.
문화재청은 17일 올 12월까지 중앙대학교 산학협력단과 함께 ‘광화문 현판 색상 과학적 분석 연구’를 추진한다고 밝혔다.
현재 광화문에 걸려있는 현판은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동경대학교가 소장하고 있는 유리건판 속의 색상을 근거로 해, 흰색 바탕에 검은 글자로 만들어졌으나, 지난해 2월 지금의 색상과는 다소 차이가 있어보이는 미국 스미소니언박물관의 현판 사진이 새로 발견되면서 색상과 관련한 논란이 불거졌다.
문화재청은 이에 따라, 다양한 색상의 실험용 현판을 제작해 광화문 현판에 고정한 뒤 촬영하는 등 현판 색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한 뒤 재제작중인 현판에 반영할 계획이다.
실험용 현판은 흰색 바탕에 검은색·코발트색 글씨, 검정바탕에 금색.흰색 글씨, 옻칠 바탕에 금색.흰색 글씨 등 다양한 조합으로 제작될 예정이다.
한편, 현재 재제작 중인 광화문 현판은 틀 제작과 각자(刻字) 작업까지 완료된 상태로, 문화재청은 이번 색상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가 자문회의와 문화재위원회 심의 등을 거쳐 현판 색상을 결정하고 단청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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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광개토대왕비는 中비석’ 왜곡 안내판 시정 요구
[장재천 기자]정부는 14일 중국 지린(吉林)성의 고구려 문화유적 안내판에 ‘광개토대왕비는 중화민족의 비석’이라는 취지의 문구가 들어간 것과 관련해 중국 측에 시정을 요구한 것으로 확인됐다.
정부 관계자는 이날 “현지에 관계자들을 파견해 상황을 확인한 뒤 외교채널을 통해 중국 측에 시정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 2004년 ‘고구려사 문제는 민간 차원 학술문제로 해결한다’는 한중 간 합의를 강조하고, “왜곡된 사실이 적시된 것을 빠른 시일 내에 시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뜻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동북아역사재단이 이달 초 중국 랴오닝성 환런(桓仁)현과 지안(集安)시 일대의 고구려 유적을 답사한 결과 중국어, 한국어, 영어, 일본어, 러시아어로 해설한 안내판에 광개토대왕비를 “중화민족 비석 예술의 진품”으로 표현한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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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숨결을 찾아서3]국내 유일 일본식 사찰 군산 동국사 속의 '평화의 소녀상'
[오재곤 기자]동국사(東國寺)는 1909년 일본 승려 선응불관 스님에 의해 창건돼, 일제 강점기 36년을 일인 승려들에 의해 운영되다가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맞아 대한민국의 품으로 돌아온 뼈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사찰이다.
||우리나라에 남겨진 유일의 일본식 사찰로 대웅전과 요사채가 실내 복도로 이어진 것이 특징으로, 화려한 단청이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아무런 장식이 없는 처마와 대웅전 외벽에 많은 창문이 일본색을 나타낸다. 조계종 제 24교구인 고창 선운사의 말사로, 동국사의 대웅전은 지난 2003년 7월에 국가지정 등록 문화재 제 64호로 지정됐다.
||동국사의 본래 이름은 금강선사였다. 금강선사는 1909년 일본인 승려 내전불관이 군산에 포교소를 개설하면서 창건한 조동종 사찰이다. 일본불교는 1877년 부산의 개항과 함께 일본정부의 요청에 의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정토진종 대곡파가 포교를 개시했고 1904년 군산에도 포교소를 개설했고 일연종이 뒤를 이었다.
||결국 일본 불교가 우리나라에 진출한 까닭은 순수한 불교포교가 목적이 아니라 한국을 일본에 동화시키려는 일본정부의 의지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후 조선총독부는 일본 불교를 포교하기 위해 1911년 6월 3일자로 사찰령을 발령했다.
||이를 계기로 일본불교는 전국에 별원, 출장소, 포교소 등을 건립했다. 금강선사가 창건되기 전 군산에는 본원사, 군산사, 안국사가 자리하고 있었다. 금강사를 창건한 내전불관은 1909년 당시 77세의 고령으로 군산 지역을 순석하다가 군산 일조통에 있던 집을 빌려 포교소를 개설했다. 1913년 7월에 현재의 자리로 옮겨 지금의 동국사을 신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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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해례본 사라진 2장 복원된다
[오재곤 기자]한글 창제 목적과 제작 원리 등을 담고 있는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해례본의 사라졌던 2장이 복원된다.
지난 1940년 경북 안동에서 책이 발견된 직후 학문적 고증 없이 필사된 부분이 70여 년 만에 제대로 복원되는 것이다.
문화재청은 기초 학술조사와 학술대회 등을 거쳐 훈민정음 해례본 정본(定本)을 제작키로 했다고 9일 밝혔다.
이를 위해 문화재청은 지난달 29일 ‘국보 제70호 훈민정음 정본 제작’ 연구용역 입찰을 공고했고, 이를 수행할 연구진이 선정되면 연내에 결과물을 받게 된다.
간송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훈민정음 해례본은 간송 전형필(1906∼1962)이 안동 진성이씨 이한걸 가문으로부터 기와집 열 채 값에 달하는 비용을 주고 구매한 것으로 알려졌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세종이 직접 지은 앞쪽 본문 4장과 신하들이 한글의 용례를 자세히 설명한 뒤쪽 해례(解例) 29장으로 구성된다.
간송이 구입한 책은 발견 당시부터 표지와 본문 앞쪽 2장이 없는 상태였다. 사라진 2장에 대해서는 연산군(재위 1494∼1506) 때 언문책 소지자를 엄벌한다고 하자 일부러 뜯어냈다는 설과 18세기 이후 떨어져 나갔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오늘날 남아 있는 2장은 이한걸의 셋째 아들인 이용준이 자신의 은사인 김태준 명륜전문학교(성균관대 전신) 교수와 함께 만든 것이다.
김태준 교수는 훈민정음의 본문인 ‘어제 서문’과 ‘예의’(例義)가 나와 있는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과 훈민정음을 한글로 풀이한 ‘언해본’을 바탕으로 내용을 재구성했다. 또 훈민정음 본문 글씨는 세종의 셋째 아들인 안평대군이 쓴 것으로 추정되는데, 서예에 능했던 이용준이 본문의 뒤쪽 부분을 참고해 썼다.
하지만 이들이 참고한 조선왕조실록 태백산사고본은 임진왜란을 겪은 뒤 급하게 제작돼 오류가 적지 않았다. 한글학자인 최현배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고는 앞쪽 2장은 원본이 아니라고 지적했고, 이후에도 훈민정음 해례본 2장에 잘못된 점이 많다는 학자들의 주장이 잇따랐다. 안병희 서울대 명예교수, 정우영 동국대 교수 등은 해례본 낙장 복원안을 담은 논문을 발표했고, 학계에서도 낙장 복원을 서둘러 추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훈민정음 해례본의 정본 제작은 여러모로 의미 있는 일”이라면서, 낙장 복원 결과는 일단 디지털 파일로 받게 될 것이다. 간송미술관이 소유한 훈민정음 해례본의 본문 2장 교체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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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장관, “생계유지 어려운 예술인 위해 최소한의 안전망 만들겠다”
[오윤정 기자]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생계유지가 어려운 예술인들을 위해 “최소한의 사회적 안전망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도종환 장관은 7일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예술인 복지정책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통해 “예술인들이 아주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국가가 돈을 좀 빌려줄 수 있고, 고용보험 혜택도 줄 수 있게 프랑스의 엥테르미탕(Intermittent·예술인 실업급여제도) 같은 장치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도 장관은 “언제까지 ‘제가 좋아서 하는 예술인데 나라가 나설 일이 뭐가 있느냐’는 하는 말을 해야 하느냐”고 반문하고, “‘한 달에 100만 원만 벌면 나는 평생 연극을 하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평생 연극을 할 수 있는 조건과 환경을 만들어주는 일에 국가가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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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 천전리는 왜 내앞마을로 불리나?”
사진제공/국립중앙도서관
[오재곤 기자]국립중앙도서관(관장 박주환)은 지난달 30일 경상도 30개 고을의 고지도와 지리지에 한자로 표기된 지명의 우리말 이름과 위치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고지도를 통해 본 경상지명연구(1)’을 출간했다.
안동에서 가장 유명한 양반마을 중의 하나는 임진왜란 때 순국한 학봉 김성일(金誠一) 선생이 출생한 의성김씨 가문의 ‘내앞’ 마을이다. 임하천이라는 큰 내(川)의 앞쪽(前)에 있어 붙은 이름으로, 한자로는 뜻을 따서 천전리(川前里)라고 썼다. 행정구역 상 천전리로 표기돼 있지만, 지금도 안동에 사는 사람들은 ‘내앞’ 마을에 사는 의성김씨를 ‘내앞김씨’라고 부르지, ‘천전김씨’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또 1900년대까지 사람들은 부산광역시 동구 초량동을 ‘새뛰’로 부르면서 한자로는 草梁(초량)으로, 대구광역시 중구 신천동을 ‘새내’로 부르면서 한자로는 新川(신천)으로, 경상북도 문경시 마성면 외어리를 ‘밭늘목’으로 부르면서 한자로는 外於項(외어항)으로 표기했다.
그러나 100여 년이 흐른 지금 사람들은 표기된 한자의 소리에 따라 새뛰가 아니라 ‘초량동’으로, 새내가 아니라 ‘신천동’으로, 밭늘목이 아니라 ‘외어리’로 부르면서 쓰고 있다.
고대부터 우리나라는 우리말의 땅이름을 한자의 뜻과 소리를 빌려 기록했다. 일제강점기 이후 표기된 한자의 소리로만 읽고 한글로 쓰는 습관이 강화되면서 우리말의 땅이름이 점점 사라져 갔다. 이에 국립중앙도서관은 우리말 지명이 사라져가는 안타까운 현상에 대한 대응으로 2010년에 서울지명연구를 처음으로 출간했다.
그리고 2011년에는 경기지명연구를, 2012년과 2014년에는 충청지명연구(1).(2)를, 2015년과 2016년에는 전라지명연구(1)․(2)를 완간한데 이어, 올해는 경상지명연구(1)를 출간했다. ||사진제공/국립중앙도서관
이 연구서에는 1720년대에 편찬 전국 그림식 고을지도책인 ‘여지도’(6책)에 수록된 경상도 30개 고을의 고지도 이미지 30장, 1789년에 편찬된 ‘호구총수’에 수록된 한자 지명 7,000여 개가 정리돼 있다.
또한 30개 고을의 역사와 중심지의 이동 과정, 도시의 구조와 상징 풍경을 체계적으로 찾아내어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 논고인 ‘고지도와 지리지 속에 담긴 경상도 고을의 역사와 읍치 이해(1)’도 수록했다.
내년에는 경상도 71개 고을 중 41개 고을에 대한 경상지명연구(2)를 계획하고 있고, 연차적으로 강원도와 북한 지역까지 확대할 예정이다.
편찬 관계자는 “이 연구서를 통해 경상도 지역의 지방자치단체와 시민단체들에게 경상도 옛 고을의 한자 표기지명에 대한 우리말 이름이 다시 조명 받아 지역의 정체성 찾기에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국립중앙도서관은 “연구 성과가 국민들에게 전해져 이용될 수 있도록 전국 주요 공공도서관과 대학도서관, 경상도 지역의 관련 지방자치단체 등에 배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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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창경궁, ‘야간 특별관람’ 실시
KBS1화면캡처[오윤정 기자]문화재청(청장 나선화)은 이달부터 9월까지 경복궁과 창경궁에서 진행되는 고궁 야간 특별관람 일정을 확정했다.이달에는 경복궁과 창경궁에서 16일부터 29일(경복궁 화요일 휴무, 창경궁 월요일 휴무)까지, 8월에는 경복궁에서만 20일부터 9월 2일(기간 중 화요일 휴무), 9월에도 경복궁에서만 17일부터 30일(기간 중 화요일 휴무)까지 각 12일간 진행된다. 야간 특별관람 시간은 ▲ 7월과 8월에는 오후 7시 30분부터 10시까지(입장마감 오후 9시까지), ▲ 9월에는 오후 7시부터 9시 30분까지(입장 마감 오후 8시 30분까지)이다. 야간 특별관람 예매를 하지 못한 경우에는 상시 야간관람이 가능한 덕수궁(오후 8시까지 입장, 오후 9시까지 관람/월요일 휴무)을 이용할 수 있다.7~9월 고궁 야간 특별관람 관람권(유료)과 한복 착용자(무료) 예매는 ‘옥션 티켓’과 ‘인터파크 티켓’에서 오는 7일, 8월 11일, 9월 8일 오후 2시에 각각 시작한다. 일반인 유료 관람권 예매는 1인당 4매, 한복 착용 무료 관람권 예매는 1인당 2매로 제한된다. 인터넷‧전화 예매자는 관람 당일 매표소에서 예매자 본인 신분 확인 후 관람권을 배부 받아 입장하면 된다.한편, 한복 착용자 무료입장을 원하는 관람객은 사전에 인터넷 예매(1일 1,000명)를 하고 당일 올바른 한복을 착용한 후(본인 확인을 할 수 있는 신분증을 지참) 매표소에서 관람권으로 교환해야 관람할 수 있다. 7~9월 개최 예정인 고궁 야간 특별관람에 대한 자세한 사항을 비롯해 2017년 고궁 야간특별관람 전체 일정은 경복궁, 창경궁 누리집에서 확인할 수 있다문화재청은 “올해의 마지막인 야간 특별관람을 통해 한 여름밤부터 가을의 문턱에 들어설 때까지 도심 속 고궁의 밤에 가족, 친구, 연인이 함께 아름다운 야경을 즐기고 추억을 만들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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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늑약의 현장’ 덕수궁 중명전, 단장 마치고 재개관
[오윤정 기자]일제가 1905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기 위해 체결한 을사늑약의 현장인 덕수궁 중명전(重明殿)이 다시 관람객을 맞는다.
문화재청은 대한제국 선포 120주년을 맞아 지난해 8월부터 진행한 중명전의 내부시설 보수와 조경 정비를 마치고 다음 달 1일 재개관한다고 밝혔다.
중명전 내부의 전시 공간은 4개로, 각각의 주제는 덕수궁과 중명전, 을사늑약의 현장, 을사늑약 전후의 대한제국, 대한제국의 특사들이다.
전시실은 다양한 시각자료를 활용해 을사늑약 체결 과정과 고종의 국권 회복 노력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꾸몄다. 관람자는 덕수궁과 정동 일대를 축소한 모형과 정동의 변화상을 살피고, 고증을 통해 제작한 대한제국 시기 의복을 입은 인물 조각상을 보면서 을사늑약 현장을 경험할 수 있다.
중명전 건물은 20세기 초 평면도를 바탕으로 복원됐다. 지반을 낮춰 계단을 추가로 설치하고, 고종의 침전인 만희당(晩喜堂)이 있던 건물 뒤편을 정비했다.
새롭게 바뀐 중명전은 화∼일요일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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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서 백제 제철유적 추가 확인, “수십년간 철 만든 흔적”
사진제공/문화재청
[오윤정 기자]지난해 백제 제철유적이 확인된 충주 탄금대 남쪽 경사면에서 철광석을 녹여 철을 만드는 가마인 제련로(製鍊爐) 유적이 추가로 나왔다.
문화재청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는 충주 칠금동 탄금대 일대에서 제2차 발굴조사를 진행해 4세기 무렵에 제작된 제련로 8기와 불을 때던 소성(燒成) 유구(遺構·건물의 자취) 1기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이번 조사에서는 제련로 6기에서 중복 축조의 양상이 드러났다. 또 다른 제련로 1기에서는 제련로를 중심으로 위쪽에서는 철을 만들 때 발생하는 찌꺼기인 슬래그가 흐른 구덩이 유구, 아래쪽에서는 불에 탄 목재가 있는 소성 유구가 각각 확인됐다.
한지선 국립중원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제련로는 보통 바닥에서 올라오는 습기를 차단하기 위해 숯과 모래 등으로 하부구조를 조성하고, 불순물을 받는 구덩이인 배제부도 같이 만든다”면서, “충주에서는 하부구조와 배제부를 재활용하고 작업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제련로를 사용하다 폐기한 뒤 그 자리에 새로운 가마를 쌓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한 연구사는 이어 “한반도에서 양양, 울산과 함께 3대 철광석 산지로 꼽히는 충주에서 백제의 전성기에 수십 년 동안 철을 만들었다는 사실이 이번 조사를 통해 더욱 명확해졌다”고 덧붙였다.
백제시대 제철유적 옆에서는 조선시대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터도 드러났다. 이 건물은 변의 길이가 약 7.3m인 정사각형 공간을 둘러싸고 적심(積心·주춧돌 주위에 쌓는 돌무더기)이 2열로 배치된 구조로 조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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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4.19혁명’ ‘동학혁명’ 기록물...세계기록유산 신청 대상 선정
[오윤정 기자]‘4.19 혁명 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이 우리나라가 내년 3월 신청할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후보로 결정됐다.
문화재청은 지난 27일 열린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 회의에서 지난 4∼5월 공모를 통해 접수된 기록물 10건을 심사해 4.19 혁명 기록물과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을 세계기록유산 신청 대상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4.19 혁명 기록물은 1960년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4.19 혁명의 원인과 전개 과정, 혁명 직후의 처리 과정을 보여주는 일체의 기록유산을 지칭한다. 국가기관과 국회.정당의 자료, 언론 기사, 개인의 기록, 수습조사서, 사진과 영상 등으로 구성된다.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1894년 일어난 동학농민혁명 당시 조선 정부와 동학농민군, 농민군의 진압에 참여한 민간인, 일본공사관 등이 생산한 기록을 아우른다.
문화재청은 “4.19 혁명 기록물은 개발도상국 중 가장 모범적으로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의 정치 사건을 자세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고, 동학농민혁명 기록물은 이 혁명이 정의와 평등의 가치를 추구했고 전통적 동아시아 질서를 해체하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두 기록물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여부는 2019년 열리는 세계기록유산 국제자문위원회(IAC) 회의에서 결정된다.
올해 하반기에 개최되는 회의에서는 조선왕실의 어보(御寶, 의례용 도장)와 어책(御冊), 국채보상운동 기록물, 8개국이 함께 신청한 일본군 위안부 기록물, 한일 양국이 신청한 조선통신사 기록물 등 4건의 최종 심사가 진행된다.
한편 문화재위원회는 아시아태평양 기록유산 안건도 함께 심의해 ‘만인의 청원, 만인소’와 ‘조선왕조 궁중 현판과 편액’을 등재 신청 대상으로 정했다.
문화재청은 아시아태평양 기록유산 신청서를 오는 8월 이전에 제출하고, 최종 심사는 내년 상반기 회의에서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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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33년에 쓴 가장 오래된 ‘흥부전’ 필사본 발견
[오재곤 기자]조선시대 판소리계 소설인 ‘흥부전’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필사본이 발견됐다. 기존에 알려진 흥부전 이본 40여 종과는 배경과 내용이 상당히 다르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료로 평가된다.
이번에 확인된 흥부전 최고본(最古本)은 송준호 전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소장하고 있던 자료로, 1833년에 쓰여진 것으로 추정된다. 표지에 ‘박응교전’(朴應敎傳)이라고 적힌 60면짜리 책에 ‘박응교전’과 합본돼 있고, 제목은 ‘흥보만보록’이다.
정병설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와 함께 이 자료를 조사한 김동욱 박사는 “지금까지는 미국 하버드대 옌칭도서관에 있는 흥부전 이본이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졌다”면서, “옌칭도서관 흥부전은 1897년 일본인 하시모토 아키미가 1853년에 작성된 자료를 필사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박사는 이어 “신재효가 1870년 무렵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가 등 여섯 작품을 정리해 가집으로 남겼는데, 흥보만보록의 필사 시기는 이보다 앞선다”면서, “판소리계 소설 중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모습을 담고 있는 이본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고 덧붙였다.
흥보만보록은 흥부전의 주요 이본인 '경판25장본', 신재효의 '박타령'과 비교하면 내용이 간략한 편으로, 특히 주목할 만한 점은 배경이 경상도나 전라도가 아닌 오늘날의 평안도 평원군 순안면 일대를 지칭하는 평양 서촌이다.
김 박사는 또 “이전에 발견된 흥부전 이본은 모두 삼남 지방이나 장소를 정확히 비정할 수 없는 곳을 배경으로 했다”면서, “흥보만보록이 발굴되면서 흥부전의 발상지를 재검토할 필요성이 생겼다”고 주장했다.
흥부가 결말 부분에서 무과에 급제해 황해도 개풍군을 본관으로 하는 덕수장씨(德水張氏)의 시조가 됐다는 점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기존의 흥부전에는 흥부와 놀부가 연 씨나 박 씨라고 표기돼 있었다.
흥보만보록의 또 다른 특징은 선악의 구도가 명확하지 않고, 흥부와 놀부가 모두 평민 출신의 부잣집 데릴사위로 표현됐다는 점이다. 흥보만보록에서 형제 사이에 빈부 격차가 발생한 이유는 처가에 살던 흥부가 가난한 친부모를 봉양키 위해 친가로 돌아온 반면, 놀부는 처가에 눌러앉았기 때문으로 묘사됐다.
또 많은 흥부전 이본에서는 제비가 흥부의 집에 날아온 것으로 묘사돼 있지만, 흥보만보록에서는 흥부가 우연히 다리를 다친 제비를 발견했다고 서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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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조선시대 개축한 홍성 홍주읍성 북문터서 옹성 확인
사진제공/문화재청
[오윤정 기자]일제강점기에 도로 아래로 매몰된 홍성 홍주읍성의 북문터에서 옹성(甕城) 구조가 드러났다.
문화재청은 홍성군과 충청남도역사문화연구원이 홍주읍성 북문터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문과 성벽을 지은 뒤 나중에 문 앞을 둥그렇게 감싸는 반원형의 방어시설인 옹성을 지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27일 밝혔다.
홍주읍성 북문은 통로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배수로가 설치돼 있었고, 성벽 축조 시에는 안과 밖에서 쌓는 협축식(夾築式) 기법이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사적 제231호로 지정된 홍주읍성은 고려시대 토성이었다가 조선 문종 원년(1451)과 고종 7년(1870)에 석성으로 개축됐다. 길이는 1천 772m이고, 성벽 중 약 800m 부분이 남아 있다. 문은 4개가 있었다고 전하나, 동문과 남문만 복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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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루.송림사 오층전탑 등 건축문화재 4건...국보 승격 추진
사진제공/문화재청
[오윤정 기자]국가지정문화재 보물인 밀양 영남루,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 완주 화암사 우화루,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의 국보 승격이 추진된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대한불교조계종과 국립중앙박물관, 한국건축역사학회, 한국미술사학회, 지자체로부터 국보로 지정할 만한 건축문화재를 추천받은 뒤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 후보 4건을 추렸다고 밝혔다.
단체와 학회, 지자체가 국보 승격을 신청한 문화재는 최종 후보 4건 외에 강화 정수사 법당, 강화 전등사 대웅전, 경주 남산 용장사곡 삼층석탑, 경주 보문사지 연화문 당간지주, 정선 정암사 수마노탑, 부산 범어사 대웅전, 부산 범어사 조계문 등 7건이었다.
밀양 영남루(보물 제147호)는 고려 공민왕 14년(1365) 밀양군수 김주가 지은 누각으로, 현재의 건물은 조선 헌종 10년(1844)에 건립됐다. 정면 5칸, 측면 4칸 규모로, 밀양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있다.
완주 화암사 우화루(보물 제662호)는 화암사의 입구에 자리한 정면 3칸, 측면 3칸짜리 2층 누각이다. 정유재란 이후인 1611년 중건됐고, 조선시대 건축양식이 잘 반영된 누각으로 평가된다.
칠곡 송림사 오층전탑(보물 제189호)은 통일신라시대에 벽돌로 쌓은 탑이고, 공주 마곡사 오층석탑(보물 제799호)은 고려시대 후기에 세운 탑으로 원나라와의 교류를 통해 유입된 라마불교의 영향이 느껴지는 유물이다.
문화재위원회는 이들 문화재에 대해 전문가 3인 이상이 현지조사를 한 뒤 작성한 보고서를 참고해 국보 지정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황권순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장은 “국보 330건 중 누각, 탑, 전탑, 전각 등 건축문화재는 모두 44건"이라며 "국보는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중에서도 상징성이 크고 가치가 뛰어난 유물”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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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문화 세계요리대회’ 개최...'인삼과 함께 하는 세계음식 향연‘
[오윤정 기자]지난달 30일 광화문 광장에서 50여개 국가 주한외국대사관들이 참여한 가운데 ‘2017 주한외국대사관과 함께하는 식문화세계요리대회’를 개최했다.
유종열 공동대회장은 이날 대회사에서 “오늘의 시대는 평화와 공존의 시대로, 공존이라는 것은 국제정치적인 공존뿐만 아니라 문화적 공존을 의미한다”면서, “문화적 공존 중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음식문화로, 모든 인류는 음식을 먹고살기 때문에 다른 민족이 무슨 음식을 먹고 사는가를 알아야 만이 다른 민족을 더 잘 이해하게 되고 그 바탕위에서 평화공존이 이뤄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의 글로벌 시민인 주한외교대사관이 전시하는 인삼국제요리 레시피들은 서울시 식문화 데이터로 보유 할 수 있게 되고, 식문화 교류를 더욱 발전 시킬 뿌리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이렇게 적극적인 참여를 해 주신 주한외교대사관 가족 모두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정기적 교류 발전을 위해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류현미 식문화세계교류협회장은 “세계 레시피 개발 콘텐츠 확장을 위한 2017 주한외국대사관과 함께하는 식문화세계요리대회를 개최하게 됐다”면서, ”세계 식문화 융합콘텐츠개발을 통해 미래식문화교류를 이끌 차세대 식문화계 종사할 청년 인재들에게 일자리 창출과 해외창업기회를 확장해 줄 수 있는 식문화 수출입 교류의 장을 마련키 위해 주한 외국대사관의 참여하는 세계 각국 인삼요리 전시경연을 열어 서울 시민들과 식문화 종사자들에게 식문화 관광 체험의 장을 선보이게 됐다“고 밝혔다.
||맹주석 조직위원장은 “예부터 음식을 대접하거나 나눠 먹는 것은 국경과 언어를 초월해 서로 교류를 하고 마음을 열게 하는 참 아름다운 풍습으로, 오늘 행사를 통해 한국의 음식, 특히 인삼의 효능, 재미있는 체험 등을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민섭 서울시의원은 환영사에서 “오랜 전통의 음식답게 농익는 효소가 담뿍 담긴 우리 음식에 전 세게인의 눈이 쏠리고 있다”면서, “노래와 춤으로 전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는데, 이제는 한민족의 따스한 정을 담은 음식으로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면서, “조상님들의 밝은 지혜와 솜씨가 남겨준 우리 한식문화를 더욱 더 발전시켜온 지구촌사람들과 함께 나누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날 주요 행사로는 개막식, 요리대회 및 시식, 글로벌 한마당과 시상식의 순서로 진행됐다. 특히 사전.사후에는 각국의 특별민속공연도 펼쳐져 시민들과 관광객들에게 즐거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이번 대회에는 단순한 요리기능인 선발대회가 아닌 인삼으로 세계요리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만큼 한식의 세계화, 레시피 콘텐츠보유 및 외국인 대상 인삼의 홍보효과 극대화 요소를 발견해 식문화교류를 통해 인재 교류 및 육성 방안을 주한 외교대사관들과 논의하면서 시스템으로 구축하게 될 먹거리를 이용해 새로운 문화교류의 장이 될 것으로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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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청, 해남서 3세기 마한 고분군 확인
[오윤정 기자]전남 해남에서 마한이 약 1천 700년 전에 조성한 것으로 보이는 고분 수십 기가 확인됐다. 해남에서 나온 마한 고분군 중 최대 규모급으로, 가야에서 생산된 납작한 덩이쇠가 함께 출토돼 가야와 교류한 해상세력의 거점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은 대한문화재연구원이 해남군 화산면 안호리 514-3번지 일원에 있는 안호리·석호리 유적에서 발굴조사를 진행해 3세기 후반부터 4세기 초반 사이에 만들어진 고분 50여 기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고분은 사다리꼴의 도랑을 파고 그 안에 목관묘나 옹관묘(항아리 시신을 넣는 무덤)를 안치한 뒤 일정한 시기가 지나서 도랑 바깥쪽에 목관묘, 옹관묘, 토광묘(땅에 구덩이를 파고 시체를 묻은 무덤)를 추가로 조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한문화재연구원 측은 “고분 50여 기에서 확인한 매장시설은 모두 110여 기에 이른다”면서, “마한 세력의 한 집단이 50∼70년 동안 축조한 것으로 판단된다. 나주, 영암의 마한 고분군과 무덤 양식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덧붙였다.
무덤 안에서는 목 짧은 항아리, 아가리가 두 개인 항아리 등 토기와 둥근고리칼, 철도끼, 시신의 목에 걸었던 구슬류 등 유물 200여 점이 출토됐다.
대한문화재연구원 측은 “유물의 양상이 인근에 있는 해남 화산면 부길리 옹관묘, 현산면 분토리 고분군과 비슷하다”면서, “철기를 매개로 대외 교류에 참여했던 마한 해상세력이 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