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닫기
인터뷰
-
‘자타가 인정하는 내각제론자’
김준성 정치부장은 우윤근 의원과 서울 여의도 의원회관 우 의원실에서 만났다. 우윤근 그는 성실한 평소의 태도처럼 흐트러짐이 없이 의원회관 내 의원실에서 국정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었다. 그는 내놓고 의회와 대통령이 권한을 나눠 갖는 그런 정치체제로의 변한을 희망한다는 말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그의 응접실로 안내된 먼저 얼음물을 한잔 마시고 그와 인사 후 인터뷰를 시작했다.
Q. 안녕하십니까. (제가) 구례 사람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보니 의원님은 로멘티스트이자, 여행을 아주 좋아해서 70 국가를 여행한 경험을 가진 다채로운 인재로 기억하더군요. 의원님의 고향과 왜 정치에 입문을 하게 된 것인지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A. 예 고향은 구례입니다. 선거구도 그렇습니다. 구례를 생각하면 자연 그대로의 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생깁니다. 자연을 사랑하는 저의 마음일 것입니다. 고향에 대한 애정으로 일생을 만들어 가고자 사법시험 합격을 한 후 변호사로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일했습니다. 이시기에 무려 50일간을 여행을 한적이 있답니다.
Q. 사모님이 불평이 없었나요.
A. 불평을 심하게 들으면서 여행단의 등산 팀장이 되어 히말리야 산은 5천 미터 됩니다. 등정한 추억이 납니다. 가족은 처가에서 있다가 여행 50일후 귀가하니 그렇게...저는 여행을 좋아 하게 되었답니다.”
Q. 그런 자유주의자가 국회에 왜 입문을 할 의향을 가지게 되어 3선의원이 되셨나요...
A. 사회에 대한의무, 고향의 발전에 대한 역할. 국가에 대한 헌신성을 발휘하고 싶은 생각이 듭디다. 그래서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가 국회의원이 되어서 봉사하고자 고향에 출사표를 내고 새정치 민주연합의 의원이 된 것입니다.
Q. 선거당시, 초선에서의 구례 지역구 선거에서 무슨 전략으로 선거 운동 하셨는가요. 어느 시기가 되니 이길 것 같은 느낌이 다가 온 것인가?
A. 선거 초반에...
Q. 유연성이 많고 여당 야당에 친구를 의원들이 많다는 주변의 평가에 대하여 본인은 어떤 시각으로 해석하는 중인가요 의원 내각제 예찬론자로 알고 있다. 의원님이 왜 의원 내각제를 신봉하는가? 우리나라 여건상 정치선진화를 위해서는 프랑스 같은 나라가 하는 정치 체제로 변화를 줘야 한다고 본다. 정치에서의 자유로운, 멀티한 의견을 반영하는 시스템으로서 내각제가 시작을 검토할만한 제도로 보시는지요
A. 그렇습니다. 이제 다양한 정치 소비와 공급이 정치 마켓에서 유통중이다. 대통령제의 여러 피로 증후군이 권력이 작동하는 한국의 최근 정치 정세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런 대통령제의 피로 증후군을 더욱 체감하면서 우리나라 국민들이 내각제를 원하는 비중이 대통령제선호 정치소비자들과 비슷하게 등장하는 중이다.
Q. 한국 헌법이 1948년 7월 12일날 제정 공포, 8차의 개정된 헌법을 1987년 10월 29일에 다시 개정GO 소위 '87년체제'가 등장한후 25년의 정치세월이 지나간다. 87년 체제가 가진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5년 임기를 대통령에게 주는 87년 체제는 여러 문제점에도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박근혜 현 대통령에게 집권의 기회를 주는데 역할을 다한다. 이제 달라져야 한다. 다시 말해서 대통령의 권한을 분산해서 피로증후군을 갖지 않게 정치 리더쉽을 하나둘 활성화 시키는 시스템으로서 내각제를 한국이 받아 드리는 것이 국리 민복에 더 도움이 된다고 보는가.
A. 너무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되어 있다”
Q. 구체적으로 프랑스형 내각제인가. 일본형 내각제인가, 오스트리아 형 내각제를 선호 하는가
A. 오스트리아, 프랑스 내각제 형은 안정적으로 대통령과 총리가 권력을 나눠 갖는다. 오스 트리아 내각제가 대통령과 총리가 권한을 나눠 갖는 것이라서 좋다.
Q. 일본식은 책임 정치를 구현하다고 하지만 사건 후 너무 자주 수상이 바뀌는 형이다. 전자. 안정적인 프랑스식을 원하는가. 자주 수반들 사이에 리더쉽 교체를 하면서 새로운 인재들이 통치하게 하는 것이다. 어느 유형을 의원님은 좋아하는 가. 그 이유와 더불어 말해 주시기 바랍니다.
A. 나는 오스트리아의 내각제를 원한다. 이 제도는 안정적으로 임기가 보장되는 대통령제에서 임기조항을 가져온다.
Q. 왜 그렇게 생각 하는가. 대통령은 통치자라기보다는 조정자로서 그의 역할을 충분히 발휘한 경험을 지니고 의회의 해산문제를 절제력으로 다뤄온 이가 바로 프랑스 미테랑 대통령으로 안다. 이는 무엇을 의미 하는가. 특히 1981년과 1988년 의회해산의 역사에서 1,2차 임기의 후반에 정치적인 인내를 시작한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다. 이것은 앞으로 2년 3개월을 반대파인 그 수상으로 집권한 동거체제를 감수하면서 손쉽게 보이는 의회 해산권을 발동하지 않은 미테랑의 정치적인 인내는 받을 만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프랑스의 분열을 원하지 않은 그런 당에의 충성의지가 발현된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도 더 이상의 분열을 위한 노력은 하지 않은 것이 좋지 않을 것인가?
A. 헌법 전문가 린쯔(Linz)는 말한다. 이원정부제의 정상적인 운영은 순수 대통령제보다는 대통령개인의 능력이나 성격여하에 달린 일이다. 그렇다. 개인이 지닌 대통령의 퍼스넬리트가 작용한다는 말이다. 이원 정부제는 프랑스를 정치적으로 성공한 나라로 성숙 시키는데 기여 한다...본인도 린쯔의 그런 견해에 동의 한다.
Q. 그래서 우리나라의 미래의 정치체제를 일본식이 아닌 오스트리아 내각제 식으로 가져가자고 주창하는 것이다. 국가의 미래를 위해서 대통령에게 수상 임면권을 주는 프랑스식 이원 정부제는 한국과 같이 분단된 국가로서 민족 통일을 이뤄가야 하는 나라에서의 통치 체제로는 더 낫다고 보는데 의원님의 생각은?
A. 제가 보기에는 일본의 내각제는 한국인들이 불안정감을 줄이는데 기여하지 못할 그런 정치 제도라고 확신한다. 일본은 국회의 신임이 없는 경우, 헌법상 의회 해산을 하거나, 내각의 총사퇴가 일어나서 수상이 너무 빈번하게 바뀐 다는 점이 문제라고 지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Q. 일본의 제도 취약점은?
A. 국회 해산후 일본의 제 정당은 과반수의 국회의원이상을 자기 당이 차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으로 전력을 다할 것이다. 만약 한국에서 이런 투표가 빈번하면 일할 시간에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그런 여건이 도래 할지도 모를 것이다. 그렇습니다. 일본의 정치가들은 내각제를 하면서도 천황은 형식적이기는 하지만 조약승인권, 국정 조사권, 입법권을 가진 존재로 규정중입니다. 일본정치 체계를 만드는 과정에서 필요한 인재모으고 정당에 입문하면서 일단 정치인의 일을 하려는 이들에겐 여론 조사, 현실 적합성이 풍부한 언행(言行)의 정책화 등이 대통령제 보다는 더 잘 투영되는 것이 가능하다. 프랑스의 이원정부 제도는 다른 나라에서, 특히 한국 국민들에게는 생소 하게 다가 오는 이슈라는생각입니다.
Q. 특히 2014년 4월 16일 정신, 즉 국가는 가장 적극적인 안전체제를 만들고 이를 극복하는 과정도 대한민국 헌법에 들어가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생각은...
A. 프랑스 내각제 초대 대통령은 에버트였답니다. 그런데 의원님이 보시기에 왜 사람들이 프랑스 헌법에서는 강한 메시지의 권한을 대통령을 다양하게 주는가. 이것이 프랑스 정치 지도자들이 발동해 인권을 침해하되, 국가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다면 걱정이다. 이런 걱정을 한 것이 진실이랍니다.
Q. 헌법상 국가 긴급권남용, 이에 대한 대비책은?
A. 1919년부터 1925년까지 163건에 불과해서 기우에 그친 점을 설명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힌댄 브르크 대통령은 1923년 브리닝 수상을 해임한다. 이런 대통령의 수상임면권은 프랑스의 대통령의 리더쉽을 극대화 하는데 도움이 된 점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1958년 드골은 제5공화국 헌법을 만든 후 이를 국민들이 지지하자, 자신에 대한 지지로 간주하고 선거인단의 간접 선거로 프랑스의 대통령이 된다. 그 후 그에게 헌법상 주어진 드골 대통령의 프랑스 헌법상 16조의 국가 긴급권 발동권은 절제된답니다. 그 발휘가 말입니다. 자신의 대통령 재임기간인 1961년 1월, 1962년 4월, 1962년 등, 알제리 폭동시기에 발동한적이 있답니다. 국민의회 해산권이 주어진 프랑스 헌법은 다소 걱정이 되지만 그렇다면 절제해서 운영 하면 됩니다. 국가 긴급권은 이원 정부제 헌법에 포함 안 시켜도 됩니다
Q. 끝으로 만약 귀의원이 헌법을 이원 정부제의 내각제로의 개정을 한다면 추가해서 첨가, 연구 할만한 것은 무엇이 존재 한다고 보는지요
A, 전문에 4.16 정신을 4.19 민주 이념다음에 넣는 방식의 정책 검토가 필요하다 할 것이다.아울러 본인이 보건데 앞으로 우리 경제 발전을 위하여 헌법 119조의 경제 민주화 조항을 신설하자. 한 문장으로 '헌법 119조 3항을 신설' '대한민국은 경제 민주화를 지속적으로 추구한다'가 되어도 됩니다. 영토규정을 새롭게 두고 한국의 영토는 독도와 한반도, 대마도 근해, 마라도 등을 구체적으로 명시하는 것도 필요하다. 국가는 통일을 위해 대통령의 령으로 통일세를 거두고, 이를 민족 통일이 어느 순간에 오면 이비용으로 충격을 수용하는 데 그 비용으로 활용한다는 조항의 검토도 필요하다고 본다.
Q. 하실 말씀 한 마디 더하신 다면.
A. 우리가 지금 경제 순위 15위 국가입니다. 국가수 200개가 넘는 구조하에서 말입니다. 이제 2만 4천불의 국민 소득구조를 넘어서서 3만 불시대로 전진 중입니다. 이민족이 이미 100만명이상이 들어와서...이들 위한 헌법조항의 신설도 필요할 것으로 보입니다. 조국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서 저는 한국의 미래를 위해서 부드러운 내각제를 입안하는 준비가 이뤄지기를 기대합니다. 오스트리아 식 내각제로 대통령이 수상과 권력을 나눠 행사하는 그런 나라가 희망을 주는 나라가 될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자 합니다. 김준성 대기자의 진지하고 정치 철학을 내포한 질문에 감사드린다.
우윤근 의원님도 일취월장 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그의 방을 나오면서 그가 참 아이디어가 많은 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2014-10-18 김준성 기자
-
‘행정과 입법을 동시에 아는 리더쉽 강한 의원’
Q. 안녕하세요, 저는 한강 일보 정치부장입니다. 의원님께서 걸어오신 길, 그리고 앞으로 추구해 나가고자 하는 방향에 대해서 몇가지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먼저, 어린 시절 유성엽은 어땠나요? 꿈 많은 어린 시절 얘기부터 좀 해 주시죠.
A. 제 고향은 전라북도 정읍시 옹동면이라고 하는, 정읍에서도 작고 척박한 면(面)입니다. 옹동면은 상두산.비봉산 자락을 등지고 앞으로는 동진강이 유유히 흐르는, 그야말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전형적인 시골마을입니다. 중학교 3학년 때 전주로 전학가기 전까지의 제 어린 시절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죠. 비록 가난했지만, 부지런하신 아버지와 어머니 덕분에 굶지는 않았고, 장손자를 끔직이 사랑하신 할머니의 배려로 넉넉한 마음만큼은 부잣집 아이들 못지않았습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유별난 개구쟁이였습니다. 마을 또래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골목대장 노릇하면서 온갖 말썽은 다 부렸던 것 같아요. 그나마 공부를 곧 잘 해서 학교를 무사히 졸업할 정도였으니깐요. 지금도 그때 개구쟁이 친구들과 가끔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그 시절을 이야기 하며 웃곤 합니다. 그 시절 기차는 구경하지 못했지만, 가끔 하늘을 나는 비행기를 보며 신기해 하면서 비행기 조종사가 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갖기도 했지요.
Q. 처음에 내무부 공무원으로 행정에 입문해서 민선 단체장과 국회의원까지, 중앙 지방, 행정과 정치를 넘나든 경력이나, 탄탄대로를 걷다가 한 순간 무소속이 되서 골리앗과 외로운 싸움을 전개한 이력들은 다른 정치인한테서는 쉽게 찾기가 어려울 정도로 특이한데요, 정계 입문 과정을 좀 말씀해 주시죠. 나름대로 고생도 하셨을 것 같은데요.
A. 대학시절 신군부가 등장하면서 국가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한 시기였죠. 저 또한 당시 대학생들과 의식을 함께 하면서도 학생운동에는 깊게 참여하지 않고 혼돈과 방황의 시절을 보냈습니다. 공부에는 별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친구들과 뭉쳐 다니며 막걸리 마시고 떠들고 그랬습니다. 막연히 방송기자를 꿈꿨었습니다만 제 작은 아버지께서 기자도 제대로 하려면 뭔가 머릿속에 들은 것이 있어야 한다면서 목표를 정하고 책을 진지하게 읽어야 한다고 하시더군요. 그래서 행정고시를 준비하게 되었는데 운이 좋게도 아주 빠른 시간내에 쉽게 합격했습니다. 숙명처럼 주어진 제 길이 공무원인가 보다 생각하며 내무부를 지원했습니다.
사실 저는 행정보다는 정치에 관심을 더 가지고 있었거든요. 당시에는 지방자치가 구현되지 않았지만, 결국 우리나라도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지방자치가 분명히 구현될 것이라고 예상했었습니다. 그래서 발령 희망부서를 내무부로 신청했습니다. 중앙행정과 지방행정을 두루 섭렵할 수 있고, 또 운이 좋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임명직 시장이나 군수도 경험해 볼 수 있기 때문이었죠.
결과적으로 저는 그때의 생각과 경험을 바탕으로 42세 때인 2002년에 민선 3기 정읍시장에 당선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민선 시장에 취임하면서 다진 각오는 주어진 여건을 최대한 활용해서 정체된 도시에 활력을 불어 넣어 보자였습니다. 외부 지원에만 의존하지 말고, 우리 시민의 힘과 역량으로 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했던 것입니다. 정읍을 제일의 축산도시로 만들고, ‘단풍미인’이라는 자체 브랜드를 만들어서 정읍의 한우와 쌀을 전국에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주민이 주체가 되는 관광상품을 만들었습니다. 산간 오지로 인적이 드물던 산내면 옥정호변에 구절초를 심어서 이제는 매년 10월이면 ‘옥정호 구절초 축제’를 내방하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산내면에 전략적으로 재배를 권장했던 ‘노랑고구마’를 구절초 축제와 같은 시기에 수확, 관광객들께 또 다른 즐거움도 선사하게 되었습니다. ‘구절초 축제’와 ‘노랑고구마’는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고 지역 경제에 보탬이 되는 성공적인 관광 컨텐츠로 자리매김 하게 된 것입니다. 정읍시장을 역임하면서 저는 아무리 어려운 환경이더라도 우리에게 주어진 여건과 자산 즉 향토자원을 십분 활용해서 내생적 발전 전략을 수립하고 추진하면 분명 돌파구가 있다는 평소 지론에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산업화 사회를 거치면서 중공업 중심의, 국토의 수도권과 동남권 중심의 성장 전략의 결과물은 지역간에 심한 불균형으로 나타났고, 상대적 폐해는 고스란히 지방, 농촌으로 전가되고 있습니다. 부익부 빈익빈 악순환의 연속인거죠. 적어도 농촌이 도시와 공생공존 할 수 있는 토대가 필요하고 제도적인 뒷받침도 만들어 내야 합니다. 그래서 시장(市長)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나 정책과 제도를 정비할 수 있는 국회의원의 권능을 찾아 나섰습니다.
2008년 18대 총선 출마를 준비하면서 비교적 성공적인 시장을 역임했고 또 당시 50% 내외에 이르는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기에 민주당의 공천을 당연히 받을 것으로 낙관했습니다. 하지만, 저의 부족함으로 공천을 받지 못했고, 부득이 정읍시민의 뜻을 직접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읍발전을 위해 한번 열심히 뛰어보라는 시민들의 압도적 지지(61%)로 당선되었습니다. 이후 두 번에 걸쳐 민주당 복당신청서를 제출했지만, 당에서는 구체적인 이유조차 얘기해 주지 않고 복당시켜 주지 않았습니다. 하는 수 없이 오로지 시민만 바라보고 무소의 뿔처럼 뚜벅뚜벅 의정활동에 매진했고, 2012년 19대 총선에서도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당선되었습니다.
행정고시에 합격하고, 내무부에서 공직을 시작한 이후 전북도청 공무원을 거쳐 민선 3기 정읍시장에 당선되기까지 비교적 주류(主流)의 입장에서 승승장구해 왔다고 평가한다면, 본격적인 중앙정치를 시작하면서는 본의 아니게 비주류(非主流) 입장이 되어 외롭고 험난한 길을 헤쳐 나오게 되었습니다. 재선 국회의원이 되어서야 민주당에 복당하게 되었고, 복당해서도 계속해서 당의 개혁과 정치 혁신을 위해 비주류의 입장에서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고 있습니다. 행정과 정치, 중앙과 지방, 주류와 비주류 등 그 동안 제게 주어졌고 감내해 왔던 상황이야 말로 제가 앞으로 정치를 계속해 나가면서 예상되는 많은 선택의 기로에서 올바른 판단을 하게 될 큰 밑거름이라고 생각합니다.
Q. 처음 국회의원에 도전했을 때 당에서 공천장을 받지 못했는데요, 그때 아마 경선을 위한 배수 압축 과정에서 배제됐던 것이죠? 당시 심정은 어떠했나요?
A. 공천문제는 지금 우리 새정치민주연합의 근본적인 문제점으로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고질병입니다. 공천과정의 투명성, 객관성, 공정성 확보야 말로 정당개혁의 요체입니다. 하지만 우리 야당은 몇 차례 총선과 대선을 거치면서 당대 당 통합, 시민단체 수혈 등 이합집산의 연속이다 보니 투명하고 객관적이며 공정한 공천과정을 거쳤다고 볼 수 없는 것이죠.
저 자신이 민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된다는 호남에서 연거푸 무소속으로 두 번 국회의원에 당선이 되었다는 것은 제가 잘 해서라기보다 공천과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유권자가 심판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7.30 재보궐선거 참패 또한 공천의 실패로부터 비롯된 것 아닙니까. 우리 야당의 공천파동이 참신하고 유능한 인재들이 모일 수 없게 만드는 독소적 요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저 또한 그 어떤 경쟁자들보다 정읍과 대한민국을 위해 더 열심히 일할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막상 공천에서 탈락하고 보니 그 실망감과 허탈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라도 우리 새정치민주연합이 차기 총선 공천과정의 투명성과 객관성 확보를 위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고 공천권을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당원과 국민들께 돌려드리려는 진지한 고민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Q. 한 동안 지방분권이 큰 흐름을 이루다가 최근에는 목소리는 줄어들었습니다. 민선 정읍시장을 경험한 유 의원께서는 평소 지방자치에 대한 신념이 강하신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소신을 한번 말씀해 주십시오.
A. 저는 지금 우리나라가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차고 올라서지 못하는 이유를 두 가지로 분석합니다. 하나는 농업을 경시하고 있다는 것이고, 나머지 하나는 이명박 정부 이후 현재까지 신중앙집권적 정치행정구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농업에 대한 얘기는 나중에 하기로 하고요, 지방자치에 대한 저의 신념은 큰 틀에서 분권(分權)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는 분권이야 말로 지방의 지속가능한 성장동력이고, 지방의 성장이 곧 국가경쟁력 강화로 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전국 226개 기초단체가 제각각 특색 있는 발전전략을 마련해서 서로 경쟁하며 발전해 나간다면 종국에는 ‘근자열 원자래(近者悅 遠者來)’ 철학을 구현함으로써 수도권 과밀화 현상을 해소할 뿐만 아니라 지금과 같은 피폐한 농업과 농촌 현실을 벗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중앙과 지방간의 분권, 입법과 행정간의 분권, 행정부 내부의 분권 등 한곳으로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는 권한과 권능을 과감하게 풀어야 짐도 덜고 부담도 덜 수 있습니다. 서로가 짐을 나눠지고 가볍게 훨훨 날아보자는 뜻입니다.
앞으로 개헌을 할 때 제왕적 대통령제 극복을 위한 분권형 권력구조 개편에만 머물지 말고 큰 틀에서 나라 전체의 분권을 담아내야 합니다.
Q. 중앙 정치에 큰 꿈을 가진 인재라는 유권자들의 평가도 있습니다. 그 만큼 유 의원께 거는 기대가 크다는 것일 텐데요, 지역에서 유권자도 많이 만나시죠? 의정 활동은 어떻게 준비하는지요
A. 정읍에서 나고 자란 제가 세상을 향해 도전한 이후 다시 정읍에 돌아온 것이 2002년 정읍시장에 출마하면서 입니다. 29년 만이었죠. 그리고 지금까지 정읍을 떠나지 않고 국회로 출퇴근 하고 있습니다. 정치발전 과제 중에 중요한 하나가 정치와 국민간의 거리를 좁히는 것이라는 생각에서죠. 제 의정활동 근간은 지역주민과 함께 문제나 현안을 고민하고, 즉시 국회에 가서 의정활동에 반영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지역민들과 자주 만나게 되고 또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많이 듣게 됩니다. 지역민과의 만남 자체가 제게는 소중한 배움의 장인 셈이죠. 시장 4년과 국회의원 6년, 그리고 중간 공백기 2년을 그렇게 생활하다 보니 많은 분들을 만나게 되고 또 알게 된 것 같습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직능적인 분야 말고 세대별로 즉 젊은 세대와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았다는 점은 개선해 보고 싶습니다.
Q. 지금 새정치민주연합의 정책위 수석부의장과 함께 국회 농해수위 야당 간사를 맡고 계신데요, 주요 역할은?
A. 미국의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이먼 쿠즈네츠 교수는 “후진국이 공업화를 통해 중진국이 될 수는 있어도, 진정한 농업 농촌의 발전 없이는 선진국이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크 시라크 전 프랑스 대통령은 “농민 없는 국가는 없다”면서 중농주의 정책을 펼쳤고, 프랑스가 오늘날 요리의 선진국으로 도약하게 된 원동력을 농업의 발전에서 찾은 바 있습니다.
이렇듯 세계적인 리더들은 농업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주요한 지도자들은 농업에 대한 개념이 전무합니다. 그저 공산품 수출을 위해 내주어야 할 시장으로 밖에 인식하지 않습니다. 대단히 안타깝고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농해수위 야당 간사로서 김우남 위원장님, 그리고 여당 간사인 안효대 의원님과 함께 농림축산식품부와 해양수산부가 소관하는 정책의 주요 안건과 일정 등을 협의하고 있습니다. 잘 아시고 계시겠지만 WTO 체제에 이어 각종 FTA에 따른 개방화로 우리 농업과 농촌은 날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게다가 최근 박근혜 정부의 쌀 시장 전면 개방 추진으로 불안과 혼란이 가중되고 있습니다. 정부가 마련 통보한 관세율을 어떻게 관철시켜 낼 것인가, 또 앞으로 유지해 나갈 것인가 아주 중요한 기로에 놓여있습니다. 우선 성난 농심을 달래고, 정부정책의 신뢰도 제고를 위해서 국제협의 기구 대표단에 농민대표의 참여를 보장하도록 정부에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쌀 관세율 법제화를 강력히 주문하고 추진해 가려 합니다. 나아가 지금 논의 중인 한중FTA는 우리 산업구조를 통째로 뒤흔들어 놓을 정도의 파급효과가 예상됩니다. 충실한 보완, 보전대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농업의 붕괴는 명약관화합니다. 정부가 어떠한 대책을 어떻게 마련하고 있는지 면밀히 짚어보고 충실한 대안이 마련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점검해 나갈 계획입니다.
Q. 새길 새로운 세상을 희망하는 정치 메시지를 지닌 전북의 다크호스에서 전국의 다크호스로 우리나라 야당의 초석을 하고 싶어나는데, 유 의원께서 가지고 계신 장기 비전을 말씀해 주십시오.
A. 우리 전북은 야당사에서 큰 족적을 남기신 지도자를 많이 배출했습니다. 정읍 출신으로 국회 부의장을 역임하신 백봉 라용균 선생님, 그리고 유신정권 하에서 야당당수를 역임하신 소석 이철승 선생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치스승이시자 17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을 역임하신 김원기 의장님, 전북출신의 최초 대통령 후보로 나선 정동영 상임고문님, 당 의장을 역임하신 정세균 상임고문님 등 기라성 같은 정객의 산실이 바로 우리 고장 전북입니다. 이 분들의 큰 뜻을 계승하고 더 발전시켜 나가야 할 몫은 바로 우리 후배 정치인들에게 주어졌다고 생각합니다. 누군가 그 몫을 맡아 나가야 한다면 저 또한 주저하지 않겠다는 다부진 각오로 임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제 우리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고 통일을 이루어 가면서 동북아시아 공동체를 견인할 주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유연한 정신과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더 이상 20세기 정치경제 시스템에 연연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정반합(正反合)’의 변증법적 정치·경제발전을 토대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부작용을 대폭 해소하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한계를 분명히 극복해서 ‘21세기 새로운 정치경제 모델’을 정립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안고 있는 국가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을 과감히 풀어내고, 남북통일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비해 나가야 합니다. ‘문명서진론(文明西進論)’에 발맞춰 세계사 흐름의 중심이 되고 있는 한․중․일 공동체를 선제적으로 주창하고 견인해야 합니다. 이제 대한민국이 주도하는 동아시아 공동체가 중심이 되어 세계를 이끌어 가겠다는, 세계사적 책무도 기꺼이 짊어져야 할 것입니다.
Q. 즐기는 스포츠나 여가는?
A. 스포츠를 관람하는 것은 즐겨하지만, 직접 참여할 기회는 많이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시간이 허락할 때마다 전국의 주요 명산을 답사하려고 노력합니다. 산의 좋은 기운도 듬뿍 받고, 제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바람직한 시간을 갖기 위함이죠.
Q. 외교학을 공부 하신 걸로 압니다. 또한 선거 유세때 보면 대중 연설을 탁월하게 하신다고도 정평이 나 있습니다. 혹시 강습을 받은 적이 있으신가요? 주제와 현안에 대해서 요점과 맥락을 잡는 일이 쉽지는 않은 일인데요.
A. 사실 저는 수줍음을 많이 타는 성격입니다. 처음에 정치 시작하면서 대중연설을 할 때는 아주 어색하고 낯설었죠. 긴장도 많이 하고요. 그런데 마이크를 잡고 제 자신의 소신을 목청껏 피력할 때는 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대중 속으로 파고 들어가게 됩니다. 그들의 속내를 긁어주고, 누군가를 향해 대신 실컷 욕도 해 주고 싶은 그런 심정으로 말이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제 연설이 매우 선동적이라고들 하시더군요. 대의민주주의에서 정치란게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유권자들이 궁금해 하고 답답해하는 것 요점을 잘 짚어서 적절한 단어를 선택해 시원하게 내 뱉어 주는 것. 물론 지적하는 문제점들에 대한 대안은 충실히 마련해야겠죠. 그래서 요즘 정치인들은 공부를 많이 해야만 합니다. 현장을 얼마나 다니고 공부했는지는 대중 연설을 해 보면 바로 알수 있거든요. 아는 만큼 보이고 또 그 만큼 다가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Q. G2인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우리나라는 아주 전략적인 외교관계를 성립해 나가야 할텐데요, 유 의원 생각을 말씀해 양강의 중간에서 우리가 취해야 할 스탠스에 대한 생각을 밝혀 주십시오.
A.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상징인 미국, 그리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상징인 중국. 두 강대국이 벌이는 시소게임의 중간에서 우리나라는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지지 않기 위한 많은 고민을 해야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지나치게 경도된 인식과 사고를 한다면 우리 미래를 암울하게 하는 위험한 지경으로 내몰릴 수도 있습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부작용을 해소하고,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유연한 자세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나라의 흥망을 알 수 있다는 옛말이 있습니다. 조선시대 임진왜란은 왜와 명 사이에서, 정묘호란은 명과 청 사이에서 균형 잃은 외교에서 비롯되지 않았습니까. 결국 열강의 틈바구니에서 자립을 위한 외교적 노력이 물거품이 되면서 500년 조선의 역사가 뒤안길로 쓸쓸히 사라지게 되었고요.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로 엄중한 시기라고 봅니다.
우리가 정신을 똑바로 차리지 않으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사소한 실수로 큰 낭패를 보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선 미국과 중국을 향한 전략적 접근을 위해서 남북간 상호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를 통해 마련된 신뢰의 토대가 이명박 정부를 거쳐 풍비박산되면서 아주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고 있습니다.
남과 북이 민족동질성을 회복하고 신뢰를 돈독히 함으로써 한반도 정세의 안정화를 도모해야 합니다. 안정된 정세를 기반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실리를 극대화 할 수 있는 외교 수완이 모색되는 것이죠. 우리 한반도가 유럽의 성공적인 중립국 스위스와 같은 완충지가 될 것이냐, 아니면 화약고 발칸반도와 같은 열강들의 각축장이 될 것이냐 하는 기로에 서 있는 것입니다.
Q. 유 의원은 문화, 농업, 경제, 통상 등 두루 섭렵한 몇 안되는 정치인 중에 한 사람인데, 우리나라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한 말씀 해 주신다면, 그리고 앞으로 유성엽 의원 개인의 정치적 목표와 로드맵을 간략히 밝혀 주신다면.
A. 21C는 문화와 생명의 시대가 될 것입니다. 문화와 복지를 향유하며 100세까지 건강하게 장수하는 시대가 열려야 합니다. 또한 문화와 생명이 산업의 주요 컨셉이 되어 국부를 창출하는 시대가 열려야 합니다. 우선 이러한 문화와 생명의 21C를 효과적으로 열어가기 위해서는 지방 분권이 필수적입니다. 지방분권을 위해 국세와 지방세의 현재 비율(8대 2)을 5대 5까지 균형을 이뤄야 할 것입니다.
진정한 자치를 위한 재정권을 보장해 줌으로써 지방의 내생적 발전전략이 가능하게 하고, 이를 국가 경쟁력으로 승화시켜야 하기 때문입니다. 지금과 같이 재정권을 중앙이 틀어쥐고 지방을 좌지우지하려 해서는 안됩니다. 또한, 조례의 위상을 법률과 같이 높임으로써 자치입법권을 강화해야 합니다. 법률로 전국을 획일화하고 규제하는 것은 자치입법권을 극도로 제한함으로써 자치단체를 서열화하는 ‘Number 1’을 지향할 뿐 특색있는 ‘Only One’을 위한 제도적 뒷받침이 안됩니다.
만일 제가 지금 안전행정부 장관이라면 지방분권을 위한 지방재정권과 자치입법권 강화를 위해서 제도적인 혁신을 역점적으로 추진해 나갔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국가 발전을 위해 기여하는 바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중앙정치에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은 문화와 생명으로 우뚝 일어서는 분권화된 대한민국을 만들어 보는 것입니다. 안으로 탄탄하고 밖으로 유연한 국가를 만들어 보는 것, 그것이 제 중앙정치의 최종 목표점입니다. 제가 어느 역할을 맡든 이러한 대한민국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을 작정입니다. 정치 인생의 마지막은 제 고향 정읍시에서 시의원을 한번 하면서 정치를 마무리하고자 합니다. 그런 후 정읍 땅에서 살다가 정읍 땅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끊임없이 도전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4-10-15 김준성 기자
-
‘미소란 영혼에 불을 켜지는 것이다'
만나는 순간, 얼굴에 가득한 미소는 저절로 기분이 좋아지는 최고의 선물일 것이다. 활짝 웃는 얼굴에 나도 모르게 따라 웃게 만드는, 배우 정욱진을 만났다.
Q 자기소개 좀 부탁드릴게요.
A 안녕하세요, 뮤지컬 배우 정욱진입니다.
Q 어렸을 때부터 배우를 희망했었는지.
A 원래는 개그맨이 되고 싶었다. 학예회나 소풍을 가면 사회도 보고 장기자랑도 했는데 친구들이 나 때문에 웃는 것이 무척 좋았다.(웃음)내가 서 있는 곳이 무대가 되고 날 향한 웃음이 긍정적인 에너지가 되어 온전히 집중되는 순간이 참 좋았다.
Q 그럼 배우가 되고 싶었던 건 언제부터인가?
A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일을 하는 것이 내 꿈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내가 자란 여수는 문화적인 혜택이 거의 없어서 연극도 본 적이 없었고 뮤지컬이란 장르는 있는지도 몰랐다. 대학 입시 때문에 서울에 올라왔었는데 그 때 학원을 다니면서 알게 되었고 꿈꾸기 시작했다.
Q 혹시 주위에 권유가 있었는지?
A 그렇진 않고 사촌 누나가 뮤지컬 배우이다. 서울에 올라와 있을 때 지냈던 친척집이었는데 누나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다. 누나는 브로드웨이 42번가에서 주인공인 페기 역을 했던 정단영 배우이다. 그렇다고 누나가 해보라고 한 건 아니었는데 무대에 서는 것 자체를 워낙 좋아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던 것 같다. 부모님은 많이 응원해주시는 편이다.
Q 배우로서 무대에 설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
A 배우 자신으로 연기하는 것을 통해 관객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다. 좋은 작품이란 좋은 메시지를 가지고 있고 그걸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스며드는, 좀 더 정의롭고 선한 영향력을 가진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Q 선한 영향력이라면 선한 캐릭터를 선호하는 편인가?
A 아니다. 아주 나쁜 성격을 가진 역할이라도 “저 사람처럼은 살지 말아야겠다.”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하면 되니까. 그 작품에서 내가 해야 하는 부분을 충실히 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
Q 우문에 현답이다. 그럼, 장면마다의 연기에 대해 계획을 세우는 편인가?
A 물론이다.(웃음) 내가 나오는 모든 장면을 다 적어두고 어떻게 하면 작품을 흐트러뜨리지 않으면서 인물을 표현할지 씬 별로 계산하는 편이다. 시선을 어디에 두어야할지, 대사 톤은 어떻게 하는 게 효과적일지 미리 염두 해두는 편이다.
Q 미리 생각한데로 연기가 가능하다니 대단하다.
A 잘 안 돼서 매일 바꾼다.(웃음) 오히려 분량이 많지 않은 작품에서는 잘 맞아떨어졌는데 지금하고 있는 ‘쓰릴 미’는 절대로 안 되더라. 그래서 지금은 계산 같은 건 아예 포기했다.(웃음)그러다 보니 오히려 한 단계 발전한 느낌이다.
Q ‘쓰릴 미’는 여러 가지로 늘 화제가 되는 작품이다. 참여하고 있는 소감은?
A 네이슨 역을 맡고 있다. 처음에는 인물 자체가 답답하기도 하고 이해가 잘 안가서 어려웠다. 정동화 배우가 이번에 같은 역이고 또 나처럼 처음 이 작품에 참여해서 둘이서 많이 연구하고 의논했다. 굉장히 의지하고 따라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서로가 가진 이미지가 달라서 좀 더 나다운 네이슨이 되려고 노력했고 아직도 많이 연구 중이다.
Q 재 관람 관객이 많아 부담이 될 수도 있는데.
A 신기하다. 이런 작품은 처음이기도 하고. 일처럼 되는 것이 싫어서 일부러 조금씩 다른 디테일을 주려고 노력하는데 그걸 다 알아봐주신다. 그게 너무 재미있다.
Q 일처럼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A 그냥 똑같은 대사를 하고 똑같이 연기하다보면 자꾸 ‘일’이 되어버리는 것 같아서 일부러라도 대사를 다르게 하면서 ‘내 말’이 되게 하려고 노력한다. 가끔 상대배우와 새로운 디테일을 의논해서 시도해보기도 한다.
Q 상대배우에 따라서 디테일이 많이 달라지나?
A 기본적인 틀은 같지만 다른 사람이 연기하기 때문에 감정이 미묘하게 다르고 그에 따른 대사의 느낌도 다르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부분이다. 가끔 목이 잡히거나 패대기쳐질 때 아픈 연기를 하는데 나쁜 사람으로 만든다며 혼나기도 한다.(웃음)
Q 쓰릴 미에서 많이 화제가 되었다.
A 감사하다. 사실 작년에 다쳐서 쉬다보니 욕심 부리던 걸 많이 내려놓게 되었다. 욕심을 버리니 좀 더 여유로워지고 편해졌고 형들이랑 하면서 많이 도움 받고 배우고 있다.
Q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데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지?
A ‘이정은’배우. 관극을 하면서 정신없이 눈물이 난 게 두 번 있는데 한번은 ‘야끼니꾸 드래곤’이라는 극에서 고수희 선배님이 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보여준 표정 때문이었고 뮤지컬‘빨래’에서 주인 할매로 연기하는 이정은 선배를 봤을 때였다. 첫 데뷔작에서 선배를 엄마로 만났는데 진짜 많이 물어보고 도움도 많이 받았다. 아직도 그 때 써 둔 노트가 있다. 선배처럼 계산하는 게 보이지 않고 온전히 그 인물로서 같이 배우를 하는 사람들까지도 무장 해제시키는 배우가 되고 싶다.
Q 앞으로의 계획은?
A 10월 26일에 뮤지컬 쓰릴 미 1차가 끝난다. 그리고 뮤지컬 원스가 12월 14일부터 시작된다. 아직 젊으니까 돈이나 인기보다는 많이 배울 수 있는 작품으로 무대에 서고 싶고, 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다가가는 배우가 되고 싶다./김미령 기자
2014-10-14 김미령 기자
-
“대경 ACI엔젤클럽, ‘투자 감각 부족’”
소니스트(대표 김경태)는 계산 학습 게임 앱 ‘블랭키스트’ 출시 이후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러브콜을 받고 있다.
소니스트 김경태 대표는 현재 경운대학교 모바일공학과 3학년에 재학 중으로, 1994년 1월 31일(만 20세)생. 한국 최연소 법인 벤처기업으로, 계산 학습 게임 엡 ‘블랭키스트’ 출시 이후 해외 미국 실리콘벨리에서 뜨거운 러브콜을 받고 있다.
김경태 소니스트 대표는 “초등학교 때, 캄퓨터 게임을 좋아해 밤새 게임을 즐기면서 그만의 세계를 게임이라는 가상공간에서 그림을 그렸다”면서, “그 속에서 만족을 느꼈지만, 부모님께서 그런 그를 걱정하셨고 끝내는 게임하기를 원하는 그의 생각에 크게 반대하셨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이어 “부모님의 반대에 부딛치자 다른 방법으로 게임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자신만의 게임을 만들려고 했지만, 학생 신분으로 인해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면서, ”그 당시에 쉽게 접할 수 있는 휴대폰에 있는 게임에 관심을 갖게되면서, 자연히 휴대폰에 관심을 갖게 됐고, 슬라이드 폴더 슬라이드 바 터치형 등 다양한 종류의 휴대폰을 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 대표는 또 “2010년 2월 경에 스마트 폰이 출시된다는 기사를 보고 이것을 가지고 게임을 만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게임 개발에 몰두하기 시작했다”며, “그 당시 삼성전자에서 출시했던 스마트 폰에 대해 연구하면서 QA테스터로 활동했다. 그것이 (저의)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하지만 테스터로 활동하는 것도 학생 신분으로는 쉽지 않았지만, 꾸준히 휴대폰과의 인연을 맺게 됐다”고 밝혔다.
앞서, 지난 18일 미국 산호세 시티 실리콘벨리에서 마케팅 미디어 전문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Varazo. Inc 회사와 게임관련 북미마케팅을 MOU하기로 계약했고, 19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특허전문기업 e4TechHub.Inc과 기능성 게임관련 특허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이어 20일에는 미국에서 한인 300여 명의 석.박사 회원 단체(미주 한인과학자협회) Korean Life Scientists in the Bay Area(KOLIS) 기능성 게임 공동개발과 MOU를 체결했다. 이들을 통해 마케팅/특허 관리/기능성 게임에 대한 검증 및 테스트 발굴할 수 있도록 논문자료 등을 제공받는다.
이러한 기술력에 대해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창업주의 열정과 아이디어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반면, 국내 투자자인 대구 대경 ACI엔젤클럽은 현재의 재무평가, 사업성에 비중을 두고 ‘자금 활용 및 개인과 기업의 기준이 모호하다고 판단’이라는 명분으로 자금 지원을 거절한 것은 현실적인 한국 투자자의 감각이 부족함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 아닌가 싶다.
회사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 김 대표는 “대구 엔젤투자클럽에 회사의 지분 20%를 담보로 3억을 요청했으나 거절, 1억원의 자금으로 설립 이후부터 현재까지 직원 8명의 급여 및 운영비로 충당했다”면서, 부족분에 대해서는 “회사의 이사(친구와 친구 어머니), 그리고 부모님의 도움을 받아 현재까지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자금의 압박은 여전했다. 이를 위해 김 대표는 동분서주 최근 서울의 한국전통의학연구소 황성연 박사와의 미팅을 통해 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냈다.
김 대표는 “24일 증자신청을 마치고 한국전통의학연구소로부터 오는 25일까지 1억원을 지원받아 운영 자금으로 활용키로 했다”면서, “올 4분기까지 매출 발생시 대주주인 의학연구소 지분을 매입해 공익적인 회사로 성장할 수 있도록 컨설팅의 지원을 약속받았다”면서 환하게 웃었다.
김 대표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현재 준비 중인 새로운 제품들이 있다. 빠른 시일 내에 신 제품을 출시해 최단기간에 상장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라면서 자신감을 나타냈다.
앞서,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IT융합 분야의 대표 전시회인 ‘2014 대한민국 IT융합엑스포’에서 수학 교육용 어플인 블랭키스트, 영어 교육용인 별따다줄래와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어플인 커뮤니티 맵핑을 선보였다.
수학교육용 애플리케이션인 ‘블랭키스트’는 사칙연산 학습을 위한 콘텐츠로 빈칸에 알맞은 부호, 숫자를 채워 넣어 수식을 완성시키는 게임으로 두뇌 활동 증진에 도움을 주는 어플이고, 영어 교육용 애플리케이션 ‘별따다줄래’는 알파벳을 모아 영어 단어를 만드는 게임으로 게임의 진행에 따라 자연스러운 기초 단어 학습이 가능토록 기획됐다.
또한 시각장애인을 위한 ‘커뮤니티 맵핑’은 시각 장애인들에게 신호등의 위치 정보를 전달하는 애플리케이션으로 신호등의 위치를 음성으로 안내해 이동성을 증대시키기 위한 복지 콘텐츠이다.
한편, 김 대표는 2012년 7월 17일 창업진흥원애서 주최한 행사에 참석했고, 이어 지난해 7월 스마트벤처창업학교에 입교, 10월에는 미래창조과학부 캠퍼스CEO로 선정된 바 있다. 또 삼일회계법인 창업지도사, 한국기술거래사회 기술사업가치평가사를 취득했다.
특히 영국, 오스트리아, 독일, 터키, 크로아티아, 중국 등 기능성 게임에 대해 재미와 동시에 기능적인 부분에 우수성을 인정받고 글로벌 진출에 협력에 대한 제안을 받았다.
2014-09-24 심종대 기자
-
여자 축구 지소연 인터뷰, "북한 강하지만 꼭 이길 것"
아시안게임 여자대표팀에 합류한 지소연은 4강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 북한을 꺾고 결승에 진출하겠다는 각오를 밝혔다.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합류한 지소연(첼시 레이디스)이 당찬 각오를 밝혔다. 지난 22일 인천공항을 통해 귀국한 지소연은 23일 파주 NFC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아시안게임 여자대표팀의 결승 진출에 이바지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아직 결승전 출전 여부는 알 수 없지만 (출전할 수 있는) 두 경기에 집중해 결승에 진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지소연의 소속팀 첼시 레이디스는 대승적 차원에서 지소연이 아시안게임 8강 및 4강전에 출전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 구단 입장에서 아시안게임은 선수 차출 의무가 없는 대회임에도 지소연과 대한축구협회의 뜻을 존중해 지소연을 아시안게임에 보내주기로 했다.
하지만 지소연은 소속팀 일정상 결승전에는 출전이 불가능할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한국이 결승에 진출한다면 협회 차원에서 지소연의 결승전 출전 여부를 구단 측에 문의할 수 있지만 첼시 레이디스도 리그 막바지 치열한 순위 경쟁을 벌이고 있어 협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일단 지소연은 자신에게 주어진 아시안게임 8강과 4강에 최선을 다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와 함께 4강에서 만날 가능성이 있는 북한을 반드시 이기겠다며 투지를 불태웠다.
지소연은 “북한이 우리 팀만 만나면 이상하게 잘 하더라. 그래도 결승에 진출하려면 반드시 북한을 꺾어야 한다. 북한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도 뒤처지지 않는 경기력으로 싸워보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북한과의 A매치 상대전적에서 1승1무12패로 뒤져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네 차례 만나 모두 패했다. 다음은 지소연과의 일문일답.
Q. 결승전 출전 여부는.
“아직 결승에 올라간 것도 아니다. 아시안게임 최고 성적이 3위인데 첫 목표는 결승 가는 것이다. (결승전 출전 여부는) 그 다음에 생각하려고 한다. (소속팀과의 협의는 대회 기간 내내 이어지나) 그렇다. 결승 가게 된다면 협회에서 잘 해줄 것이라 생각한다.”
Q. 하룻밤을 동료들과 지낸 느낌은.
“중간에 들어왔지만 같이 해왔던 동료들이라 전혀 어색하지 않다. 예선전을 잘 치러 분위기도 좋고 나도 하루 밖에 안 됐지만 잘 적응했다.”
Q. 지소연 합류가 대표팀에 큰 힘이 된다고들 한다. 본인의 생각은?
“동료들이 저를 신뢰해줘 기쁜 일이다. 저도 아시안게임 때문에 여기 왔다. 4강에서 북한과 만날 수 있는데 꼭 이기고 싶다.”
Q. 국내에서 지소연의 플레이를 볼 기회가 없다. 어떤 모습 보여줄 것인가.
“한국에서 오랜만에 뛰는데 제 경기를 못 보셨을 것이다. 저도 한국에서 경기를 하게 돼 기대되고 좋은 경기력으로 팬들에게 보답하고 싶다.”
Q. 윤 감독의 주문 사항은.
“예선을 잘 치렀다. 하지만 예선 상대는 한 수 아래다. 이제 그 분위기는 잊고 목표한 대로 결승 진출을 위해 준비하고 있다. 감독님도 분위기가 달라졌다. 좀더 예민해지고 집중하고 있다. 선수들도 집중해서 운동하고 있다.”
Q. 북한전 영상을 봤나. 가장 신경 쓰이는 상대는.
“북한과 작년 동아시아대회에서 해봤다. 한국은 이전보다 경기력이 많이 올라왔다. 북한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뒤처지지 않는 경기력으로 한번 싸워보려 한다.”
“역시 북한이다. 어느 팀이 올라와도 우승하려면 다 이겨야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북한은 한국을 만나면 왜 그런지 모르지만 강하다. 우리도 홈이니 만큼 결승 가려면 북한을 이겨야하는 만큼 최선 다할 것이다.”
Q. 세번째 아시안게임이다. 의미가 남다를 것 같다.
“2006 도하아시안게임 때는 나이도 어리고 아무 것도 몰랐다. 지금은 나이도 찼고, 아시안게임이 홈에서 열린다. 우리가 잘 한다면 팬들이 여자축구에 관심 가지는 계기가 될 것이다.”
Q. 개인적인 목표는.
“결승에 가는 것만, 나에게 주어진 두 경기만 생각하고 있다. ‘역시 지소연은 다르구나’ 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2014-09-23 심종대 기자
-
이순재-신구, “헨리 폰다는 잊어라”
미국의 극작가 어니스트 톰슨의 대표작 ‘황금연못’이 오는 19일부터 대학로 DCF 대명문화공장 1관 비발디파크홀 1관에서 공연한다.
이 작품은 1979년 초연 당시 토니상을 수상한데 이어 1981년 마크 라이델 감독에 의해 영화 ‘황금연못’으로 제작돼 이듬해인 1982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남.여주연상과 각색상을 수상했다.
인생 황혼기를 맞은 노부부의 삶과 가족의 사랑을 그리면서, 아버지와 딸 역에 실제 부녀인 헨리 폰다와 제인 폰다가 출연해 화제를 모은 이 영화는 특히 애증이 뒤섞인 부녀의 모습을 실감나게 연기한 두 부녀(헨리 폰다와 제인 폰다)를 비롯해 걸출한 배우들이 보여주는 농익은 연기는 잔잔하고 묵직한 여운을 선사한 바 있다.
독설을 일삼는 까칠한 고집쟁이 노인 노만은 꿈같은 청춘이 지나고 죽음이 멀지 않음을 깨닫지만, 그의 곁에는 항상 그의 까다로운 성미를 모두 받아주는 따스한 성품의 아내 에셀이 함께한다.
‘황금연못’으로 불리는 호숫가의 별장에서 여름을 지나고 있는 이들에게 남자친구와 여행을 떠나기위해, 남자친구의 아들 빌리를 맡기기 위해 외동딸 첼시가 찾아온다.
80세 노인 노만과 13세 소년 빌리 사이에서는 결코 어울릴 수 없어 보이던 이들 사이에 세대차이를 뛰어넘어 우정이 싹트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다정한 모습에 꽁꽁 얼어붙었던 첼시의 마음이 녹는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엄격하고 무뚝뚝한 모습에 상처받아 연락을 끊었던 첼시는 아버지에게 화해의 손을 내민다. 이들에게 마법 같은 일을 가능케 만든 주인공은 까칠한 속에 숨어 있는 노만의 진심을 헤아릴 줄 아는 유일한 사람 에셀이다.
청춘에 대한 상실감과 예전 같이 않은 기력 탓에 고집과 까칠함만 늘어가는 남편을 위해 에셀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선다.
“할아버지는 너에게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야. 세상에 소리를 지르는 거야. 그는 늙은 사자와 같단다. 아직도 자신이 건재하게 으르렁거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하거든”이라면서 감수성 예민한 사춘기 빌리가 이따금 언성을 높이는 할아버지를 무서워할까봐 들려주는 에셀의 이야기는 빌리는 물론 관객들의 마음까지 환하게 만든다.
SBS 대하드라마 ‘토지’의 이종한 연출은 “상업적이고 기형적인 저급 연극이 횡행하는 무대에서 명작의 감동을 생생히 재현하는 현실 속에서, 재미, 감독, 예술성을 모두 겸비한 국민연극을 만들겠다”면서, “노령화 사회 속 노인들의 아름다운 역할과 가족 간의 바람직한 소통방식을 제시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앞서 지난달 8일 대학로 DCF 대명문화공장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이순재는 연극 ‘황금연못’에 대해 “일상성의 연극이라 큰 기복은 없다. 다만 지루해 할 수는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부분은 아기자기 하면서 재미있게 넘어간다”면서, “노이든 사람이 나온다고 흥행이 안 되라는 법이 없다. 신구와 손숙이 나온 연극 ‘아버지와 나와 홍매와’ 는 관객이 꽉찼다. 잘만 하면 젊은 관객들도 많이 들 수 있을 것”이라면서 작품에 대한 자신감을 나타냈다.
신구는 “(이 작품의 주인공 노만은) 지금 내 나이와 비슷하다. 마지막으로 정리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들을 안은 채 죽음을 앞둔 모습이 제 모습과 비슷해서 선택한 작품”이라면서, “우리 나이가 되면 항상 그 문제를 두고 고민한다. 5분마다 죽음을 생각하는 노만 만큼은 아니더라도 수시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나문희는 “연극은 땅에 발이 잘 닿아야 한다. 기운이 있어야 하고 호흡도 좋아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힘이 든다”면서, “그 만큼 버티는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관객들과 호흡이 좋아지고 스스로의 힘도 많이 좋아진다”고 덧붙였다.
내년이면 60살을 바라보며 어는 촬영이나 무대에 가도 나이에 대해 밀리지 않던 성병숙은 이 무대에서는 막내다. 성병숙은 “막내가 참 편하다. 선생님들이 잘 봐주시는 것도 많고, 실수도 많이하는 천둥벌거숭이인데 모두 잘 챙겨주신다”면서, “남편 두 분이 너무나 다르다. 이순재 선생은 다들 알지만 직진이고, 신구 선생님은 회오리다. 두 분이 무대 위에서 너무 달라서 노만을 두 번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만 세이어 주니어 역에는 이순재, 신구가 더블 캐스팅됐고, 까다로운 남편을 받아주는 따뜻한 성품의 에셀 역에는 나문희와 성병숙이 출연한다. 이 외에 이도엽 우미화 이주원 홍시로가 함께한다.
황혼에 접어든 노부부가 세대갈등과 가족의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해 가는 모습을 유쾌하고 잔잔한 감동으로 그려낸 연극 ‘황금연못’은 이달 19일부터 11월 23일까지 공연한다.(문의 02-766-6506)
2014-09-15 심종대 기자
-
“탁촌장만의 브랜드 만들고 싶다”
“탁촌장은 변함없는 장인의 손맛으로 고객들에게 품질 좋은 제품만을 공급합니다”
경북 안동의 특산물인 참마를 주원료로 사용해 바른 먹거리와 건강한 삶을 추구하면서 전국 70%를 차지하고 있는 지역의 마 생산농가의 시름을 덜어주면서 기부회사로 알려진 기업 ㈜ 탁촌장 사무실에서 탁상훈 대표를 만났다.
# ㈜ 탁촌장을 설립하게 된 계기는?
㈜ 탁촌장 탁상훈 대표는 ‘탁촌장’을 설립한 계기에 대해 “지난 2007년 일반사업자로 시작해 지금은 법인 두 개를 설립한 탁상훈 대표의 처음 시작은 안동 참마 보리빵 한 가지로 시작했다. 탁촌장은 이 사업을 하기 전에 농업을 20년 정도 했고, 유통업을 10년쯤 했으나 성공하지 못했고, 이로 인해 부채가 10억 이상의 부채가 발생해 신용불량자가 됐다. 농업 쪽에서 특히 버섯 쪽으로 특수한 미생물 부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 열심히 해도 안 되는 부분이 있었다”면서, “이 사업을 시작한지 7년 반이 됐다. 4년 만에 부채 10억을 다 갚았고, 지금은 부채가 없다. 하지만 이번에 탁촌장 타워 설립을 위해 땅 대지 설정을 위해 약간의 대출을 받았다”고 말했다.
탁 대표는 이어 “농업을 하면서 우리 지역에서 농업과 유통업으로는 어느 정도 성과를 거뒀다. 농협 가공제품을 대신 팔아줘서 수수료를 받으면서 경험을 쌓았으나, 남의 제품을 파니까 재미가 없어 우리 지역의 농산물을 가지고 내 브랜드를 한 번 만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했다”면서, “우리 지역의 특산물인 마 생산은 전국의 70%를 차지한다. 마는 무색무취로 (제가 생산하는) 어떠한 제품에도 다 접목된다. 원래 향을 깨지 않고 원래 마의 장점을 살렸다”고 설명했다.
탁촌장은 “이 사업을 시작하면서 첫 제품은 ‘참마 보리빵’으로, 첫 해인 지난 2007년 매출이 3억 7천만 원을 올렸다. 오전에는 빵을 굽고 오후에는 사람 많은 곳을 찾아다니면서 빵을 직접 팔러다녔다. 1년 반 동안 (제가) 직접 빵을 만들어 팔고 현장에서 자료집을 만들어 몸으로 직접 뛰고 시식과정을 통해 제품을 알렸다”면서, “각종 축제행사에는 안가본데가 없을 정도로 지금도 (축제에) 나간다. 지금 이 맛이 하루 아침이 나온 것이 아니라, 5차례의 반죽 작업을 통해 지금의 맛이 나왔다. 2년차의 매출은 배로 늘어났고, 3년차부터 직원을 보충하면서 제품의 다양화를 꾀했다. 현재 안동국수(4종류), 하회탈쵸코릿, 안동참마차(4종류), 안동참마 보리빵이 야심작”이라고 덧붙였다.
탁 대표는 제품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하회탈쵸코릿’은 지난 2010 서울 G20 정상회의 상품으로 선정된 문화관광상품으로, 사공일 위원장으로 감사패를 받았다. 롯데, 해태 등은 다 떨어졌다. 이유는 대기업의 제품들은 외국의 제품들과 차별화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제품의 하회탈 모양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이고, 사과, 포도, 감귤은 한국을 대표하는 농산물로, 동결건조원료와 안동 참마가 함유된 달지 않고 부드러워 먹기에 부담이 적은 세계인의 기호식품이자 건강초코릿으로, 지난해 7월에는 산업자원부 선정 GOOD DESIGN에 선정됐고, 농어촌공사에서 스타상품에 선정해 별 3개를 받았다.
‘안동의 맛’은 안동국수, 쌀국수, 쌀떡국, 떡볶이로 구성된 세트상품으로 저칼로리, 방부제 0%, 트랜스지방 0%의 맛도 좋고 소화도 잘되는 웰빙식품으로, 안동참마가 들어있어 면발과 떡이 쫄깃하고 퍼지지 않고 기름에 튀기지 않아 국물 맛이 시원하다. 또한 비빔국수도 출시할 예정이다.
지난해 10월 농협중앙회와 계통계약을 체결했다.
탁 대표는 “이를 위해 농협중앙회를 27회를 방문했고 담당자들이 3번이나 바뀔 정도로 시간이 걸렸고 힘들었다. 처음에 방문했을 때에는 담당자들로부터 문전 박대를 당했고, 만나주지도 않아 담당자와 싸우기도 했다”면서, “이후 2년여에 걸쳐 검토를 거쳐 지난 7월에 등록을 마쳤고, 오는 10월초에 전국 2400개 농협중앙회에 납품 예정이다. 현재 안동 영양 농협 인근에서는 시판되고 있다. 앞으로 이 제품이 ‘탁촌장’의 주력 상품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동참마가 든 건강한 우리 차’ 안동참마분말 함유로 더 부드러워진 건강한 우리차 종합세트로, 호두, 율무, 아몬드, 마차, 생강, 오미자차, 한차, 복숭아차로 구성돼 입맛 따라 즐길 수 있는 온가족을 위한 선물세트제품이다.
탁 대표는 “그동안 생마를 이용해 특유의 향, 분말이 물에 잘 풀리지 않는 문제와 신세대인 젊은층과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민했다”면서, “기존 제품이 갖고 있던 문제점을 개선한 스틱포장으로 물 없이 용기 없이 먹을 수 있고, 휴대가 간편하고, 시간이 지나도 열화, 색변, 수분흡수로 변질되거나 굳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특히 6차 산업의 기술 집약 산업의 제품으로 유산균은 생리활성이 높고 흡수율이 증강된 생약발효물로부터 분리된 유산균 중 장내 생존율이 높고 장기 저장시 사멸 율이 낮은 우수한 유산균만을 선별한 제품이다.
이 제품에 대해 안동대 식품영양학과 손호용 교수 연구팀과 경북 바이오산업연구원 조재현 팀장과 3년의 연구 끝에 기존의 분말제품에 비해 유용성분함량이 높다. 시료 100g당 플라보노이드는 5.4mg보다 높은 10.2mg, 폴리페놀은 300.5mg보다 높은 388.4mg, 환원당의 경우 1,241mg보다 높은 1,833mg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현재 홈쇼핑 준비중으로, 지난주 LS MD가 사무실을 방문해 홈쇼핑 런칭 금액까지 합의가 다 됐고, 올해 10월 중순 경부터 납품 예정이다. 이를 위해 생산은 경북 안동시 풍산읍 소재 ‘경북바이오 벤쳐프라자’에 공장등록을 마쳤고, 제반 문제는 다 끝났다. 주 판매처는 (안동)매장 판매뿐만 아니라, 쇼핑몰 대행업체 등 10여 군데가 있다.
‘참마 보리빵’은 설탕대신 올리고당, 물 대신 생우유와 계란을 넣어 반죽한 무방부제, 무트랜스지방 제품으로 안동참마와 100% 국산 찰보리로 만들어진 웰빙 영양간식이다.
탁 대표는 “‘참마 보리빵’은 빵이라 생각하면 안된다. 빵으로 만든 것이 아니고, 특산품으로 설득했기 때문에 매장에서도 제법 많이 팔린다. 동대구, 하회마을 안동터미널 등지에서 일 평균 300상자 약 5백만원 정도의 판매고를 올리고 있다”면서, “지난 7년 반 동안 새벽 5시부터 반죽실에서 직접 반죽을 한다. 이는 (자신에게) 일에 대한 열정을 지속적으로 유지하면서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 ‘탁촌장’의 경영 철학은?
탁 대표는 인터뷰 동안 자신감이 넘쳐 있었다. 탁 대표는 “현재 매장이 40평 정도로 규모가 조그마하지만, 특별한 영업방법은 없다. 대기업이라면 모델 등을 통해 홍보할 수 있겠지만...규모가 작다보니득별히 홍보할 방법이 없어 뭐든지 들이댔다. 물론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자신감이 더 붙더라. 그 방법밖에 없다. 그렇지 않으면 제품을 만들어 놔도 팔 수 있는 길이 없었다. 이 사업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안되면 끝까지 찾아가는 ‘끈기’와 ‘열정’”이라고 강조했다. 그 결과 향토 기업 특산물 업체 30개 업체 중 매출 규모로만 볼 때 안동에서 5위권 안에 들어 갔다고 덧붙였다.
# 앞으로의 계획은?
탁 대표는 “앞으로 탁촌장 타워 건물을 지을 예정이다. 탁촌장 브랜드를 인식시켜, 탁촌장 캐릭터로 6차 산업이라는 정부사업을 지원 받아 설계가 마무리되면 올해 안에 착공해, 내년 설 전에 입주해 6차 산업 원스톱 미니 복합을 만들어 쇼핑하고, 체험 등이 모든 과정이 한 번에 이뤄지도록 짜놨다”면서, “탁촌장 브랜드를 건물 내부 안에 프랜차이즈를 만들고, 또 광역권 도시에는 탁촌장 타워를 이용한 프랜차이즈를 만들어 저가로 많은 고객들이 올 수 있도록 해 마와 관련된 차를 팔고, 음식도 팔고, 마와 관련된 가공제품도 판매해 매출 신장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4-09-10 심종대 기자
-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경, 협조와 양보 필요”
천태종은 중국 천태산의 이름을 따서 만든 종파로, 중국 진나라 말과 수나라 초의 유일한 고승 ‘자자대사’에 의해 천태종을 개창했고, 고려시대 문종의 넷째 왕자로 태어나 11세에 출가해 47세 입적할 때까지 오직 구법과 전등을 발원한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우리나라에 처음 들어오게 됐다.
이후 조선의 숭유억불정책으로 은몰해 있던 천태종을 중창한 ‘상월 대각국사’가 불교 중흥과 중생구제에 진력하면서 1945년 소백산 연화지에 초암(현 구인사)를 짓고 천태지관으로 수행정진에 진력하면서 회삼귀일, 원융삼제, 진속불이의 법화교지로써 새불교운동을 전개키 위해 단절된 종맥을 계승, 천태종을 중창했다.
천태종을 중창한 ‘상월 원각대조사’는 칡덩굴을 얽어 만든 산가초암을 짓고 뼈를 깎는 정진 끝에 대도를 성취 감로법우의 새 교화문을 열어 그 미묘한 법력과 도풍덕화를 쫓아 수많은 문법제자들이 그를 산부처라 부르면서 운집하기 시작해, 현재 250만 성도가 찾는 사찰이 됐고, 말사도 생겼다.
# 도정스님이 구인사에 출가 동기
도정스님이 출가하게 된 계기에 대해 “당시 부모님이 구인사에 다니셨는데 (제가)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 때 부모님과 함께 구인사에 와서 설법을 들었는데 깊은 감명을 받았어요. 대중설법을 하시다가 제자 3분이 릴레이 방식으로 설법을 하셨는데 정말 신통방통했고 경이로운 마음마저 들었다. ‘나도 하면 될까’라는 생각으로 출가하게 됐다” 말씀하셨다.
이어 “부모님은 재산이 많은 분들이었는데, (제가) 출가를 하면서 전 재산을 종단에 기부했다. 그리고 1968년 구인사로 출가했을 당시에는 첫 출발하는 시점이라 불교의식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도 않았고, 또 제대로 배울 수 도 없었었고 길도 없었고, 식생활 해결도 큰 문제였다”면서, “당시 초가집을 포함해 3-4채 정도 있었어요. 이후 지금의 집과 도량을 비롯해 박물관을 건축하게 됐지요.”라고 회고했다.
# ‘주경야선’으로 일궈낸 ‘구인사’
도정스님은 “손수 산비탈을 깎아 길을 만들고 조금씩 법당을 지어가면서 상상하지 못할 환경 속에서 오늘을 만들었지요.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정신수행으로 자립경제의 기반을 갖추는 ‘주경야선’을 통해 의식주의 해결과 함께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면서, “천태종은 결집력이 가장 좋은 종단으로 한국불교를 대표할 수 있지만 짧은 역사 속에서 오늘까지 만들어진 일들이 엊그제 같은데 과거를 돌아보면 ‘세월이 무상하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하지만 도정스님의 구인사를 이루는 과정은 순탄치만은 않았다.
“겨울에 나무를 하러갔는데 부자집에서 자라서 나무를 한 경험이 없었지요. 다른 사람들과 같이 나무를 했는데 하나도 하지 못해 그냥 빈 지게로 내려온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어요. 또 돌을 깎아 길을 만들고, 수레를 한 번씩 움직여야 하는데 힘에 부쳐 넘어지기도 수 없이 많았지요. 한번은 수레를 밀고 내려오다 언덕에 쳐박혔는데 마을 사람들이 수레가 망가지는 일만 걱정했지 (저를) 걱정해주지 않아 화가 나 산을 내려가려고도 했지요, 그때 큰 스님께서 아시고 격려해 주시는 말씀에 힘을 얻고 지금까지 잊을 수 없었지요. 어려울 때마다 큰 스님의 미래에 대한 꿈과 격려가 지금까지 견디어 올수 있었던 버팀목이 됐다. 당시 큰 스님께서 말씀하셨던 꿈이 현실로 이뤄진 것이 놀랍기도 하고 신기했다”면서 환하게 웃으셨다.
천태종이 가야할 3대 지표는, 대각국사에 의해 개립됐던 고려 천태종은 역사의 비운속에 자취를 감췄다가 상월 원각대사에 의해 다시 빛을 드러낸 천태종은, 일제의 암흑시대가 종말을 고한 8.15 광복 후 국토양단 민족분열의 액운으로 인해 6.25 동족상잔의 비극을 거쳐 오게 된 민족적 수난을 크게 개탄하고 불교 중흥과 호국제중의 대원을 세웠다.
이를 위해 애국불교, 생활불교, 대중불교를 3대 지표로 세웠다. 우선 일제 시대에 이리 저리 쫓겨다니면서 나라 없는 설움을 겪은 상월 원각대조사는 “나라 없이는 종교는 없구나”하는 생각 속에 항상 나라를 사랑하는 ‘애국불교’를 주창했다.
이어 과거 시찰하면서 생각하는 잡소리 세속의 소리가 없는 산중에 사찰을 지어 생활하는 산중불교에서 벗어나 생활 속에서 어울려 깨우침을 얻을 수 있는 생활불교로 지표로 내세운 ‘생활불교’, 그리고 나 혼자가 아닌 더불어 모든 사람이 같이 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생활 대중과 함께 살 수 있는 새불교인 실천불교를 지향하는 ‘대중 불교’를 말한다.
# 사회를 던지는 메시지
도정스님은 오늘을 사는 현세대에게 “경제와 의식의 생각에 차이가 있다”면서, “60-70년대는 경제는 어렵지만 마음, 인심은 후덕하게 이해하고 협조하면서 살아왔는데, 경제가 갑작스레 성장하다보니 모든 면에서 이기적으로 변했다. 공격성을 띠고 혼돈한 세상이 된 것이 아닌가 걱정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윤리 양심은 경제가 갑작스레 성장하면서 모든 것이 망가졌다”고 지적하고, “살면서 인간의 근본적인 인간성을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을 교육하고 정서적인 훈련으로 인간이 지켜야 될 인간성이 있는 세상이 돼야 하고, 소통을 위해서는 서로 살아야 하는 상생이 이뤄져야 한다. 그것을 위해 남을 이해하고 배려를 할 줄 알아야 하고, 남을 깔보면서 살아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또 “상대방에 대한 이해와 존경, 그리고 협력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때 행복해지고 국가가 행복해진다. 나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협조와 양보 등을 통해 이뤄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도정스님은 “이 정도 만들어놨다는 자부심 수행을 통해 견디면서 어느 정도 알 수 있는 눈을 떳다고 생각한다”면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한편, 도정스님은 서울, 인천 등 총무원 서기부터 시작해 총무부장, 종회의장, 총무원장 등을 역임했다.
2014-09-05 심종대 기자
-
국립예술단체, 시즌제 프로그래밍 도입 통한 창.제작 역량 강화
국립현대무용단 제2대 안애순 예술감독이 지난달 28일로 취임 1주년을 맞았다.
‘한국적 컨템퍼러리의 탐색’을 표방하면서 무용예술의 가능성을 확장키 위해 노력해 온 안애순 예술감독은 지난 1년 간 시즌제 프로그래밍 도입, 프랑스 샤이오국립극장 초청 등의 굵직한 성과를 일궈내면서, 국립예술단체 중 가장 막내인 창단 4년의 국립현대무용단을 본격적인 성장 궤도 위에 올려놓았다.
안애순 예술감독은 취임과 함께 가장 역점을 둔 부분은 국립예술단체로서의 대표성과 공공성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무용의 예술적 역량을 강화하고, 참여와 경험을 위한 매개체로서 동시대적 춤이 지닌 가능성을 극대화하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안 예술감독은 시즌제 프로그래밍의 도입과 체계적인 제작시스템 구축을 통해 창작과 제작의 질적 수준을 높이는 한편, 지역순회공연 확대와 무용학교 개설 등을 통해 계층과 지역, 세대를 아울러 모두가 함께 참여하고 즐기는 현대무용의 환경을 조성해 왔다.
특히 국립예술단체로서는 최초로 도입한 시즌제 프로그래밍은 한해의 프로그램을 미리 계획해, 안정적이고 예측가능한 창작환경 속에서 작품 제작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장기적인 관점에서 관객 확보를 통한 현대무용의 저변확대를 도모키 위한 것이었다.
국립현대무용단은 올해의 시즌 주제를‘역사와 기억’으로 잡았다. 이는 한국 현대무용의 현재를 확인하고 미래를 제시하기 위한 사전 단계이자 한국적 컨템퍼러리의 탐색을 위한 작업으로, 정기공연과 기획공연, 전시와 퍼포먼스, 인큐베이팅과 레지던스, 강연과 토크 등 연 50여 회에 달하는 공연과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2014년 사업이 꾸려졌다.
또한 안 예술감독은 우리 전통장례에 등장하는 ‘꼭두’를 소재로 신작 ‘이미아직’도 ‘역사와 기억’이라는 시즌제 프로그래밍의 성과물로, 유럽 무용평론가 토마스 한(Thomas Hahn)으로부터 “한국적 감수성을 가로지르며, 타자에 대한 인식과 존재들 사이의 교류에 관한 대화이자, 전통과 현실적 삶 간의 대화”를 성취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으면서, 2015-2016년 ‘한.불 상호교류의 해’ 공식 프로그램으로 프랑스 샤이오국립극장에 초청됐다.
지난달 25일과 26일 양일간에 걸쳐 아르코예술극장 무대에 오른 ‘우회공간’과 오는 10월과 11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예술자료원에서 개최될 ‘결정적 순간들-공간사랑, 아카이브, 퍼포먼스’ 전시 역시 1980-90년대 ‘공간사랑’을 중심으로 진행됐던 한국 현대무용사의 역사와 기억을 되짚어보는 작업이다. 이어 국립현대무용단에서 처음 시도하는 작품 공모전인 ‘전통의 재발명전’도 우리 역사와 전통에 대한 기억을 동시대적 관점과 해석으로 재발명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이러한 시즌제 프로그래밍을 완성도 높은 작품 제작으로 연결시키기 위해 안예술감독이 심혈을 기울여 온 것은 전문적인 창.제작시스템의 구축과 프로덕션 관리의 효율화이다. 이를 위해 안애순 예술감독은 작품 제작에 있어 리서치, 드라마투르기, 창작, 제작, 아카이빙에 이르는 전 과정에 내.외부의 전문적인 제작인력들을 효율적으로 활용해, 창.제작 프로세스에 대한 단체의 관리 역량을 강화하고 동시다발적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토대를 구축했다.
전문적인 창.제작시스템의 구축과 프로덕션 관리의 효율화는 우수 레퍼토리의 축적과 유통 활성화라는 성과를 가져왔다. 지난해 초연이 전석매진 사례를 일으켰던 ‘11분’ ‘춤이 말하다’ 등은 올해 서울에서의 우수 레퍼토리 재공연을 거쳐 수원SK아트리움, 부산LIG아트홀 등의 지역 공연장 초청공연과 ‘문예회관과 함께하는 방방곡곡 문화공감사업’ 순회공연이 9개 지역에서 이뤄지고 있다. 또한, 안애순 예술감독의 신작 ‘이미아직’이 4개 지역문예회관들과의 공동제작도 앞두고 있어, 올해 총 13개 지역에서 지역순회공연이 이뤄졌다.
안애순 예술감독의 취임과 함께 신규로 진행되는 또 하나의 사업은 아카데미. 지난해 9월부터 진행된 아카데미사업은 동시대의 인문학 및 인접 예술양식의 흐름을 연구, 컨템퍼러리의 이슈와 한국 현대무용의 현주소를 탐색하는 동시에 창작 작업과의 상호작용 및 피드백을 통해 창작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한편, 안애순 예술감독의 남은 과제는 지난 1년간의 성과를 바탕으로 향후 한국 현대무용의 전위와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다. .안애순 예술감독은 동시대 문학, 음악, 시각예술, 건축 등 다양한 타 장르와의 적극적인 협업 및 해외 아티스트들과의 교류를 다각화하고, 또한, 대규모 제작비를 투입해 모든 연령대의 관객들과 해외시장에서도 두루 통용될 수 있는 국가브랜드형 대표 레퍼토리를 개발하고 이를 국제무대에 활발하게 유통시켜 한국 현대무용의 성과를 해외에 알려나갈 예정이다.
2014-08-05 심종대 기자
-
이용수 신임 기술위원장, “9월 A매치 전 대표팀 감독 선임하고파”
“내.외국인 30여명을 포괄적으로 심도 있게 검토하되 가급적 9월 A매치에 감독이 경기를 지켜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인적인 욕심”
신임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으로 선임된 이용수 세종대 교수는 차기 국가대표팀 감독을 면밀히 살펴 가급적 빠르게 선임하겠다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28일 서울 신문로 축구회관 2층 다목적회의실에서 열린 신임 기술위원장 취임 공식 기자회견에서 기술위원회 업무 및 운영방향을 설명하면서 차기 국가대표팀 선임에 대한 계획도 밝혔다.
이 위원장은 “기술위원회가 대한민국 축구의 모든 것을 결정하는 요술방망이는 아니다”면서, 기술위 권한의 확대해석을 경계하면서도 “브라질월드컵에서 대표팀의 아쉬운 경기력은 지속적으로 해야할 것들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기술위원회가 좀더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이어 “대표팀 지원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대한민국 축구 발전을 위해 5년에서 10년, 길게는 20년까지 바라보고 질적인 차원에서 바꿀 수 있는 고민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 위원장은 차기 대표팀 감독과 관련해, “개인적인 욕심은 적어도 9월 A매치에 감독으로서 경기를 준비하지는 못해도 관중석이나 본부석에서 경기를 지켜볼 수 있게 했으면 하는 생각”이라면서도, “시간에 쫓겨서 급하게 선임하는 일은 없다”고 밝혔다.
# 다음은 이용수 신임 기술위원장의 일문일답.
-기술위는 앞으로 얼마나 자주 모이나.
상근위원 중심으로 당분간 국가대표팀 감독이 정해지기 전까지는 거의 매일 모인다. 잠정적으로 30일 오후 처음 기술위원들을 모두 모아 1박2일 정도 논의할 생각이다. 오랫동안 감독 선임에 대해 심도 있게 다뤄야하고, 또한 앞으로 상근위원이 파주에 상주하면서 여러 일을 할 수 있기에 기술위원들은 틈나는 대로 자주 모이겠다.
-차기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 기준은 무엇인가.
아직 기술위원들과 논의를 못했지만 개인적으로 국내외 감독을 포함해 기술위에서 심도있게 검토하겠다. 어떤 감독이 리스트에 올랐다는 내용은 말씀드릴 단계가 아니다. 이상적인 감독은 대한민국 축구의 변화, 대표팀 경기력은 물론이고 대한민국 축구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유소년까지 긍정적인 변화를 만들 수 있는 비전을 가진 분이면 좋겠다.
-9월 A매치 이전에 선임하는가. 차기 감독은 장기계약이 필요할 것 같다.
제 욕심은 9월 A매치에 적어도 감독으로서 경기를 준비하지는 못해도 관중석이나 본부석에서 대표팀 경기를 지켜볼 수 있게 했으면 한다. 대표팀 감독의 계약기간은 지켜지기 어렵다. 모든 경기 결과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계약기간을 설정해도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받는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면 전체기간은 2018년까지 가지만 중간에 단서조항을 넣을 것이다. 예를 들면 러시아월드컵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진출한다면 2018년까지 맡기는 조항을 넣고 싶다. 그러나 월드컵에 진출하지 못하면 계약기간을 유지하기는 어렵다고 본다.
-기술위 독립성에 대해 협회와 교감은 이뤄졌나.
기술위가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은 아니다. 제가 기술위원장으로 일하면서 협회에 어떤 조건을 내걸거나 ‘이렇게 하지 않으면 기술위원장을 안 하겠다는 자세를 취할 수는 없다. 기술위에서 좋은 생각을 만들어낸다면 협회가 굳이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다. 기술위가 어떤 위상으로 변화 줄지는 이미 많은 분들이 심도 있게 검토하고 있고 조직체계를 연구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기술위에서 하는 것들은 이미 독립성 보장돼있다. 권한은 협회와 기술위원장, 기술위가 조율하면서 해나갈 것으로 본다.
- 내년 1월 열리는 아시안컵 대비는.
어떤 감독이 선임되든 한경기 결과로 거취를 묻기에는 시간이 짧다. A매치가 계속 있고 아시안컵은 K리그가 시즌 끝난 이후라 프로연맹과 협의하면 준비 기간은 다른 대회보다는 여유를 가질 수 있다. 감독이 선임되면 선수단 구성하고 9월부터 11월 A매치 통해 아시안컵 엔트리를 좁히고 대회 직전 훈련할 수 있는 시간 최대한 확보하면서 대표팀 감독과 협의하면서 준비하겠다. 아시안컵 자체만으로 신임 감독을 경질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월드컵 최종예선까지는 어떤 형태로든 시간적 여유를 줘야한다고 생각한다
- 임시감독 체제도 고려하나.
생각은 하고 있다. 아직까지 구체적인 생각은 못해봤다. 적어도 9월 A매치 시간에 쫓겨서 감독 선임하는 것은 대한민국 축구 발전 위해 도움 안 된다. 여유 가지고 좋은 감독을 모시는 게 좋다. 여러 생각이 있지만 급하게 선임하지는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구체적인 감독 선정 기준은 무엇인가. 국내 감독과 외국인 감독의 장단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개인적으로는 경기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월드컵 또는 클럽팀 감독으로서 결과를 만들어낸 경험이다. 두 번째로 대표팀 감독은 리더십과 인성이 병행돼야 한다. 리더십이나 인성은 수치화할 수 없지만 최대한 알아내 기준으로 삼겠다.
내국인은 대표팀 감독으로 준비하고 적응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빨리 대표팀 분위기를 만들고 원하는 경기력을 만들 수 있지만, 외국인은 세계축구의 새로운 변화, 우리 선수들이 가진 장점을 세계무대서 잘 표출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안다.
-현 대표팀이 전술적으로 보완할 과제는. 현 대표팀 자원의 수준은 어느 정도라고 보나.
이번 월드컵에서 나타난 특징 중 큰 변화는 예전보다 더 수비 지향적인 경기 운영을 하면서 공격 상황에서는 공격수의 빠른 스피드와 절묘한 개인기, 결정력을 조화한 팀들이 좋은 결과를 얻었다. 그러한 변화는 지난해와 재작년 유럽 챔피언스리그 준결승과 결승에서 나온 결과와 비슷하다. 수비와 미드필드에 많은 숫자를 두면서 수비 중심으로 하다가 공격 상황에서 아리연 로번, 로빈 판 페르시, 리오넬 메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가레스 베일 등의 스피드, 파워, 개인기, 결정력으로 판가름나는 게 최고 수준의 경기다.
우리 선수들은 스피드는 좋지만 개인기는 좀더 세밀하게 다듬고 결정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야 세계 수준에 접근할 수 있을 듯하다. 우리 선수들은 체력 준비가 잘 될 때 결과가 좋았다. 수비 때 더 많은 숫자가 가담하고 공격시 빠른 역습을 추구하는 전술이 필요할 것으로 본다. 그런 (전술을 수행할 수 있는) 공격수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4-07-28 심종대 기자